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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속에서 예수님을 의지하라 누가복음 8:22~25 240628 금요설교
이중표 목사 + 홍문수 목사
잠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신비입니다. 인간은 일하므로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므로 행복을 얻습니다. 우리가 일하면서도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은 잠자면서 만나게 됩니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
우리가 이른 아침부터 헤매며 수고의 떡을 먹는 것이 헛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됩니다. 병들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가장 큰 고통이 밤에 잠을 못자는 것입니다. 신경이 쇠약하면 잠이 안옵니다. 마음이 괴로우면 잠이 안옵니다. 그래서 잠을 잘 자는 것은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우리 마음이 근심에 싸이면 잠을 못잡니다. 남을 미워하면 잠을 못잡니다. 내 속에 과거의 억울함과 한이 서려있으면 잠을 못잡니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면 잠을 못잡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수면제가 1년에 7백억정이 팔린다고 합니다. 하루에 1900만개가 팔리니까 1900만명이 매일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잠을 빼앗긴 현대인의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수면제를 먹어야만 잠이 오는 분이 있습니까 주께서 주시는 잠을 자시기 바랍니다. 현대인들이 고도의 문명속에 살아가는 은혜를 입었지만 상대적으로 심령이 번민하고, 괴롭고, 답답해서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자는 비극을 받았습니다. 과거를 후회하고 탄식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서로 싸우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영혼이 건강해야 잠을 잘 잡니다. 죄 지으면 잠을 못잡니다. 죄는 잠을 빼앗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잠은 천국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잠자는 곳이고 지옥은 잠 못자는 곳입니다. 고통하느라고 잠을 못자는 곳이 지옥입니다. 부부가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잠을 잘 수 없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죄지은 자는 밤에 두려운 공포심 때문에 잠을 못자며 꿈속에서도 두려움에 떱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죽인 자, 도적질 한 자, 악한 자들은 어느 곳에 가도 쉴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는 죄사함의 은총은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잠을 잘 자지만 노인들은 잠을 잘 못잡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잠을 잘 자는 것은 큰 복입니다.
흔히 우리 인생을 항해로 비유하곤 한다. 우리 인생은 잔잔한 호수가 아니라 거친 풍랑이 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갈릴리 바다를 항해할 때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사건이 나온다. 그들에겐 풍랑을 잔잔케 할 능력이 없었다. 오직 예수님만이 풍랑을 잔잔케 하신다.
이 사건은 실제 사건인 동시에 상징적 의미도 담고 있다.
보통은 ‘갈릴리 ‘바다’(Sea of Galilee)라고 불렸던 갈릴리 호수는 긴네렛, 게네사렛, 디베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예루살렘 북쪽 96km 지점에 위치한 호수는 얼마나 큰가 하면, 남북으로 약 21 km 동서로 약 11km이고 둘레는 53km나 된다. 수심은 26~43m이고 수면이 지중해보다 209m 정도 낮다. 그리고 주변 지형이 아주 특이하게도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으로 물이 증발되면서 수면의 온도가 올라가고 공기가 희박해진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산 위의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아직 온기가 있는 수면과 온도 차, 기압 차가 나게 되는데, 이때 산 위의 차가운 공기가 협곡을 통해 수면 위로 내리치면서 돌풍이 발생한다. 이 돌풍은 매우 변덕스럽고 불규칙적. 그래서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이 애를 먹곤 한다.
본문의 상황도 전혀 예상치 못하는 가운데 갑자기 돌풍이 불어 닥쳤던 것.
눅8:23(하) “…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이것이 인생의 현실. 갑자기 이런 저런 고난의 광풍이 불청객처럼 불쑥 불쑥 닥쳐와 큰 풍랑을 일으킨다. 대비할 수 없다.
거친 풍랑이 이는 가운데 배가 흔들린다. 그 배는 겨우 10여 명 끼어 탈 수 있는 작은 배다. 그 작은 배가 거친 풍랑으로 곧 뒤집히거나 파선할 것만 같다.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가 그린 「갈릴리 바다의 폭풍」(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e, 1633)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 풍랑 가운데 당황하며 전전긍긍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배에는 예수님도 함께 타고 계셨다(눅8:22). 예수님이 타고 있었는데도 그 배가 광풍을 만났고 거친 풍랑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예수님이 탄 배도 풍랑을 만나듯,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고난이 면제되는 게 아니다.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누구나 고난을 당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오히려 더 많은 고난을 당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공통적인 고난을 당하는 데다 신앙 때문에 당하는 조롱과 핍박이 보태지기 때문이다.
본문을 계속 보면 좀 이상하다. 풍랑 속에서 제자들이 두려워 떨며 허둥대고 있는데 예수님은 뭐하고 계시나? 눅8: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 ” 그 난리가 났는데도 태평하게 계속 주무시는 게 참 이상합니다. 배에 물이 들어와 난리가 났으면 벌떡 일어나서 제자들을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닌가?
태평하게 주무시는 예수님을 통해 깨닫는 사실은, 예수님에게 풍랑이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는 것. 제자들 중 베테랑 어부 출신 몇 명이 있었지만 그들조차 두려워할 정도로 풍랑이 거셌지만 예수님은 전혀 동요하시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목적은 그들의 믿음을 훈련하길 원하셨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 많은 고난을 당했던 다윗이 이렇게 노래한다.
시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의인이 된 성도들도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고난을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성도에게 항상 관심을 집중하시고 도와주신다는 사실이다.
시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마치 엄마가 아기에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봐 지켜보고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하나님도 성도에게 항상 관심을 기울이신다.
본문에서 중요하게 드러내는 것은 제자들이 당신을 깨우고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는 것. 달리 말하면, 요청하기를 기다리셨다는 사실. 신앙은 주님과의 관계다. 일방적이 아닌 쌍방적인 관계다. 상호 교제하고 사랑하면서 돈독한 관계가 형성된다.
초신자 때는 간혹 이런 생각을 한다. “주님은 전지전능하시니까 미리 아시고 그냥 도와주실 수 있을 텐데, 뭐 그리 복잡하게 기도하라고 할까?” 그런데 성경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게 바로 기도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신앙도 더욱 커지고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커져간다. 그게 바로 풍성한 신앙생활의 모습이다.
다윗은 이렇게 증거한다. 시34:17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하나님이 성도를 보고 계시지만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바라신다. 기도하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이런 차원에서 예수님도 제자들이 기도하기를 기다리셨던 것이다.
본문을 계속 읽어 보면 제자들의 행동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관찰할 수 있다. 처음에는 자기들의 경험과 실력으로 풍랑을 이겨보려고 했다. 그러나 모든 게 허사였다. 물은 계속 불어나고 배가 흔들린다.
그런데 인간적인 절망은 빠를수록 좋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절망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스펄전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어부 출신 제자들은 목수 출신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도저히 죽을 상황이 되어 깨운다.
눅8:24(상)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 ”
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해 주십니까?
눅8:24(하)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풍랑을 행햐 말씀하시니까 금세 잔잔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세와 능력으로 잔잔케 하신 겁니다.
그러고 난 후 본문이 드러내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보라.
눅8: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그동안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말씀도 듣고 이적도 보았으면 하나님의 아들 전능자이심을 믿어야 되는데 믿음이 작다는 책망이다. 아마도 이 사건으로 인해 제자들의 믿음이 부쩍 자랐을 것.
우리도 마찬가지. 이제는 문제가 크든 작든 처음부터 주님께 갖고 나아가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은 어떤 문제보다도 크신 분이다. 인생 살면서 세상의 풍랑이 닥쳐올 때 이기고 승리하는 방법은 오직 ‘믿음’과 ‘기도’뿐이다!
믿음은 기도하게 한다. 성경은 이와 같은 믿음의 기도를 누누이 강조한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확신 가운데 간절히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확신을 갖고 간절히 기도하면 놀라운 일로 응답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인생의 풍랑에 봉착했을 때 확신의 기도, 그리고 간절한 기도로 승리한 인물이 있다. 다윗과 히스기야다.
다윗은 사울 왕의 핍박을 피해 다녔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힘들어졌다. 혼자 몸도 아니고 가족과 부하들까지 챙겨야 했다. 사울은 군대를 풀어 전국을 샅샅이 뒤져 다윗을 찾아내 죽이려고 한다. 그래도 잘 이겨냈는데 어느 날 불현 듯 두려움이 몰려온다. 사울에게 곧 잡혀 죽을 것만 같았다. 혼자서 궁리하다 국경을 넘어간다(삼상27:1).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적대 국가이므로 그곳으로 망명하면 안전하리라 생각한 것. 아기스 왕에게 투항했고 시글락 지역을 하사받았다. 육신은 편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기스 왕에게 아부까지 하려니까 너무 괴롭다. 사울의 핍박 풍랑 피하려다 더 큰 풍랑을 만난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하나의 풍랑을 만난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려고 하는데 다윗에게 그 전쟁에 합류하도록 명령한 것. 거부할 수 없어서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따라가긴 했지만, 심각한 상황. 이스라엘의 차기 왕이 될 사람이 동족을 치는 전쟁에 참전하다니! 다급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아기스 왕의 신하들의 마음을 충동시킵니다. 그들은 다윗이 변심해서 이스라엘 군대와 연합하면 큰일 난다고 항의한다. 결국 아기스 왕이 다윗에게 돌아가라고 요구한다. 아마 다윗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
3일 만에 시글락에 돌아갔는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 아말렉 족속이 침노해서 노략질을 하고 불을 질러 잿더미가 됐다. 게다가 부녀자들과 자녀들을 끌고 갔다. 그 참상을 본 다윗과 부하들은 넋을 잃고 운다. 한참 울다가 부하들이 분이 나서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한다. 그때 다윗이 정신 차린다. 내가 그 동안 무슨 짓을 한 거지? 사울 핍박 풍랑 피하려고 연거푸 풍랑을 만나던 끝에 초대형 풍랑을 만난 다윗은 그제야 회개하고 하나님께 매달린다.
삼상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그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새 힘을 주신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아말렉을 친다. 마침내 그들을 섬멸하고 부녀자들과 자녀들을 그대로 구하고 재물도 되찾는다. 게다가 전리품까지 챙겼다. 놀라운 승리였다. 풍랑이 몰려올 때 하나님을 찾고 간절히 기도하면 이렇게 승리할 수 있다.
히스기야 왕이 중년에 불치병에 걸렸다.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가 곧 죽을 테니 신변을 정리하고 유언이나 남기라고 말씀하신다. 그 상황은 초대형 풍랑과 같았습니다. 그의 사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나라가 앗수르의 위협으로 위태로운 상황인데다 왕위를 이을 아들도 없었다. 그때 히스기야가 기도한다.
사38:2~3 “2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벽으로 향했다는 것은 세상 방법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했음을 의미한다. 그가 통곡하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사38:5~6 “5 ..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6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그는 치유되었고 15년 수명 연장을 받았다. 결국 왕위를 이을 아들도 낳고 그의 생전에 나라도 안전할 수 있었다.
인생의 바다를 항해할 때 풍랑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하나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절대 풍랑이 크고 거칠다고 겁먹지 많아야 한다. 풍랑이 크고 우리 모습이 조각배와 같아 보여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이 그 어떤 풍랑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기에 괜찮다.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으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Fl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 1933~1945 재임)이야기.
그는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인생의 큰 풍랑을 만난다. 그 전까지는 승승장구했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 로스쿨을 졸업한 엘리트였다. 일찍이 변호사로 활동하다 젊은 나이에 상원의원이 되고 38세에는 부통령 후보가 된다. 그런데 이듬해 갑자기 소아마비가 발병한 것. 그는 절망 가운데 칩거한다.
그 때 아내 엘리나(Anna Eleanor Roosevelt, 1884~1962)가 루스벨트의 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가 그치고 쾌청해진 어느 날 휠체어를 밀며 정원으로 나갔다. 하늘이 맑고 꽃향기가 가득해서 기분이 좀 나아졌을 때 아내가 루스벹트에게 말을 건낸다. “여보, 보세요. 비가 온 후에는 이렇게 맑은 날이 오잖아요. 당신도 좋아질 거예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겁니다.” 그는 아내의 말이 고마웠지만 비현실적인 말에 대꾸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고 당신만 힘들게 할 텐데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한단 말이오?” 아내는 정색하며 말했다. “아니, 그럼 내가 당신의 다리하고 결혼했단 말이에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루스벨트는 열심히 재활했고 3년 후 전당대회에 목발을 짚고 나타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수년 후에 뉴욕 지사가 되었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런데 당선되자마자 그에게 또 하나의 큰 풍랑이 닥친다. 대공황이었다. 실업률 25%로 길거리에는 실업자들이 흘러넘쳤다. 그는 확신 가운데 국민들을 격려했다. “오직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그는 이렇게 해서 대공황을 극복하면서 4선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2차 대전까지 승리로 이끈다. 한편 아내 엘리나는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퍼스트레이디로 존경받고 있다. 그들은 인생의 풍랑을 이기는 데는 확신 가운데 기도하는 것밖에 없음을 증거해 준 크리스천 부부인 셈.
크고 작은 풍랑이 곳곳에서 닥쳐온다. 그 가운데 우리는 마치 ‘조각배’에 타고 전전긍긍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방불. 그러나 명심하라! 우리 인생의 배에는 예수님이 타고 계신다.
때로는 그분이 마치 잠을 주무시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나?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는 믿음으로 기도하기 바란다.
이제부터 작은 풍랑이든 큰 풍랑이든 제일 먼저 주님께 갖고 나아가 간구하시기 바란다.그래서 전능자의 능력으로 계속 승리하면서 멋진 인생 항해를 해 나가기 바란다.(민찬기목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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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인도에서 수고 하시는 이 선교사님 늘 디설연을 애용하고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