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인류의 희망, 예수 그리스도 -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온 인류의 희망, 예수 그리스도
이영훈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요한복음 20장 19-23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 설교 한눈에 보기
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신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평강을 얻을 수 있다.
2.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주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다.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
3. 성령을 받으라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성령충만 받을 때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4. 서로 용서하라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다.
용서는 부활신앙의 완성이다.
핵심 메시지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작은 예수로서의 삶을 살기 원하신다.
청중의 적용 포인트
‘나는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전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사랑의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모든 권세를 물리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온 인류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역사 최대의 기적이요, 감격의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갈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모든 인생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영생의 길이 열렸습니다. 천국의 길이 열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가 되셔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므로 이제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 것입니다. 죽음은 더 이상 우리에게 절망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죽음이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숨을 거두면 바로 그 순간 우리에게 영생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천국에서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늘 기뻐하고 감사하는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그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 말씀은 2천년 전 제자들에게만 주셨던 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 네 가지 놀라운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첫째로, 주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두려워 떨며 문을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절망이었습니다.‘예수님 없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예수님이 죽으셨으니 우리는 끝났구나’라고 생각하며 한숨짓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의 말씀은 절망에 처한 제자들에게 희망과 축복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온 인류에게 주신 놀라운 희망과 축복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제자들의 마음 가운데 있던 모든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갔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마음에 평화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과 축복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마음에 평화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절망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조슈아 로드 리브먼(Joshua Loth Liebman)이라고 하는 랍비가 있습니다. 이 랍비가 젊은 시절에 그 생애에 꼭 소유하고 싶었던 것을 적어 보았습니다. 건강, 사랑, 재능, 권력, 부, 명성… 등을 적어서 평소에 존경하는 선생님을 찾아 갔습니다.
선생님께 “제가 이러한 것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하고 보여드리니까 한참 보고 계시더니 “여기에 있는 목록들이 일리는 있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네. 이것을 갖지 못하면 이것을 다 가져도 괴로움만 그 마음속에 가득할 것이네.”
이 말에 놀라서 청년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빠뜨렸습니까?” 그러니까 연필로 그 쓴 목록을 죽 그으시더니만 그 밑에 ‘마음의 평화’라고 쓰셨습니다.
그때 그는 선생님 말씀에 크게 감동되었습니다.‘아, 마음의 평화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건강이나 지식이나 명예보다도 사랑이나 권력이나 돈 보다도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평화(Peace of Mind)」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바로 이 책이 1946년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1년 동안이나 1위를 차지하며 수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책을 읽기도 하고 휴양지에 가서 쉬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책을 읽어도 아무리 좋은 휴양지를 찾아가도 그것은 잠시 잠깐 마음의 평화를 줄뿐 영원한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우리가 참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마음 가운데 참된 평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떠한 평화를 주셨습니까?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말씀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 참되고 영원한 평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화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평화가 임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염려, 근심, 걱정, 고통이 다 물러갑니다. 이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넘쳐나시기를 바랍니다.
2.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둘째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주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1)
주님은 ‘내가 너희를 보내니 너희들은 더 이상 이 자리에서 숨어있지 말고 세상으로 나아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은혜를 받았으니 죄와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나아가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문제 많은 세상에,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에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우리가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 받고, 마음의 평안함을 얻고 기쁨과 감사로 넘쳐나게 되었으니 이제는 우리 주위의 절망, 슬픔,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들고 나아가야 됩니다. 주님의 평안을 들고 나아가야 됩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내야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아갈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주님이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온 천하에 나타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 가운데 있습니까?
전국에 홈리스를 위한 140개 단체가 모여서 홈리스연합총회를 했습니다. 그 홈리스 단체에서 말하기를 한국에 홈리스가 얼마나 많은지 통계를 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영등포 역 근처에 한 5천 명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혹자는 약 2만 명으로 추정합니다. 이 외에도 외롭게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소년소녀 가장들, 독거노인들, 장애로 인해 평생 불편한 생활을 해야 되는 장애우들, 갈 곳이 없어 철거예정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농촌과 산간벽지에 버려진 아이들, 지역 아동 센터와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들, 인권사각지대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많은 불법 체류자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들고 나아가야 됩니다. 예수의 사랑을 들고 나아갈 때 그들이 변화를 받고 치유될 것입니다. 회복될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주지 못하는 참된 평안을 우리가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부활의 생명을 전해 줄 때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서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6. 25 전쟁 직후 우리나라에 온 한 방문객이 선교사로 파송되어서 나환자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피고름이 나는 환자들을 돌보아주는 간호사의 사진을 찍다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백만 불을 줘도 이 일은 못해.” 그런데 간호사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못합니다. 당신만이 아니라 나도 이 일을 못합니다. 백만 불을 준다 하더라도.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기에 나는 기쁨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사랑만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굳은 마음을 깨뜨리어 녹이고, 이 상처와 고통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으로 옷 입고 주의 사랑으로 나아갈 때 주님이 함께 하셔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엘런 페이튼(Alan Paton)이 「당신의 땅은 아름답다(Ah, But your Land is beautiful)」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는 올리버 판사의 섬김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흑백 차별이 심한 나라였습니다. 흑백 차별이 한참 심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흑인 교회인 성시온 교회에서 고난주간에 목요일에 성찬식을 거행하게 되었는데 저명한 백인판사를 초청했습니다. 쟌 크리스티안 올리버(Jan Christiaan Oliver)라고 하는 판사입니다. 그런데 그날 예배 순서가운데 세족식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는 행사입니다. 예수님이 성만찬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처럼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이었습니다.
사실 올리버 판사는 그 순서가 있는지 모르고 참석을 했습니다. 그 예배에 참석하는 것조차도 백인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부터 한 사람, 한 사람 나와서 발을 씻기 시작하는데 올리버 판사 순서가 되었을 때 슬그머니 뒤로 일어나 나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앞으로 나와서 한 흑인 여인 앞에 대야를 놓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흑인 여인은 그 판사님 집에서 30년 동안 종으로 일하고 있는 마르다 포투인(Martha Fortuin)이라고 하는 여종이었습니다. 마르다 포투인은 30년 동안 올리버 판사의 집에서 그의 아들과 딸들을 돌보았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흑인 여종 앞에 판사가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종의 발을 씻었습니다. 그 여종도 울고, 판사도 울고 갑자기 온 예배당 안이 숙연해졌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백인 사회에서 이를 크게 문제 삼았고, 결국 판사직을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교회에 초청했다가 판사직을 잃게 되니까 사과하려고 그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때 올리버 판사가 말합니다.
“성목요일에 당신의 교회에서 행한 예식에 참여한 일은 나에게 판사로서 한 어떤 중요한 일들보다도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더 이상 그것에 대하여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 이 이야기를 기록한 저자 엘런 페이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의 직장을 잃었지만, 그 순간 그는 그의 영혼을 찾았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이웃의 발을 씻어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더 가졌다고 좀 더 배웠다고 좀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교만하지 말고 예수님의 겸손의 옷을 입고 저들을 주의 사랑으로 돌보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의 내용을 기억합니다. 그 분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나의 마지막 날에 나와 같이 계시게 된다면 부디 장례식을 길게 하지 마십시오. 조사도 길게 하지 마십시오. 내가 노벨상을 탔다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루터 킹이 그의 삶을 남을 섬기는 일에 바치려고 노력했다고 하면 됩니다. 그 날 여러분이 ‘저 분은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했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려고 했습니다. 또한 저 분이 감옥에 갇힌 자를 돌보기에 힘썼고, 인류를 사랑하고 섬기려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저로서는 그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 섬김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성령을 받으라
셋째로,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 20:22)
주님께서 숨을 내쉬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우리 인간이 창조될 때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빚으시고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되게 하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을 불어넣어 주심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나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됩니다.
성령이 없이는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여서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고, 성령 충만을 받아 우리가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때 우리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D. L. 무디(D. L. Moody) 목사님은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이며 능력있는 설교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께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두 여성도가 찾아와서 “저희들이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성도를 위해 기도하지 저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기를 “그것은 목사님에게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무디 목사님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카고에서 가장 큰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본인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내게 주옵소서. 성령의 충만을 내게 주옵소서. 성령의 충만을 내게 주옵소서.”
어느 날, 시카고에 대화재가 나서 교회가 불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건축기금을 모금하기 위해서 여러 지역을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러다 뉴욕에서 길을 가다가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놀라운 경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치 번갯불이 번쩍이듯이 나에게 놀라운 축복이 쏟아졌습니다. 여러 달 동안 나는 봉사의 능력을 얻기 위하여 갈급하고 목말라했습니다. 내가 그 능력을 받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뉴욕거리를 걸을 때를 기억합니다. 그 거리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나에게 임하셨을 때 나는 그의 큰 손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충만했고 온 세상을 내 마음에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그 이후 보다 더 크고 위대한 사역을 이룰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우리는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은 바로 예수님의 영입니다. 성령은 살리는 영입니다. 성령은 치료의 영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주의 일을 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예수님의 성품이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되어서 예수님을 만방에 증거하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됩니다.
「순전한 기독교」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지은 C. S.루이스는 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목적의 전부입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 믿는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작은 예수가 되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치료하고 용서하며 주의 사랑을 나타내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서로 용서하라
넷째로, 성령의 사람으로 일하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용서해야 됩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20:23)
용서는 사랑의 결정체요, 부활 메시지의 완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와 사랑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값없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 주님의 놀라운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됩니다. 우리 주위에 나를 상처 입힌 사람, 나를 괴롭힌 사람, 나에게 어려움을 준 사람, 내 마음 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람들을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워싱턴포스트지에 실린 ‘로라 블루멘펠트’라고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분의 용서가 얼마나 위대한 용서인줄 모릅니다. 로라의 아버지는 유대인이었는데 로라와 함께 예루살렘을 여행하다가 1986년 팔레스타인 청년에게 총격테러를 당해 사망합니다.
그때 충격을 받은 이 소녀는 ‘내가 꼭 범인을 찾아서 복수 하겠다’라고 결심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열심히 배우고 콜롬비아대학에서 국제문제로 석사학위를 받고, 워싱턴포스트지 기자가 된 후에 자원해서 1998년에 이스라엘에 와서 근무하게 됩니다. 법원에서 모든 기록을 뒤져 12년 전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오마르 하티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오마르 하티브가 시리아계의 후원을 받는 갱단으로 감옥에 잡혀 25년 동안 복역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취재하는 것으로 가장해서 이 오마르 하티브 집을 방문합니다. 계속해서 방문하는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그 집안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참으로 순진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티브의 조카 아이는 늘 이 기자의 무릎에서 놀았습니다. 그 집에서 사람들과 얼마나 친해졌는지 하티브의 이모는 임신한 딸에게 아이 이름을 이 기자 이름을 따서 ‘로라’라고 지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인 그녀의 마음속에 갑자기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진정한 복수는 그들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리적 복수는 동물적 본능일 뿐이다.”
1999년 처음으로 아버지를 죽인 오마르 하티브에게 자기가 그의 딸인 것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오마르 하티브를 선처해 달라고, 감형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온 가족이 큰 감동을 받고 살인범도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를 용서해주세요. 이것이 나의 복수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승리인 것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그의 모든 가정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될 사랑과 용서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용서와 죄사함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마 6:12)
용서할 때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용서할 때 우리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9)
이제 우리는 예수 사랑으로 용서하며 살아야 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 일도 아닌 일 가지고 싸우고 다툽니까?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이 저에게 주례를 하는 중에 일어난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주례가 끝나고 축도도 끝나고 나서 사회자가 결혼식 분위기를 재미있게 하려고 “신랑은 지금 이 자리에서 엎드려뻗쳐를 하십시오. 그리고 팔굽혀펴기를 세 번하고 일어나서 만세를 하십시오”라고 신랑에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신랑이 사회자를 째려보면서, 가슴에 꽂혀진 꽃을 빼서 땅에 던지더니 “못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주례 목사님이 그 부부를 빨리 퇴장시켰다는 것입니다.
결혼식이니까 기분이 좋지 않아도 사회자가 좀 짓궂은 일을 시켜도 엎드려뻗쳐 몇 번하고, 팔굽혀펴기 몇 번하고, 만세 한 번 부르고 나가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 못해” 하고 꽃을 집어 던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아무것도 아닌데 혈기 부리고 소리 지르고 싸우지 않습니까? 우리가 먼저 예수의 사랑으로 변화되어야 됩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됩니다.
이 좁은 땅 덩어리에 왜 지역감정이 있습니까? 왜 계층 간의 갈등이 있습니까?
우리 모두가 사랑과 용서로 이 모든 상처를 치료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과 용서의 화신이 되어서 모든 문제 속에 들어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원합니다.
미국 오클라호마 인디안 교회에 다음과 같은 비문이 남겨져 있습니다. 찰스 쟈니 케이크란 분의 비문입니다.
“우리는 여섯 번 파산당하고 이사하였다. 그때마다 우리 재산은 모두 약탈당하였다. 우리는 미조리 강을 건너 거기 집 짓고 살면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몇 해 못가서 백인들이 쫓아와 재산을 빼앗았다.
우리는 다시 옮겨 좋은 농장, 편리한 집과 외양간을 짓고 자녀를 위해 학교를 짓고 예배당을 짓고 복음을 들었다. 그런데 백인들이 다시 쫓아와서 말과 소를 다 몰아갔다. 그들을 쫓아가는 자는 다 죽임을 당하였다.
우리를 이것을 잊으려 했다. 그러나 백인들이 가져다 준 그리스도의 복음은 잊을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받은 고난보다 더 큰 것을 주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가족들이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리스도의 용서가 그 마음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한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늘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많습니다. 함부로 말을 해서 상처를 주고, 함부로 행동을 해서 상처를 줍니다. 그리고 남에게 받은 상처는 쉽게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오래 지난 일도 또 기억해서 괴로워하고 슬퍼합니다.
우리가 값없이 용서받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이제 우리는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결단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훈 목사
연세대학교 신학과(Th.B.) 연합신학대학원(Th.M.) 졸업
한세대학교 신학과 졸업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석사과정(Th.M.)
미국 템플대학교대학원(Temple University) 종교철학 석사(M.A.),
미국 템플대학교대학원 종교철학 박사(Ph.D.)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 및 순복음동경교회, LA나성순복음교회 담임
일본순복음신학대학 학장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장
한세대학교 교수 및 기획실장/ 신학연구소장
미국 베데스다대학교 총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신학위원장
아시아태평양신학협의회(APTA) 신학위원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 부회장
사단법인 국민희망실천연대 공동대표
한국교회희망봉사단 공동단장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직전회장
현 교회성장연구소 대표이사
현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저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예수 우리의 기쁨」, 「종말의 시작」, 「세계 오순절 성결 운동의 역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