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명종馬鳴宗 제창자 청(淸) 양문회(楊文會, 1837~1911)
출생 - 사망
안휘(安徽) 석태(石埭) 사람으로 자는 인산(仁山), 호는 심유당주인(深柳堂主人), 인산거사(仁山居士)이다. 근대의 불학자(佛學者)로 금릉각경처(金陵刻經處)를 설립했다. 각종 불교 경전을 영인출판하고 일본과 인도 등지와 불교문화 교류에 공헌을 하였다. 저서로 《대종지현문본론략주(大宗地玄文本論略注)》, 《불교초학과본(佛教初學課本)》, 《십종략설(十宗略說)》, 《양문회여중국불교근대화탐석(楊文會與中國佛教近代化探析)》 등이 있다. (중국역대인물 초상화, 한국인문고전연구소 )
출생 - 사망
청나라 안휘(安徽) 석태(石埭) 사람. 자는 인산(仁山)이다. 청나라 말 중국 불교를 부흥하려고 했던 중추적인 인물이다. 성품이 임협(任俠)을 좋아했고, 기서(奇書)를 즐겨 읽었으며, 명리(名利)에 관심이 없어 과거(科擧)를 비천하게 여기고 관리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태평군(太平軍)이 일어나자 항주(杭州)로 피난을 갔는데, 우연히 서사(書肆)에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구해 읽고 불학(佛學)에 전념하게 되었다. 일찍이 두 차례 구주(歐洲)로 사신을 갔다가 일본의 불교학자 남조문웅(南條文雄) 등과 정법(正法)을 회복하기로 약속했다. 귀국한 뒤 동치(同治) 5년(1866) 출자하여 금릉각경처(金陵刻經處)를 설립하고 3천여 종의 각종 대소승(大小乘) 불전(佛典)을 간행했지만, 생전에 출간된 것은 2천여 권이었다.
광서(光緖) 33년(1907) 각경처에 기원정사(祇洹精舍) 등을 설치해 학생들에게 불전과 범문(梵文), 영어 등을 가르치면서 후진을 양성했다. 또 불학연구회(佛學硏究會)를 창설해 정기적으로 강경(講經)했다. 당시의 고승인 월하(月霞)와 제한(諦閑), 만수(曼殊) 등이 와서 도왔다. 구양점(歐陽漸), 매광희(梅光羲), 이징강(李證剛) 등이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선통(宣統) 3년 가을에 죽었고, 세수(世壽) 75세다. 12종의 저서를 남겼는데, 『양인산거사유서(楊仁山居士遺書)』에 들어있다.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2011.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