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두고싶었던 프로그램
철원 종합복지문화센터는 인구 3만 여명정도의 강원도 철원군의 도피안사 가는 길목에 넓은 철원평야를 쳐다보며 있는 구 철원 마을 평지 한 자락에 있다. 넓고 아름다운 철원평야의 천혜의 청정자연과 전쟁으로 대표되는 민족의 역사가 공존하면서도, 휴전선과 대치하여 군부대의 주둔지가 많은 이 지역에는 순박한 군민들을 위한 문화시설은 너무 적었다. 열악한 철원의 문화환경 속에 지역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구심적 문화시설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였다.
이 집의 용도는 설계경기당시에는 청소년문화회관으로 그 이용대상이 청소년들이었다. 설계가 진행되면서 인구 3만 정도의 지방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으로 중복투자를 피하고 군민 모두의 하나의 문화적 구심점으로 만든다는 취지에서 청소년은 물론 여성, 노인, 유아 등 군민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철원군종합문화센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대지는 인근에 빼어난 모습의 피라미트형의 금학산을 앞에 두고 넓고 아름다운 철원평야의 사계절의 변화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확 튀인 자연의 의미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은 건축의 형태를 극히 절제시키며 또한 간결하게 대립시킴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개념을 설정하였다. 지표와 면하는 부분에 청소년수련관, 다목적홀로 이용할 수 있는 체육관, 그리고 농촌공공도서관의 3개의 주기능을 배치하여 각각 서로 특징을 갖는 형태로 디자인하고, 3개의 메스를 결합하면서 그 사이에 앞마당과 뒷마당을 잇는 시각적 관입이 가능한 중심적 오픈스페이스를 두는 배치계획을 하였다. 3개의 주기능을 서로 독립시키는 동시에 형태적으로는 넓은 평야의 지평선들과 평행한 강한 스카이라인을 갖도록 통합시켜 여러 가지 요소들을 단정한 하나의 틀로 정돈시켰다.
디자인의 목표는 첫째, 금학산을 조망하는 자연에 순응시키면서 철원평야와 인근 마을을 연계하는 취경기법을 사용하여 자연경관과 내부공간이 공존하도록 땅의 형극을 극대화하였으며, 둘째. 건물 전체를 단정하게 묶어주는 수평프레임의 입면계획으로 일체화시켜 철원평야가 그자체가 건물의 기단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투영시켰으며, 셋째, 옥외공간을 크게 앞마당과 뒷마당, 옆마당의 3개의 마당으로 나누어, 앞마당은 전통문화 계승을 위한 열린마당으로 두어 태봉제, 상소리지경다지기, 농산물 직거래장 등의 지역공동체의 장으로, 뒷마당은 축구장과 인라인스케이트장, 선큰시킨 옥외공연장등을 두어 옥외수련공간이 되도록 하였으며, 옆마당은 들꽃동산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청소년의 정서함양의 장소로 계획하였다.
이 프로잭트를 끝내고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지방의 문화시설들이 지역성을 바탕으로한 문화시설의 정확한 프로그램(소프트웨어)이 없이 건축물(하드웨어)이 먼저 건설되고 있다는 점이다. 준공식에서 어느 군민이 물어왔다. 이 시설을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까요?라고. 그냥 비워두었으니 이제부터 차곡차곡 철원의 군민들이 지역문화로 채워가야죠--라고 옹색한 답을 해주었다. 결코 옹색한 답이 아니였다. 비워둔다는 것은 채워가는 문화를 발견해서 지역성에 바탕을 둔 진정한 의미의 문화시설로 만들어가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문화시설에는 몇 개의 실을 제외하고는 용도가 분명하지 않는 방들로 구성되어있다. 그 내부공간에서 내다보면 이곳에만 있는 평화로운 철원평야의 지평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군민들은 이제 여러 공간에서 철원만의 문화를 스스로 찾아내어가면서 그들만의 지역성에 근거를 둔 문화들을 이루어갈 것이다. 각 실의 용도들이 계속 바뀌어갈 것을 바라는 마음이 내부공간을 규정짓지 않고 비워두고 싶었던 이유일 것이다.
설계경기의 심사과정의 잡음으로 낙선작이 되었던 이 작품이 유여곡절을 겪으며 다시 채택되어 이 지역에 생명을 갖게 된 프로잭트로 되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설계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이제 모두들의 앞에 그 모습을 찾게 되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글/ 정 현화 (주)구간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