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에 가고 싶다.
1. 2007년 북경어언대학교 동계연수단과 함께...(星期三)
19일 제 17대 대통령선거일에 다른 사람에게는 휴무일과 함께 중대한 나라일을 맡겨야하는 중대한 깨끗한 한표를 던져야 하는 날이겠지만 나에겐 부재자 투표도 하지 못한채 시간에 맞추어 나와야 했다.
아침 4시 45분에 나와서 5시에 도착 차는 15분을 기다려 첫차를 타고 인천공항까지는 6시 30분에 도착하였다. 담당자가 떠나기 3시간전에는 와야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여 도착하였다. 첫날에 남에게 늦었다는 소리를 듣기도 싫고 단체생활에서는 서로가 지켜주어야하기 때문에 시간약속을 칼같이 지켰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여 서울에서 교수교직원인 배덕희 교수님과 도서관의 김혜정 선생님을 만나서 학생들과의 일들 나누어서 한 채 교직원선생님들과 일행을 같이했다.
CA138은 약간 지연되어서 북경시간으로 11시 정도에 북경에 도착하였다. 우리일행은 북경에서 담당직원과 어언대학교의 왕라오스를 만나서 2대의 차에 나누어 타게되었다. 그런데 일행중에 한명의 가방을 찾지못해서 일행의 책임자이신 김종박교수님의 그 문제를 해결하는라 늦게야 일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래서 숙소로 그 짐을 돌려받기로 약속을 하고 우리들은 어언대학교로 약 1시간을 걸려서 도착하게 되었다. 북경에 기후는 오기 전에 지역기후가 아침저녁으로 영하 4~5도 정도라고 해서 두꺼운 스웨터와 부츠 그리고 속내복 등을 준비하여왔는데 생각보다는 그렇게 춥지 않은 봄날과 같은 날씨여서 마음속으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 밖의 공기를 접하는 순간 소문대로 갈탄을 너무 많이 때서 나는 냄새와 뿌연 연무로 시계가 무척 가까웠고, 온 세상이 안개 속에 가려져 있는 황갈색의 도시라는 강한 인상이 남게 됨으로써 내년의 북경올림픽이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또한 매번 봄이면 한국에게 황사로 피해는 입히는 기억이 남아서 이러한 일들이 중국전역에서 이루어지다보면 이웃인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도 그리 좋을 것 같이 않아서 약간은 마음이 불편했다.
돌아오는 도중에 중국의 자동차 번호판이 지역별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의 4직할시,23개 성, 5개 자치구, 2개 특별자치구구로 구분되어 상징적인 한 자와 각 지역별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통하여 어느 지역에서 차가 왔는지를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북경 어언대학교는 북경 서북부지역의 오달구 지역에 위치해 있는 대학이다. 학생들은 학생 숙소에 우리들은 학교 내의 호텔에 묶게 되었다. 호텔 체크인 하면서 하나의 특징은 중국은 어디지역에서든지 보증금을 100위엔을 내야한 들어갈 수가 있다. 물론 체크아웃하면서 다시 돌려주는 제도이다. 그래서 영수증을 잘 보관하여 돌아갈 때 잊지 않고 100위엔을 받아가야 한다. 모든 서류를 적고 난후에 방의 호수들이 모두 각 층에서 하나씩을 부여받아서 각자의 방으로 가서 짐을 정리하고 난후에 3시에 1층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모든 짐을 정리하면서 시간이 나서 방안의 TV를 켜고 중국어를 귀에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 틀고 보다가 3시에 내려가서 선생님들을 만나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갔지만 음식점이 점심시간은 지났기 때문에 문을 닫고 다시 저녁은 5시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저녁약속은 6시인데 다른 지역을 가서 다른 것을 먹는 것도 그렇고 해서 내가 미리준비해간 버섯스프를 먹기로 하고 물을 하나사서 내방에서 스프를 끓여먹고, 잠깐 동안에 우리의 일정들을 계획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저녁 6시에 다른 교수님들과 약속을 뒤로하고 각자의 방에서 오늘을 피곤함을 달래면서 저녁을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을 이용해서 나는 이번 연수의 일정을 정리하게로 하였다. 참 뜻 깊은 만남과 일정이었다. 내일부터 수업시간과 북경지역과 천진지역을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이었다. 한국에서의 마음 아팠던 일들은 일단 접어두고 돌아가서 최선을 다하리라는 마음으로 북경의 일정을 즐기기로 하였다. 나에게도 ....
오후 6시에 천안의 교직원과 교수님들과 함께 로비에서 만나서 회의중심의 건물에서 저녁을 먹었다. 사진학과, 만화에니메이션학과, 중문과 등의 교수님과 도서관의 관장님과 직원분들과 총 11명의 교수님들이 함께 저녁을 했다. 금육품과 그 외 술, 맥주등과 음식은 11가지의 음식을 종류별로 시켜서 먹었다. 맛있는 저녁이었다. 저녁을 즐겁게 먹고 난후에 여러번 오신 천안의 교수님들의 안내로 학교의 안내를 받았고, 과일가게, 차가게 등을 거쳐서 물과 여러 가지를 사고 난후에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내일 오전 본 호텔식당에서 오전에 뷔페가 10위엔한다고 한다. 난 지금부터 먹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아침을 참석을 안하기로 하였다. 여하튼 먹는 것을 항상 신경써야 한다는 것을 명심명심해야 할 것 같다. 그럼 내일을 위하여 오늘도 무사히 지난 것에 감사한다....
참참참 한국에서는 대통령선거 결과에 한참일 것같다. 그 화면을 못보는 것이 약간 애석하기는 하다. 이명박이 출구조사로 50%가 넘는 다고 하니 아마도 이명박이 대통령 되는 것으로 끝이 날것 같다. 아마도 국민의 대부분이 잘사는 나라가 되는 바램이 가장 큰 것 같다. 그럼... 좋은 꿈 꾸길 바라면서...
2. 2007년 12월 20일(星期四)
6시에 알람을 맞추어놓고 잠을 들었다. 그런데 저녁 늦게 커피를 마셔서인지 잠이 잘 오질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을 뒤척이다가 새벽이 되어서 알람시간 정도에 잠을 더자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몇 번이 울리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자리를 나섰다. 15분전에 나서서 학교주변을 둘러보고 나서 사람들과 합류를 하였다. 오늘 일정이 궁금하였다.
아침 일찍 어디를 가기위해서 분주하게 학생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방학에 더 바쁜 대학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디어 우리가 원하는 인문대학 211호 강의실에 도착하여 오늘 중국국정에 관한 4시간을 수업하였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국의 지리에 관한 부분이었다. 여하튼 지리라는 과목이라서 그런지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 많아서 내게는 재미가 있는 수업이었다. 중국어도 들리고, 말고 할 수 있었던 수업이었다. 중국의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부패한 3가지가 경찰, 의사, 교사라는 사실과 중국어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배우는 국가가 한국이라는 것에 매우 놀라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賈烈英선생님의 강의를 열심히 듣고 토론을 하였다.
수업내용 중에 하나는 중국의 4대 공정으로 靑藏鐵道, 南水北調(물), 西電東送(전력), 西氣東가스(천연가스)에 노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또한, 현재 돌출된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첫 번째는 농지를 잃을 농민, 둘째 실업, 셋째, 방세, 학교 가는 것, 의료, 교통(사람은 많지만 자원을 적은 것이 문제), 넷째, 빈곤인구, 다섯째 안전사고, 여섯째, 자원소비, 일곱째, 빈부격차, 여덟째, 부패, 아홉째, 신앙(신념)문제는 신앙, 제도, 정책에 의한 문제가 많다. 이는 유교사회가 1949년 막스사회가 됨으로 사회의 신념 등이 변화되어 현재 변화되어가는 과정 중에서 많은 변화로 인하여 중국사회의 혼돈 속에서 바뀌어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수업이 끝이 나고, 지순임교수님의 점심을 사주신다고 하셔서 남문 옆의 식당으로 갔다. 전부 12명에서 음식과 2병의 술을 시켜서, 약 283위엔을 내셨지만 음식은 푸짐하고 맛이 있었다. 그리고 난후에 나는 도서관 김혜정선생님과 증명사진을 찍고, 회의중심 숙소로비에서 선생님을 만나서 왕푸징거리로 갔다. 시간이 매우 많이 들어서 왕푸징거리에서 신천지백화점에서 이태리상품인 바타 부츠를 샀다. 무척 편안한 신발이었다. 그리고 난후에 지순임교수님께서 점심을 사시는 김에 아이스크림과 스무디를 사주셨는데 신발 한짝 값에 해당하는 점심값과 같은 283위엔을 내셨다. 맛은 있었지만 약간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후에 각자의 팀에 따라 주변을 돌아보고 한권을 책을 사서 6시 약속시간까지 돌아왔지만 우리들은 교통체증에 따라서 시간을 많이 늦게 되어서 미안하게되었다. 그래서 저녁 약속장소인 서교병관으로 직접 가게 되었지만 많이 막혀서 중간에 미리 내려서 약 1키로미터를 뛰어서 약속 장소로 가게 되었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저녁은 주류와 비주류가 나뉘어서 저녁을 먹게 되었고, 우리는 발마사지팀과 백화점팀으로 나뉘어서 가게되었고, 결국에는 나는 김혜정선생님과 귤을 사서 숙소로 향하였다. 긴 하루였다. 내일은 중국어를 배운다고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교육을 할지 조금 기대가 되는 날이다. 빨리 내일이 와야지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인식이 될 것 같다. 내일은 수업이 끝난 후에 이화원에 가야겠다. 모래는 팔달령장성에 학생들과 합류를 하고 일요일에는 다시 자금성을 중심으로 서쪽에서부터 유리창거리 전문, 그리고 시단과 왕푸징 거리를 하루에 완결지어야겠다. 그럼... 내일을 위하여 이만 줄일까한다. 내일을 위하여...
3. 2007년 12월 21(星期五금)
아침 일찍 일어났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잠깐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일어나보니 7시 30분이었다. 놀래서 성급하게 준비하고 다행히 50분까지 로비에 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안될 것 같아서 아침도 먹지 못하고 참석을 하게 되어서 조금은 배가 고팠다. 그래서 모두 함께 우리들의 교실로 가기로 하였지만 천안의 안교수가 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보다 더 늦게 오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늘부터는 중국어를 배운다고 하는데, 처음부터 총 15과까지 있는 책이었는데, 오늘은 3과까지 가기로 한 것 같다. 그래서 처음부터, 인사하는 방법, 물어보는 것 그리고 식당에 가서 먹고, 마시고, 사는 것 등에 대해서 배웠다. 조금 중국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중국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한국말로 하지 않아서 매우 좋은 수업이 되었다. 그렇게 4시간을 배우고 난후에 모두들 점심을 함께 먹으러 가서,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연습해 봄으로써 재미있었던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잠깐 숙소에 머물면서 책을 내려놓고, 정리를 하고 다시 로비에나갔다. 로비에서 도서관의 관장님을 비롯해서 직원선생님들과 함께 남문의 앞에서 버스를 타고 이화원에 가기로 하였다. 그동안에 배웠던 중국어를 통하여 가는 방법등을 물어서 버스를 탔다. 버스정류장에 갔었지만 가르쳐준 버스번호는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또 물어본 후에 다른 버스 690번을 타고 차에 올라탔더니 카드를 필요로 하기도 하고 없을 경우에는 버스안에 안내양이 있어서 그사람에게 갈 곳을 말하면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이화원까지는 한사람당 1원을 내면 갈수가 있었다. 가서 안내양에게 내고 우리는 이화원에 가는데 내리는 곳을알려달라고 한후에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버스안에서도 한국의 지하철처럼 다음역을 알려주는 광고판이 있었서 조금 안심을 하면서 갈 수있었다. 그래서 결국우리는 이화원 앞에 도착하여 표를 사려고 정문으로 갔다. 정문에 표를 사기위해서 서서 광고판을 보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와서 이화원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이화원에 원래는 20원을 내면 되는데, 3세람을 안내해주면서 100원을 내면 표 값과 함께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아마도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다른 이야기는 잘 알아듣지 못하고 간단한 것만 물어보고 우리는 그 안내해주는 사람을 따라서 이화원을 돌았다, 조금씩 중국어를 연습할 수있어서 좋았고, 그를 통해 중국사정을 알게되어서 좋았다. 남편이 버스운전사이며, 16살인 아들을 두고 있고, 원래 북경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최근에 중국의경제가 좋아줘서 매우 좋다고 하고 본인도 따라 돈을 벌 수있어서 중국의 경제가 많이 나아지는 것을 점점 느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 본인의 친구가 갔다고 하고, 한국의 여자들은 특별이 예쁘다고 한다. 중국여자들은 마찬가지라고 했더니 한국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기 때문에 더 예쁘다고 한다.
황제의 공간, 황후의 공간 그리고 건축물로 유명한 불향각, 돌로 만든 배, 자희태후의 공간, 곤명호 등을 돌아보았다. 여름의 궁전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호수안의 물도 거의 얼기 때문에 많이 빼놓는다고 한다. 정말로 아름다운 공간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겨울보다 여름이 더욱 아름다울 것 같다. 춥기도해서 곤명호에는 내려가지 않고 그냥 동궁문으로 나왔다. 나와서 동생과 만남 김혜정 선생님을 만나서 또다시 690번의 버스를 타고 학교앞으로 왔다, 북경어언대학교의 버스정류장은 서문 앞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오두구의 다음 정류장이었다. 정류장에서 도서관관장님이 고구마을 사주셔서 12.5위엔하는 것을 10위엔에 깍아서 살 수있었다. 참으로 중국의 물가는 우리로 하여금 가격을 정하는데 노력하게 하였다. 참으로 재미있다. 그리고 난후에 김혜정선생님의 동생을 보내고 우리는 숙소로 들어왔다. 들어오고 난후에 다시 숙소에서 다시 6시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6시에 로비에서 도서관선생님들과 사진학과선생님들을 만나서 서교빙관의 건너편에 있는 곽림빙관으로 갔다. 심우영교수님은 상명대학교로 오는 교수와 학생들을 선발한다고 어언대학교의 선생님들과 인터뷰를 하는 자리로 가고 우리는 다른 장소로 모여서 저녁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조금후에 김교수부부가 오셔서 합류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경주를 시켰는데 작은잔과 큰잔으로 원하느냐고 해서 우리는 소주잔을 생각하면서 작은 잔을 원했는데 가지고 온 잔은 정말 한모금정도의 잔으로 가지고와서 한병으로 한참을 마실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정말 한잔으로 깐배이를 할 수 있는 정도여서 괜찮은 생각 같았다.
갈지 궁금하였다. 내일 아침을 같이 할사람은 6시에 만나서 조기축구팀을 구성하여 유명한 국수집을 먹으로 가신다고 한다. 나는 아침의 긴시간을 아침먹는 시간으로 할애하고 싶지가 않아서 7시 40분에 만리장성가는 팀에 합류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내일이 기대된다. 동변과 서변의 차이가 어떻게 나는지 궁금하였다....
4. 2007년 12월 22일(星期六토)
드디어 토요일이다. 북경시의 환경은 너무 안 좋아서 그런지 많이 돌아다녀서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더 피곤하는 것 같다. 아침마다 숨쉬기가 곤란한 것 같다. 갈탄을 많이 때서 그렇다니, 하지만 한국의 6-70년대처럼 경제가 우선이고 어려운 상황이라서 환경을 논할 수 없는 정도라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지난 티벳을 같을 때 고산병 때문에 고생하던 생각이 나서 살면서 숨쉬기 운동도 중요한 부분이다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빨리 움직여야겠다.
7시 40분에 학교 로비에서 모여서 동문으로 갔다. 학교들은 아직오지 않았지만 학교 안쪽으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여, 어언대학교의 직원과 왕라오스가 와서 차는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한 30여명이 탈수 있는 버스가 약 6대가움직였다. 북경의 아침은 너무나 안개와 스모그가 심하였다.학교에서 빠져나와서 베징의 만리장성 3개중에 덜 사람들이 가는 모전욕으로 갔다. 나머지는 팔달역과 사마대가 있지만 사마대는 북경에서 약 140키로 떨어져 있고, 팔달령은 북경을 상징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전욕의 장성으로 움직였다. 약 9시 40분부터 시작하여 약 3시간의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낮은 곳으로 가는 걸어서는 약 20분 걸리는 곳과 삭도(케이불카)를 타고 가는 것은 왕복이 50위엔이고, 편도는 35위엔 하였다. 우리는 운동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위로 올라가는 것이 자신이 없어서 김혜정선생님과 관장님과 함께 편도를 선택하였다. 편도를 신청하여 타는 곳으로 갔는데, 앞사람이 왜 장성 중에 여기를 왔느냐는 설명을 조선족인 사람에게 물어보고 있어서 내가 조금 설명을 해주었더니, 내가 중국사람인 줄 알고 뭐라고 하길래 내가 한국말로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미안하다고 했다. 중국사람과 말과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케이불카를 타고 6명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조선족을 아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의지하는 것 같았다. 재미있었다. 우리는 장성에서 내려서 위로 더 올라가는 곳과 내려가는 곳 중에서 장성의 일부분인 곳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가다가 여러 군데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가다 우리의 일행 선생님들을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조금 후에 만남김에 중문과 박석교수님이 들고 온 기타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유모러스하게 도서관의 서선생님이 입구에서 산 모자로 돈을 받기 시작하였다. 샹송에서부터 팝송, 중국노래, 한국노래까지 여러 가지 노래를 함께 부르고 같이 사진도 찍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함께 장성을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약간의 다리가 떨리듯이 힘이 들었지만 견딜만한 정도였다. 박교수님이 번 30여원을 가지고 교수님이 점심을 사주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입구에서 국수를 먹기를 하였는데, 전부 10명이 먹은 국수 10그릇과 만두 2접시가 300원이 넘었다. 관광지라서 무척이나 비쌌다. 여하튼 가격보다 우리들의 배를 채우는 것 뿐만 아니라 운동 후의 그 맛이란 정말 신선이 따로 없는 듯했다.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려오면서 한자 예서의 침대보가 마음에 들었다. 다른 것도 물론 아름다웠지만 검은 색의 글씨가 나의 눈을 떠나지 않았다. 거의 여러 군데에서 물어보았어도 230원부터 280원을 달라고 하지만 한곳에서는 약간 물이 들은 듯한 곳에서 50원을 준다고 해서 갔더니 더러워서 싫다고 하니까 더 싸게는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내려오면서 물어보니 더 비쌌다. 그래서 마지막집에서 280원을 불러서 싫다고 해서 겨우 50위원에 샀다. 지금 밑에 깔고 앉아있는데 너무 행복하게 기분이 좋다.
그러고 나서 박석교수님이 버스 옆에서 다시 노래하는 무대를 마련해서 좀 전에 한 것에서 약식으로 2-3편의 노래를 하고 우리들은 버스에 모두 올라탔다. 모두 탔더니 운전기사가 출발을 하여서 모이라는 시간보다 약 14분 일찍 출발하여 1시 30여분에 학교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여서 우리는 오후 4시에 만나기로 하고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내가 매번 들어오는 시간에는 내방을 청소하는 시간이었다. 청소하는 아가씨에게 약간의 미안함 감이 들었다. 오늘은 약간 피곤하다. 이제 4시에 만나기 위해서 나가야겠다. 저녁에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확인 해야겠다.
4시에 만나서 앞의 수퍼마켓과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머문 곳은 학교 앞의 수퍼마켓 상당한 많은 물건들이 있어서 이러한 것을 보고, 여러종류의 만두와 각 이름들을 보는 것도 대단한 재미였다. 많은 물건들을 구경하고 난후에 밖에 나와서 녹두전병을 사먹었다. 녹두로 만든 것을 물게 만들어서 둥글고 얇게 만들어서 판에 올려놓은 후에 그 위에 춘장과 달걀 2개 그리고 파와 향차이, 깨소금등을 뿌려서 어느 정도 익은 후에 그것을 접어서 주는 것으로 3위엔을 지불하였다. 원하는 대로 넣을 수도 안 넣을 수도 있었다. 재미있었고 맛도 있었다. 그리고 난 후에 저녁에 술 한잔 하기 위해서 오리와 족발 그리고 맥주를 사서 관장님의 방에서 한잔을 하고 하루를 마감하였다. 오늘의 모전욕의 장성에서 박교수의 낭만적인 기타소리를 중국의 장성에 울리고 온 것이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었던 하루였다.
내일을 계획해야 하고, 갈 길을 잘 찾아가야하는 마음의 부담을 안고 내일을 위하여 그만 이만...
5. 2007년 12월 23일(星期日)
오늘 아침부터 마음이 바뻤다. 오늘 처음 타보는 지하철을 잘 타고 갈지가 궁금해서 호텔직원과 다음에 상명대학교로 오는 사람에게 두 번씩이나 물어보곤하였다. (西直門,시쯔문)이 13호선의 종점인데 이것이 2호선과 연결하는 것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가서 또 지하로 가기 때문에 무척이나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환승하는 것에서 어려울것이라고 해서 무척이나 긴장을 했지만 서울에서 지하철을 많이 이용해서 그런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였다.
여하튼 8시에 모두 모여서 한걸음한걸음 발걸음을 함께 해서 오도구(五道口,오따오쿠)에서 각자 표를 2위엔하는 것을 사서 지하로 내려갔으나 직원한명이 하나씩 표를 찍었다. 그래서 오따오쿠에서 3번의 종점이 시즈문에서 내려서 환승하는 2호선을 갈아서 3정거장뒤인 (복흥문(福興門)에서 환승하여 시단(西單:씨단)에서 내렸다. 내려서 유명하다고 하는 상창중심을 들려서, 주변을 돌아보고, 커피한잔도 마시고 그리고 난후에 여러군데를 둘러보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미용을 하라는 권고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이 달려들었다. 그것을 싫다고 하는 것도 하나의 중국 베이징의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어 들었다. 그만큼 많은 젊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그런 미용을 하러 오는 한국의 명동과 같은 지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상점에가면 한국에서 왔다고 직원들이 모여들어서 한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고, 한국의 여자들은 그렇게 예쁘고, 피부도 좋고, 키도 크고해서 무척이나 좋고, 연속극과 노래 등을 좋아하는 것을 알수있었다. 어디를 가던지 간에 스타가 된듯한 기분을 주었는데 우리들도 생각하기에 정말 중국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도로 한국사람들이 예쁜가,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그렇게 주변을 돌아본 후에 한국의 교보문고와 같은 북경에서 제일 큰 도서빌딩(圖書大厦,투슈따시하)에 들려서 각자 관심있는 부분의 책을 사기로 했다.나는 지리적인 부분에 가서 북경, 천진, 중국의 세계유산, 운남성등을 사고(약 200위엔, 2만8천원)주고 책을 사고 시간이 남아서 중국인이 반기문에 대해서 쓴책을 조금 읽고 있었다. 정말 중국사람도 아시아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나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나 보다. 모두 모여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일본식처럼 깨끗한 국수종류를 파는 집을 선택하여갔다. 오전 내내 걸어서 그런지 사람이 꽉찬 집이였지만 다른 데로 옮기고 싶지 않고 맛이 있어보여서 자리가 나도록 기다렸다가 우리들은 하나둘씩 음식을 신청하여 먹었다. 관장님의 짬봉과 같은것, 김선생님과 난 간장국수같은것, 서과장님은 감자탕같은 것에 고추를 넣어서 먹는 것같은 시켰고, 이집에서 유명한 소식에 해당하는 것을 신청하여 맛있게 먹었다.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다시 2호선 부근의 화평문으로 가기위해서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서 화평문까지 갔다. 가는 도중에 중국에서 유명한 화신 출판사가 있어서 거기의 경비원과 사진도 함께 찍고 중국사람들이,(중국내서역사람) 잘 먹는 빵을 신청하여 잘라서 하나씩 길거리에서 먹고 걸어갔다. 화평문에서 약 1.5km를 걸어서 유리창의 서가로 갔다. 처음에서 동가와 서가가 있는 줄을 몰랐는데, 만나기로 한 10분전에 상대쪽을 사진 찍다보니 먼저와서 본 곳은 상대쪽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다음주에 한번 더 올기회가 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여기서 강훈, 택주, 내것, 그리고 미정이 것을 도장을 맡기고, 주변의 동영상을 찍고, 그림 두장도 샀다.
그리고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면서 3시에 세선생님과 함께 건너편으로 가서 택시를 탔다.택시비는 왕푸징거리까지 13원에 갔다. 가서 관장님 사위 신발과 서과장님의 신발을 사고, 우리는 왕푸징거리를 누볐다. 유명한 음식상가와 주변 그리고 드디어는 왕푸징의 소식가에 해당하는 골목으로 가서, 각각의 원하는 음식을 사먹고 골동품거리에 가서 여러 가지를 보고 난후에 김주임님의 화장품곽을 보고, 관장님은 식탁보를 샀다. 사고 돌아오면서 또 소식가에 들려서 하나씩 사서먹고, 지하철역(왕푸징의 1호선)에서 타서 4정거장 부흥문에서 환승하여 시즈문까지 왔고, 시즈문은 종점역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밀치고 타야 할정도로 붐비었다. 드디어 밀고 타서 안자서 3정거장을 가서 오도구에서 내려서 온몸이 모두 아파서 발마사지에 찾아갔다. 4명이 한방에서 한꺼번에 맛사지를 받았고, 55위엔으로 모두 가능하였다. 그리고 난후에 우리는 택시는 밀려서 타지 못하고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도중 지순임교수님을 만나서 선물을 포장할 포장지를 받아서 숙소로 왔다. 그런데 내일 숙제인 것이 걱정이 되서 다시 밑에 내려가서 물을 사다놓고, 왕빠를 찾아서 직원이 알려준 어언대학의 북쪽으로 내려갔다. 가는 도중에서 어는 학생에게 물어보아서 찾아서 갔다. 30분에 5위엔, 다인(打印?)하는데 한 장당 1위엔 그래서 3장에 모두 8원을 주고 출력하여 숙소를 왔는데 내용이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아서 걱정이다. 내일 이흥룡부장에게 전화를걸어야겠다.... 그만 자야겠다. 오늘 정말로 거종거양의 일을 한 날이었다. 정말로 긴하루이지만 많인 것을 보고 듣고 하고 해서 뜻 깊은 하루였다. 내일은 또다시수업이 시작되고, 크리스마스이브날이다. 내일 파티가 있다고 하는데... 참 박석교수님도 간다고 하니....
6. 2007년 12월 24일(星期一월)
드디어 월요일이다. 요번 연수 중에서 중반에 해당하는 시간들이다. 이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수업이 있는 날이다.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聖壇祭 愉快러)이다. 옷을 좀 더 재미 있게 놀기 위한 것으로 준비하였다. 그럼.. 8시가 되기 전에 챙겨서 나가야 되었다. 8시까지 교실로 갔었으나 다른 수업이 있어서 우리들은 3층의 회의실에서 수업을 하였다. 회의실처럼 되어 있어서 수업하기에는 무척이나 좋은 분위기 였다. 오늘의 앞의 2시간은 진라오스(陳)이고, 후반부 2시간은 치우라오스(구)가 가르쳐 주었다. 모두 재미있었다.
천라오스는 돈에 대한 것으로 물건 살 때에 해당하는 것, 치우라우스는 어디 가는 것을 가는 것과 가르켜 주는 것에 대해서 오늘은 4과와 5과를 배웠다. 수업이 끝난 후에 모두 함께 학생스당에 가서 모두 함께 점심을 먹었다. 오늘 박석교수가 티벳으로 떠나는 날이라고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장청의 공연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요이쓰더 스칭(有 이思的 事)이다.
점심을 먹은 후에 모두 나와서 각자의 방으로 갔다. 나는 도서관에서 왕빠(인터넷)을 하려고 갔으나 오후는 2시부터 5시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2층에서 전자실에서 한다고 한다. 내일 한번 들려보아야겠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서 이것저것을 정리하였다.
오후에 4시 45분까지 로비로 나가보아야겠다. 그리고 난후에 양지마을에서 저녁을 먹고 난 후에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기 위해 경극을 보러간다고 한다. 오늘 저녁이 기대가 된다.
저녁 4시 40분에 로비에서 만나서 양지골한국집에서 저녁을 우선적으로 먹기로 하였다. 고등어김치찌게가 38위엔이었다. 순두부도 38위엔, 비빕밥,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은 35위엔이었다. 그래서 4백링 9원이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저녁이었다. 그리고 난후에 박교수와 함께 택시가 막힐 것 같아서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하였는데, 13호선이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것보다 적기 때문에 밖에서부터 어느 정도 들어가고 난후에 시간을 두고 그 다음 팀들을 들여보내고 있었다. 인구가 14억 정도가 되는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도저히 타고 갈수 없을 것 같아 택시를 타고 갈려고 하니 어느 정도 사람들이 들어가서 밖이 약간 비어서 우리도 들어갔는데 안에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갈아타는 곳에서 갈아타는 곳에서만 약 30분 이상을 사람에 밀려서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래서 갈아타서 2호선으로 시즈문에서 갈아타서 약 7정거장인 치엔문에서 내렸다. 내린 시간이 약 7시 42분이었고, 걸어 들어가 예약을 확인하고 들어간 시간이 8시가 넘었다. 참으로 오기 쉽지 않는 광경이었다. 한국에서도 지하철을 잘 이용하지 않다가 이용한 시간이었다.
오늘 노사차관(老舍茶館)에서 중국의 전통적인 무술, 마술, 전통극 등을 볼 수 있었고, 중간 중간에 차와 간식 등이 먹을 만하고 재미있었다. 전통적인 북경에서도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겹지도 않고 볼 만하였다. 끝난 후에 예쁜 차를 선물하기위해 거금을 들여서 샀다. 그리고 난후에 4명이 함께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약 36위엔이 들었다. 그리고 모두 방으로 들어오면서 오늘 하루의 일과도 끝이 났다.
7. 2007년 12월 25일(화, 星期二), 聖誕節
어제 노사차관을 다녀오면서 조금 피곤한 하루여서 그런지 좀 일찍 일어나기가 힘이 들었다. 6시에 일어나기 싫어서 조금 뒤척이다가 일어나서 오늘 준비를 하였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토론하는 것을 들었는데, 중국에서도 조금씩 성탄절에 대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방의 국가에서도 종교를 뛰어넘어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축하해 주는 날로 변화 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서로들 선물을 주고받고 있고,을 북경의 거리에서 밤새 예수의 탄생을 같이 지켜보아 주는 것 같았다. 점차적으로 서방의 종교적인 행사로 보기보다는 조금씩 변화를 인식하는 것 같았다.
오늘 수업은 오전에는 미술사에 관한 것으로 중국의 미술사 중에서 인물사에 관해서 했고, 중국의 미술사와 서양의 미술사의 차이점에 대해서고, 중국의 미술사의 종조문제와 필묵화에 대해서 보여주었다. 조형의 원칙은 개인적이고, 절대적인 정신세계에 의해서 서정적인 것이 들어가 있고, 청조시대의 장조는 무용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필묵(발묵)을 그렸다. 평면성에 있어서는 산점투시로 중국시대의 백화를 볼 수 있고, 입체성보다 평면성에는 많은 것을 편안하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의 미를 느낄 수 있다. 장조화는 서양기법을 동양에서 이용하여 중국화 시킨 방법을 말한다.
그리고 필묵에선 종이와 물 그리고 필묵을 함께 어우러져서 결국에서 중국의 태극권이 음률에 따라서 서로 주고받는 것과 같이 한번의 그림에서 이러한 것을 흡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야의 수묵그림은 동서양이 서로 교류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모든 그림에서 처음 점을 찍어서 본인이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동안 한번에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그릴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이 속에는 하나의 유기체인 생물체를 느낄 수가 있다. 생동감이 살아 있는 그림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그림을 볼 수 있는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통한 경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인격이 품격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림을 통해 진더와 찌아더의 구분이 가능하다.
용모와 용묵에 대해서 구분해 보았지만 이는 구분하기가 싶지 않는 구분이다. 용모는 평(平-직선), 원(圓-둥글게), 유(留-자연스럽게) 중(重-강함), 변(變-변화성)으로 구분되고, 용묵(用墨)은 농(濃-진한), 담(淡-연하게) 파(破-퍼짐) 적(積-여러번) 발(潑-뿌림) 초(焦-물을 함량을 적게), 숙(宿-먹을 갈아놓고 며칠 재운후에 사용)으로 구분한다. 이런한 것을 공부한 후에 며칠전에 돈황전이 종료되었는데, 밑에 층에 아직 남아있어서 그것을 보고 오늘 미술사는 종료되었다.
그이후에 취이 라오스에 의해서 소개하는 수업을 하였다. 내일 가족사진을 가져와서 발표를 한다고 한다.
시하커이허우에 심우영교수님을 만나서 오다쿠에 있는 한국음식점 사랑방을 가기로 하였다. 약간의 가격이 어제 양지말보다 싸다고 한다. 그래서 가서 김치찌개와 순두부를 둘이서 시켜서 먹었는데 매우 맛이 좋았다. 모두 점심을 먹은후 각자의 목적에 따라서 이동을 하였다. 우리는 도서관의 서과장과 김주임과 함께 오는 길에 영화를 보기로 하였다. 유덕화, 이연걸 이성무가 주연인 투명장(投名將, war road)을 보았다. 청조말의 전쟁에 관한 것으로 의형제를 맺은 관계에서 한 여자를 두고 일어나는 것과 전쟁에는 병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에 의해서 나타나는 결과들에 대한 것의 내용이었다. 의형제를 죽인살인자를 죽어야 한다고 결국 큰형을 죽인 셋째가 투명장이 되는 것으로 영화를 끝이 났다. 다는 아니더라도 조금 알 수있었는데 역사를 아면 좀더 이해가 가능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뜻깊은 경험이었다. 3호관에서 제일 앞쪽에서 보았고, 영화관은 크지 않고, 약 50여명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돌아와서 모든 것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약간의 손빨래를 하여 널어노았다. 오늘 엄마가 전화를 했는데, 몹시 집생각이 나는 하루였다. 집에 가고 싶은 부모 형제들이 보고 싶다.. 며칠 지났고, 며칠이나 남았나? 상이샹봐? 응 일주일 되는 날이구나, 수요일에 와서 화요일이니...
8. 2007년 12월 26일(星期三)
오늘은 저녁 5시에 무술을 보러가는 날이다. 여하튼 ... 점심을 잘 먹고 나서 봅시다.
오늘은 두중국어 선생님이 수업하는 날이다. 모두 재미있게 수업을 하였다. 가족을 소개하는 것이 몹시 재미있었다. 그리고 난후에 학교에 대해서 설명한 수업이었다. 수업이 끝난 이후에 여느날과 같이 학교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오늘은 배덕희교수님이 점심을 내셨다. 그래서 최교수(목), 서과장(금),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일림(토)이 내는 날이다.
점심을 먹고 헤어져 숙소로 왔다. 점심이후에 무술을 보러 4시 40분에 로비에서 만나기로하였다.
숙소에 들어와 4일 동안 있어야 하는 여행 일정을 찾기 위해 자료를 열심히 찾았다. 4시 40분이되기도 전에 모든 것을 찾기는 쉽지 않아서 하던 것을 그만두고 로비에 내려가서 무술을 보러가기 위해 모였다. 역시 오늘도 제일 늦은 안교수만 내려오지 않았다. 늦은 것은 어디가서나 습관인가보다. 전혀 미안해 하지도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이전에 들어왔던 내용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후회를 한다.
모두 차를 타고 약 1시간 30분이후에 천단호텔 앞에있는 홍극장으로 갔다. 표시간은 7시 30분이었다. 약 6시 40분에 도착하여 주변의 식당으로 갔는데, 원하는 정도는 없어서 라면을 모두 먹었다. 상차이 넣는 사람과 아닌사람 그리고 고기 안넣는 사람과 넣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고치만 더 식히고 그냥 간단하게 저녁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극장으로 들어가서 극장의 무술을 감상하였다. 실제 한사람의 전기에 관한 것으로 엄마의 품에서 떠나서 한사람의 일생에 관한 것으로 인생사에 관한 것이지만 무술의 최고의 경지에 이룬 내용이었다. 정말로 무술은 도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 그 기라는 것 자체에 큰 힘이 느껴졌다. 지구상의 자연에는 그러한 힘이 있는데 인간의 능력이란 그러한 것의 100분의 1도 쓰지도 못하고 일생을 마감하는 것 같다. 정말로 대단한 도의 경지인 것 같다. 쿵푸전기에 관한 것으로 ‘천장국제연예제작교 류유한공사에서 제작하였다. 홍극장은 천단의 동변에 있는 곳으로 북경화처찬의 남변에 있다. 정말 하루가 재미있었다.
9. 2007년 12월 27일(星期四)
오늘은 상명지리학과 학생들과 저녁 5시에 서문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업에 참석하였다. 오늘은 군정에 대한 것으로 군대에 관한 육군, 공군, 해군 그리고 북핵에 관여하는 것으로 구분되고, 이것 밑에 각 성에 해당하는 것과 그 밑에 현에 해당하는 것으로 구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군대는 국내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는 좋은 관계를 조성하고 있지만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있어서, 서로 간에 더 좋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을 것 같다.
이후에 중국어 8과를 하고 수업을 끝냈다. 이후에 모두 점심을 사찰음식을 먹으로 오도구 가까이에 있는 곳에 내려서 천주두묘향소식(天廚妙香素食)의 집에 가서 많은 양에 해당하는 고기처럼 생겼지만 야채로만 만드는 음식을 실컷 먹어 보았다. 오늘도 점심은 참으로 푸짐한 점심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향신료를 먹어보았다. 이는 혀를 약간 굳게 하는 것같이 목안으로 퍼져서 묘한 느낌을 주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 그러한 맛을 느껴야만 했다. 정말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후에 각자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였다. 김종박교수와 박인숙, 배덕희교수는 유리창거리로, 지순임교수와 김관장님, 서과장 그리고 나는 오도구 앞의 슈퍼마켙에서 들리기로 하였고, 안성혜와 최교수는 숙소로 그리고 장교수는 이화원에 가기로 하고 모두 흩어졌다. 우리는 걸어서 십자로에 와서 마켙에서 각자 필요한 물건을 사서 돌아다녔다. 나는 중국의 술을 1병을 샀다. 그리고 먹을 꼬마귤을 샀다. 사고난후 모두 들고와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왔다. 남문으로 숙소안까지 택시를 타고 들어와서 모두 내렸다. 난 교수님의 물건을 들고 있어서 숙소까지 들어다 드렸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맛있는 옥수수를 주셔서 들고 나의 방으로 들고 왔다. 그러고 난후에 난 나의 방을 둘러보았더니 학생들이 왔다 간모양이었다. 내용인즉 오늘 경극과 연극이 있어서 그것을 보러간다고 오늘 약속을 못지킨다는 내용이었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내방을 모두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10. 2007년 12월 28일(星期五)
오늘은 중국어를 안하는 날이었는데, 김종박교수님이 사무실에 말해서 중국어를 계속하기로 하였다. 군정이나 역사에 대한 것은 너무나 재미없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중국어를 연습하기로 하였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서 정말로 고맙게 생각이 든다.
중국어로 바뀌어도 진도를 더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내용을 더 가르쳐주는 식의 내용이었다. 그래서 양사의 내용을 더 첨가해주고, 노래 茉莉花(모리화, 자스민)에 대한 민가를 천라오스는 가르켜 주었고, 취우라오스는 열심히 수업을 가르쳐주었다. 내일은 아마도 시간과 집 식구에 대한 내용으로 끝날 것 같다. 수업을 하고 난 이후에 우리는 양지말과 서교호텔을 지나서 熊家판관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부대와 곱창전골과 갈치, 계란 등을 함께 먹었다. 모두 432위엔이 나와서 김혜정선생님과 함께 지불하였다. 카드가 안된다고 해서 위엔으로 지불하였다. 오늘 은 몹시 바람도 불고 날씨도 너무나 추운 날이다. 그래서 유리창을 가려고 했는데 옷을 너무 얇게 입어서 다시 숙소로 가서 옷을 더 챙겨 입고, 다시 나와서 선 13호선타고, 난후에 2호선 갈아타고 화평문에서 내려서(D)로 내려서 서가로 먼저 가서 도장을 찾고 길가를 돌아다녔는데 너무나 일찍 어두워서 조사를 할 수 없어서 그냥 편하게 돌아다니기로 하고, 동가, 서가를 모두 돌아보고, 후동에 가서 호떡 2개를 1.2위엔을 주고 사먹었다. 속에 야채와 상차이를 넣었다. 맛이 마마후후 했다. 그리고 난후에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곳에 가서 구경하고, 말 몇 마디 나누어보고, 다시 먼저 번에 갔었던 천장다관에 가서 차관과 차와 과자류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690번을 타고 올까했는데 690번은 지나는 가지만 정류장은 전문에 있다고 해서 다시 지하철로 내려와서 지하철을 탔다. 먼저 번에 두 번이나 사람 많을 때 질려서 그럴까봐 두려웠는데, 6시 이전은 가봉시간이 아닌가 보다. 그래서 괜찮은 상태로 돌아 올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도 혼자 해내었다는 생각에 하루가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선물을 그만사고, 천진만 잘 다녀오면, 되도록이면 아껴서 돈을 잘 써야겠다. 이젠 애들과 윤아만 저녁이나 점심을 사주면 나의 일을 끝나는 것 같다. 내일 수업 잘 마무리하고 천진표를 잘 사야겠다.
琉璃瘡거리(東街, 西街)
11. 2007년 12월 29일(星期六)
오늘은 수업을 종료하는 날이다. 수료증을 준다고 한다.
마지막 수업중에 시간이 남아서 수수께기를 맞추는 것을 수업하였다. 3문제가 모두 한자로 써놓은 것이어서 천안의 김동욱교수님이 모두 먼저 맞추었다. 장구, 부채, 이는 원소절인 정월대보름에 하는 일이라고 한다. 중국은 춘제, 원소절 그리고 단오제가 큰 명절이라고 한다. 올해부터는 중추제도 하루 그날만 논다고 한다. 그리고 춘제는 원래 정식 노는 날은 3일인데 사람들은 앞뒤로 약 7일 정도는 논다고 하고, 원소절까지 한다면 근 한달은 명절기분으로 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은 단오제를 큰 명절로 굴원을 기념하는 날로 굴원고사에 의해서 그날은 종자를 먹는 다고 한다. 충신을 기리기 위해서 물고기가 충신의 시신을 먹지말라고 종자를 던져주면 물고기가 종자를 먹는다고 해서 그날 모든 사람들이 종신을 먹는 일이 생겼다. 우리는 전라오스와 수업이후에 사진도 찍고 정말로 재미있는 수업을 종료하였다. 그리고 치우라오스가 와서 우리들의 신상명세서를 적어서 내었고,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배운 내용들은 정리하여 소개하는 것으로 수업을 맞추었다. 오늘의 내용으로 이제까지의 실력들이 모두 나오는 것 같다. 김일림, 안성혜, 김동욱, 최교수,지순임, 응용력이 있는 박인숙교수 그리고, 김동욱교수사모님, 서용원, 김혜정, 김정신, 장교수, 배덕희의 모두 고생하였다.
수업이후에 우리는 바로 회의중심의 包五에서 수료식을 가졌다. 모두 재미있는 자리였다. 우리는 심교수와 김동욱, 진성혜, 지순임, 최교수와 그리고 내가 두 어언대학교의 교수자리에 앉아서 말을 하였다. 조금 자연스런 자리가 아니였기 때문에 그냥그랬다. 그리고 모두 재미있게 수업을 끝내고 이번 연수과정을 맞추었다. 모두 끝내고 난뒤 난 방에가서 가방을 가볍게 하고 2두시에 슬예와 소영 그리고 ? 그리고 나와 함께 남문의 왼쪽의 십자로 반대편에 가서에 가서 천진가는 차표를 샀다. 슬예가 중국의 맛이 들려서 먼저 모든 일들을 처리하였다. 원래 42원인 표가 47원씩 하였다. 일단 단표만 샀다. 내일 아침에 6시에 서문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잘다녀와야 할 텐데 걱정이었다.
이들과 헤어지고, 난 대종사에 가기로 했다. 해가 너무 짧아서 어떤 것도 오후에 하는 데 1나 이상을 할 수없었다. 대종사역에 내려서 물어서 대종사에 갔다. 대종사는 원래 나는 사찰인줄 알고 갔는데, 원래는 각생사라는 사찰이었는데, 대종사라는 속종으로 불리워졌고, 20세기에 종의 박물관이 되었다. 따라서 다양한 종의 역사에 대해서 알 수 있고, 대 종을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대단한 종이었다. 그러나 그 종을 사진에 담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단지 2위엔을 내고 그 종각에 올라가서 구경만 할 수 있었다. 정말로 대단한 종을 보고 내려오면서 역사적인 종의 유형에 대해서 보았는데, 중국의 종의 초기에는 상당히 작고, 크기도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이 명대를 거치면서 종의 밑부분에 연꽃의 문양으로 상징화하고, 종에 많은 내용이 첨가되고, 문양도 첨가되었다. 종의 의미가 많이 첨가된 듯하다. 종에는 종교적인 의미로도 많이 쓰이지만 정치, 경제, 음악, 문화 등에도 많이 사용이 되었고, 특히 음악부분에서 편종으로서 사용도 하나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외국의 종의부분에서 종교적인 불교나, 도교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의 신도나 그리고 서양의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한국의 종도 소개가 되었지만 한국의 종의 의미를 커다랗게 소개하고 있어서 한국의 종의 의미를 상당히 과학적이고 예술적인 면으로 한층 높은 수준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러한 것을 모두 보고 난후에 몹시 매서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지하철로 타고 숙소로 들어왔다. 들어와서 TV를 틀고 보니 석가모시 일생에 대해서 하고 있고, 중국에 불교의 전파에 대해서 하였다. 그런데 내용 중에 현장법사가 불교를 전파한 일과 한국과 일본에 방문한 것 등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모든 것들이 중국의 불교전파를 상당히 크게 소개하고 있다. 불교의 영향은 절은 있어서, 실질적으로 알 수는 없고,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의 신앙은 불교와 도교가 겸비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 내용을 조사가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정말 나의 연구의 폭과 내용 등을 지속적으로 조사해보아야겠다.
몹시 많이 부는 바람으로 날씨는 조금 좋아졌지만 내일 날씨가 걱정이다. 내일 일들이 잘 치리고 왔으면 좋겠다. 내일이 기대가 된다.
대종사
12. 12월 30일(星期日)
드디어 우리는 천진에 간다. 모두 잘다녀오길 바라면서....
아침 일찍부터 시간을 늦을 것 같아서 4시반부터 일어나서 준비하고 35분에 나갔더니 45분이 되었다. 그때부터 15분을 지나서 6시가 되어도 애들이 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나서도 15분이 지나도 아무도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표를 각각 갖고 있으니 그 앞으로 오겠지 하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갔다.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모든 것들이 다 안내되어있었다. 천진으로 가는 문앞에 있다보니 셋이 아닌 둘이 막 뛰어 오는 것이었다. 애기인 즉은 알람이 꺼져서 듣지 못하고 자고, 지혜는 아파서 오지 못한다고 했다. 여하튼 갈수 있어서 다행이고, 우리는 8시 5분차를 타고, 화차를 타자마자 골아떨어져서 일어나니 9시 15분이었다. 약 1시간 10분 걸리는 쾌속열차였다. 우리는 내려서 오후에 올 차를 골라서 샀다. 사는데도 보니 환불하는곳, 그날 당일차 사는곳, 그이후에 예매하는 곳등 다양했다. 우리는 계획된 것을 보고 올 수 있는 시간이 요즈음 겨울이라 약 5시 정도면 주변을 돌려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못해서 5시 까지 보기로 하고 떠나는 시간은 7시 5분 차를 샀다. 사고난후 아침을 너무 일찍일어나서 못먹고 온것같아서, 역전에서 만두하는 집으로 들어갔다. 만두를 시키리려고 하니 약 20분이 걸린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은 그만두고 탕과 차만시켰다. 탕은 우리가생각하는 탕이아니여서 조금 놀랬다. 그래서 약 42원을 주고 탕 3개와 1주전자의 차를 시켜서 너무 양이 적어서 슬예가 어제사논 빵을 같이 먹었다. 그리고 난후에 우리는 처음으로 망해루교당을 가기로 하였다. 역전에서 택시를 잡을려고 하니 모두가 믿을수가 없었는데, 여자 택시운전사라서 우리는 그차를 타고 가는데, 그는 한국 연속극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자배우와 여자들을 무척이나 많이 알았다. 배용준과 비를 좋아하고 김희선, 이영애, 장동건 등 많은 연속극을 많이 사놓고 본다고 했다. 한국의 한류를 많이 느끼는 듯 했다. 그리고 나보고는 눈도 크고 코도 높아서 무척 예쁘다고 하고, 슬예와 소형이는 눈쌍카풀과 코가 낮다고 그져그렇다고 해서 무척이나 속상해 했다. 무척 웃겼다. 일단 망해루에 우리른 내려놓아 주었다. 무척이나 한국사람들 좋아하고, 열심히 일하는 여성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망해루의 천주교당에 들어갔더니 지금은 수리중이고 내년 7월이나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착한 경비아저씨가 설명해주시고, 아쩌시와 함께 사진도찍었다. 과거 2번이나 여기서 순교가 이루어진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망해루를 가자고 하니 택시운전사가 기독교를 믿냐고 물어서 그렇지 않다고 하니 그도 불교를 믿는 다고 했다. 중국의 종교에 대한 관심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도교와 유교 그리고 불교가 혼합된 상태의 믿음이 가장 많은 듯했다. 망해루를 보고 망해루다리를 걷너서 대각선으로 고문화가가 보였다. 걸어서 다리를 건너서 고문화가 들어가시 전에 옥황문이 있어서 들어갔다. 도교의 스승이 있는 곳으로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절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나서 고문화가에 들어섰다. 여기는 베이진과는 다른 분위기였는데, 아마도 원래 이런 모습이었는데, 리모델링 한 것같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관광구역으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들리는 곳으로 관광지화 한 진역이다. 정말로 재미있는 곳이 많았다. 그런데 베이징에서 유리창 거리를 보아서 그런지 물건등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고문화가를 지나서, 황후궁에 다았다. 황후궁의 건물도 무척이나 적은 듯 했다. 황후궁에 들려서, 옆의 종루를 보고 그리고 돌아서려고 하니 민족박물관이 있어서 우리는 중국의 소수민족인줄 알고 들어갔더니 중국의 민속적인 결혼풍속과 일상생활에 대한 것으로서 15위엔씩 내서 본 것이 야간의 아까웠다. 그렇게 보고 난후에 우리는 이제는 희극박물관을 가기로 하는데 중간에 어떤 청년에게 물어보니 큰 길로 가라고 설명을 해주는데, 완전히 너무 돌아가는 길로 가르켜주어서 가다가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그런데 북마루에서 음식의 밀가루를 물에 넣는 쇼를 하고 있는 아저씨에 빠져서 우리는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우린 매운 산라면을 소형이는 샹차이를 뺀 면을 먹기로하고 시켰다. 우리둘은 작먹었는데, 소형이는 조금 덜 먹었다. 아마도 샹차이를 빼지 않아서 고생한듯했다. 그래서 모두 잘 먹고 난후에 우리는 3위엔씩 9원을 주고 나왔다. 그래서 조금걷다가 경찰아저씨에게 물어보았지만 잘 몰랐다. 그래서 우린 더 이상 찾아헤매기보다는 택시를 타기를 했다. 그래서 우린 또 여자택시운전사를 골라서 탔다. 그래서 지도를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과거지도는 너무 잘 몰라서 찾아주다가 그가 생각하기에 희극박물관이 광동회관이라고 생각하고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렇다고 해서 중간에는진입할 수가 없어서 우릴 그 입구에 내려주었다. 그래서 우린 걸어서입구에 갔더니 너무 재미있게 많은 물건을 내려놓고 그것을 돌려서 걸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0개에 3위엔인데, 12개에 5위엔이라고 해서 우리셋이 5원을 주고 20개를 나루어서 3이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왔다. 우리가 손님들을 몰아주고 우린 다음의 일정으로 갔다. 조금 고루를 넘어가닌 바로 오래된 건물이었었다. 그안에 들어갔더니 학생은 2위엔, 성인을 5위엔이라고한다. 학생증의 위력의 덕울 보았다. 그래서 모두 9원을 주고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닌 청대에 유명한 희극인물이 많은 돈을 투자해서 산 건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가 모아두었던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평소에는 거기에서 경극도 하고 차를 마시면서 보는 장소로 무척이나 화려했다. 사합원을 사서 만든듯했다. 우리는 여기를 구경하고 여기를 고문화상가를 지나가다가 예배교회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보았는데, 여기가 조계지로서 오래된 건물이 그냥 남아있어서 보물을 본듯했다. 아마도 조계지 지역은 최근에 약간의 발전의 조짐이 보이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이라서 많은 상점들이 다 문을 연 것은 아니였다. 재미있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여기를 빠져나왔다.
천탑을 가기위해서 택시운전사에게 아냐고 물어보고 나서 우리 셋이 택시를 탔다. 갈 곳만 알려주고 셋은 졸면서 자면서 드디어 천탑에 도착하였다. 천탑은 정말로 거대하였다. 451미터라고 한다. 거기서 음식을 먹을 경우에는 무척이나 비쌌다. 우리는 50위엔을 주고 거기를 보기로 하였다. 비싼 가격으로 우리는 윗층에 올라서 천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척이나 넓은 시이지만 시가 규모 있게 건물들이 조성되지 않아서 무척이나 정리되어 있지 않은듯했다.
천탑을 둘러보고 아까전에 주었던 물건의 가격을 깍아주는 권을 내었더니 무엇을 뽑으라고 하는데, 모두가 꽝이었다. 그런데 소형이보고는 안이라고 하더니 3등이라고 한다. 그러더니 뭘주는지 알았더니 3등에 해당하는 것을 살 수 있는 권한을 준다고 한다. 참으로 장사속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냥 나와서 거기에 전시되어 있는 각양 각색의 거울을 보고 우리는 한참을 재미있게 놀았다. 그리고 나와서 일단 천진역으로 가기로 하였다. 천진역에 5시 30분정도에 도착해서 우리는 만두를 드디어 시켜서 먹고 각각의 면을 시켜먹었다. 소고기 스프가있는듯한 면을 시켰더니 먹을만하였다. 여기에 매운 고추를 넣어서 먹었더니 감기가 떨어지는듯했다. 저녁을 먹고나서 차를 타러갔고, 가서 자리에 셋이 안고 난후에 눈을 감고 뜨고 나니 벌써 베이징역이었다. 참으로 빨리 온것같다. 그래서 내려서 택시를 잡으러 택시타는 곳으로 갔는데, 여기도 질서란 없었다. 줄을 섰지만 미리들어와서 택시잡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아서 여러대를 보내고 난후에 택시를 탈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약 30분걸려서 우리 대학으로 왔다. 50위엔이 나왔다. 오자마자 씯고 그냥잤다. 너무나 긴 하루였다. 그렇지만 정말로 가고 싶었던 천진을 다녀와서 뜻깊은 하루였다. 너무나 귀여운 두명의 학생과 함께해서 또한 의미도 있는 하루였다.
추위와 웃음과 졸음이 함께한 비몽사몽간에 하루만의 천진의 답사였다. 여하튼 천진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의미를 둘 수 있다.
13. 2007년 12월 31일(星期一)
아마도 베이징에 온후로 가장 좋은 하늘을 보는 것같다. 어제 천진을 다녀오고 나서 오랜 시간을 잠을 잤더니 피곤이 풀렸다. 오늘 조금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며칠 남지않아서 옷을 챙겨입고 혼자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옹화궁에 내렸다. 입구를 물어서 온후에 25위엔을 내고 옹화궁에 들어섰다. 옹황궁은 원래는 궁으로 만들었지만 장족의 전통적인 불교사원으로 만든곳이다. 궁이라기보다사원인곳이다. 달라이라마가 있고, 대불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라마교의 사원이다. 사찰내을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다음의 일정으로 발을 돌렸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2호선으로 부성문에서 내렸다. 그런데 시간이 점심시간이라서 가는 도중에 음식점에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나도 그 음식점에 들어가서 전병종류를 시켜서 먹고 백탑사로 갔다. 백탑사는 원래는 묘향사가 사찰이름이지만 백탑이 유명해서 백탑사라고 불려지지만 묘향사백탑이라고 말한다. 그래서백탑사라고 하면 한번 생각한 후에 가르켜 준다. 백탑이라고 생각하고 답을 해주었다. 여기는 산문, 천왕문, 대각전, 그리고 백탑으로 구성된 사찰이다. 양쪽에는 고루와 종루의 누각이 있는 곳이다. 조그마한 사찰이지만 구성면에서 잘 형성된 사찰이다. 여기는 20위엔을 지불하고 들어갔다. 그래서 들어갈때는 사진을 나올때는 동영상을 찍고 내려왔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오늘은 혼자 조용히 일년을 정리하기로 하고 발길을 숙소로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상점에 들려서 40위엔을 주고 잠옷한벌을 사서 집으로 왔다. 이제는 편안하게 나의 숙소를 찾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일 갈 향산의 위치를 확인하고 타는 곳과 장소를 알고 돌아왔다. 오늘 일년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내는가보다.
14. 2008년 1월 1일(星期二)
2008년이 드디어 밝아왔다. 어김없이 나이도 한살 더 먹었다. 온갖세상에서 송구영신하는 축제로 바쁘다. 시간이 정해지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1월 1일이기에 너무 일찍 움직이기도 해서 조금 늦추어서 아침을 밑의 일식집에서 19원에 먹고 지나가다 커피집에서 20원에 모카커피를 시켜먹고 버스 331번 향산가는 것을 탔다. 이전에 확인 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타고 갔다. 1.5마오이다. 멀기 때문에 5마오를 더받는 것 같다. 식물원다음에 내려서 문표 5위엔을 내고 들어갔다. 들어가서 약 1.3km 정도이어서 평면상에 있어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전부를 돌고 와불에 대한 조사된 것을 구경하였다. 내가 본 것은 병령사 와불과 돈황막고굴의 와불 그리고 중경의 와불 3개를 보고 오늘 본 것이 중국에서 3번째이다. 법원사 것도 와불이라고 하니 내일 것이 맞는 지 모르겠다. 어째든 오늘 와불사에 온 것은 나름대로 성공한 경험이라고 생각이 든다. 다시 문으로 나와서 북경어언대학교로 버스를 타고 슈퍼마켓에 들려서 술 2병과 약간의 차를 사고 돌아왔다. 그런데 오후에 학생들에게 저녁을 사준다고 했는데, 카드가 안된다고 하면 정말 난꾸어다.
제발 카드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오후에 궁금해서 서용원과장에게 전화를 해두었다. 그랬더니 답이 왔다. 그래서 김관장에게 전화를 해서 돈을 좀 빌려달려고 하였더니 없다고 하고, 지순임교수를 가르켜 주었다. 그래서 곧바로 지교수님에게 전화를 드려서 올라갔다. 가서 300위엔을 빌려서 내려왔다. 다행이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가보다. 그래서 시간에 맞추어서 서문 앞으로 나갔다. 양지골로 가서 카드가 되는지 물어보았지만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곱창전골과 해물전골, 파전과 김치전을 시켜서 맛있게 먹었는데, 슬예가 감기가 걸려서 먹지 못했다. 조금 안되었다. 그래서 지예를 포함하여 7명이 모두 맛있게 먹고 내일 가방을 싸고 난후에 남는 것을 준다고 오라고 해서 내일 7시에서 8시 사이에 애들이 온다고 했다. 그래서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너무 잘 먹어서 걱정이 되어 운동장을 5바퀴 돌고 숙소로 들어와서 약간의 빨래를 빨아서 숙소에 널어놓았다. 애들에게 줄려면 깨끗해야하기 때문이다. 가방을 대충 쌓았다. 이제는 집에 가고 싶다. 가족이 보고 싶다.
15. 2008년 1월 2일(星期三)
다행이도 어제 지교수님이 돈을 빌려주어서 학생들의 저녁을 사주고 약간의 돈이 남아서 오늘 답사를 갈 용기가 생겼다. 78위엔이 남았다.
오늘 중국에 있는 마지막 날이다. 오늘 계획은 백운관, 우가청진사, 법원사, 천주교교당 4가지이다. 머릿속에서 하루의 과정을 계획했다. 우선 13호선 시즈문에서 그리고 복흥문에서 갈아타고 1호선 무시디에서 내렸다. 백운로를 찾아서 줄곧내려갔다. 사람들에게 백운관을 물어보니 쉽게 가르켜주었다. 특징은 도교사원인 이곳에서 부근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다 빨리 향을 사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우선 모르는척하고 티켓 10위엔을 주고 들어갔다. 도교사원이 불교사원과 다른 것은 안치되어 있는 인물들이 달랐고, 그 외는 불교사원과 사원의 배치 등에는 크게 다르질 않았다. 도교사원이라서 그런지 도교대학도 여기서 운영되고 있는 모양이다. 일단은 중국의 도교의 중심지를 본 것 같아 좋았다. 일단 사진을 찍고 나왔다.
나온 후에 다시 지하철역으로 가서 1호선 그리고 2호선으로 갈아타고, 장춘로에서 내려서 조금 먼 것 같아서 버스가 있는지 가서 보았다. 버스로 3정류장앞이 우가예배사였다. 그래서 1위엔을 주고 우가다음의 우가예배사에서 내렸다. 모슬림사원 앞에 도착했더니 조그만 아이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함께 왔다. 모르는 척했다. 돈을 달라고 내밀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안내소에 가서 표를 끊고 들어갔다. 보더니 일본사람이라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10위엔을 주고 들어갔다. 모슬림은 남녀 예배장소가 달랐다. 거의 남성중심의 사회라고 볼 수 있고, 일찍부터 동네 어른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1시 30분에 하루 5번 예배하는 하나가 시작된다고 기다라고 있었다. 난 우선 사진을 찍고 쭉 돌아서 여성 예배소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다시 동영상으로 돌아오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예배시작시간이었다. 한사람이 이러한 것을 관여를 했고, 한사람이 목청을 울려서 아마도 무슬림의 향한 예배의 시작을 알렸다. 예배시간동안 거기에 있는 사람과 또한 한족과 함께 약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즈음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는 것을 그렇게 관여 안한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의 어른은 아직도 반대하고 있고, 요즈음 청년들은 일하러 다른 지역으로 가기 때문에 예배의 참여를 많이 못한다고 한다.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것 같다. 이들도 중국안의 한 민족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예배소의 분리와 그리고 이 지역에 약 1만 8천여 명이 이 부근에서 살고 있고, 무슬림사원은 중국에도 여러 군데 있다고 한다. 이 부근에 초등, 유치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중국의 무슬림들이 사는 지역이라고 한다.
약간의 이야기를 나눈 뒤에 법원사를 가기위해서 나왔다. 경찰아저씩에게 물었더니 왼쪽으로 돌아가서 줄곧 가면된다고 한다. 그래서 왼쪽으로 돌아서 약 300미터 뒤에 법원사가 나왔다. 많은 동네 사람들이 따듯한 날씨에 온갖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파고다공원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법원사는 옹화궁이라든가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너무나 조용한 분위기였다. 2001년에 문물국에서 지정한 관광구역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지역인가보다, 그래서 안의 불상들의 조성등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어제 와불사에서 이곳에도 와불이 있다고 하더니 가장 끝의 법당에 와불이 조성되어 있다. 법당이라고 하는 것과 와불이라는 것이 조금 맞지 않은 듯했다. 이곳도 산문에서 사천왕상 그리고 줄곧 일직선상에 중요한 불들이 전각이 들어서 있고, 외양에 행랑처럼 전각과 건물들이 조성되어있다. 마지막의 와불을 보러온것같다. 그렇게 해서 난 병령사, 돈황 막고굴, 중경보정산 족각, 향산 와불사, 북경법원사 와불 총 중국에 유명한 것중에 5번에 해당하는 와불을 본셈이다. 앞으로 대동운강석굴에 있는 것을 보면 유명한 것은 다보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서 선무문에 내려서 기독교 천주교교당을 갔다. 중국도 교회에서 결혼을 하는가보다 식당에서 결혼을 한다고 써놓은 것을 보니, 천주교교당은 아직 중국의 상징이 아니여서 그런지 입구에서 돈을 받지않았다. 아직 기독교인의 크기를 느낄수 있었다. 먼저번에 선생님이 이야기 한 듯 조금은 믿도 있지만 많지는 않은듯했다. 모두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들어왔다. 하루가 정말로 내 자신에게도 훌륭한 하루였다. 조금은 피곤하다. 많은 걸음을 걸어서... 좀더 자세한 연구가 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냥 스케치정도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은 정말로 큰 국가이다. 이 나라의 잠재력에 대해서 다시 한번 놀라울 뿐이다. 계속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중국, 아직도 잠자고 있지만 지금한곳에서는 무서운 계획으로 질주하고 있음을 볼 수 있어서 한나라 안에서도 각양각색으로 그 차이는 지대하게 크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로 하루에도 시시각각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보기에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 못지않은 생활을 하고 있고 뒷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한참이나 먼 제3세계국가사람들처럼 살고 있다. 아마도 조금씩 그들의 복지생활들이 많이 나아지리라 아마도 시간이 해결해 줄 것 같다.
수업이 종료된 후의 4일 동안은 수업 있는 날과는 다른 정말 꿈과 같은 맑은 날씨였다. 우리보고 북경답사를 열심히 하라는 뜻 같다. 정말 좋은 날씨에 감사한다. 수업 받을 때에는 북경을 다시오고 싶지 않는 도시였는데, 4일을 보내면서 다시오고 싶게 만들어서 아마도 북경이 나를 받아들이는 가보다. 그 누구의 뜻에 따라서 다시 중국어를 하고 싶은 마음을 내었다. 송년의 밤을 보내면서 ‘박노해의 다시’라는 시의 제목을 보고 향후에도 마음을 내어서 잘 살아보려고 한다. 내가 문제라면 내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한국에 가고 싶다. 내일이면 집에 가는데... 난 그냥 하늘아래 떨어져 있는 한점의 돌처럼 느껴진다. 사는 동안 뭔가를 열심히 해보자. 그럼 북경에서의 시간에 감사하면서 다음에 좋은 일로 다시 올기회를 만들어야 겠다. 자신감을 얻어서 내생을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하기위한 기초로 삼아야겠다.
16. 2008년 1월 3일(星期四)
이제 중국을 떠나는 날이다. 오후 1시 45분 비행기인데... 아침 10시에 로비에서 모여서 가면 한국에 4시 45분에 도착해서 집에가면 약 6시 30분정도가 될 것같다. 엄마가 좀 좋아졌어야 하는데 걱정이되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