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어릴 적에는 지지리도 못살았던 덕에 철 따라 초근목피라도 할 요량으로 하루해가 다 가도록 지치는 줄도 모르고 들로 산으로 싸돌아다니기 일쑤였고, 서울 와서는 차마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싶어 독한 마음으로 이빨을 앙당 물고 안 해 본 일없이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다 보니 남들보다도 몇 배나 더 큰 알통이 어깨고 다리고 할 것 없이 옹골지게 붙어 요즈음도 주말이면 암벽등반 동호회에 나가 북한산이든 설악산이든, 산이란 산은 죄다 훑고 다닐 정도로 건강 하나는 자신 있던 터였는데, 이삿짐이라 해보아야 옷가지 등속 외에는 들어있는 것이 별반 없는 허드레 가방 하나 하고 14 인치 짜리 구형 테레비 한 대 달랑 들고 주인 집 이 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몇 개 오르다가 또 다시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차면서 현기증까지 엄습한 까닭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장마 뒤끝이라 날씨는 머리가 벗겨질 정도로 뜨거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후줄근해지는 날이 열흘 가까이 계속되고 있었다. 예전 고향 마을 같으면 한 낮에도 이따금 소나기가 몰려와 뜨거운 대지를 식혀주고, 늙은 팽나무 밑으로 얼른 달려가 몸을 피할라치면, 후두둑 소나기 듣는 소리가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는데, 요즈음 도심에서는 소나기를 만난 적이 언제였던가 싶었다. 오늘따라 회사 일로 골치가 아프고 몸도 몹시 피곤했지만, 집을 보러 간 지 일 주일 만에 이사를 하겠노라고 덥석 계약을 해버린 터라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兪炳準)는 이층 집 단 칸 셋방에 가방 나부랭이를 되는 대로 윗목에 던져놓고는 몸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드러눕고 말았다. 나는 양복 윗도리만 대충 벗어놓고 팔베개를 하고 반드시 드러누웠다. 몸은 노곤하기 짝이 없어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법한데 도무지 잠이 들 것 같지 않았다. 몸이 자꾸 자지러질수록 정신은 더욱 또렷해져 잠의 내습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었다. 이사온 집은 이층 양옥집으로 서울 한 복판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인데다 지대도 제법 높고, 이른 저녁이라서 그런지 도심의 갖가지 불빛들이 역광이 되어 이 층 방 유리창에 실루엣으로 명멸하면서 제법 쏠쏠한 낭만을 던져주기도 하고, 빠끔히 열린 창문 사이로 초저녁달이 돋아오는 모습은 한 편으로 무척 평화스럽게 보이기도 했지만, 도무지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얼마짜리 방을 원하는감?" 복덕방 중늙은이가 기계적으로 물었다. "예? 아 예에, 그저 잠만 잘 방이면 됩니다." 나는 아무 방이면 된다는 생각이었으므로 그렇게 간단히 대꾸했다. "글세, 얼마짜리나 원하냐니께!" "………." "에 또, 산 124번지 양옥집 이 층 방이 난 게 하나 있긴 한데…." 복덕방 영감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대뜸 나를 앞세우며 문밖으로 손사래를 쳤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집은 오래돼 뵈기는 했어도 그런 대로 짜임새가 있어 보였다. 옥상엔 남자 어른 옷가지들이 빨래 줄에 걸려 있었고, 까맣게 페인트칠이 된 철제 대문 위로 넝쿨장미가 제법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대리석으로 머리를 얹은 대문머리 귀퉁이에는 우유나 요구르트를 담아두는 감청색 주머니가 달려있는 것이 보였다. 미리 약속이 되어 있는 듯 복덕방 영감은 헛기침을 두 어 번하고 나더니 초인종을 몇 번 눌렀다. 철제 대문은 자동으로 되어 있는지 또깍 소리를 내면서 스스로 열렸다. 집안은 나름대로 구도를 갖추느라고 애쓴 구석이 역력한 꽤 큰 정원이 있었는데, 큼지막한 오동나무 서너 그루가 나란히 도열하고 서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오동나무의 널찍한 잎사귀들이 아래층 거실 유리창 위쪽으로 달아 낸 양철로 만든 물받이 통에 닿을 듯이 뻗어있는 걸로 보아 수령이 수 십 년은 넘어 뵈는 나무 같았다.
몸집이 오종종하게 생겨서 몸을 별반 구부리지 않고도 대문을 들어서는 복덕방 영감을 보고는 다 큰 시커먼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할래할래 흔드는 것도 잠시, 몸을 앞으로 꾸부정하게 구부리면서 뒤따라 걸어 들어오는 내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그 시컴둥이 개가 아까 하고는 영 딴판으로 표변하여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울부짖지만 않았어도 그 집의 전체적인 인상은 그런 대로 좋을 뻔했다. 도열하고 서 있는 맨 오른 쪽 오동나무 밑둥에 쇠줄로 개목걸이가 매달려 있었기 망정이지 그 시컴둥이가 짖어대면서 뿜어대는 거품이 내 손에 닿을 것만 같은 섬뜩함이 손목을 스멀스멀 타고 오르는 기분이었다. 대낮인데도 그 놈은 눈에 시퍼런 불을 켜고 금방이라도 내 목 줄기를 물어뜯고 말겠다는 기세로 나대는 서슬이 꼭 오늘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말 것 같은 예감이 엄습해 왔다.
복덕방 영감과 나는, 대문과 마찬가지로 자동으로 열리는 거실 앞 쪽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채 자리를 잡지도 않았는데 창문 밖에서는 그 놈의 개새끼는 몇 번 더 재질이를 하면서 짖어대다가 제풀에 꺾였는지 숨넘어가는 소리가 조금 잦아들긴 했지만 목구멍으로부터는 여전히 그렁그렁한 잔음(殘音)이 계속 뱉어져 유리창 문 틈 사이로 튀기는 것 같았다. 거실 소파에는 주인인 듯한 초로의 남자가 진한 갈색 색안경을 끼고 미동도 않은 채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풍채로 보아 돈께나 흘리고 다닐만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거실 내부는 의외다 싶을 정도로 인테리어는 밋밋하기 짝이 없었다. 사방 벽은 비교적 화사한 벽지로 잘 정돈되어 있었으나 널찍한 거실 맨 바닥에는 소파만 덩그마니 놓여 있을 뿐, 오히려 휑하다 싶을 정도로 그 흔한 양주병 장식장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정원 쪽으로 난 유리문 양옆으로는 복사꽃 무늬가 약간 빛이 바랜 채 듬성듬성 박혀있는 연분홍 빛 커튼이, 가운데가 잘록하게 묶여져 있었고 오른 편 커튼 구석에 나무로 된 받침대 하나가 서 있었다. 그 위에 투박한 나무테두리 액자가 조그맣게 같은 크기로 두 개 놓여 있었는데, 한 액자 속에는 그 주인 남자와 중년의 여자가 정원을 배경으로 나란히 앉아 있고 그 가운데에는 조금 전에 숨넘어가는 소리로 짖어대던 그 시컴둥이 개의 어렸을 적 모습인 듯하게 찍은 천연색 사진이 끼여 있었고, 또 한 액자에는 군대 정복을 입은 사람끼리 무슨 상을 주고받는 빛 바랜 흑백 사진이었다.
"아까 전화루다가 대충 말씀 드렸으니깐두루 이 젊은 양반만 맘에 들면 도장 찍읍시다요." 복덕방 영감은 자리를 잡고 안자마자 일을 재빨리 성사시켜야 되겠다는 조급함을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주인 남자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까닥할 뿐이었다. 바로 그 때 부엌 쪽에서 왠 젊은 아주머니가 물이 묻었는지 치마에 손을 쓱 문지르면서 우리 일행의 거동을 살피다가 대화 중간에 잠시 끊어지는 짬을 재빨리 포착하여 망설였던 말을 꺼냈다. "사장님, 오늘은 우리 애 병원에 좀 데려가야 되걸랑요. 한 시간 만 일찍 가볼게요. 죄송해요."
그러자 그 남자는 조금 전 복덕방 영감한테 했던 똑같은 동작으로 아주머니의 때 이른 귀가를 승인해 주는 것이었다. "에 또, 그러면 방부터 보셔야지." 복덕방이 채근했다.
도열하고 서있는 오동나무 맨 왼쪽 끝으로 하얀 차돌들이 동일한 간격으로, 마치 무슨 큰 짐승의 이빨처럼 박혀 있었고 그 길을 따라 조금 돌아 들어가자 철제 계단이 가파르게 이층 방을 안내하고 있었다. 계단 오른편쪽으로 비스듬한 계단의 각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첨예했지만, 동그란 손잡이 철제 난간이 잘 배열되어 있어 그런 대로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붉으스레한 철분이 군데군데 드러난 걸로 보아 꽤 오래 된 구조물인 것 같았다.
복덕방 영감을 앞세우고 첫 계단을 막 밟으려는 찰나 등뒤로 그 시컴둥이 개의 울부짖음이 엄습해 왔다. 내가 반사적으로 몸을 홱 돌리자 그 놈은 이번에도 눈에 파란 불을 켜고 누런 이빨을 민들레 이파리처럼 갈기갈기 드러낸 채 으르렁거렸다. 그 놈의 잇몸은 숫제 빨간 피라도 뚝뚝 돋을 듯이 충혈 돼 있었다. 내친걸음이라 개의치 않고 두 번 째 계단을 밟으려는 순간 몸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현기증이 관자놀이를 때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자위를 유린하며 목덜미로 퍼져나갔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발 밑으로는 오금이 저리고 발모가지에는 힘이 스멀스멀 빠져나가 철제 난간을 붙잡고 나서야 간신히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 난간은 오뉴월 햇볕을 받아 꽤 뜨거워져 있었다. 금새 이 층 꼭대기에 올라간 복덕방 영감 몸집은, 마치 신작로 끝으로 소실점이 되어 한없이 멀어지는 완행 버스 뒤꽁무니 같은 아득함이 느껴왔다. 위에서 복덩방이 무어라 소릴 지르는 것 같았으나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등뒤에서 사자후 같은 개울음 소리가 고비를 넘는다고 느끼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심호흡으로 몇 번 숨을 고르자 그 때야 간신히 안정이 되면서 다시 계단을 오를 기운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나는 겨우 정신을 다잡으며 구둣발로 부러 철제 계단 바닥을 탁탁 차가며 나머지 계단을 마저 휘적휘적 올라갔다. 이 층 방 문 앞에 다다르자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젊은 양반이 보기보다는 약골이시구먼! 어제 밤에 뭐 한거욧! 허헛." "어젯밤이랴뇨?" 나는 겨우 한 마디 얼토당토않은 대꾸를 해놓고 보니까 나도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었다. "자, 이만하면 혼자 사실만 하제?" "예, 혼자 잘만 합니다." "본시 비어있던 방이라 돈 만 있으면 내일 당장 들어와도 되야." 복덕방 영감 말에 나는 저 사람처럼 세상이 쉬운 일만 있었으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어 다소 신경질적으로 맞받았다. "돈은 있소 만은 내일은 좀 뭐하고. 이 번 주 말 오후쯤으로 하겠습니다." "좋우실대루!"
복덕방 영감의 마지막 대꾸는 굳이 안 해도 될 말이라는 생각이 들자 은근히 짜증이 났다. 색안경을 끼고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서 고개만 까닥거리는 주인 남자의 태도도 조금은 맘에 안 들었으려니와 사납게 짖어대던 시커먼 개도 자꾸 맘에 걸려, 이 층 방에 땀을 쏟으며 막 올라 왔을 적에는 오늘 이 계약 건을 작파해버릴까 생각했었는데, 이외로 이 층 방에 들어서자 밖의 전망이 탁 틔어 서울 도심이 한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혼자 살 방으로는 이 정도면 딱 알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아니라, 몇 번 식사도 못하면서 꼬박꼬박 물어야 하는 하숙비가 아깝기도 해서 아까 먹었던 마음을 다시 돌리기로 했다. 더구나 복덕방 영감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간단히 들려준 주인 남자의 내력을 듣고는 그냥 방 계약을 해버리자고 마음먹었다. 주인 아저씨는 월남전 맹호부대 선임하사로서 그 악명 높은 까두산 요새 함락 작전에서 두 눈을 잃고도 베트콩 요충지를 단 몇 번의 전투로 함락시키는 전과를 올려 큼지막한 무공훈장을 받고, 전역 후에는 월남전 부상자 회원 몇몇이 합자하여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면서 연말이면 장애시설이나 양로원 같은 곳에 위문품을 전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힘도 부치고 재혼한 부인도 세상 떠 외아들 내외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혼자 산다는 것이었다.
토요일 밤은, 창문 사이로 밤바람도 제법 시원스레 들어오고 두 팔을 베고 대자로 누워 있었으므로 혼자만의 절대자유가 느껴질 만도 한데 도무지 마음은 산란하고 안정되질 않았다. 팔목에서는 째깍째깍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무심한 시간만은 변함 없이 잘도 흘러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렇게 던져 놓은 옷 가방 옆에 서울 올라온 지 근 10년 만에 겨우 장만한, 겉이 빨간 포타블 테레비가 심드렁하게 놓여 있었다. 전원을 켜 보자 고두심이라는 여자 탤런트의 큰 머리통이 브라운관을 가득 채운 채 클로즈업 된 장면이 나왔다. 일일 연속극 할 시간인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저 탤런트는 시도 때도 없이 어디나 참 잘도 나온다는 생각에 푸슷 하고 웃음이 나왔다. 가벼워진 마음도 잠시 뿐, 입사 1년 후배로 3년 동안 같은 부서에서만 함께 근무하면서 늘 나에게는 싫은 기색 한 번 없이 귀엽게 대하던 미스 리가 오늘 따라 입이 뽀로통하여 앵도라진 모습으로 내가 농을 건네도 대꾸도 하지 않아 하루 내내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래도 내가 서울 생활, 화류계가 몇 년이라고 그만한 일로 의기소침할 내 아니어서, 오늘 토요일 오후부터 밤늦게 까지 내내 풀릴 기미 없이 밀려오는 알 수 없는 메스꺼움과 피곤의 근원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티비에서는 아홉 시 뉴스도 끝이 나고 스포츠 뉴스 예고 자막이 내 눈자위 위를 어른거리는가 싶을 무렵, 아래 층 정원 쪽에서 내 기억의 저 편을 두드리는 개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병준이 이 새끼야! 느그 집 개새끼는 우리 개한테는 쪽도 못써야! 순 똥개 주제에." "………." 동갑내기 철민(姜哲民)이가 반짝이는 중학교 뱃지를 단 까만 교복을 입고 내 앞에서 우리 개를 숫제 똥개 취급하며 거들먹거렸다. "느그 개새끼는 열 마리 줘도 우리 개하고 안 바꿔야!" 철민이는 내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 것이 외려 이상했는지 또 한 번 오금을 꽝 박는 소리로 내 부아를 건들었다. "…'우리 집에는 한 마리밖에 없는디'……." 나는 속으로 그 말을 되뇌면서 공연히 돌부리만 걷어찼다.
나는 우리 집 개를 똥개 어쩌고 놀리는 놈이 있으면 어떤 놈이든 열 일 제쳐놓고 오기를 부리며 대들곤 했는데, 그 날은 도무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 날은 면소재지 중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전체 학생이래야 몇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성적이 상위권에 속했는데, 집안 형편상 중학에 진학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주 어릴 적에 세상 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았고, 어머니와 함께 남의 집 일로 날 밤을 세워가며 겨우 연명하던 때였으니 일이 그리된 것도 당연하다고 할밖에 별 도리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중학교 입학도 못하고 그저 아침마다 등교하는 동무들의 거동을 언덕 배기에 숨어 훔쳐보면서 부러움과 좌절감을 곱씹었다. 그처럼 어린 가슴에 지울 수 없는 멍울을 남기며 야속한 봄날은 가고 있었다. 아픈 충격의 그늘 속에도 조금씩 보랏빛 난초 꽃이 피었다 지고 능소화가 제법 고운 자태를 드러낼 무렵, 아이들의 여름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버리고 없으면 혼자서 긴 봄날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지난겨울에 혼자 된 고모가 대처로 나가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생겼다며 이사하는데 짐이 된다며 나에게 주고 간 누렁개가 한 마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개는 털이 노리끼끼하여 내가 바로 누렁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벌써 중개가 다 된 탓인지 처음에는 잘 따르려 하지 않던 놈이 며칠이 지나자 발돋움까지 해대며 금새 나를 쫄망쫄망 잘도 따랐다. 우리는 논두렁이고 언덕 배기고 저수지 둑방길 할 것 없이 그리고 뒷골 백로봉 까지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누비고 다녔다. 누렁이와 함께 뛰어다니는 시간만큼은 동무들 학교 가는 일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온 세상이 내 것 같이 마냥 즐거웠다.
여름 방학이 되자 중학교 들어간 동네 녀석들이 한껏 멋을 내며 내 앞에서 거들먹거렸다. 그 중에서도 삼거리 농지개량조합에 다니는 자기 아버지 빽 믿고 그런지는 몰라도 철민이 녀석이 유독 나에게 성가시게 굴었다. 나를 얕잡아 보는 투가 역력했다. 나는 나를 업신여기는 것은 참아도 우리 누렁이를 똥개라고 놀리는 것에는 더는 못 참고 쌍심지를 켜고 달겨들어 누렁이를 놀리는 놈하고 엉겨붙어 대판 싸움질을 하곤 했다. 특히 철민이 녀석은 나랑 동갑이라도 덩치가 내 모가지 하나가 더 클 정도로 만만치 않아 그 놈에게 얻어터지기 일쑤였지만 우리 누렁이만은 지켜주고 싶었다. 철민이네 개는 몸이 온통 숯검뎅이처럼 새까만 것이, 눈빛은 꼭 삵쾡이처럼 표독스러워 우연히 맞닥뜨리는 날이면 섬뜩할 정도로 겁이 날 지경이었다. 누렁이는 그 놈만 보면 먼발치서부터 꼬리를 바싹 내리고 오금을 펴지 못하고 죽은 시늉을 할 정도였으니. 나는 그런 누렁이의 비굴한 모습을 볼 때면 화가 치밀어 누렁이를 냅다 걷어 차버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칠월 칠석이 지날 무렵 논일을 하다가 독사한테 다리를 물려 일을 거의 못하게 생긴 이웃 집 혹쟁이 아저씨는 자기네 새끼 밴 암소가 탈탈 굶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가 나에게 귀에 솔깃한 제안을 하나 해 왔다. 여름 한 철 매일 풀 한 망태기씩 베어서 혹쟁이네 집으로 갖다주고, 가을 추수 때 쌀 다섯 됫박 받기로 하고 나는 매일 풀베기로 한 나절을 보내곤 하던 무렵이었다. 그 날도 소나기가 한 바탕 지나가긴 했어도 여름 해는 여전히 작열하는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나는 누렁이를 데리고 꼴 망태기를 메고 논둑으로 나갔다. 누렁이는 내 그림자를 밟아가며 뒤를 따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에 합일의 정을 만끽하며 얼마를 걸었을까, 우리 발자국 소리에 풀무치 몇 마리가 노란 속살을 부챗살처럼 펴들고 날아올랐다. 바로 그 때 논둑 길 반대편에서 철민이네 시컴둥이 개가 이웃 마을에서 암캐질을 하고 오는지 씩씩거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언 듯 보기에는 우리와 그 놈 사이가 꽤 떨어진 듯 보였으나 어느 틈엔 가 그 놈은 우리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길은 외길이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조우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두 마리 개는 얼마간 서로 상대방의 눈초리로 기세 싸움을 하는가 싶더니 대번에 싸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도 급작스러운 일이라서 처음에는 그 개싸움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나도 모르게 동물적인 감각으로 정신을 다잡으며 개싸움의 추이를 예리하고 쫓고 있었다. 내 눈앞에서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평소에는 기도 못 펴던 우리 누렁이가 시컴둥이와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누렁이에게 저런 기세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주먹을 바투 쥐고 발을 구르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시컴둥이도 만만치 않았다. 서로 뒤엉켜 논바닥을 구르면서 역전의 순간들이 몇 고비를 넘고 있었다. 고대 희랍시대 검투사들의 싸움처럼 치열한 개싸움의 향방은, 내가 질러대는 악쓰는 소리와 뒤섞여 서로 엇갈리며 춤을 추었다. 드디어 누렁이가 시컴둥이 목덜미를 단단히 물고 늘어졌다. 이내 시컴둥이는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두 짐승의 승부는 서서히 종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집요한 여름 해가 뒷골 백로봉을 막 넘으려는 찰나 결국 시컴둥이는 몸을 무너뜨리며 바르르 떨다가 이내 축 늘어지고 말았다. 그제야 누렁이는 물었던 입을 풀고 꼬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환희의 개선장군처럼 내 품으로 달겨들었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싸움의 결말을 슬기롭게 수습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 놈의 개를 어찌할 것인가?'
조금 전까지의 흥분은 금방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개의 주검을 수습하여 망태기에 담아 잽싸게 현장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망태기에 담긴 그놈의 시신은 내 어깨죽지를 무겁게 짓눌렀다. 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을 모색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두리번거리며 굴참나무 몇 그루가 냇가 쪽으로 뻗어 있는 조그마한 산등성이 밑으로 가서 몸을 숨겼다. 나는 곁에 서있는 중키 정도의 소나무를 골라 제법 큰 가지를 꺾었다. 손에 쥔 소나무 가지가 내 손안에서 바르르 떨렸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보기보다는 땅이 단단하여 좀처럼 그 놈의 시신을 묻을만한 깊이로 파이질 않았다. 마침내 흙을 덮으면 간신히 시신이 보이지 않을 만큼 파였다 싶었을 때, 구덩이에 되는 대로 그 놈을 밀어 넣고 흙을 대충 덮고는 그 위로 잔솔 가지 이파리를 듬성듬성 뿌렸다. 누렁이는 허둥대는 내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혀를 늘어뜨리고 침을 흥건히 흘리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내가 잘 가던 밤나무골이 있는 논둑 쪽으로 한 달음에 달려갔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투로 일부러 별나게도 큰 소리로 휘파람을 불면서 풀을 베기 시작했다. 안 동네 상 일꾼 하나가 지게를 지고 논일 나왔다가, 학교도 못 다니면서도 내가 집안 일도 잘 거둔다고 칭찬까지 해 주었다. 아직도 가슴이 진정이 안되어서 도저히 풀 망태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그저 풀을 대충 부풀려 담아서 귀가를 서둘렀다. 누렁이는, 시컴둥이를 물어 죽일 때의 살기(殺氣)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누그러져 있었으나, 마침 땅거미가 지고 있어서인지 그 녀석 표정에 어둡고 씁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동네 가까이 다가오자 아까 불안하던 마음은 많이 진정이 되어 가는 듯 했다. 대나무 밭을 끼고 돌아가는 돌담장 고샅길에 아직 집을 찾아들지 못한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어스름 저녁기운 속에서 맴을 돌고 있었다. 그런데, 늘 그 시간이면 조용하던 마을 회관 앞이 왁자하니 시끌벅적한 소리가 무슨 환청처럼 들려왔다. 조금 편안해지려던 마음이 다시 한 번 불안의 갈기를 타고 출렁거렸다. 나는 그 소리의 근원을 내밀하게 살폈다. 기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아 결국 오늘 일이 탄로나고야 말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해왔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등으로는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숨이 막힐 지경이어서 몇 번이나 마른침을 삼키고서야 겨우 숨을 추스렸다. 웅성거린 소리와 왁자한 소리가 더욱 가까이 뒤범벅이 되어 귓속에서 재질이를 쳤다. 그런데 그 와중에 유독 큰 소리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부짖음은 바로 철민이 어머니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나는 기여 턱심을 놓고 말았다. 드디어 나는 만천하에 철민이네 개를 죽인 놈으로 탄로가 나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약간은 의아한 구석이 있었다. 개 한 마리 죽었다고 땅바닥에 드러누워 소리소리 질러가며 저토록 슬피 울 수 있을까. 더구나 철민이 어머니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미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터라 그 여자의 거동은 수상쩍은 데가 분명 있어 보였다. 나는 동네 한 복판 가까이 다 이르러서야 울음소리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철민이가 저수지에서 멱을 감다가 빠져 죽었다는 것이었다. 이미 마을 이장이 삼거리 지서에 익사신고를 해놓았다고 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잠수부를 동원하여 시신을 건져 올리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부들부들 떨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하늘을 망연히 쳐다볼 뿐이었다. 초저녁 어스름을 뚫고 초승달이 막 돋아오고 있었다. 그 날, 악몽 같던 그 날 이후, 나는 자꾸 맥아리가 없고 들판을 달려도 백로봉을 올라도 예전 같은 기분은 도무지 나질 않았다. 누렁이도 마지못해 나를 따라나서기는 해도 힘이 없어 보이기는 매 한 가지인 것 같았다. 그렇게 여름은 가고 소슬바람이 들판을 휘감고 돌아가는 늦가을이 되자, 누렁이는 며칠을 밥도 잘 먹지 않고 시름시름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어머니한테는 묻어주자고 몇 번 우겨도 보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시장 터 개장사가 짐바리 자전거에 철망을 싣고 와서는 누렁이 주검을 헐값에 사 가지고 오던 길을 되짚어 휑하니 골목길을 돌아나가는 모습을 나는 그저 감나무 등줄기를 붙잡고 물끄러미 바라볼 뿐 말리지 못했다.
일요일이 되었어도 나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여느 때 같으면 새벽같이 일어나 조금이라도 늦게 나오는 회원들마다 붙들고 핀잔을 놓으면서 조기축구회를 주름잡고 다닐 시간이었건만, 이 날은 그렇질 못했다. 물론 어젯밤 거의 눈을 붙이지 못한 탓도 있었으나, 회사 야유회 때면 화투 놀이로 꼬박 날을 새도 끄덕도 없이 그 날 일정을 너끈히 소화해내던 걸 생각하면 잠 못 잔 탓만도 아닌 성싶었다. 공연히 이사를 와서 부러 고생을 자초하는 가 싶어서 하루도 채 못되어 이사한 것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날마다 저 놈의 개새끼하고 씨름을 할 것을 생각하니 또 한 번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아래층 내실과 정원은 일요일 아침답게 조용했다. 시컴둥이 개도 나를 잊어버렸는지 아무 소리가 없었다.
그 날 그렇게 누렁이 주검이 개장사한테 팔려 가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고향 마을에 눌러 있기가 싫어졌다. 그 날로 나는 무작정 서울행을 감행했다. 돈 한 푼 없었던 나는 기차 차장에게 무임 승차로 걸려 서울역 근처 파출소로 넘겨졌다. 하루 밤을 유치장 신세를 진 뒤에 다행히 마음씨 좋은 파출소장의 배려로 그 곳 파출소 사환이 되었다. 고단한 파출소 사환노릇을 하면서 그럭저럭 끔찍했던 그 날의 사건은 전설처럼 아득하게 잊혀지기 시작했다. 몸은 커져 갔지만 마음은 궁핍하기 짝이 없던 시절, 서울 생활은 늘 마음씨 좋은 파출소장 덕분으로 견딜만했다. 소장의 배려로 자투리 시간을 내어 중 고등학교 검정고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그 동안 푼푼이 모아둔 코 묻은 돈으로 비록 삼류대학이나마 대학까지 졸업하여 조그만 섬유 수출업체에 취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한 격변의 시절, 사실 한 시도 고향을 잊어 본 적이 없었으나 단 한 번도 귀향하지 못했다. 기실은 고향에 내려갈 용기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늙은 어머니한테는 어쩌다 한 번 부모님 전상서 어쩌고 하는 편지가 고작이었다. 글씨도 모르는 어머니가 그 편지를 읽었을까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고향 소식을 알고 싶은 대목도 딱히 없었다. 철민이 아버지는 정년 퇴직을 일 년인가 앞 둔 해에 중풍으로 쓰러져 여려 해 고생하다가 재작년에 세상 떴다는 소식과 함께 남모르게 독거(獨居) 노인들에게 사재를 털어 매년 음력 설날이면 쌀 한 포대씩 나누어주었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은 게 고향 소식의 전부였다. 이사 온 지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주인집 개는 아침저녁으로 나만 보면 거품을 입에 물고 자지러지듯 짖어대는 것은 여전했다. 그 짧은 시간이나마 철문을 여닫을 때마다 시컴둥이 개한테 당하는 모욕은, 요즘 들어서 부쩍 잦아진 두통을 더욱 부추겼다. 어느 날은 하도 두통이 심해 타이레놀을 한꺼번에 다섯 알씩이나 먹어도 심한 두통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메스꺼움을 더 심하게 하는데 일조할 뿐이었다. 병원 의사 이야기로는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두통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최근에 신상에 무슨 급작스러운 변화가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그저 회사 일로 조금 신경 쓴 일이 있었다고 말하고 말았다.
이사 온 지 한 열흘 가까이 되던 날, 회사 동료들과 월례 회식을 마치고 조금 늦게 귀가하던 참이었다. 술을 꽤 많이 마신 탓도 있었지만 며칠 째 계속되던 두통은 그 날도 별반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주인 집 근처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을 훨씬 넘겨 거의 두 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사방은 어둠에 묻혀 쥐죽은듯 조용했다. 미리 알아두었던 주인 집 대문 자동문 번호는 취기 속에서도 별 거리낌없이 나를 받아들였다. 나는 나만의 자유를 영접하고픈 욕망을 한아름 안고 자동문 패스워드를 정확히 누르자 문은 또깍 하고 열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여전히 날카로워 단 번에 주인 집 개를 깨워 놓고 말았다. 어두움 속에서 시컴둥이 개는 눈에 예의 그 파란 불을 켜고 쇠줄에 걸린 자기 몸을 45도 각도로 곧추 세우며 금방 나에게 달겨들 자세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는 그 놈을 무의식적으로 방어하느라 뒷걸음질을 치다가 잔디밭 시멘트 경계석을 헛디뎌 몸이 금방 꼬꾸라질 뻔하였다. 간신히 몸을 바로 세우고는 되려 과감히 그 놈 앞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그 시각에 이따금씩 지나가는 늦은 귀가 길 자가용 불빛이 대문 틈 사이로 흘러 들어와 극히 짧은 순간이나마 정원 전체에 빛을 드리워도 어둠에 묻힌 그 놈의 자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그 놈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광도(光度)로 보아 이제는 나와 그 놈과의 거리는 일 미터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그 놈의 울부짖는 울음, 거리가 가까운 만큼 가슴팍까지 팍팍 울려오는 공명음은 기실 저승사자의 음산한 목소리 울림 그대로였다. 목 울대를 최고조로 치켜세워 짖다가도 잠시 숨을 고르는 크렁크렁한 저음 속에는 피울음이라도 섞여 있는 듯 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설쳐대는 그 놈의 공격성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려 볼 속셈으로 가지런한 자세로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한 쪽 손을 되도록 낮추어 뻗으면서 그 놈 입 주위 가까이 가져가면서 위 아래로 살살 흔들었다. 금방이라도 내 손가락을 덥석 물고는 놓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턱 밑까지 타고 올라왔다. 본시 그 놈의 저항은 거의 생득적인 것 같았다. 자기를 결단코 방기하지 않으려는 단호함이 그 놈의 씩씩대는 콧김으로 충분히 느껴졌다. 그래도 끝까지 인내하며 계속 뻗대고 있는 내 손끝으로 결국 그놈의 게거품이 한 꺼풀 휘날려 왔다. 그 순간, 나는 지주 목으로 삼았던 오른쪽 발을 곧추 세우며 벌떡 일어섰다. 반사적으로 팽팽해진 전의(戰意)를 다지며 그 놈과 맞섰다.
'네 놈을 내 죽이리라.'
검은 구둣발로 검은 어둠을 가르고 그 시컴둥이 개를 걷어찼다. 헛발이 되었는지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며 한 줄기 식은땀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 놈의 눈빛은 숫제 도깨비불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나를 노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사 온 날부터 보아 두었던 오동나무 지주목 막대기를 어두움 속에서도 용케 빼어 들고 그 놈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막대기는 휙휙 소리를 내며 힘의 구심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힘의 물리력이 마지막으로 한 군데로 모아진다 싶은 찰나 내 손에 들린 막대기가 그 놈의 두개골을 정통으로 과격하고 말았다. 둔탁한 파괴 음이 오리나무 이파리를 타고 하늘로 퍼져 올랐다.
그 놈과의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남은 건 적막감과 허탈감뿐이었다. 한 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심코 쳐다 본 하늘은, 도심 불빛이 많이 잦아든 시각이라서 그런지 또렷한 별빛이 몇 개 가물거렸다. 그 때 기통 수가 꽤 나갈 듯한 자동차 한 대가 둔중한 바퀴 음을 내면서 철문에 강렬한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지나갔다. 순간 주인집 거실 유리창 문에 반딧불이 촉광만큼의 빛이 마지막 잔상으로 스쳤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유리창에 실루엣이 되어 정원 쪽을 노려보는 까만 물체 하나를 똑똑히 보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철제문을 박차고 밖으로 내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순간 순간에도 도망자의 양복 왼쪽 주머니에선 무언가 계속 걸리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에 잠깐 신경을 쓰다가 별로 높지 않은 둔덕에 그만 구둣발이 걸려 내 몸뚱아리는 맥없이 나동그라졌다. 별로 심한 부상은 아닌 것 같았으나 유독 왼쪽 옆구리 쪽이 심하게 결렸다. 넘어지는 충격으로 뜯어진 왼쪽 양복 주머니에서 하얀 뼈다귀가 쏟아져 나왔다. '아, 이런. 고걸 깜빡하다니. 시컴둥이 주려고 돼지 족발 집에서 가져온 뼈다귀를 생각 못했네!' 나는 어두움 속에서 어이없게도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고 말았다.
도심 외곽, 높은 지대 언덕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심야 풍경은 아름다웠다. 반도의 한 복판, 여태 잠들지 못한 영혼들의 밤을 살아가는 영욕의 빛깔들이 내 동공을 고즈넉이 파고들었다.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혀끝에 쓰디쓴 담배 맛이 알싸하게 느껴졌다. 푸르스름한 담배 연기는 화장터의 연기처럼 밤하늘로 흩어졌다. 하늘은 벌써 저 멀리서 동이 터 오는 기색이 역력했다. 속은 쓰렸지만 두통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강남 고속 터미널에서 고향 가는 첫 차에 몸을 실었다. 자리를 잡고 안자마자 죽음과 같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중간 휴게소에서도 깨어나지 못했다. 종점인 광역시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열 시쯤이었다. 나는 곧 바로 고향 가는 시외 버스를 타지 않고 터미널 앞 기사식당에서 습관적으로 해장국 한 그릇을 시켰다. 반도 먹지 못하고 상을 물리자 금새 또 다시 졸음이 스멀스멀 밀려 왔다.
"방 하나 주쇼." "침대방으로 주까요. 온돌로 주까요." 여관 여주인은 나를 긴 밤 잘 손님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으로 방 구조 선택을 은근히 부추겼다. "아무거나요."
해장국 집을 막 나서서 되는 대로 여관을 하나 잡아 얼마를 쓰러져 잤을까 문득 깨어보니 저녁 일곱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나는 서둘러 시외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 고향 가는 막차에 몸을 실었다. 붉은 띠를 두른 시외버스는 근 한 시간 가량을 달리자 눈에 익은 이정표들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삼거리 다방 간판은 페인트가 많이 바랬을 뿐 거의 그대로였다. 지방도로로부터 고향 마을로 꺾어 들기 전에 담배 가게를 겸하고 있는 전파사에 들렀다. 후라쉬를 하나 사기 위해서였다. 가게 주인은 숫제 말이라곤 없었다. 내가 직접 진열장 맨 위쪽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후라쉬 하나를 되는대로 집어들고 얼마냐고 물어도 고작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고는 보고 있던 텔레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후라쉬를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만 원 짜리 지폐 한 장을 구닥다리 라디오 위에 올려놓고 가게를 나왔다.
고향 동네 입구는 예전의 새마을 운동 깃발 대신에 지자체(地自體)에서 거행하는 지역 축제 현수막이 미루나무에 걸려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반 달라진 것은 없었다. 70년 대 빈발하던 서남해안 간첩 침투로를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멘트 블록 초소도 쑥부쟁이 같은 잡풀들을 한껏 뒤집어 쓴 채 그대로였다. 고향 동네는 그 사이 전기가 들어와 군데군데 나트륨 가로등이 켜 있었지만 서울의 가로등 명도에는 비길 바가 못되어서 그런지 외려 예전 보다 어두워 보였고, 가끔씩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 집에선가 테레비에서 연속극 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올 뿐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무척 낯설어 보였다. 호주머니에서 후라쉬를 꺼내 비추자 그 때야 비로소 개장사가 우리 누렁이를 철망에 싣고 나갔던 오토바이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우리 집은 지붕만 초짚을 걷어내고 스레트로 얹었을 뿐 거의 그대로였다. 오래 전에 쓰고 그냥 버려 둔 듯한 호미 하나가 사립문 옆에 녹슬어 있었다. 어머니는 골방에 누워 잠에 빠져 있었는지 내가 후라쉬를 비추며 토방으로 올라서자 내 인기척에 몸을 반쯤 부스스 일으키며 문을 열었다. 어둠 속이었지만 한 눈에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푸석푸석 일어나고 있었다. 툇마루 한켠에는 면사무소에서 나누어준 듯 독거 노인용 쌀포대가 반쯤 허물어져 누워 있었고, 그 옆으로는 오줌이 반쯤 찬 요강단지가 뚜껑도 덮이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거의 정신을 놓아버린 듯 별로 놀라는 기색도 반가운 기색도 없었고, 얼굴도 그다지 슬퍼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마치 예전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주섬주섬 밥상을 차렸다. 이른 점심을 먹어 시장기가 들만도 했지만, 꼭 찬이 없어서가 아니라 도대체 어머니가 차려온 밥을 한 술도 뜰 수 없었다. 그냥 숟갈을 몇 번 드는 시늉만 하고 말았는데, 어머니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 말만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마저 자던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잠들지 못했다. 마당으로 다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고향 마을 하늘은 예전과 다름없이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질 듯 영롱했다. 아까 까지 퍽 낯설게 느껴지던 집 앞 고샅길도 별빛 속에서 점자(點字)처럼 또렷이 돋아났다. 발끝으로 느껴오는 길바닥의 높낮이도 금새 다시 익숙해져 있었다. 여기 저기 정지되어버린 내 열 네 살 어린 영혼의 발자국 소리들이 이제는 흘러 가버린 세월만큼 두꺼워진 가죽구두 밑창을 뚫고 올라와 내 심장을 울렸다. 금방 까지도 차분히 가라앉았던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시냇물이 흐르는 곁으로 전에는 없었던, 꽤 널찍한 농로길이 새로 놓여 있었지만, 초저녁 어스름 속에 논둑 길들이 옛날 그대로 몸을 보채듯 꿈틀대고 있었다. 누렁이와 함께 누볐던 언덕배기와 논두렁과 저수지 둑과 백로봉, 여우목 할 것 없이 한 달음에 내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별빛 아래서 눈에 익은 길들을 따라 되는 대로 느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보기도 하고 달려 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이삿날 계단에서 느꼈던 현기증이 또 한 번 내습했다. 나는 그만 숨이 차서 그 자리에 멈추어 서고 말았다. 발 밑으로 왠지 음산한 땅기운이 뻗질러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후라쉬를 다시 켜들고 발 밑을 비추었다.
'아 그랬구나!'
바로 그 자리는 내가 누렁이와 공동정범이 되어 철민이네 검둥개를 살해한 바로 그 자리였다. 그 날처럼 똑 같이 가슴이 풀무질을 해댔다. 거기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죽은 검둥개를 매장한 곳으로 한 걸음에 달려갔다. 어둠 속에서도 나는 그 장소를 정확히 짚어냈다. 후라쉬를 볼록렌즈 초점처럼 맞추고 그 자리를 손으로 마구 헤집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파들어 가지 않아서 금방 하얀 뼈다귀가 드러났다. 별빛 아래서 그 뼈다귀는 상아처럼 희디 희였다. 후라쉬를 더욱 가까이 밀착시키자 그 뼈다귀에 개목걸이가 묶여 있었고, 거기에는 조그만 직사각형으로 된 희끗한 표딱지가 함께 붙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자로 '姜哲民'이라고 까만 실로 박음질된, 죽은 철민이의 중학교 이름표였다. 귀퉁이는 반쯤 삭았지만 까만 글씨 이름 석자만은 너무도 또렷했다. 나는 무슨 악몽을 꾸면서 가위에 눌린 듯 목구멍에서는 외마디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저수지 물에 빠져 죽은 철민이 이름표가 검둥이 무덤에서 나온단 말인가.'
더럭 겁이 났다. 정신을 다잡으며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나자 어렴풋이 기억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아, 그랬었지!'
철민이 녀석이 자기 이름표 실밥이 조금 뜯어졌다고 금방 새 것으로 바꿔 차고 나타나 헌 이름표는 자기 집 검둥이 목걸이에 부착시키고는 의기 양양하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선연하게 떠올랐다. 나는 그 개뼈다귀와 철민이 이름표를 조심스럽게 수습했다. 내 손에 들린 검둥이 뼈다귀와 철민이 이름표는 헛깨비처럼 가벼웠다. 그 날 개의 주검을 망태기에 담아서 어깨에 매고 가던 때의 무게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동안 무심한 세월이 흘러 대결의 색깔은 퇴색하고 증오의 표피들이 한 꺼풀 한 꺼풀 허물어져, 불면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 가벼워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철민이의 이름표와 검둥이의 뼈를 그들이 노상 뛰어 다니던 저수지 둑 어딘가에 묻어주리라 마음먹었다. 내 발자국을 따라 밤의 어스름이 안개꽃처럼 감싸 돌며 저수지 둑으로 나를 인도했다. 몸은 여전히 곤고(困苦)하였으나 마음만은 명경지수처럼 맑아왔다. 나는 몇 줌 되지 않는 그 두 놈의 주검을 곱게 묻어주고 난 뒤, 들국화가 하얗게 피어있는 저수지 둑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들이 저수지 밤바람을 타고 가물가물 떨고 있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어머니 손에 쥐어주며 앞으로는 자주 오겠다고 다짐을 놓고 서울로 향했다. 돌아오는 고속 버스 속에서 회사 일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고, 그날 한 밤 중에 주인집 정원에서 벌어졌던 검둥개와의 혈투가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날 밤 유리창에 어른거리던 검은 물체의 잔영이 지워지지 않고 나를 무던히도 괴롭혔다.
"주인 아저씨 계십니까? 저, 이 층 방 총각입니다." 주인집에 도착한 즉시 나는 주인을 찾아 거실 문을 두드렸다. "어서 오게. 거기 앉게나.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네.…… 앉으라니까." "아... 예." 나는 그 사람을 만난 지 며칠 되진 않았지만, 그토록 차분하고 또렷한 어조로 말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회사는 어떻허구? "며칠 안 나가도 됩니다. 오면서 월차 휴가를 내놓았거든요." "어디 먼 길 다녀온 모양인 것 같은데?" "예, 제 고향엘 좀…. 그런데 아저씨 개 값은 최고로 쳐서 물어드리겠습니다." "이 사람! 성미가 급하기는. 난 자네가 첨 우리 집에 온 날부터 벌써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있었네." "네에? 어떻게 그걸...? "우리 검둥이가 자넬 보고 짖는 소리하고 자네 발걸음 소리를 듣고 그렇게 예감을 했었지." "………?" "자넨 아마 모를 거야. 작전을 나가면 말이야. 정글 속에서 울어대는 새소리 바람소리 물 흐르는 소리 하나까지도 신경이 곤두서곤 하지. 예감이란 게 있지 않나. 정글이란 평화스럽다가도 어느 샌가 음산한 소리로 돌변하곤 하거든."
주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작전에 임하는 선임하사의 표정으로 입가에는 알 수 없는 엷은 미소까지 지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난 말일세. 월남전에서 두 눈을 잃었다네. 피아간에 숱하게 죽어 자빠지고 서로 유가무가 아무 전과 없이 전투는 끝나고 상황이 너무 급박하여 전사자의 시신도 제대로 수습 못한 채 전우의 목에 걸린 개목걸이만 뜯어 돌아오는 날이면 여기 저기서 들려오던 그 음울한 소리란……." 아저씨의 눈에 이슬이 맺히는 듯 했다. "우리 검둥개란 놈이 자네를 처음 보았을 때, 분명 자네에게서 어떤 적의(敵意)를 맡았을 거야. 개란 놈들은 낯선 사람이라고 무작정 짖어대지는 않는 법이거든." "…그랬을까요?" "어찌 되었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하다가 결국 죽이게 되는 행위는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인간의 심리겠지." "죄송합니다. 하지만, 검둥이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하지는 않았습니다." "자네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닐세…. 전투에서 되도록 많은 적군을 사살하고 돌아온 날이면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지. 베트콩 병사들의 까만 전투복을 흥건히 적시는 검붉은 피와 유달리 까만 눈동자가, 잠을 청하려면 망령처럼 되살아나곤 했었지." "………." "다 지난 일일세…. 자네 지금 별 할 일 없으면 나랑 어디 좀 가세." "…어디를……?" "관악산 중턱에 가면 조그만 암자가 하나 있거든. 거기 나랑 좀 갔으면 하고." "암자엔 왜 가시려구요?" "죽은 마누라가 관악산 그 암자에 자주 갔었지. 작년 겨울 등산길에 추위에 떨고 있던 까만 개 새끼 한 마리를 주워와서 길렀다네." "아! 그랬군요." "검둥이는 정원 쓰레기통 옆 비닐봉지에 담아 놓았어. 자네가 좀 들고 가야지."
나는 미닫이 유리창문을 밀고 나오며 다시 한 번 하늘을 쳐다보았다. 소나기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이 서쪽으로 서서히 빗겨가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