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소슬하다. 충북 제천의 청풍문화재단지에서 맞는 그 바람은 말 그대로 맑고 푸른 기운이 가득하다. 옛 청풍부의 관문인 팔영루에 들어서면 한량없는 그 바람과 가을볕을 만난다.
청풍은 남한강 상류에 위치해 수운(水運)이 크게 발달한 곳으로 문물이 번성했고, 역사·문화의 뿌리가 깊은 고장이었다. 하지만 충주댐 건설로 화려했던 옛 명성만 전설처럼 남긴 채 물에 잠기게 되자 1983년부터 3년여에 걸쳐 현재의 위치에 청풍의 오랜 문화유적들을 이전, 복원했다.
충주호를 굽어보는 산마루에 자리잡은 청풍문화재단지는 이름만큼이나 시정(詩情) 넘치는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물 속에 잠겨버린 지난 날의 영화를 그리워하듯 충주호를 보고 선 한벽루(보물 528호)의 고고함, 단아하고 귀족적인 금병헌의 멋스런 분위기며 무리지어 선 고가들의 정겨운 풍경은 수백 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전망대에서 본 청풍호
한벽루는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해 관아에서 세운 독특한 양식의 부속 목조건물로, 연회장소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루에 올라갈 때 계단 역할을 하는 ‘익랑’은 현존하는 건축물 중에서는 전무한 양식으로 보고 있다.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며, 조선조 영의정을 지낸 하륜의 기문도 유명하나 1972년 수해 때 유실된 것을 2001년 복원했다. 누각에 오르면 넓은 청풍호반이 한 눈에 들어오며 시원한 바람이 대책없이 가슴으로 달려든다.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고가의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행주치마 두른 아낙의 반가운 웃음과 만날 것 같다. 마루에 놓인 베틀은 좀전까지도 "쩔꺼덩 쩔꺼덩" 소리를 내고 있었던 듯하고, 아릿아릿한 지분냄새 묻어나는 신방이며, 걸쭉한 육담들이 오갔을 아래채의 그을린 흙벽은 정겹기 그지없다.
이 곳 문화재단지에는 보물로 지정된 한벽루와 석조여래입상 외에도 금남루, 팔영루,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 생활유물들을 비롯해 유물전시관에는 300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어 옛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팔영루
역사·문화의 산 교육장으로도 훌륭하지만 단지 내에는 자연학습장을 조성해 여러 종류의 야생화들도 볼 수 있다. 관광지 둘러보듯 후딱 보고 가기에는 아까울 만큼 이곳저곳 오래도록 발길을 잡는 곳이 많다.
드라마 촬영장도 문화재단지와 바로 이웃하고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SBS 기획 드라마 <대망>, <장길산> 등을 찍은 촬영장의 세트가 더없이 실감난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면 청풍호 유람선을 타고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충주호를 누비는 색다른 즐거움이 기다린다. 설치 당시 동양 최고(현재 2위), 세계 2위 높이(162m)로 그 웅장함을 과시했던 수경분수는 제천을 대표하는 관광시설이다. 천혜의 자연절경과 어우러지는 환상의 분수쇼는 시간을 잘 맞춰 꼭 보기를 권한다.
청풍문화재단지가 위치한 물태리에서 제천까지 약 10km 구간은 그야말로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다. 충주댐 건설과 함께 청풍 호반단지를 만들 때 금수산 5부 능선 상으로 길을 뚫은 까닭에 이 길을 따라 달리면 한편에는 금수산의 기암괴석이 보이고, 아래로는 청풍호반이 펼쳐져 운전의 즐거움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가는 요령 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 IC에서 빠져 제천에서 82번 지방도로를 타고 달리면 청풍문화재단지에 이른다. 또는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에서 빠져 금성면을 지나 지방도를 타고 달리면 청풍문화재단지다.
석물군
*맛집 <태조 왕건> 촬영장에서 597번 도로를 따라 가면 금수산 무암사 계곡이 나온다. 무암사 계곡 입구에 남근석 표지판을 따라 계곡을 올라가면 금수산송어장횟집(043-652-8833)이 있다. 제천의 향토음식으로 이름날 만큼 소문난 송어회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여러 종류의 야채를 썰어 만든 비빔회가 인기 메뉴. 간단히 먹고 싶다면 청풍시내로 나간다. 붕어찜, 닭도리탕, 민물매운탕, 산채비빔밥 등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