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추수 때를 맞이하라.
수백 년 동안 교회는 번영(prosperity)에 관하여 비성경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온통 혼란속에 빠져 있었다. 교회는 재정에 관한 한 세상적인 구조와 경영 방법에 지배를 받아왔다.
얼마나 그렇게 해왔던지, 사실 우리는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교리를 가지고서
“하나님의 경제”라고 하며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세상에 대입하는 대신 세상의 방법을 교회 안에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변할 것이다. 최고의 때가 올 것이다!
심고 거두기..... 태초부터 존재한 법칙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지 이천 년이 마감하는 때이므로 상황은 반드시 변해야 한다.
이천 년간 세상에 복음이 심어졌다. 이제는 수확의 계절이다.
당신과 내가 바로 이 수확을 거두는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본 적이 없는 큰 수확을 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는 경제에 관한 하나님의 원리를 깊이 파고 들어 그것을 적용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제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심고 거두는 원리이다.
심고 거두는 것을 공부하기 위하여 구약 초반에 나오는 창세기 8:20-22를 살펴보자.
“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먼저 이 말씀은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세 번째 구절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모든 것”의 전부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씨앗을 보존하셨다.
노아와 그의 가족, 모든 새, 짐승과 기는 것들. 그리고 그는 그 씨앗을 땅에 심으시고 선포하셨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 .....이 쉬지 아니하리라.”
그리하여 다시 한번 지구상의 생명은 한 사람의 씨앗에서 시작하였다.
두 번째로 지적할 점은 22절에 있다.
“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심음(seedtime, 심는 시기)은 두 개의 단어가 합해진 말이다.
그 의미는 씨를 뿌리는 시기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특별히 성경의 앞 뒤 문맥을 보아 분석해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구절에서 하시는 말씀은 곧,
“땅이 존재하는 한, 씨를 뿌리는 시기와 그것이 자라는 시기와 수확의 시기가 있을 것이다.”
논리적이지 않은가? 당신이 씨를 심는 때부터 수확할 때까지는 그것이 자라는 때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또한 그것을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씨를 뿌리는 시기와 자라는 시기는 합하여 수확의 시기에 이르게 한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사도들이 와서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청하였을 때
씨뿌리는 시기와 자라는 시기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셨다.
누가복음 17:5-6에 그 내용이 나와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 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게게 순종하였으리라.”
사도들은 예수님께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혹은 믿음을 자라게 해달라고 구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믿음은 씨앗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그들이 그것을 심으면 자라날 것이다. 왜냐고?
믿음은 심는 때, 자라는 때, 수확하는 때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자라는 때”의 개념을 삽입하였다.
왜냐하면 앞으로 그것에 주목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확립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의 경제원칙은 심음과 거둠의 법칙이라는 점이다.
갈라디아서 6:7에 매우 비슷한 구절이 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mocked)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 구절의 앞뒤 문맥을 보아 우리는 사도바울이 기본적으로 돈에 관한 말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것은
단지 돈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이 세상의 일반적인 운용 원칙에 대한
계시이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경영 원리이다.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창세기 8:22로 되돌아가면,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4:30-32에 같은 말씀을 하셨다. 갈라디아서 6장에 나타나듯이 사도바울은
심고 거두는 법칙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또한 영적인 문제에 적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심고 거두는 법이 하늘나라의 법이며,
결과적으로 이 지구상과 모든 자연적, 물질적 세계의 법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이러한 기본을 알았으면,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늘나라 경제의 법칙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과 같이 압축된 시간의 가느다란 띠에 적용하여 보자.
이 시간은 육천 년에 상당하는 모든 하나님의 약속이 온 세계에 폭발하려는 지점이며,
이 때야말로 진정으로 뭔가 흥미진진한 일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시간이 부족하여 압박을 받다
우리 세대는 항상 바쁘고 항상 시간에 쫓기는 세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처리하는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항상 시간에 쫓기고 있다. 왜 그런지 말해주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다 !
아모스 9:13을 기억하는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때에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
친구들이여, 이것이 우리가 기도하고 고대해왔던 말세의 수확을 예언해주는 그림이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의해서 보라. (열쇠는 역시 자라는 시기이다.)
농부가 밭에서 앞에서는 쟁기로 땅을 갈고 바로 뒤에서는 포도 씨앗을 땅에 심고,
그 바로 뒤에는 다른 사람이 다 자란 넝쿨에서 잘 익은 포도를 따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는가?
내 생각에 자라는 시간, 즉 심겨진 씨앗이 성숙하여 열매를 낼 때까지 자라는 시간은 여기에서 불과
몇초밖에 안된다. 그러나 그것도 이 성경 구절에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은 사실,
쟁기로 밭을 가는 자, 씨 심는 자, 수확하는 자와 포도즙을 짜는 자가
다 한꺼번에 붙어서 일하여 보는 사람이 누가누구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상태를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에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그의 기름부으심이 역사하실 것을 기대해야 한다. 어쨌든 하나님의 방법은
“꾹꾹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은 옥수수 한자루에 옥수수 한 개가 붙어있도록 창조하지 않으셨다.
옥수수 한자루에 옥수수가 풍성하게 붙어있게 하셨다.
모든 피조물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창조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구하는 것보다 능히 넘치게 해주시는 시대로 들어왔다.
이제는 들에 곡식이 자라는 즉시 마귀가 빼앗아가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하기를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하기 위하여
그의 백성들이 넘치도록 풍성하게 소유하게 해주신다.
중국과 아프리카, 남미와 모든 곳에 갔던 선교사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말씀을 전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들의 삶을 바쳤다.
그러나 마귀가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좋은 소식이 있다. 지난 이 천년 간 심어온 모든 씨앗들, 즉 선포된 모든 말씀,
그들이 흘린 모든 눈물과 피가 열매를 맺고 있다.
바로 지금 ! 이천년 동안 심어온 복음의 씨앗이 백 배의 열매를 맺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보리떡과 물고기의 시대가 왔다. 씨앗이 증가되는 시대가 왔다.
수확하는 자가 쟁기 잡은 자를 앞지르고 있다. 당신은 누가 누구인지 분간도 못할 것이다.
이제 마치기 전에 하나님의 경제 구조에 들어가서
그물이 찢어지고 배가 가라앉는 영혼의 수확을 거두자.
이적과 기사.... 이상할 것 없다
1983년 1월, 나는 내 영에 불안함을 느꼈다. 그것은 점점 강해져서 성령께서 내 영혼을
너무나 깊이 촉구하시므로 나는 그 달의 모든 약속을 다 취소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로 나아가 잠잠히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렇게 했다.
삶의 모든 바쁜 일에서 빠져나와 아칸소에 있는 내가 늘 기도하는 오두막집으로 갔다.
나는 한달 간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동안 나는 씹는 음식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루에 과일 쥬스 한잔을 마셨다. 그것이 전부였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의 금식에 관하여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향해서 굶주림이 있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나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나아가 머물러 있었다.
마침내, 그 달 말경 나는 내가 구하던 것을 받았다.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성령께서 말씀하신다. 영광(Glory)이 오고 있다.
그것이 오면 나는 그것으로 온 지구를 덮을 것이다.”
하나님의 그 한 말씀이 내가 필요로 하던 것이었다.
그 말씀은 나를 온통 채우고 내 영과 혼과 몸의 굶주림을 채워주었다.
그 후 민수기 14:21에서 나는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에 관하여 더 많은 계시를 발견하였다.
“진실로 나의 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으로 맹세하노니.”
다시 말하면, “그것은 틀림이 없다.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영광은 온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것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그것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이곳에 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준비하라. 하나님께서 건너오신다!
당신과 나는 창조 이후로 가장 예외적인 시간에 살고 있다.
에덴 동산 이후로 인류 역사 육천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는 우리 구원의 대장 예수님께서 통치하실 다가올 천년에 들어가기 직전
얄팍하게 한줄기 남은 시간대에 살고 있다.
사탄이 인류와 전혀 접촉할 수 없는 최초의 시대가 우리 눈앞에 있다.
이와 같이 웅장하고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지상 통치에 들어가기 전에
7년간의 환란이 있을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직접 그와 같은 환란은 이전에도 이후에도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환란이라고 하면 사도행전 2:17-19을 떠올린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아니, 코플랜드 형제님, 우리가 피와 불과 연기를 본다고요?” 그렇다. 우리는 볼 것이다.
아니 우리는 이미 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피와 불과 연기(사도행전 2장, 요엘 2장)은 일부 사람들이 잘못 해석하듯이
하나님의 진노 (wrath)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환란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그것은 말세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 을 부어주시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말세에 나의 진노를 부어주리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수님의 피에 관한 계시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그는 성령의 불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그는 그의 영광의 연기, 혹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게 임재하시는 모습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그것을 인정하고 보면 그동안 이 땅에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나타났다.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과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가 사탄에게 넘어감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 모습을 나타내시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아담이 죄를 지은 이후 마귀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얼굴에 대고 맞서 왔다.
그러나 이천년전 예수님은 우리의 권세를 회복하였고,
이제 이 땅에 이천 년 동안 심어진 복음의 씨앗이 지극히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친구들이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제한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시는 시대에 사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그는 요엘이 예언하고 사도 베드로가 반복해서 언급한 말씀 그대로
그가 원하시는 모든 이적과 기사를 행하실 것이다. 지금은 피와 불과 연기의 시대,
곧 하나님의 영광이 강력하게 부어지는 시대이다. 이는 분명 믿는 자들에게 가슴 벅찬 시대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모든 상황, 모든 순간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반드시 알아야한다.
(이 글은 코플랜드의 저서 「종말을 사는 방법」에서 발췌하여 번역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