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음.
( 룻기 4 장 )
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것을 맡기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반드시 허락해 주실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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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영적인 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대해서는 심각할 정도로 덤덤
하고 감각이 무디어져 버린 상태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말하고 하나님을
말하지만 관심은 수준 있는 삶을 누리는데
있습니다.생각과 관심이 끊임없이 자기를 향해 있습니다.
돈이 벌릴 때는 흥이 나고 기분이 좋고 마음이 든든하고
세상이 새롭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보이면서도 우리들에게
생명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마음이 닫혀집니다.
마치 어린애가
부모에게 불려와서 듣기 싫은
잔소리 훈계 정도로 듣고 있는 심정으로 앉아있기도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
흥미도 없고 새로움도 없고
일주일에 한번씩 반복되는 행사 정도로 여기고 있을뿐입니다.
6일 동안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다만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다'는 것을 지탱하려고
앉아 있는 참으로 메마르고 빈약한 모습만 보이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 자신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은 과연 어떻습니까?
우리 자신의 신앙적 유익에 부지런합니까?
아니면 우리의 개인적 편함을 앞세우며 우리의
유익만을 위해서 고집을 부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신앙적
유익을 위해서 좀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애써 본적은 있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헤아리면서
자신의 유익과 편한 삶을 포기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로써
마지막 장자 재앙에서 죽음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구출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것은
항상 자기 육신이 편함과 유익을 기준으로
하는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목이 곧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패역과
목이 곧은 자로 살고있는 것은 아닙니까?
은혜를 증거하는 자의 삶에 관심이 멀어진 것은 아닙니까?
주님의 사랑을
말하고 은혜를
말하면서도 사랑과 은혜를 버리고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주님이 책망하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버리지 않고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버리고 사는 참담함을 책망하십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잃어버리고 메마른 가슴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잃어버린 사랑과 은혜를 회복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회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는
자신의 패역함과 목이 곧음의 상태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마지막이 어떠한가를 직시함으로서
예수님의 희생과 피로써 살 수 있는 자신을 보게 될것입니다.
1. 공개적으로 기업무르는 의식.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룻기 4:1-2)
보아스는 룻에게 가까운
친족이 있는데 그 사람이
기업을 무르지 않으면 내가 기업을 무르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보아스는 약속대로 기업무를 자에게 룻의
기업을 무를 것인지 물어보고자 합니다. 보아스가 모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공개적인 장소인 성문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성의 열 명의 장로를 불러서
성문에 앉게 하여 증인으로 삼았습니다. 기업무르는
것을 장로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하여 뒤탈이 없게 하였습니다.
2. 토지를 사겠다는 자.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이들
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
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
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룻기 4:3-4)
보아스가
그 기업무르는 자에게 우리의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니 그 기업인 토지를 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형제라고 하여
공동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가 토지를 살 것인지 사지 않을 것인지 분명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가 사지 않으면
자신이 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엘리멜렉의 토지를 사겠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룻의 집에는
계승자가 없습니다. 그는 룻의 집에서 토지를
사면 그 토지가 자신의 이름으로 계승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3. 자신의 기업에 손해를 보지않으려는 자.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
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룻기 4:5-6)
기업무르는 자가 기업을
사겠다고 하자 보아스는 기업무르는
자가 밭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더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룻과 결혼하여
그 자녀를 낳고 자녀에게 죽은
엘리멜렉의 이름으로 그가 산 토지를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업무르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자신은 돈만 손해보고 자신의 기업에 이익이 되지 않게 됩니다.
그는 결혼까지 해서 죽은 자의
자식을 낳아야 한다면 자신의 재산과
명예에 손해가 됨으로 그녀의 땅을 사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4. 신을 벗어서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함.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
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
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룻기 4:7-8)
옛적 이스라엘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신을 벗어 이웃에게 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경우라면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하는 경우와
같습니다.기업무를 자는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주며
나는 기업을 무르지 않을 테니 네가 기업을 무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업을 무르지 않으면 자신의
사회적인 책임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적으로는 죄가 아니지만 윤리적으로는 죄에 가까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침을 뱉어서 모욕을
줍니다. 친척은 무너져 가는 집에 대해서 값을 치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무너지는 가문을 떠안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5. 기업을 무르는 보아스.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
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곳 성문
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룻기 4:9-10)
보아스는 백성들과 장로들 앞에서 자신이
룻의 집에 기업을 무르는 것에 대해서 선언했습니다
그는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룐의 집에서 밭을 산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룻을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끊어지지 않게 할 것도 증거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위해서 돈도 희생하고 자신의 명예도 희생
하였습니다.그런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계승되었습니다.
6. 베레스의 집같게 되기를.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룻기 4:11-12)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룻을 기업무르는
일에 증인을 섰습니다. 그들은 보아스와 룻을 축복하였습니다.
다말과 라헬과 레아와 같이
열두아들을 낳아주도록 축복하였습니다 라헬과
레아는 자녀의 복을 많이 받아 열두 아들을 낳은 여자들입니다.
그들에게서 열두지파가 태어나도록 기도 했습니다.
모압여자 룻을 열두지파의 반열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자녀가 에브라다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축원 했습니다.
이 젊은 여자로 하여금
그에게 상속자를 주어 그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와 세레와 같게 하시기를 축원했습니다.
유다가 다말을 위하여
아기를 낳아준 것도 하나의 기업을 무르게 해준 좋은 예입니다.
7. 생명의 회복자.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
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룻기 4:13-15)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임신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여호와를 찬송하였습니다.
나오미에게 기업 무를 자를 허락하여주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룻기는 보아스의 희생을 통해서
슬픔이 찬송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유명하게 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낳은 아이는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이며 노년의 봉양자라고 노래
하였습니다.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 활활 타오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죽은 생명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사랑하는 며느리고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입니다.
8. 보아스는 오셋을 낳고.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오벳
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
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
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룻기 4:16-22)
이웃사람들은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고 하며 그 이름을 오벳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룻기의 저자는
보아스의 이름을 빼고 엘리멜렉의
이름을 넣어야 하는데 보아스의 이름을 그대로 넣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아스의 희생을
받으시고 보아스의 이름을 회복
시켜주셨습니다.하나님은 보아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룻에게 생명의 부활을
주었을 뿐 아니라 보아스에게도 명예의 부활을
주셨습니다.십자가에 죽는 자에게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고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 가문에서 유다의 왕이 왔고 메시야가 태어났습니다.-아멘-
( 교훈 )
보아스보다 먼저 나오미의 기업을 무를
책임을 지닌 사람이 있었지만.그는 그 책임을
회피함으로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복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는 그가 순간적인
이익에 눈이 어두워 친족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순간적인
재물의 이익을 위해 어려운 형제들을
돕지 않는다면 결국 손해를 얻게 될 것임을 교훈해 주십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모든 복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는 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남을 사랑하고 베풀 줄
아는 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많은 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보아스가 돈과 명예의 손해를 감수하고
값을 치르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보아스의 희생을 결코 손해로 끝나게 하지 않으시고
인류 역사가 존재하는한 영원토록 그의 아름다운 희생을
칭송하게 하시며 믿음의 본을 보이게 하신 줄 믿습니다.
또한 룻과 보아스의 아름다운 사랑이 구원의 계보,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는 큰 복을 받은 것을 보며
우리들도 주님의 뜻을 받들어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도록 결단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삶의 주인 되시는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값을 치르고 구속해 주신 것처럼 우리의 남은 생애도
주님의 삶의 모습을 닮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부르시는 그날 잘했다 칭찬받는 우리모두
되도록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8. 5. 12.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
카나다 캘거리에서-
첫댓글 '부르시는 그날
잘했다 칭찬받는 우리 모두 되도록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이는 우리 모두의 소원이겠지요.
"예수님를 말하고 하나님을 말하면서 생각과 관심은 여전히 자기를 향해 있다 . " 캐나다에 계신분이 LA 에 있는 저의 마음을 뚫어보시네요. 그동안 룻기를 통한 어느 설교보다 가장 찔림이 있는 설교입니다 . 룻과보아스처럼 암울한 사사시대의 영롱한 한줄기 빛같은 삶. 그 삶을 살아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 유념하세요 .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