설교본문/ 창세기 32:13~32
설교제목/ 브니엘을 경험한 야곱
서론/
오늘 주일오전 예배 말씀은 <브니엘을 경험한 야곱>이란 제목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다같이 설교제목을 두번 읽겠습니다.
<브니엘을 경험한 야곱>*2회.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좋은 음식을 먹어 보는 경험, 좋은 곳을 여행한 경험,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는 경험, 생소한 지역에서 살아보는 경험, 여러 가지 일들을 해보는 경험, 새로운 일에 대한 경험 등등 날마다 똑같을 수 없는 경험들을 하면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이 좋은 경험을 할 때도 있고, 좋지 않은 나쁜 경험을 하며 살아갑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도 있고, 평생토록 기억하고 싶은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의 핵심은 야곱이 브니엘을 경험한 내용입니다. 야곱은 800킬로 떨어진 외갓집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향 가까이 왔을 때 형 에서를 만날 준비를 엄청나게 많이 하고, 얍복강가에서 철야기도하다가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을 경험하면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인생출발을 하게 됩니다.
오늘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잘 배우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본론/
1.형 에서를 만나기 위한 야곱의 준비
먼저, 13절부터 23절에서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해서 준비한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위해 준비한 것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형 에서에게 줄 선물이고, 다른 하나는 에서에게 나가는 순서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준 선물은 얼마나 될까요? 다같이 14절과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 젖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엄청나게 많은 예물입니다. 자신의 소유 중에서 에서에게 줄 선물로 선택한 가축의 수가 총 550마리나 됩니다. 암소 40마리만 계산해도, 지금 소값이 많이 떨어졌지만, 500만원을 잡아도 2억정도나 됩니다. 세상에 형 에서에게 줄 예물을 이렇게도 많이 준비하다니 놀랍습니다.
놀랍지 않은 표정들인데, 이런 선물을 받아보신 분들이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예물을 준비한 것은 자신의 재산을 과시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때문에 이토록 많은 예물을 준비한 것입니까?
20절에 나와 있습니다.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주리라 함이었더라>.
야곱이 형 에서를 위해서 예물을 이렇게 많이 준비한 이유는 20년전에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권을 빼앗은 것으로 형에서와 원수관계된 감정을 풀기 위함이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지 않고서는 부모님을 만날 수도 없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도 들어갈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반드시 통과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물은 사람의 감정을 푸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물과 뇌물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예물은 선물로 댓가성이 없는 것이고, 뇌물은 댓가성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물도 댓가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지만, 뇌물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풀고 좋은 관계로 만들어주는 예물을 주고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선물을 주는 것이 부담되니 안주고 안받는다고 하는데, 사람은 서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좋은 친분을 쌓는 길입니다. 잠언 21장 14절에 선물과 뇌물에 대한 말씀을 주고 있는데,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를 그치게 하느니라>.
그리고 야곱은 형 에서에게 나아가면서 떼를 나누고 순서를 정해줍니다. 야곱은 크게 세 떼로 나누었는데, 첫째 떼는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이고, 둘째 떼는 첫째 아내 레아와 그의 자식들이고, 셋째 떼는 둘째 아내 라헬과 요셉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예물도 각 떼에 나누고 각 떼와 거리를 두어서 에서에게 나아가게 하면서 이것들은 야곱의 것으로서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다는 것을 종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야곱은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하고 자기 홀로 남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이 형 에서에게 나아가면서도 얼마나 치밀한 계획을 세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머리를 많이 쓰고 얼마나 이기심이 가득한 모습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순서로 배열을 하고 자기는 제일 되에 있는 것입니다.
종들과 그의 자식들을 제일 앞에 세우고, 두번째는 레아와 그의 자식들을 세우고, 세번째는 라헬과 요셉을 세우고, 제일 마지막에는 자신이 선 것입니다. 제일 앞에서 서서 형 에서를 만아야 할 사람이 제일 뒤에 선 것입니다.
얼마나 비겁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지가 드러난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모습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이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사람의 자기중심성을 적랄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은 뒤에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변화되어 제일 앞으로 나옵니다만,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였을때는 뒤로 물러서서 여차하면 도망갈 궁리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뒤로 숨거나 물러서거나 피하지 말고 앞장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시는 하나님의 축복
두번째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날 준비를 철저하게 하여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과 그의 소유를 얍복강을 건너게 한 후에 자신은 건너지 않고 얍복 나루에 홀로 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의 만남을 가족과 재산을 다 앞서 보내고는 정작 자신은 가지 않고 홀로 남습니다. 홀로 남아서 무엇을 하였을까요? 24절을 다같이 읽어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 하다가>.
어떤 사람이 야곱과 날이 새도록, 철야를 하며 씨름을 하였다는 것은 야곱이 천사의 모습이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님과 씨름을 하듯 기도하였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씨름할 때 삽바를 꼭 잡듯이 하나님께 매달려서 죽을동 살동 기도한 것입니다.
25절을 보면, 야곱이 얼마나 꽉 붙잡고 기도하였는지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하여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니까 허벅지 관절<환도뼈- 사람의 상체와 하체를 연결하는 중요한 뼈>이 어긋나게 됨으로 놓게 되었다고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야곱을 찾아온 어떤 사람이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하니까 야곱은 간절히 말합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은 이미 자녀의 복과 재물의 복을 엄청나게 받은 상태였지만, 축복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야곱이 이토록 원하는 복이 무엇일까요? 분명히 야곱이 원했던 축복은 자신을 이토록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는 형에서 문제를 해결받는 복,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도와주시는 영적인 복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이토록 간절히 축복을 원하자, 하나님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니까 야곱은 야곱입니다고 대답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돌아보도록 그의 이름을 물어본 것입니다.
야곱이란 이름은 형의 팔굼치를 잡고 태어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또 다른 뜻은 사기꾼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은 그 이름처럼 욕심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고, 사기성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형에서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을 때도, 아버지 이삭에게서 축복을 받아낼 때도, 외삼촌 라반집에서 일을 할 때도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붙일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일했지만,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기성 기질을 발휘할 때가 많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야곱의 인간성을 돌아보도록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심으로 자신의 모습을 적랄하게 돌아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자신의 이름을 고백하자, 거기에서 야곱에게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이라고 말씀해주었습니다.
야곱이란 이름이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주시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게 된 것입니다. 욕심많고 사기꾼과 같은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고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겨루어>라는 말이 중요한데, 겨룬다는 것은 힘과 능력을 총동원하여 매달린 상태를 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야곱편에서 전적으로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매달린 것이고, 하나님편에서는 이러한 야곱에게 져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감히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시고 져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기었다는 것은 같은 뜻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보내신 어떤 사람과 겨루어 이긴 것은 야곱을 격려해주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수 없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이나 천사들과 겨루어도 이길 수 없지만, 야곱을 축복하기 위해서 져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얍복강가에서 야곱에게 찾아와주셨고, 야곱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와 씨름을 하듯이 철야하며 축복해달라고 기도하였을 때 응답해주셨습니다.
29절에 보면, 야곱이 받은 축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복이고,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시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름은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으며 태어날 때 지어주는데,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게 된 것은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홀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씨름을 하듯이 기도할 때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응답고 축복받은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욕심과 고집과 나의 힘이 꺽고,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야곱처럼 이름을 바꾸어주시지 않으시겠지만, 마음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해주신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시고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3.브니엘을 경험하고 새출발하는 야곱
마지막 세번째로 브니엘을 경험하고 새출발하는 야곱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30절부터 32절을 보면, 야곱이 얍복강가 기도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얍복강가 기도의 장소를 <브니엘>이라 이름을 불렀습니다. 브니엘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입니다. 야곱은 야곱강가에서 씨름하듯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난 것입니다.
그가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한 것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뜻이요, 하나님을 대면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30절 하반절에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야곱은 얍복 나루에 홀로 남아서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하였는데, 자기와 씨름을 한 어떤 사람이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과 대면한 것이고, 하나님과 삽바를 잡은 것이고, 하나님과 온몸으로 만난 것입니다. 그는 감히 우러러 볼수도 없는 거룩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을 보았는데도 죽지 않고 생명이 보전된 것을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지 다리가 하나님과 씨름을 하다가 어긋났기에 절뚝거리며 형 에서에게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32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않은 이유를 기록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쳐서 어긋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둔부: 허리 아래부터 허벅다리 위 좌우로 살이 두두룩한 부분을 가리킴, 환도뼈 주변>.
구지 이런 말을 기록할 필요가 없을 것같은데, 기록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게 됨으로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에 먹지 않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브니엘을 경험하고 새출발하는 야곱에게서 배울점이 많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배우게 되고, 또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을 배우게 되고, 비록 절뚝거리는 장애를 입었지만, 자신이 가야할 길을 바로 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단독자로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개인적인 만남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믿음이 바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브니엘의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같은 생생한 만남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안과 염려를 뒤로 하고 저 가나안땅을 향하여, 천성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가야 합니다. 아멘.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오전에 우리는 <브니엘을 경험한 야곱>이란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좋은 만남을 위해서 준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형에서와의 만남을 위해서 엄청난 준비를 했습니다. 부모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런 준비를 한 것입니다. 암염소가 200마리, 숫염소가 20마리, 암양이 200마리, 숫양이 20마리, 젖나는 낙타 30마리와 그 새끼들, 암소가 40마리, 황소가 10마리, 암나귀 20마리와 그 새끼 나귀가 10마리 등 총550마리 가축들이 형 에서에게 줄 선물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좋은 만남, 행복한 만남을 위해서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선물은 마음의 감정을 풀어주고 서로를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선물은 받는 보다는 주는 사람이 더 기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얍복나루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야곱은 모든 가족과 재산을 다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아서 날이 새도록 씨름하듯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축복을 바라며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가게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씨름할 때 삽바를 잡는 것처럼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리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해주시지 않으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축복해주시고, 브니엘의 감격을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한없이 많은 것입니다. 한번 받았다고 안받아도 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살아가는 길에 때마다 일마다 축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브니엘의 감격,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서 절뚝거리는 발걸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 하나님이 약속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길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합니다. 빨리 못가고 절뚝거리며 갈지라도 올바른 방향,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금일소망교회 성도님들은 브니엘(하나님의 얼굴,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하며 가야할 길을 끝까지 잘 갈 수 있길 바랍니다. 아멘.
<공동기도> 다같이 따라서 하겠습니다.
1)하나님 아버지, 야곱처럼 브니엘을 경험하며 인생길을 걸어가게 축복해주소서.
2)아버지,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을 아버지께로 인도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