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에서 마산 방면으로 20분 정도 차로 달리면
아름다운 꽃과 숲의 향기가 가득한 경남 수목원
17만평 면적에 자생종과 외국 수종 1,500여 식물.
산림박물관, 열대식물원, 수생식물원, 야생동물원,
무궁화공원, 동물원 및 대형 잔디장 등 다양한 공간
이 중 산림박물관은 국내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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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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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의 청학이 날아든다는 사찰., 청곡사
진주를 벗어나 차로 10분이면 월아산 청곡사
도시의 번화함에서부터 한가한 농촌으로 탈출
월아산 청곡사는 남녘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879년 창건)
경내 곳곳은 대숲, 동백, 야생 차나무가 어우러져 있으며
대나무와 동백 등 겨울에도 늘 푸른 숲속의 아름다운 사찰
영신회 괘불탱, 목조제석천, 3층 석탑 등 다수의 문화재
청곡사는 산 초입에 있어 내친김에 월아산 등반도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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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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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판문동 일대 경호강,덕천강의 합류지점의 인공호수.
1970년 2,285㎢, 저수량 1억 3,600 만톤, 7년 6 개월만에 완공.
1999년 10월 저수량 3억 1,000만톤 규모의 댐 보강공사를 완공.
2000년 12월 기타 부대시설을 포함한 전체 보강사업을 끝냈다.
홍수조절과 생활 공업용수 공급, 연간 발전량은 4,000만~4130만 kw
물홍보 전시관, 선착장, 동물원, 어린이 동산, 호텔, 여관, 식당 위락시설.
남인수.
진주의 진양호 선착장 부근에 남인수의 노래비가 있다.
'남인수의 고향' 진주에서는 매년 남인수 가요제가 열린다.
18세 강문수는 남인수라는 예명으로 가요계의 기린아가 된다.
남인수의 극장 공연 때마다 권번 기생들이 보낸 인력거가 즐비
공연이 끝날 때마다 남인수 모시기 쟁탈전을 벌렸던 진주의 권번.
가는 곳마다 기생들이 버선발로 달려 나와 칙사대접으로 환대.
전국의 어느 기생이 남인수의 애인이 되느냐가 화제거리였다.
가요계 황제로 군림하던 남인수는 1943년부터 병마로 시달린다.
남인수는 폐병 와중에도 관중들의 환호 속에 대공연을 계속한다.
1956년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나는 사람이 아니외다> 금지곡
1950년대까지 나병 환자가 많았던 영남일대 하천마다 움막촌
손가락이 문들어지고 눈썹까지 빠진 삼십대 문학청년 '한하운.'
그 방황, 울분, 비통함을 시로 발표하여 문둥이 시인으로 화제
나는 사람이 아니외다.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1. 하늘도 날 버리고 세상도 날 버리고
돌에도 나무에도 붙일 곳 없는 신세
한강수 푸른물에 던지고 싶은 이목숨
살아서 사람이지 사람이 아니외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내것이 아니외다
2. 사랑도 날버리고 친구도 날버리고
날 보면 피해가네. 침 뱉고 돌아가네
달리는 철길 위에 깔리고 싶은 이 목숨
이름만 사람이지 사람이 아니외다
다빠진 두 눈썹도 내것이 아니외다
1959년 폐병이 악화되자 이난영이 각별한 간호를 도맡는다.
이난영이 7 남매를 홀로 키울때 적극 도와 준 은인이기 때문.
이난영은 딸 김시스터스가 미국으로 떠나자 더욱 더 외로웠다.
남인수가 병상에서 눈감을 때 <황성옛터>를 눈물로 노래한 이난영.
1932년 황성옛터는 일본가요 5음계와 서양식 4박자 트로트와 결합
뽕짝(동서양 연가를 뒤섞어 만들어 붙여진 이름)의 원조..황성옛터.
황성옛터 - 노래 가사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 내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고 있노라.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잠 못이루어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어느덧 두 사람은 동료에서 연인 사이가 되었기에 너무나 슬픈 이별.
1962년 6월 그의 장례식에 여자가수는 흰소복, 남자가수는 검은 정장.
애수의 소야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요계의 황제 남인수를 보냈다.
애수의 소야곡(1937년, 이노홍 작사, 박시춘 작곡)
1.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누가 불어주나 휘파람 소리
2.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못생긴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애타는 숨결마저 싸늘하고나
1980년 2월 28일 오전 10시 울산 장생포항을 떠난 포경선
다음날 오전 8시 부산 태종대-통영 욕지도- 전북 어청도 앞
작살을 맞은 고래는 바다를 붉은 피로 물들이며 도망치다 포획.
'포획한 밍크 고래의 몸길이는 24척(7.27m)'
제 5 진양호는 매일 한 두마리를 잡았다.
많이 잡은 날은 1980년 5월 7일 다섯 마리.
밍크고래를 잡은 해역이 3월과 4월은 서해 어청도 부근,
5월과 6월은 울산 동구 화암추, 7월은 경북 죽변,
8월은 경북 울릉도, 9월은 경북 포항시 구룡포,
10월과 11월은 서해 홍도와 흑산도
한반도 동.서해 전역이 밍크 고래의 어장이었던 셈.
특히 울산 근해에서 화암 앞바다 일대가 주무대였다.
제 5 진양호는 75년 3월 방어진 철공조선에서 건조
길이 28.7m, 폭 5.38m에 700 마력 디젤기관 장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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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식 포경선이 처음 등장한 울산포(장생포 용잠동 대곡).
러일전쟁이후 장생포는 연간 800 마리 고래를 포획했던 포경기지.
우리나라에서 86년 1월 1일 포경이 전면 금지된지 20년이 되었다.
장생포 등지에는 20 여개 고래전문 음식점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울산시 남구 장생포는 선사시대부터 고래잡이 전진기지였던 곳.
.......................한반도에서 고래의 유래...............................
약 6천 5백만년전 쥐만한 크기의 '메소니쿠스'라는 포유동물
육지를 걸어다니며 강 하구의 물고기나 조개류를 먹고 살았다.
육지보다 먹이가 많은 바다로 나가 어류나 새우를 먹으며 진화.
현재 모습의 거대한 몸집인 고래는 약 200 만년 전에 출현했다.
한반도 화산폭팔로 약 6천 5백만년 전 자취를 감춘 공룡.
2천 5백만년 방황 끝에 중동지대에서 9 천만년전에 전멸.
지금은 중동이 사막지대로 변했지만 당시에는 열대우림지역.
한반도 주변의 고래는 약 6천 5백만년 전에 쥐 만한 포유동물.
오늘날 도마뱀으로 작아진, 공룡
오늘날 고래로 진화된 그 옛날, 쥐.
오랜 세월 진화된 두 동물이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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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세월 속에 담긴 자연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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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가난했던 서민들의 희망.
우리나라는 옛부터 큰 고래가 많이 잡혔던 증거.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 속담.
한반도에 고래먹이 새우가 많다는 증거.
한반도는 삼면의 바다와 대륙붕이 있어 새우와 프랑크톤이 많다.
고래의 먹이감이 풍부한 지역이고 생태환경도 살기 좋은 곳이다.
하여, 한반도에서는 선사시대부터 고래사냥을 한 흔적들의 유물.
<신석기∼청동기시대>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에는 귀신고래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지질학자들은 울산이 바다였던 BC 3000 년 경의 유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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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진주 진양호 일대의 포경 역사는 약 5천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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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에는 물을 뿜는 고래와 새끼를 등에 업은 고래,
작살을 맞은 고래, 그물에 걸린 고래, 잡은 고래를 끌고 가는 배
고래의 해체와 분배에 관한 그림, 고래에 얽힌 사람에 관한 기록
비록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사실적으로 낱낱이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포경은 고래를 해변으로 몰아서 잡거나
밀물에 밀려 와 썰물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고래를 생포했다.
고래는 부위별로 해체해 대구까지 지계에 짊어지고 가서 팔았다.
우리나라 말에는 옛날부터 고래와 관련된 말이 많다.
고래고래.- 골골거리다.-골고루. -고루고루.-고래심줄.
홍익인간의 정신은 고래를 잡아 나누는 풍습과 유사하다.
'진시황의 아방궁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2500년전 고래기름으로 만든 촛불은 '하, 은, 주'에서 유래.
진나라는 물론 중국의 고대국가들도 고래기름 촛불을 사용.
한반도에서 고래잡이 역사는 반만년이라 보아야 할 것 같다.
한반도에서는 특히 삼한시대의 '변한. 진한' 조상들.
그후 가락국, 신라, 고려, 이조에 이르기까지 고래잡이.
고인돌은 코끼리보다 수십배 무계의 고래를 다루던 솜씨.
충무공의 학익진 전법은 고래를 포획하는 방법과 유사하다.
새우 먹이감에 정신팔려 밀물 타고 들어온 고래.
썰물 갯벌에 갇힌 고래가 골골 거릴 때 고래잡이.
조류를 이용한 고래잡이에 익숙한 어부들의 전법.
힘으로 제압할 수 없는 왜군을 고래잡듯 혼낸 충무공.
왜선을 밀물 때 끌어들여 썰물때 퇴로를 차단한 학익진.
왜군이 오도가도 못할 즈음 공격해 바다에 수장했던 전술.
'왜적을 물리친 뱃사람을 이조는 얼마나 무시했던가?'
뱃놈, 가파치, 불쟁이, 백정, 무인, 상인을 천민 취급한 이조.
여성을 무시하고, 농민을 상민 취급하며 착취만 일삼던 양반.
17세기~19세기에 이조의 무능한 정권은 나라를 망치고 만다.
'한반도에서 포경이 근대화된 시기는 19세기 말.'
1849년 한반도 연안에서 조업한 미국 포경선의 포경일지.
‘많은 고래들이 보인다. 수많은 혹등고래와 대왕고래, 참고래,
긴수염고래가 사방팔방에서 뛰어 논다. 셀 수조차 없다.’고 기록
그당시 일본과 미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의 포경선이 몰려들었다
장생포가 근대적인 고래잡이항으로 부상한 것은 1891년부터였다.
당시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 2세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장생포 앞바다에서 고래떼를 보고 귀국해 태평양어업주식회사 설립.
이조로부터 포경권을 얻어 본격적인 고래 사냥에 나선 기록이 있다.
당시 포획한 고래의 해체 장소이자 포경의 전진 기지가 장생포이다.
1899년 러시아가 태평양 연안에서 잡은 고래를 해체하는 기지였다.
1986년 IWC 포경금지 전까지 포경선 50 척, 국내 소비량 80% 충당.
장생포동 김영학(54·선박 수리업)씨는 고래 해체용 도구 41점을 기증.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고래칼을 비롯한 고래도끼, 고래포경용 작살 등
길이 2m 고래 해체용 톱과 대형 고래칼, 도끼는 김씨가 사용했던 도구.
남구청 관계자는 포경도구와 생태, 학술자료, 사진 200 여점, 유물을 수집
국내 유일의 장생포 고래박물관은 관광객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할 전망.
울산시는 장생포동 해양공원 내 2000평 대지에 연면적 240평 건물을 건립.
현재 95% 공정률을 보이고 있고 2005년 4월 개관을 앞두고 전시자료 수집.
‘한국귀신고래(쇠고래)를 동해안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1914년 미국학자가 한반도 동, 남해안을 2년여 조사한 뒤 논문발표.
겨울철 동해안을 따라 남하해 출산한 뒤 봄부터 북상했던 귀신고래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울산 장생포 앞바다 등 동해안에 풍부했다.
1960년대부터 각국 포경선박이 남획하자 회유 항로를 바꿔버린 듯.
현재로선 한국 귀신고래가 돌아오기에는 자연환경 조건이 어려울 듯.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연평균 150 마리, 2003년엔 280 마리 발견.
지구역사 45억년 동안 장구한 세월을 생존해 온 고래의 멸종위기
인간 다음 지능, 임신 1년, 60년(향고래)∼100년(수염고래류) 수명.
여러 모로 인류와 닮은 고래는 생태계 보전차원에서 중요성이 크다.
“고래도 살고 사람도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고래잡이보다 고래 관광에 역점 둔 호주의 사례를 본받아야 할 듯.
고래가 살지 않는 곳의 고래박물관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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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반구대 바위 그림 속에 비친 ‘바다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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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짐승과 들짐승 300 여점 그림 가운데 40 여점의 고래
10명 혹은 20명씩 탄 두 척의 배가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
고래를 잡기 위한 작살, 일종의 부표인 뜨개, 그물 그림들.
20 여명이 타고 고래잡이 할 수 있는배를 만드는 조선기술
또한 작살을 발사하는 뇌기와 뜨개를 사용한 고래잡이 기술.
울산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기지이자 바다도시
'선사시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산업이 융성한 지역.'
하늘을 향한 고래 떼 위쪽에 커다란 성기의 남자가 서 있고,
고래 떼 제일 아래에는 무당으로 보이는 사람의 신명난 모습.
이러한 것을 보면 이 그림들이 풍어굿을 하는 모습을 담은 듯.
고래 떼 우두머리가 있다는 고래 생태를 알고 있다는 뜻.
신석기시대 조상들이 고래 우두머리를 향해 풍어굿을 한듯.
제일 위에 새끼를 품은 커다란 고래는 고래의 신 '대왕고래’
그 옆에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는 것은 신의 전령인듯 보인다.
그 다음으로 큰 고래는 작살을 맞은 고래.
그 뒤를 따라 굿판을 벌리는 듯한 고래들.
그당시 고래잡이 풍습을 알 수 있는 그림.
'과연, 한반도 문화가 중국에서 유래된걸까?'
전 세계 7만 고인돌 중 한반도에 집중 분포된 3만기.
선사시대 고인돌 문화와 무관하지 않은 고래잡이 기술.
지리산 일대에 집중 분포된 수많은 사찰들의 장구한 역사.
'서해 속 잠겨있을 것만 같은 선사시대 유적지.'
울산 반구대 바위 그림은 신비를 간직한 미스테리.
한반도 선사시대의 앞선 문명을 풀수 있는 실마리.
진주 진양호 또한 선사시대부터 고래잡이를 했던 곳.
진주는 울산 장생포와 아울러 고래잡이 거점 도시.
선사시대부터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곳으로 보인다.
앞으로 집중 재조명되어야 할 한반도 고래잡이 역사.
오늘날 우리나라의 첨단 조선기술 및 원양 어업.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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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년 유구한 잠재력이 그 원동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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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거 아들 숙제하나? "내가 사는 고장 바로 알기" 뭐 이런 거...ㅎㅎ
아니 우리가 모르고 있는것이 가가이에 있다는게 배울점이 있자나...ㅋㅋㅋ
미안타 !! ㅎㅎㅎ 처음읽다가 도저히 안되겠더라 끝부분만 읽었다 !!!
뭐라도 한개만 보몬 된다...ㅋㅋㅋ
ㅎㅎㅎ 낸 댓글만 읽었다.~~퍽` 퍽``;;
첨에는 좀 신중하게 읽었는데 넘 지루해서 마우스로 쭉 긁어 내려 버렸다 미안타..이렇게 답글이라도 써서 용서 받을라꼬..미숙아 ㅎㅎ
미안타 나는 하나도 안 읽었는데....고마워이...
진주에서 3년 학굘 다녔는데도 도통 아는 내용이 없구나... 공부 잘하고 간다...
내용이 너무 좋다 언제 이렇게 많이 공부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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