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일 경기 가평의 축령산 산행에 나섰다. 초겨울이라 기온이 낮았지만 아직은 눈이 내리지 않았고 땅도 얼기 전이라 마지막 가을산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산길을 재촉했다.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을 여러차례 가보고 또 주변의 골프장도 가보면서 축령산을 먼 발치에서 바라본 적은 여러번 있었지만 본격 산행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 축령산이 우리 가족에게 특히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 한 가지가 있다.
2017년 아들이 대학입시 재수를 하게 됐을 때, 마땅한 대안도 없었고 우리 부부로서는 가까이서 돌볼 처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떠올렸던 대안이 기숙학원이었다. 수도권에 위치한 기숙학원 두어곳을 찾은 뒤 현장답사를 간다 시설을 알아본다 해서 점찍은 곳이 B학원었다.
B학원은 강남과 종로에 있었지만 기숙학원은 산좋고 물 좋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축령산 자락에 있었다. B학원이 기숙학원으로 쓰고 있는 건물은 과거 삼성그룹에서 연수원으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해 기숙학원에 아들을 입교시킨 우리는 철철이 서울에서 학원을 오가길 여러 차례, 내겐 생면부지의 땅이었지만 아들이 그곳에 들어간 순간부터 그곳과 엮이게 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한 학기 두학기가 지날때쯤 오간 횟수도 10차례에 가까울 정도로 쌓여 어느새 낯 익은 동네로 바뀌었다.
B학원으로 가는 길을 이리 저리 바꿔 다닐 정도로 주위 지리감도 밝아졌고 학원이 자리잡고 있는 수동은 우리에겐 친근한 동네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2학기가 다 가고 수능시험이 다가올 무렵 수동으로 가는 길은 우리 부부에게는 즐거운 나들이길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암담하기도 했고 가슴 한구석이 휑했던 그해를 끝내고 기숙학원 1년 살이를 마친 아이를 태워오던 그날 난 만감이 교차하는 걸 느꼈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니 무척이나 기쁘고 또 짧지 않은 1년의 격리생활이 아이에게도 여러가지로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하니 그 세월이 상념으로 뭉게뭉게 피어올라 머리 속을 메웠다.
그로부터 꼬박 한 해를 더 보낸뒤 아이는 미국 플로리다 소재 대학교에 입학했으니 고교생활을 마치고 대학을 찾아가기까지 다른 아이들보다는 긴 시간을 보냈지만 그 기억은 훨씬 또렷이 남게 돼 많은 추억과 얘깃거리를 가족에게 남긴 셈이다.
코로나로 힘겨웠던 2020년이 다 지나가고 겨울의 문턱에 이르러 모처럼 얻은 짧은 휴가를 이용해 산행에 나선 것이 수동시절을 떠올리는 계기가 됐다. 그 시절을 떠올리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고 또 수동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지만 축령산은 언젠가는 한번 오르리라 생각했던 것이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목동 집을 나서 내부순환도로를 따라 네비가 안내하는 대로 길을 따라가는데 그 안내된 길이 2-3년전 우리 부부가 늘 다니던 그길이다 보니 산을 찾아가는 길이 낯설리가 없었던 것. 그날 오후 1시55분쯤 산행을 본격 시작했으니 1시를 조금 넘긴 대낮에 수동면을 가로질러 축령산 산 들머리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잊을 수 없는 지형지물 하나는 수동에 있는 B학원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석고개'란 야트막한 고개를 하나 지나야 하는데 고갯길을 지나는 순간 그 해 1년치 기억이 송두리째 소환되는 바람에 감회가 새로웠다.
축령산은 평소 주변을 오갈 기회를 갖게 되면서 익숙한 산 가운데 하나였지만 사실 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초행길이어서 초겨울 산행이란 사실을 더해 조금은 우려스러운 산행길이었지만 일행이 3명이나 됐기 때문에 산행하기엔 결코 빠르지 않은 오후 2시 '스타트'가 망설여지지는 않았다.
축령산 자연휴양림이 자리잡은 산 입구를 통과하면서 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를 길잡이 삼아 산골짜기쪽 사면을 따라 닦여 있는 임도를 따라 정상 산행길을 재촉했다. 임도를 통해 손쉽게 정상에 오른 뒤 조금은 가파고 험준한 것으로 알려진 능선길을 따라 내려올 계산이었다.
산행이 시작됐을 때 기온은 영하의 추위였지만 겨울 외투를 껴입고 오른 길이라 추위로 인해 불편하지는 않았으나 6부능선쯤 이르렀을 때 귀의 통증이 너무 심해 도저히 산행을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가족중 2명이 그런 증상을 호소해 어쩔수 없이 쉬면서 맨손체조라도 해서 몸 컨디션을 정상화한 뒤 갈 요량으로 속도를 줄였다.
한동안 귀와 머리의 저체온 현상에 따른 통증이 지속됐지만 모자를 쓰고 운동으로 몸의 열기를 올리자 통증이 가시기 시작해 산행을 재개할 수 있었다. 양지바른 쪽 산사면에 내리쬐는 햇살은 따스했지만 탁트인 비탈면이나 능선위에선 칼바람이 얼굴을 때려 겨울산행의 어려움을 실감했다. 886미터 축령산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가 만난사람이라곤 단 2명이 전부였다.
먹이를 찾는 살찐 까마귀들이 삼삼오오 떼지어 날아다니며 까옥 까옥~ 내지르는 소리가 축령산 산록을 뒤덮은 적막함을 부술 뿐 절대 고요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사방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정상에 도착하자 남자 등산객 또 한명이 보였지만 그 후로는 인적이라곤 단 1명도 없는 겨울산을 가족 구성원 3명이 쉼없이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임도를 통해 600여미터 높이의 축령산 능선에 오른 뒤 2~300미터 구간의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산행은 힘에 부치지도 않고 구간이 험해 산을 타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어서 어찌보면 축령산 산행의 서막에 불과하다. 2시간에 못 미쳐 886고지에 다다르자 사실 산행은 거의 다한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놨었다. 하산길은 일사천리로 막힘없이 빠른 시간내에 돌파할 수 있을 것이고 아무리 늦어도 해가 떨어지기 전 차를 세워둔 휴양림의 주차장에 닿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산세를 전혀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오산이었다. 정말 축령산 정상에서 남이바위를 거쳐 휴양림에 이르는 하산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길고도 먼길이자 난코스가 곳곳에 숨어 있는 험지 그 자체였다.
사실 축령산은 북한산이나 설악산 처럼 바위산이거나 산세가 가파르고 험해서 오르기 힘든 산이 아닐뿐더러 높이도 886미터에 불과, 악산이라고 하긴 힘들다. 그만큼 오르내리는 길이 어렵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족이 하산길에 이 산을 달리보게 된 건, 우선 사전 조사나 준비가 전혀 없었고 오르고 내리는 코스 계획을 애초 무리하게 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오후 1시55분에 산행을 시작했고 쉬운 오르는 길 어려운 내리는 길 컨셉으로 산행을 계획한게 작용해 하산길 마음이 급해지다 보니 무리가 따랐던 것이다. 축령산 정상에서 자연휴양림에 이르는 능선길 하산코스는 결코 만만하게 볼수만은 없는 난코스 중 난코스였다. 막상 산을 타보고 난 뒤에 드는 생각이었다.
축령산 최대의 난코스라고 할 수 있는 정상~남이바위~수리바위~자연휴양림으로 연결되는 코스는 한 마디로 쥐라기에 번성했던 초식공룡 용각류의 우툴두툴한 등줄기 같은 형상을 한 '공룡능선'으로 표현할 수 있다. 등줄기를 따라 톱니바퀴 같은 바위지형이 끝없이 연결돼 있어 등산길은 물론이고 하산길도 무지 어려워 자칫 잘못하면 조난을 당하기 십상인 곳이다.
등산길 곳곳에는 이어지는 길이 끊긴데다 지형간 표고차가 커서 바위에 기둥을 박아 로프를 달아두거나 바위능선에 격자형 쇠를 박아 발 짚을 데 없는 가파른 길을 금속지지받침에 의존해 오가도록 한 코스가 계속 이어진다. 지형이 이렇다 보니 속도를 내기가 어려워진다. 여기에다 가을철 산록의 나뭇잎들이 낙엽이 돼서 바닥 거득히 떨어져 짚는 발걸음 발걸음이 낙엽에 미끌리기 쉬운 조건이었다. 그러니 하산길은 더욱 더 속도를 못낸다.
축령산이 품고 있는 내력은 이렇다. 축령산은 봄에는 서리산 정상의 철쭉꽃, 여름에는 바위와 숲이 조화된 시원한 계곡,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 겨울의 설경이 좋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에 사냥을 왔다가 산짐승을 한마리도 잡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는데 몰이꾼이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산신제를 지내야 한다'고 했다. 이성계는 산정상에 올라 산신에게 제를 지낸 후 사냥에 나서 멧돼지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때부터 '고사를 올린 산'이라 해서 축령산(祝靈山)이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