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충무공이 실제로 간 길은 어디일까?
충무공은 정유년(1597년) 음력4월24일, 임실현에서 아침 일찍 떠나 저녁에 남원 십리 밖의 이희경의 종의 집에 이르렀다. 임실과 남원 사이에 오수역이 있다. 양평, 서울, 수원, 대전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은 2013년11월8일 10시 20분 오수역에 내렸다. 오수역 근처에는 인가가 없다. 그들은 오수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의견공원에 이르렀다. 오수(獒樹)의 오(獒)는 길이 잘든 개라는 뜻이다. 대동여지도는 자라오자를 써서 오수(鰲樹)로 표기하고 있다. 옛날 한 농부가 잔치 갔다 오던 중 산 기슭에서 술 취해 잠이 들었다. 이때 산불이 났다. 함께 있던 개가 주인을 깨웠으나 일어나지 않았다. 개는 주인을 위해 개울물에 몸을 적셔 주인의 주변에 뿌렸다. 나중에 주인이 깨어 보니 개가 불에 타 죽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순례자들은 의견공원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출발을 기록했다.
충무공은 남원 10리 밖 이희경의 종이 사는 초가에서 하루 밤을 지냈다. 대동여지도에 보면 오수에서 남원까지의 길은 교룡산성 동편으로 나있다. 순례자들은 혼불문학관을 방문했기에 편의상 교룡산성 서편 길을 택했다.(안내도의 황색 삼각형 루트) 한성에서 계속 남행하던 충무공은 남원에 도착해서는 운봉으로 동진했다. 원수(권율)가 합천에 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봉에 도착해 들으니 권율이 순천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충무공도 순천을 향했다. 운봉에서 순천 가려면 지리산 서편을 넘어 구례로 가야 한다. 충무공이 밤재를 넘었는지 지리산 산길로 갔는지는 일기만으로는 알 수 없다. 충무공은 운봉에서 하루 만에 구례에 이르고 다시 하루 만에 순천에 도달했다. 충무공은 날이 새면 곧 출발해 어두워지면 잠을 잤으므로 12시간가량을 걷거나 말을 탔다. 순례자들은 서울에서 출발하고 다음날 서울로 귀가해야 하므로 반나절만 걸을 수 있다. 충무공이 하루에 간 거리를 순례자들은 1박2일로 간다.
二十五日乙酉。多有雨意。朝食後登途。投雲峯朴巃家。雨勢大作。不能出頭。因聞元帥已向順天云。卽送人于金吾處而留之。主倅以病不出。(다유우의。조식후등도。투운봉박롱가。우세대작。불능출두。인문원수이향순천운。즉송인우금오처이류지。주쉬이병불출。)
4월25일[을유/6월9일] 비가 많이 올 듯하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길을 떠나 운봉(남원군 운봉면)의 박롱의 집에 들어가니, 비가 많이 퍼부어서 출두할 수가 없다. 여기서 들으니, "원수(권율)가 벌써 순천으로 떠났다"고 했다. 곧 사람을 금오랑 있는 곳으로 보내어 머물게 했다. 운봉현감(남간)은 병으로 나오지 않았다.
二十六日丙戌。陰而不霽。早食登程。到求禮縣孫仁弼家。主倅急出來見。待之甚懃。金吾亦來見。(이십륙일병술。음이부제。조식등정。도구례현손인필가。주쉬급출래견。대지심근。금오역래견。)
4월26일[병술/6월10일] 흐리고 개지 않았다. 일찍 아침밥을 먹고 길을 떠나 구례현 손인필의 집에 이르니, 구례현감(이원준)이 급히 나와 보고는 대접하는 것이 매우 은근하다. 금오랑(이사빈)도 와서 봤다.
二十七日丁亥。晴。早發到順天松院。則李得宗,鄭愃來候。夕到鄭元溟家。則元帥知我之至。送軍官權承慶致吊。又問平否。慰辭甚懇。○夕。主倅來見。鄭思竣亦來。多言元公悖妄顚倒之狀。(이십칠일정해。청。조발도순천송원。즉리득종,정선래후。석도정원명가。즉원수지아지지。송군관권승경치적。우문평부。위사심간。○석。주쉬래견。정사준역래。다언원공패망전도지상。)
4월27일[정해/6월11일] 맑다. 일찍 떠나 순천 송원(승주군 서면 학구리 신촌)에 이르니, 이득종, 정선이 와서 기다렸다. 저녁에 정원명의 집에 이르니, 원수(권율)는 내가 온 것을 알고 군관 권승경을 보내어 조문하고 또 안부는 묻는데, 그 위로하는 말이 못내 간곡하다. 저녁에 순천부사가 와서 봤다. 정사준도 와서 원균의 망녕되고 전도된 상황을 많이 말했다.
2. 순례자가 실제로 간 길은 어디일까?
의견 공원을 지나 20분 쯤 가면 풍욕정(風浴亭)이란 정자가 있다. 무더운 여름, 농부가 여기서 땀을 식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앞장선 검암은 오수천 서쪽의 길을 찾아 순례자를 인도했다. 오수천은 둔기리에 이르러 기차 길과 엇갈린다. 순례자들은 기차 길 아래로 통과해 신기리 둔덕고을 입구에 이르렀다(12:10). 금오랑은 스마트폰 GPS응용프로그램(앱)이 생각나서 작동을 시작했다. 조선호 원장이 알려준 소프트웨어인데 이날 처음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 앱은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같이 지도에 현 위치를 표시해 준다. 이 앱이 순례자에게 좋은 점은 지나온 자취를 기록해 주는 것이다.(지도참조) 금오랑은 이제까지 이 앱 없이 지나온 길을 더듬어 지도에 표시해 왔었다. 그러다 보면 기억도 잘 안 나고 긴가민가한 경우도 많았다. 여기부터 1km 쯤 더 가면 둔덕리 입구다.
“이 길은 저기 보이는 기차 길과 27번 고속도로 사이에 있고 오수천을 따라가는 길이므로 다른 길로 빠질 염려가 없습니다.”
검암이 안내했다. 안내자가 없을 경우에 이 앱을 사용하면 나의 위치를 명백히 알 수 있어 길 잃을 염려가 줄어들 것이다.
3. 환상 속의 가련한 여인 강실이
서도리로 가는 745지방도 안내표지를 따라 순례자들은 수촌교를 건넜다. 그들은 정자에서 20분 간 휴식을 했다(12:30). 이제부터 혼불문학마을로 가는 길이다. 마을의 몇몇 집 담장은 혼불 주제 벽화가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었다.
금오랑은 문학관에 ‘백의종군로순례회’로 서명하고 전시물을 둘러보았다. 오랜 시간을 지체할 수 없기에 아쉽지만 주마간산격으로 지나쳤다. 마침 문학관해설사가 마중하며 설명을 해줄 수 있다했지만 받아들이지 못했다. 금오랑은 오히려 그네에게 백의종군로 순례수첩과 오수-남원-운봉 구간 순례 안내 자료를 주었다.
“저희는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혹 여기에 전라북도 문화관광 인사가 오면 백의종군로 안내표지를 해 주십사하고 건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좋은 모임이네요. 여기 안내 자료에 혼불에서 인용한 글도 포함했네요. 고맙습니다.”
금오랑은 이미 인터넷신문고를 통해 백의종군로 안내를 건의했었다. 전북도와 아산시는 긍정적으로 건의를 받아들였고, 충남 관광홍보 담당자는 자기 소관 아니라는 답변을 했다. 자기소관 아니면 소관부서로 이첩하면 될 것을 왜 거절 답변을 했는지 의아했다.
혼불의 매안이씨 종부 청암 부인이 건설했다는 저수지 청호에 갔다. 청호를 바라보던 금오랑은 어느 듯 강실이 청호에 몸 던지려던 찰나, 숨어 기다라던 옹구네가 강실을 낚아채는 환상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 때였다. 일부러 속곳도 추스르지 않은 채 저고리 앞섶을 누르는 옹구네 바짝 코앞으로, 허깨비 같은 강실이가 소리도 없이 다가섰다. 옹구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할퀴듯이, 별안간 홱, 몸을 솟구쳐 일으키며 훌떡, 뛰어올라 강실이를 덮치며 왈칵, 앞으로 쏟아진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강실이 두 팔을 거칠게 붙들며 쏟아진 옹구네 몸에 쏠려 강실이는 그만 픽, 나동그라지고 말았다.(중략)
“참말로 작은아씨네? 저는 똑 구신인 중 알았그만이라우. 아이고, 송구시러와서 어쩐디야? 지가 시방 원뜸에서 낼오다가, 소매(오줌) 조께 보니라고 궁뎅이 벗고 앉었는 판에, 적서 머이 희뜩희뜩 비치길래, 도채빈가 구신잉가 겁이 짠뜩 나서요, 어뜨케나 놀랜 짐에 기양 머이저 잡어먹을라고 허는지만 알고, 작은아씬지도 몰르고 뎀베 부렀네요. 무서서라우. 요, 요, 저 아직도 벗고 앉었는 것 좀 보시요예.” 나동그라진 강실이를 붙들어 일으키며 옹구네는 발명을 한다.(혼불7권164쪽)
조선의 팔반사천(八般四賤)은 노비, 승려, 백정, 무당, 광대, 상여꾼, 기생, 공장 등이다. 이들의 죄는 어미를 잘못 만나 것이다. 양반이 여종을 취해 자식을 낳으면 자식은 노비이다(從母法). 아비가 천민이라도 어미가 양반이면 자식은 양반이다. 거멍굴의 춘복이는 자식만큼은 양반으로 태어나게 하고 싶었다. 방법은 두 가지다. 양반의 음택에 투장(偸葬)하거나 양반규수를 취하거나다. 투장은 양반집 명당 음택에 조상의 뼈를 몰래 합장시키는 것이다. 그는 몇 달 전에 투장에 성공했다. 투장의 성과는 몇 대 후에 나타날지 모른다. 당대에 덕을 보려면 보쌈, 겁탈이 제일이다. 그 대상이 강실이였던 것이다.
큰돈을 모아 자기가 자기를 사서 면천한 종도 있고, 난리에 큰 공을 세원 면천한 노예도 있지만 극히 적은 수이다. 울어 울어 모인 눈물파도로 이 잘못된 세상을 여한 없이 뒤집어 버리고서, 대대로 켜켜이 누르고 조이던 신분의 족쇄를 통쾌하게 풀어 던지며, 부디 이 죄보다 무거운 굴레를 벗고만 싶은 노비, 천민, 상민 들을 은밀히 모아 난을 일으켜 단번에 모든 노예를 해방시키겠다한 찬규나 만적의 예도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천민은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청호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은 입구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정말로 싫다. 금오랑은 청호 아래 논의 건너편 언덕에 보이는 좁은 길로 가자고 권했다. 만일 길이 없다 해도 크게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만일 길을 찾으면 후에 이 길을 순례할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므로 시도할 가치가 있는 대체로 찾기다. 다행히 언덕은 높지 않으며 길이 잘 나있어서 1킬로미터쯤 단축하는 대체로를 발견했다(13:50).
4. 환상 속의 어린왕자
순례자들은 사매면을 나와 대산면으로 가야한다. 마을 표지석이나 버스 정거장 표지를 보면 수동마을, 구술마을, 계동마을 근처를 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낮은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이미 오래 걸었기에 힘이 들었다(14:30). 대산면 표지석을 보자 순례자들은 길가 너른 풀밭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지니고 있던 모든 음식을 꺼냈다. 늦은 점심이다(14:50).
20분 정도 휴식하고 다시 출발했다. 이제부터는 남원역까지 내쳐 가야 한다. 그들은 율정교를 지나 드래곤레이크 골프장 입구를 통과했다(15:40). 옥전 마을에서 잠시 휴식했으나 화장실이 없어 초등학교까지 빠르게 걸었다. 초등학교 유치원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초등학교는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너른 운동장이 고요했다. 복도는 윤이 나게 깨끗했으며 화장실까지 이어져 맨발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교문 근처 정자에 마을 사람들이 쉬고 있는데 70대로 보이는 외국인이 있었다. 노 작가가 말을 붙였다. 그는 텍사스에서 한국인 아내를 따라 잠시 왔다고 했다(16:10). 갈색으로 물든 느티나무 아래의 금강정이라는 정자를 지나면서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초등학교에서 시간을 지체하고 맨 뒤에 처진 노 작가가 큰 소리로 앞 사람들을 불렀다.
“조끼를 잃었어요. 혹시 본 사람 있나요?”
“...”
앞서 갔더라면 뒤 쫓아 오는 사람이 볼 수도 있겠지만 뒤에서 흘린 옷을 누가 보았겠는가. 차량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면 되돌아가 보겠지만 지나는 차를 구경할 수 없는 길이다. 그렇다고 하염없이 얼마를 되돌아가 볼 것인가?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조끼 얼마짜리인가요? 한 20만 원쯤 되나요?”
금오랑의 이 말에 노 작가는 아무 말 안하고 그냥 앞으로 내 달았다. 금오랑은 셍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사는 소혹성으로 여행하는 환상 속에 빠져들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그분들은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그 친구의 목소리가 어떠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를 수집하느냐?> 이렇게 말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냐? 그 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 하는 것이 그분들의 묻는 말이다. 그제서야 친구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어른들에게 <창틀에 제라니움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고운 붉은 벽돌집을 보앗다.>고 말하면, 그분들은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내지 못한다. <일억원 짜리 집을 보았다.>고 해야 한다. 그러면 <야, 참 훌륭하구나!>하고 부르짖는다.
잠시 후 금오랑이 그네에게 다가갔다.
“미안해요. 작가님이 애지중지 아꼈을 옷을 금액으로 환산해버려서요.”
“아니, 뭐, 괜찮아요. 다만 제 몸에 잘 맞는 옷이라서...”
“그렇죠? 길들인 옷인데...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보면 길들인다는 말이 나오잖아요. 길들인 옷을 값으로 따진 것이 되어서...”
순례자들은 도로 확장 공사하는 길을 지나 남원역이 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남원역에 갈 필요는 없잖아요?”
“네, 계획은 일몰 전에 남원역 도착이 목표입니다. 아직 훤하니 더 걸을 수 있다면 시청까지 가봅시다.”
순례자들은 버스를 안타고 걷기로 했다. 5시 30분경, 인송에게서 연락이 왔다. 네 사람이 시청 앞에서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는 낙산, 수봉, 호연과 영등포에서 9시 차를 타고 낮에 남원에 도착했다.
“6시까지는 시청에 갈 수 있을 것 같네.”
금오랑이 시간을 가늠해 대답했다. 시청까지는 2킬로미터 쯤 더 가야한다. 일반적으로 20킬로미터를 걸으면 최후의 4킬로미터가 가장 힘든 법이다. 시청은 옛 남원역를 지나면 된다. 그러나 순례자들은 옛 남원역 북방을 가로막고 있는 개울을 따라 동쪽으로 멀리 우회해 시청까지 힘들여 겨우 갔다.
5. 뒤풀이와 야식
빠른 걸음으로 맨 앞장선 금오랑은 커피숍에서 후발대를 만났다.
“어이 친구들, 반갑네. 많이 기다렸지? 잘하는 식당 알고 있으면 소개하게.”
“우리는 금오랑이 가자는 데로 갈 거야. 낮에 잘 먹었으니 우리 염려는 말아.”
금오랑은 순례자들이 더 이상 걷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식당을 선정했다. 나중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남원하면 추어탕인데 이런 집에서 합니까?”
“오늘은 힘드니 더 이상 헤매지 맙시다. 추어탕은 내일 아침에 하면 어때요?”
일동이 식당에 자리를 잡자 금오랑이 일어섰다.
“여러분 오늘 순례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후발대로 참가한 네 분, 참 반갑습니다. 원래 충무공은 죄인이라서 백의종군 중에 좋은 음식 못 먹고 종의 집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니 순례자들의 침식도 수수할 것이니 기대하지 마셔요. 우리들의 순례가 보람 있고 의미 있는 길이 될 것을 기원하며 건배를 제의합니다. 이런 것을 위하여!”
“위하여!”
금오랑이 처음으로 순례에 참가하는 회원들에게 말씀의 기회를 주었다. 호연과 김 선생이 일어나 인사하고 건배를 제의했다.
금오랑은 숙소를 정하기 위해 식당을 먼저 나왔다. 그는 주민에게 모텔 많은 곳을 물었다.
“이 동네는 없고요, 저 위에 엘지마트까지 가면 많이 있습니다.”
금오랑은 1킬로미터 쯤 동북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숙소를 찾았다. 그는 몇 군데를 알아보다가 마지막 집에서 4명이 잘 수 있는 온돌방을 겨우 찾았다. 8시 45분경에 한산이 금오랑에게 전화를 했다. 남원역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는 금요산악회를 참가하고 이어서 온 것이다.
“한산이 왔는데 그냥 잘 수 없잖아. 환영을 해야지.”
낙산의 제안에 금오랑과 노작가가 찬동했다. 금오랑이 롯데마트 지하에서 간단히 하자는 데 마감 시간이 23시이므로 다른 곳을 찾았다. 그 동네는 한적한 곳이라 영업하는 곳이 없다.
“저기 GS편의점 어떨까?”
“여름이면 밖에 앉아도 되지만 지금은 너무 추워.”
“저기 불빛 보이는 집 어때?”
한산이 교차로 건너편 집을 가리켰다. 그들은 문 닫고 자려는 주인에게 잠시만 시간을 연장하자고 청했다.
“일단 앉으면 내보내지는 안할 것 아닌가?”
그들은 보쌈 안주를 시켰다.
“보쌈에는 소주가 제격이야.”
“주인장, 춘향이와 이도령을 하나씩 주세요. 남원에서는 춘향과 이도령을 마셔야 해.”
낙산이 득의의 웃음을 지으며 오리엔테이션 했다. 남원 지역 소주에는 춘향이 소주와 이도령 소주가 있다. 같은 소주인데 라벨만 다르다.
“한산, 오늘 순례중에 어떤 일 있었는지 아나?”
금오랑이 노 작가 조끼 잃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 상황인데 금오랑이란 자가 말이야, 그 조끼 얼마냐, 20만원이냐, 그렇게 비싼 거면 각자 2만원씩 거둬 사드릴 수도 있다느니, 하면서 잃은 사람 염장을 질렀어.”
“금오랑이 그랬어?”
“그 친구 말이야, 남이 아끼고 길들인 옷을 금액으로 환산해 버렸다니까.”
금오랑이 마치 남의 얘기 하듯이 능청을 떨었다.
“그리고는 뭐, 나중에 노 작가에게 가서 어린 왕자의 여우 이야기를 하면서 잘난 체했데.”
“금오랑 갈아야겠다. 하하하”
환영 야식의 밤은 이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