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셋
전 호 준
(이야기 하나) - 좋은 만남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들을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 속에 알게 모르게 우주 만물도 우리네 인생 또한 변화를 거듭한다는 이야기리라.
글을 써 보겠다고 상록 수필에 입문한 지도 벌써 십 년이 되었다. 공무원연금공단 대구·경북지부 상록자원봉사단에서 아카데미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취미생활로 그림 공부를 하던 나는 그림과 서예는 동색이라 서예를 선호했는데 인원 초과로 추첨에 탈락 수필 반에 등록이 가능하다는 통보가 왔다. 수필에 ㅅ자도 모르면서 어쩔까 망설이다. 들은풍월에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면 된다고 하기에 한 번 시도해 보고 여의찮으면 그만둘 요량으로 수강 신청을 했다.
2014년3월10일 공식 등록과 함께 첫 강의가 있었다. 다양한 공직에서 퇴직하신 인품과 덕망, 학식을 갖춘 연배가 고만고만하신 분들이라 소통에 유익한 분위기가 인생 제2막의 배움터가 될 좋은 만남의 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담당 지도교수님의 열강과 삶에 유익한 인문학적 요소가 가미된 구수한 강의에 빠져들며 나름대로 열심히 수강에 임했다.
매주 내어주는 숙제(글제)에 골몰하다 보니, 나름 몇 편의 글도 쓸 수 있었다. 수필창작 교실 카페를 통해 쓴 글들이 공유되면서 가슴속에 있는 못다 한 이야기들을 소리 없는 말, 글을 통해 할 수도 있다는 생각과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쓰게 한다는 느낌에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듯도 했다. 함께 사회봉사 활동도 하고 가끔 친목 모임도 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문우들과의 친분도 돈독해지고 필력도 조금씩 나아지자, 우리들만의 수필집을 발간하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2014년 12월 8일 수필창작 교실 그해 종강식과 상록수필 창간호 출판기념식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곳 대구에서 좀체 보기 드문 서설瑞雪이 상록수필 첫 옥동자 탄생을 축하하듯 대지를 온통 은빛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환한 마음에 발길조차 가볍다. 책을 받아 든 손이 떨렸다. 글의 내용은 차치하고 난생처음 내가 쓴 글이 활자화되어 한 권의 책 속에 담겨 세상의 빛을 본다는 자긍심에 흐뭇한 순간이었다.
(이야기 둘) -등단의 꿈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인 작가의 등용문 등단의 꿈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등단! 어쩌다 일간지 신문이나 작가들의 프로필에서 “**신문 <신춘문예 당선>”또는 **로 등단 같은 문장은 보았지만, 사실 상록수필 창작 교실에 입문하기 전에는 등단이란 말은 전문 문학인들에게만, 통용되는 용어로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2015년 말 드디어 상록수필창작 교실에 등단 작가가 나왔다. 우수 문우 세 분이 동시에 서울에 있는 수필 전문계간지 “수필 춘추사”에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이제 상록수필은 명실공히 수필문학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듬해 지도교수님의 추천에 힘입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수필 춘추사”에 응모한 글이 신인상에 당선되었다는 예상외 통보가 왔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알고 있었는데 뜻밖의 꿈이 현실이 되고 보니, 기쁨보다 꿈을 꾸는 것 같은 착각에 실로 어안이 벙벙했던 때도 있었다.
연이어 한두 명의 새로운 등단 자가 매년 배출되고 다른 곳에서 이미 등단한 회원들을 합해 등단작가 20여 명이 함께하는 수필문학회로 그 위상 또한 날로 새로워져 갔다. 이제 아카데미 수필창작 교실에서 공식적인 수필문학회로 발돋움하기로 뜻을 모았다. 2022년 6.13일 대망待望의 창립총회를 열고 상록수필문학회란 이름으로 거듭났다. 모든 문우가 한마음 한뜻으로 상록수필문학회의 무궁한 발전을 다짐해 보는 실로 뜻깊은 자리였다.
(이야기 셋)-수묵화水墨畵는 어차피 먹칠이다.
한국정수문화예술원에서 한국화 추천작가에 선정되었다는 축하 메시지와 함께 추천작가 증서가 왔다. 엷은 A4용지 한 장의 하찮은 것이다.
의의意義도 생소한 추천작가, 나 같은 돌팔이가 작가는 무슨, 제대로 된 한 줄의 글도 내놓을 만한 그림 한 점 없이 수필에 이어 두 번째로 들어보는 작가 소리에 부듯해야 할 성취감보다 멋쩍은 헛웃음이 먼저 나온다.
그림을 그려본들 쳐다보는 이 없고 글을 써본들 읽을 사람도 없다. 다만 개의치 않고 그저 스스로 즐기며 제멋에 사는 나를 보며 실소失笑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퇴직 후 무료함을 달래려 신문에 난 어느 대학 평생교육원에 한국화 수강생모집 광고를 보고 세월을 그려 보겠다고 붓을 든 지 10여 년이 훌쩍 지났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 세월의 흔적이란 생각에 흐뭇한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글과 그림의 묘한 인연因緣일까? 상록수필 제4호 발간을 앞두고 매년 책 표지화를 그려 주시던 화백님께 사정상 계속 부탁드리기가 거식하다며 편집위원장의 표지화 제의에 난감했다. 표지화는 책의 얼굴이라 할 수도 있다.
고운 얼굴에 먹칠이라도 할까. 정중히 사양했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듣고 보니,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고심 끝에 수묵화는 어차피 먹칠이 아닌가. 겁 없이 먹물로 칠한 그림이 나의 글과 함께 상록수필 제4호에 실렸다. 조잡하고 부끄럽지만, 나로선 정감이 남다른 한 권의 책으로 기억된다.
이제 십 년 세월을 회상해 보는 특집,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실은 상록수필 제10호가 출간되었다. 그간 다소 애로사항도 있었고 보람된 봉사활동도 하면서 에피소드도 없지는 않았다. 예상외 코로나19 라는 복병을 만나 한때 중단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아무튼 오늘이 있기까지 지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지도 교수님과 역대 임원진들의 정성 어린 노력, 모든 회원들의 한결같은 수필 사랑의 결실이란 생각에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