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오는 사람은 인생으로부터 벌을 받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오래 서로 이웃하고 같이 성당에도 다녔던지만 거주지를 달리 한 후, 우연히 만났다. 참으로 반가웠다. 그런데 한 집엔 장성한 아들이 다른 집엔 장성한 딸이 있었다. 직장도 튼튼하여 다이렉트로 소개 말이 오갔다. 아들에게 말했다. “한번 만나보면 어떠냐? 너도 나이가 꽉 차지 않았느냐? 아들이 땡벌처럼 응수했다. “엄마는 내가 불행지길 원하느냐? 나는 결혼이 싫다” '헉,이 아들 정말 지혜로운 것일까? 그리고 내 조카들을 포함하여 21세기 이 세대의 젊은 청춘남녀들 모두도...?’ 나는 그들이 홀로 늙고 병고와 죽음을 맞이할 때에 이르러, 또한 그들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가 숫적으로 질적으로 복지의 사각지대로 내몰릴 때가 올때도 과연 ‘후회없음’일지 의문스럽다. 이미 나는 둘 만 나야 잘 기르자는 국가의 정책이 잘못된 것임을 경험으로 체험한 세대가 아닌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가 젊었을 때,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여인은 칸트가 청혼해 주길 원했지만, 칸트는 데이트 때마다 철학적인 이야기만 계속하는 것이다다. 그래서 여자가 먼저 칸트에게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저와 결혼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칸트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도서관에 가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혼해야 하는 이유 354개, 결혼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350개를 찾았다. 그리고서야 결정했다. 결혼해야 하는 이유가 4개 더 많기 때문이다다. 하지만 칸트는 결혼하지 못했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왜 그랬을까? 연구 후에 청혼하러 여자의 집에 갔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 사람아 내 딸은 이미 결혼했네. 아이가 둘이나 있지. 그동안 자네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나?” 칸트는 어리석게도 결혼의 장단점을 생각하느라 3년이나 연구소에 있었던 것이다. 분별은 심사숙고 지혜로워야 하지만 선택의 때도 중요한 것이다. "너무 늦는 사람은 인생이 벌을 준다"라는 고르비의 명언을 새겨볼 일이다.
-발췌: 조명연 신부님 묵상글,2024년 3월 17일 사순 제5주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