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 수화-정주영(수화통역사, 기독병원 약사)
한 개의 언어를 더 한다는 것. 그것은 그만큼 남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수화는 정주영(27)씨에게 특별한 기쁨을 준다. 소통과 교감의 기쁨이다.
ꡒ농아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외국인 같은 느낌이 들죠. 정말 독특한 농아인만의 문화가 있어요.ꡓ
정씨는 ꡐ수화ꡑ라는 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그들을 장애인이 아닌 외국인에 비유했다. ꡐ수화ꡑ는 ꡐ일대일 단어 치환ꡑ 정도의 부차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언어라는 것. 그래서 농아인은 ꡐ수화라는 언어ꡑ를 사용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영어나 중국어 기타 등등의 언어처럼 말이다.
모두가 수화하면 청각장애인은 장애인이 아니다
현재 광주기독병원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는 정씨는 올해 수화통역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하나 더 갖게 됐다.
ꡒ졸업했던 99년 우연히 수화교육을 한다는 포스터를 봤어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죠.ꡓ
시작은 단순했지만 올 초 시험을 치르고 수화통역사가 됐다.
병원에서 약사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에 수화가 유용할 때가 많다. 농아인이 병원을 찾게 되면 동사무소에 영어를 쓰는 외국인이 방문할 때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ꡐ수화 할 줄 아는 사람 없소?ꡑ라는 말이 터져 나오는 것.
ꡒ가끔 청각장애인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데, 그럴 때마다 불려 다녀요.ꡓ
이미 그는 병원 내에서 비공식적으로 수화통역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년부터 병원이나 관공서에는 수화통역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그냥 돕는 마음으로 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수화통역을 직업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ꡒ그냥 봉사의 의미가 아니라, 수화통역이 외국어 통역사처럼 일정한 보수를 받는 직업이 된다면 수화에 더욱 많은 노력을 쏟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ꡓ
수화통역사가 많아질수록 농아인이 사회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사라질 것이다. 모든 사람이 수화를 할 수 있다면, 청각장애인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다.
통역하려면 먼저 마음과 문화부터 이해해야
ꡒ수화는 국어와 전혀 다른 문법체계를 가진 정말 다른 언어예요. 예를 들어 수화는 조사가 없어요. 또 소리로 말하는 언어와는 다르게 표정이나 몸짓이 풍부하거든요.ꡓ
표정이나 몸짓은 의사소통 수단 중 음성언어만큼 중요한 수단이다. 농아인들의 수화와 건청인들의 수화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ꡒ농아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어요. 영어 통역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듯이 수화통역을 제대로 하려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ꡓ
농아인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과 많이 접해야 한다.
ꡒ제가 아는 어떤 분은 농아인 친구를 사귄 후 수화 실력이 엄청나게 좋아졌어요. 친구의 생각을 알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작용한 거겠죠.ꡓ
그녀는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웃고,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사람과 소통하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는 그녀. 자신도 모르는 새 사람들 사이의 ꡐ다리ꡑ 같은 존재가 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