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 첫째 날
아침 9시 비행기를 타기위해 7시까지 공항으로 향했다. 4시 30분부터 일어나서 아이들 깨우고 짐도 다시 점검, 꽃단장까지 하려니 좀 피곤했다. 아무리 아침시간이라도 공항 면세점 구경할 기대를 좀 했는데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짐을 부치고 긴 줄을 서 입국수속을 하고나니 비행기 탈 시간.. 빠이빠이 넓고 화려한 인천공항 면세점이여.. 쩝..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일행들을 만나보니 모두 5가족이었다. 4명씩 2가족, 3명 1가족, 부부 2가족.. 모두 가족과 함께 연말연시를 보내러 왔으니 한마음 한뜻일 것 같아 마음이 편안했다. 우리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되길..
첫날 일정은 하코네 국립공원, 후지산 화산의 칼데라 전 지역을 말하는데 산과 호수와 산림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가는 길에 많은 차들이 있었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하코네에서 신년마다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데 그 대회에 참여하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멋진 자연 속을 달리며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우리는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지름 18km, 깊이 70m나 되는 거대한 아시노코 호수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수정처럼 맑은 물과 호수 주위의 울창한 숲과 높은 산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유람선을 타고 30분정도 호수의 아름다움에 풍덩 빠졌는데.. 일본에 와 있어서인지, 멋진 경치 때문인지, 2014년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여서인지, 속 시원히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자꾸만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벅차올랐다. 화아~ 숨 한번 크게 몰아쉬고 1년 열심히 자~알 살아온 나와 우리 가족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하다고 말해주었다.
유람선을 타고 나서는 하코네 오와쿠다니 유황계곡에 갔다. 계곡을 오르다보면 내 옆 사람의 방구냄새로 눈 한번 흘기게 되는 곳이라는데, 실은 방구냄새가 아니고 활화산이여서 여기 저기 모락 모락 피어오르는 희뿌연 수증기와 유황 냄새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온천못과 온천수가 있었는데 이 곳에서 삶은 검은 달걀을 먹으면 젊어진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1개를 먹으면 7년, 2개를 먹으면 14년이 젊어지고, 3개를 먹으면? 욕심이 과하다고 해서 탈이 난다나..^^ 5개를 사서 4명이 나눠먹었으니 한 9년 정도는 젊어지지 않았을까? 어게인 30대를 살아보기를..ㅋ 어둑 어둑 저물어가는 해를 뒤로하고 몇 만년을 피어올랐을 높은 산위의 분화구와 휘몰아 치는 바람에 흩날리는 수증기, 그 거센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까마귀들의 비행을 보니 다시금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비하면 작은 먼지일 수밖에 없는 나의 존재를 돌아보며 겸손해지게 된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가이드가 일본은 구정이 없고 신정을 새기 때문에 1월 1일을 기점으로 앞뒤로 6일간은 연휴기간이라 문을 연 상점이 거의 없을 거라며 겁을 주었다. 오메! 짧은 일본 일정기간 동안 도쿄를 즐길 수 없다는 말과도 같으니.. 갑자기 차안 분위기가 쌩~해지는 것 같았다. 숙소 주변에 문을 연 곳도 별로 없을 거라나.. 그러나 7시 30분정도에 숙소에 도착하니 숙소 앞에 SEIYU라는 대형 쇼핑몰과 음식점, 가게들이 모두 불을 환하게 밝히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너무 기뻐서 가이드의 뻥에 분노할 틈도 없이 내일 자유여행에 대비해 전철역에 가서 노선도를 확인하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각자 알아서 저녁을 먹는거라 여기 저기 둘러보다 불고기 덮밥집에 갔다. 잘 통하지 않는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주문을 하고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니.. 밀려오는 포만감과 함께 해피~^^
돌아오는 길에 SEIYU에 들렸는데 다인, 정인이가 수많은 일본과자와 아기자기 캔디류를 보고 눈이 돌아갔다. 한국에서는 사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싼 일본과자들이라면서 즐거운 함성을 질렀다. 우리는 맥주와 정종, 안주류를 챙기면서 2014년 마지막 날 작은 파티를 준비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씻고 침대위에 모여앉아 도란 도란 한해 잘 보냈다고 등 두드려주고, 내일 자유여행은 어떨까 이야기하면서 첫째날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 그리고 내일이면 빼도 박도 못하는 40살이 되는 나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되돌아 보니 나의 30대 화두는 가족, 다정인 키우기였던 것 같다. 나의 40대는 어떤 화두와 의미로 살아가야 할지.. 이 방학에 곰곰이 생각해봐야 겠다. 어쨌든.. 빠이빠이 30대.. 열심히 잘 살았다. 그치?^^
1월 1일 – 둘째 날
둘째 날은 드디어 이번 여행의 백미! 자유여행이 있는 날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본여행 준비를 많이 못하다가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도쿄 여행책 8권을 빌려 아이들과 독파를 하면서 가고 싶은 곳을 정했는데 에도시대 거리가 잘 보존된 아사쿠사와 도쿄 최대 재래시장이 있는 우에노, 다인이가 가고 싶다고 한 고양이 거리가 있는 야나카, 도쿄타워 4곳이었다.
도쿄는 전철이 잘 발달되어있지만 우리처럼 전철표 하나로 어디든지 가는 것이 아니라 운영하는 전철 회사의 노선에 따라 표를 달리 구입해야 해서 좀 복잡했다. 일일 패스도 3종류인데 자기의 이동 동선을 보고 일일패스를 구입할지 각 역에서 표를 살지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중간에 갈아타는 신주쿠역의 안내소에서 물어보았는데 여자 직원이 친절하게 이동 동선과 각 역에서 표를 사는 것이 더 좋다는 안내를 해주었다. 신주쿠역에서 마루노치 라인을 타고 아카사카 밋수케역에서 긴자라인으로 갈아타니 종점인 아사쿠사역에 드디어 도착했다.
아사쿠사는 센소지와 나카미세 상점가가 유명한 곳이다. 센소지는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사찰인데 각종 신들을 모시는 신사와는 구분이 된다고 한다. 신년 1월 1일에 일본사람들은 보통 사찰과 신사를 들려 한해의 복을 빈다고 하는데 역에서 내려 센소지까지 가는 길은 과연 몰려든 일본 사람들 행렬로 꽉 차있었다. 여기 저기 아오자이를 입은 일본인들 틈에 끼어 신년을 보내는 기분도 이국적이고 괜찮았다. 센소지까지 가는 길은 나타미세 상점가로 한국의 인사동처럼 일본의 전통 물품과 먹거리, 기념품들이 가득한 거리였다. 아무리 붐벼도 이것 저것 구경하며 가다보니 어느새 센소지에 도착했다. 천둥의 문을 지나 향불을 피우는 곳에서 10엔을 주고 향을 사서 향로에 꽂고 향연기을 머리나 몸, 아픈 곳에 쏘이면 좋아진다고 한다. 좋다는데 뭔들 못할까.. 사람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이곳저곳 좋아져라 연기를 쏘였다. 일본은 각종 미신이 많은 나라답게 사찰 앞 구멍으로 동전던지기, 젓가락 통을 흔들어서 신년 운세 보기, 사찰의 지하수로 오른손 왼손을 씻고 입 가시기등 재미있는 풍습들이 있었다. 물론 우리도 모두 해보았다.^^ 줄을 나래비로 서있는 사찰내 부처님 만나기는 애저녁에 포기했지만 말이다.
한바탕 체험을 하고 나니 출출한 배를 채워줄 전통 포장마차들이 센소지 주변에 축제라도 여는 듯이 가득 차 있었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우린 각자 먹고 싶은 음식 하나씩 사기로 했다. 나는 꼬치에 찔러 구운 생선, 다인이는 다꼬야끼, 정인이는 일본식 빈대떡인 오꼬노미야끼, 신랑은 볶음면을 사서 길거리에서 만찬을 즐겼다. 가격은 보통 한 요리에 600엔 정도인데 일본은 길거리 음식일지라도 장인정신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센소지와 나타미세 상점가에서 눈과 입을 호강시키고 나서 가까이 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타워로 유명한 도쿄 스카이트리를 향해 걸어갔다. 걷다보니 일본의 스미다 강과 유람선, 재미있는 모양의 아사이 빌딩을 보게 되었다. 유람선을 타볼까 알아보니 왕복 1시간 30분이나 걸린다고 해서 아쉽게 포기하고, 스미다 강변에서 스카이트리와 아사이 빌딩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놀이를 한 후 우에노로 향했다.
사실 우에노에는 도쿄 최대 재래시장뿐 아니라 일본 최초의 공원인 우에노 공원과 가장 오래된 박물관인 도쿄국립박물관, 세계적인 미술관인 됴쿄도미술관등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은 곳이다. 미술관을 좋아하는 나와 신랑에게는 하루 종일 머무르고 싶은 곳이지만 짧은 하루 일정과 아이들의 취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다음? 다음에 또 이곳을 올 수 있을까마는 지금까지 내가 알지도 생각지도 못하던 세상에 내 마음 한켠, 언제일지 모르는 기약 하나 남겨두고 오는 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우에노의 아메요코 시장은 1월 1일 연휴가 무색하리만큼 사람들로 꽉차있었고 조용한 일본과는 사뭇 다르게 상인들의 높은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어디건 시장의 맛은 이런 날 것 그대로의 활기참에서 오는 것 같다. 사람들에 밀려 이것 저것 구경하다 다인, 정인이는 무엇에 홀리듯 큰 과자점으로 쏙 들어갔다. 아무리 사춘기로 격동의 시간을 보낸다 해도 마음속 동심을 어찌할 것인가?^^ 하긴 먹기에도 아까운 각양각색의 캔디와 과자류를 보면 나도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아이디어들이 여기 저기 스며들어 있는 물건 보는 재미에 빠져 시장을 헤매다 보니 배가 출출해 졌다.
날씨도 쌀쌀하니 이쯤 되면 선술집에 들려 몸과 마음을 땃땃하게 해줄 음식과 알코올이 필요할 때다. 시장의 뒷골목을 다니다 제법 세월이 묻어나는 술집에 들어갔는데 오 마이 갓! 메뉴판에는 그림 하나 없는 일본어, 종업원은 영어도 안 되고 생글생글 웃기만 한다. 몇 번의 시도에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어쩔 수 없이 가게를 나왔다. 신랑은 내공이 있는 곳 같던데.. 하며 영 아쉬워했지만 어쩌겠는가.. 다음에 찾는 기준은 친절하니 예쁜 메뉴 그림이 있는지 없는지 였다.^^ 그리고 들어간 곳은 좀 더 세련된 곳이었는데 사람들도 많고 제법 일본 선술집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다. 안주로 시킨 꼬치와 튀김은 누구 코에 붙일까 싶게 너무 적은 양이었지만 결국 다인, 정인 입속으로 안주가 아닌 간식으로 들어갔다. 지친 다리를 쉬면서 마시는 생맥주의 맛은 캬아!~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잠깐의 재충전 후 술집을 나서니 늦은 오후의 어스름함으로 상점들의 이른 불빛들이 반짝이는 거리로 바뀌어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흐르다니.. 다음 목적지는 고양이 거리로 유명한 야나카였다. 다인이가 가고 싶다고 한 곳이었는데 우에노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거리여서 가기도 쉬웠다. 야나카 거리는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산책 코스라고 하는데 관광지의 북적거림 보다는 골목길을 따라 동네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정겨운 곳이었다. 고양이 마을로 접어들면 고양이 관련 숍과 카페들이 있었는데 문을 닫은 곳이 많아서 아쉬웠지만 한적한 일본 동네를 거니는 기분도 괜찮았다. 그곳에서 통통하게 살찐 점박이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의 아쉬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사진 모델이 되어 주었다. 예쁜 고양이 관련 숍은 모든 팬시나 소품들에 예쁘고 귀여운 고양이들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다인이는 마스킹 테이프, 메모지,편지지를, 정인이는 연필과 스티커를 샀다. 나는 그곳에서 고양이 빨래 건조대를 발견했는데 고양이 다리 10개가 빨래집게로 되어있는 너무 앙증맞고 실용적인 아이템이어서 맘에 쏙 들었다. 뜻밖의 완소 아이템을 추가하고 길거리 나무 두레박에서 파는 정종 한잔 손에 들고 골목을 걷다보니 여행의 꿀잼이 이런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와 시간대는 같지만 30분정도 해가 일찍 뜨고 지는 도쿄는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금새 어두워져있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다리는 고단했지만 숙소로 향하기에는 조금 아쉬움이 있어서 신주쿠에 들려 라멘을 먹기로 했다. 일본의 밤거리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신주쿠에 들려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신주쿠역은 하루 300만 이상이 이용하는 엄청 큰 역이다. 도쿄 도청등 고층 빌딩이 밀집해 있고 한쪽으로는 쇼핑가와 환락가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런 화려한 도심에서 맛있는 라멘 한그릇 먹으려고 들렸다는게 코믹하긴 하지만 다정인과 함께하는 가족여행의 재미 또한 이런게 아닐까?^^
최고의 라멘 한그릇 먹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신랑이 길거리 호객꾼에게까지 물어 물어 현지인이 입증한 맛집을 찾아갔다. 역시 이병채! 적당히 대충이란 없는 울 신랑을 쫓아 다니다 보면 좀 피곤할 때가 있긴 하지만(가끔은 아주 피곤하다는..^^;) 결론은 따봉이다. 돼지뼈로 우려낸 국물과 생면으로 끓인 일본라멘은 육수와 양념, 토핑을 어떤 것으로 하느냐에 따라 종류가 몇 십개로 나뉘어진다. 이럴 때는 가장 많이 먹는 거로 추천좀 해달라는 게 최선! 아이들은 매운 맛으로 신랑과 나는 권해준 라멘을 주문했다. 맛은? 눈이 뿅 나올 정도로 고소하고 맛있었다. 일본라멘의 참맛을 느꼈다고 하면 좀 오버인가? 어쨌든 우리 모두 너무 너무 맛있게 먹었다.
길고 즐거운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향하는 길은 피곤하면서도 뿌듯했다. 숙소가 있는 훗사역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노곤하지만 이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지 않은가.. SEIYU에 들려 어제처럼 작은 파티를 준비했다. 아이들은 음료와 스낵, 우리는 맥주와 정종, 안주거리^^ 나는 일본의 3대 맥주인 아사이, 긴자, 삿포로를 하루에 한 종류씩 마셔보았다. 신랑은 정종을 매일 밤 마셨는데 둘째 날은 포트에 따뜻하게 데워 마시더니 혼자 덥다며 호텔 창문을 자꾸 열어서 우리들을 춥게 만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3일 밤 이어진 우리만의 작은 파티는 또 다른 재미였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대화의 폭도 넓어지고 무엇보다 친구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의 음료수가 맥주로 바뀌어질 때쯤 되면 좀 더 진솔한 인생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1월 2일 – 셋째 날
여행 셋째 날은 일행들과 함께 도쿄 시내 관광을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신주쿠에 있는 도쿄도청이었다.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세금 잡아먹는 빌딩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었다는 도청은 지금은 연간 107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45층에 무료 전망대를 두어서 도쿄 시내의 전경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입장가능하다고 하니 좋은 관광전략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간 날은 신정연휴기간.. 도청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경험 많은 가이드가 도청 맞은편 건물의 전망대로 데려다 주었다. 6층 더 높은 51층^^ 도쿄 시내가 정말 한눈에 모두 들어왔다. 특히 이번 여행의 일등공신중 하나는 날씨였다. 우산이 필수 준비물에 있을 만큼 도쿄의 날씨는 흐리고, 비오는 때가 많다고 했는데 우리 여행기간 내내 쨍쨍 내리쬐준 햇볕 덕분에 아주 가끔씩만 볼 수 있다는 저 멀리 후지산을 매일 매일 방향만 달리해서 눈 덮인 봉우리를 감상했으니..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다음 목적지는 일본 천왕과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궁성인 황거였다. 일반인의 경우 황거의 히가시교엔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지만 그 외 지역은 입장이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간날 일본 고위관료들이 천왕에게 새해 인사를 하는 시간이라 도로 통제가 되어서 버스 안에서 황거의 겉모습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일본사람들에게 천왕의 존재는 신적인 것이어서 숭배의 정도가 굉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멀리서 봐도 궁성의 규모가 대단했다. 아름드리 나무들과 성곽의 벽돌까지 위엄을 뽐내고 있으니.. 그 안은 또 어떤 세상일까? 왕족은 신이어서 인간의 주민등록증도 만들지 않는다고 하니 다인, 정인이가 부럽다고 하다가 조금 지나서 답답할 것 같다고 한다. 그들이 만약에 진짜 신이라면 괜찮겠지만 인간이라면 다른 인간들의 이기적 욕심에 의해 박제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편 측은한 마음도 든다. 신랑은 자기 맘대로 술집 한번 드나들 수 있겠냐며 불쌍하다고 단번에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의적인 결론을 냈다.^^
황거의 초입일지라도 걷지 못한 아쉬움을 긴자거리가 대신해주었다. 도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거리로 불리는 긴자는 ‘화려한 어른들의 거리’라고 한다. 세계적인 명품 숍들과 유명 백화점들이 자리잡고 있는 긴자거리는 얇은 지갑에 위협이 되는 쇼핑본능을 부추기는 곳이었다. 책에서 누군가는 이 거리에서 쇼핑백이 제일 부러웠다고 했다. 안에 무엇이 들었던 명품 쇼핑백을 슈퍼 비닐봉투처럼 들고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비록 겉모습만으로도 그 쇼핑백을 들고 당당하게 걷고 싶었다는 말에 실소를 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명품에는 큰 욕심이 없는지라 큰 유혹 없이 거리를 거니는데 사람들이 유독 많은 가방가게가 눈에 띄었다. 신정 세일중이어서 모든 백들을 5840엔의 균일가에 판매하는 곳이었다. 600만원 물건들 사이에서 60만원도 아니고 6만원이면 살 수 있다는 말에 신랑과 아이들이 엄마 백하나 고르라며 인심을 썼다. 그럴까? 그리고 고른 백 하나! 우린 그 아이에게 ‘긴자백’이라는 애칭을 지어주었다. 나보다 더 신나하는 아이들 때문에 더 웃겼지만 이 백을 맬 때마다 한마음 한뜻으로 질렀던 소박한 충동구매를 생각하며 웃음지을 것 같다.
점심으로 도쿄의 한인타운에서 한국보다 더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고 오후에는 오다이바로 향했다. 오다이바는 도쿄에서도 최근에 개발된 신시가지라고 하는데 우선 비너스 포트라는 대형 쇼핑몰과 맞은 편에 연결된 토요타가 만든 거대한 자동차 전시장인 메가웹에 갔다. 쇼핑몰이 뭐 볼 것 있을까 생각했는데 매장 전체가 고풍스러운 중세 유럽을 재현해 놓은 듯 운치가 있었고, 특히 천장에 파란 하늘이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분수대와 성당은 시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밖에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런 것을 굳이 일본 한복판에서 봐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어쨌든 흥미있는 곳이었다. 토요타 쇼캐스트에서는 시판중인 토요타 전차종이 전시되어 있고 무엇보다 자유롭게 타볼 수 있어서 좋았다. 국제 면허증이 있으면 무료 시승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각자 마음에 드는 차를 타보며 나중에 이런 차를 몰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게 만드는 고도의 마켓팅 전략인 것 같다. 우리나라 자동차회사도 눈 앞의 이익에만 연연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는 이런 쇼캐스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오다이바는 처음 조성될 때 미국의 맨하튼의 도시 전경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저녁 무렵에 도착한 아쿠아시티 전망대에 가보니 그 말이 이해되었다. 저 멀리 레인보우 브릿지의 멋진 조명, 크기는 비교가 안 되지만 그래도 모습만은 그대로인 자유의 여신상, 저 멀리 세계 최대 크기라는 높이 115m인 대관람차의 조합은 로맨틱하고 이국적 풍경을 만들어서 잠시 뉴욕에 와있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데이트 장소로 딱일 것 같은 그곳에서 달콤살벌한 연애중인 가족들과 이국적 낭만을 맘껏 즐겼다.
여행의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리타 공항 인근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그 전 숙소보다 크고 넓어서 좋았는데, 특히 침대 위에 유가타가 준비되어 있었다. 샤워를 하고 유가타를 걸치고 허리끈을 묶으면 기모노는 아닐지라도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듯 맵시가 나서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다인, 정인이가 너무 좋아했는데 유가타를 입은 모습이 인형같이 귀엽고 예뻐서 내가 역시 고슴도치구나 다시금 확인했다.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늦게까지 함께하며 올 한해 잘 살아보자고 훈훈한 덕담도 나누었다.
1월 2일 – 넷째 날
오늘은 여행 마지막 날, 오늘 일정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풍성한 호텔 조식을 느긋하게 먹고 10시에 나리타 공항으로 출발하니 10분만에 도착했다. 공항 유리 너머로 보이는 비행기들의 모습을 보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상의 틀을 깨고 꿈꾸듯 다른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삶의 쉼표를 가질 수 있었음에 다시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 마음 한 켠 남겨 두고 온 새로운 세상, 즐거운 기억으로 세겨진 새로운 추억 한 장, 함께해서 웃을 수 있는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다는 든든함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새해를 특별하고 즐겁게 맞이 했으니 2015년 한해도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행복한 한해가 될 수 있으리라.. 다정인 가족 2015년 한해도 파이팅! 사랑해요.♡♡
첫댓글 대단한 여행기입니다. 그동안의 모든 여행기를 책으로 출판해도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