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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문경시 마성면 고모산성 아래의 꿀떡고개. 옛 성황당이 온전히 남아 있다. 위태로운 관갑천 잔도를 지난 영남대로는 꿀떡고개를 넘어 문경새재로 들어간다. 박창희 선임기자 |
- 유곡역 고려시대 역도체계의 중심
- '토끼비리' 왕건 설화로 유명
- 조령관 아래 책바위 장원급제 전설
- 자녀 합격 비는 기도처로 인기
- "새재 폭 3~4m 흙길이 관광 경쟁력"
문경새재는 웬 고개인가. 구부야 구부야 넘는 눈물고개다. 눈물을 감추고, 눈물을 삼키며 넘는 고개다. 지난 역사는 그랬던 것 같다. 이 고개가 있어 서리서리 설운 날들을 넘어갈 수 있었고, 고개 너머의 희망을 키울 수 있었다. 구부야 구부야 고개를 넘으면, 삶을 둘러싼 한바탕 설움도 탁 풀어졌다. 그렇게 풀어지는 자리에 아리랑이 피어났고, 문경새재도 예외가 아니다.
문경새재. 이 고개가 있기에 우리나라는 진짜 고개다운 고개 하나를 가질 수 있었다. 백두대간이 굽이쳐 지리산으로 내닫는 중간 어름에 새재가 놓여 한민족의 삶이 도타워졌다. 영남과 기호, 한강과 낙동강이 분기하는 지점도 이곳이다. 고개도 이쯤되면 세계문화유산 감이다.
■유곡 찰방역과 유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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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새재의 제3관문인 조령관. 이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충주 땅이다. |
상주 옛길은 경북선(김천∼영주) 철로를 건너 문경시 모전동으로 들어선다. 문경 시외버스정류장 앞에서 충북 보은군으로 통하는 국도 3호선과 만나고, 공설운동장을 지나 1㎞쯤 오르자 공평동 표석골 마을이다. 문경새재 가는 길은 왕복 4차로로 확장돼 있다.
길 양쪽으로 공평·유곡들이 보인다. 옛날 유곡찰방 소속 1300여 역졸들의 군량을 충당하던 둔전(屯田)이다. 둔전 북쪽 끝자락의 장승백이 마을을 거쳐 국도 3호선을 따라 곧장 가면 유곡동에 닿는다. 유곡역은 고려시대 개경을 중심으로 한 역도체계의 중심역으로, 덕통·낙동·구미·지보·소계역 등 문경, 상주, 안동, 구미 등지의 19개 역을 관할했다. 역리 1238명, 노비 67명, 상등마 2마리, 중등마 5마리가 배치됐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옛길박물관 안태현 학예사는 "지금은 문경새재가 유명하지만, 옛날엔 유곡역이 길의 중심에 있었다"면서 "문경시에서 유곡역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곡동의 점촌북초등학교 앞 옛길가에는 관찰사, 찰방, 역리 등의 선정비와 불망비 15기가 도열해 있다. 비석이 전하는 '불망(不忘)'의 사연은 희미해졌으나 옛길의 표석으로는 이만한 게 없다.
유곡동 고갯마루에는 마패 모양의 유곡역도 사적비가 국도변에 허허롭게 서 있다. 마패 속에는 네 마리의 말이 짝을 지어 어디론가 힘차게 달리고 있다.
■토끼비리와 꿀떡고개를 넘어
유곡역을 벗어난 옛길은 3번 국도 왼쪽 아래로 잠시 비켜난 뒤 불정동 원골로 들어간다. 원골은 고려시대 원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4차로 국도에 중부내륙고속도로까지 주변의 길들이 어지럽다.
원골을 지나자 영강이 나타난다. 견탄(犬灘)을 건너 산허리로 올라서자 그 유명한 관갑천 잔도(串甲遷 棧道), 이른바 토끼비리가 불쑥 나타난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 진군하다 길을 잃었는데 토끼가 달아나면서 벼랑길을 열어 주었다는 데서 연유한 지명이다. 2007년 명승 제31호로 지정돼 명성이 높아졌다. 예나 지금이나 깎아지른 벼랑길이 길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길이 400여m의 잔도를 지나자, 눈앞에 고모산성이 다가온다. 1500년 전,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 차지하려고 쟁투를 벌인 산성이다. 산성마루는 시야가 확 트여 천혜의 전략 요지임을 실감케한다.
산성 초입에서 꿀떡고개(일명 돌고개)로 발길을 옮긴다. 주막촌이 복원돼 있고 느티나무를 거느린 성황당이 남아 있다. 마성면 오천리의 한 주민은 "과거길 선비들이 꿀떡을 사 먹으며 합격을 기원했던 곳"이라고 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눈앞에 문경새재를 품은 주흘산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흙길이 곧 경쟁력이다
고모산성에서 문경읍까지는 약 12㎞. 영강으로 흘러드는 조령천을 엿보며 신현리, 외어리를 지나 3번 국도를 따라 새재로 들어간다. 새재길은 이화령길과 분기되는 문경새재도립공원 입구에서 시작된다. 공원 출입문에 초정 권창륜 선생이 쓴 '嶺南大路'(영남대로) 현판이 걸려 있다. 영남대로가 되살아날 듯 기백이 넘치는 글씨다. 본 시리즈의 제자(題字)도 여기서 가져왔다.
새들도 넘기 어렵다는 새재(鳥嶺)로 들어서자 문득 아리랑 한자락이 귓전을 파고든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홍두깨 방망이 팔자 좋아/큰애기 손목에 놀아난다/ 문경새재 넘어갈 제/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문경새재 아리랑 중)
조선통신사가 오갔고, 수많은 영남의 선비들, 장꾼들, 민초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허위허위 넘어갔던 그 고개를 오늘은 낭창낭창 넘는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은 천험의 요새인 새재를 버리고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다가 한양을 손쉽게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새재의 관문은 3개다. 선조 27년(1594년)에 계곡 중턱에 제2관문(조곡관)을 쌓았고, 숙종 34년에 아래와 위에 1관문(주흘관)과 3관문(조령관)을 축조했다. KBS 드라마 촬영장 옆 비석껄에서 1.1㎞ 오르면 옛 숙박시설인 조령원 터가 나오고, 조금 더 오르면 신·구 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던 교구정을 지난다.
조령관 바로 아래의 책바위는 요즘 자녀 합격을 비는 기도처로 인기다. 조선시대 이곳을 넘나들던 선비들이 책바위 앞에서 소원을 빌면 장원급제한다는 전설이 학부모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꽤 괜찮은 스토리텔링이다.
새재길은 폭 3~4m의 탄탄대로 흙길이다. 날만 새면 포장도로가 생기는 우리나라에서 문경새재가 흙길로 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안태현 학예사는 "새재길을 흙길로 남겨둔 게 오늘날 엄청난 경쟁력이 되고 있다"면서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잘한 일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문경새재가 한해 1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원천이 원형을 간직한 흙길에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고갯마루인 조령관을 넘어서자 충북 괴산 땅이다. 이쪽에는 시멘트 포장이 돼 있다. 자동차가 고갯마루턱까지 올라온다. 문경 쪽과 달리, 걷는 사람은 거의 없고 차들만 낑낑 용을 써 댄다. 가물가물 한양이 보일 것도 같다.
# 고개의 원조 하늘재 길
- 서기 156년에 열린 옛길, 흙길 보존 충주서 탐방을
문경에 갔다면 새재만 볼 것이 아니다. 새재보다 더 연원이 깊은 하늘재 길(계립령)이 있기 때문이다.
문경에서 한양 가는 길은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하늘재 길을 주로 이용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아달라 이사금 3년(156년)에 계립령(하늘재의 옛 이름) 길이 열렸다고 돼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고개다. 이 고개에 새겨진 역사의 수레바퀴 자국과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을 텐가.
길이 열린 후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영남 탈환을 위해 넘어갔고, 삼국통일의 꿈을 안은 김춘추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나아갔다. 후삼국의 궁예가 전투를 위해 이 길을 지났고, 망국의 한을 안고 금강산으로 들어간 신라 마의태자와 덕주공주도 이 고개를 넘어갔다. 그후에도 수많은 민중들의 지게 행렬이 역사의 흐린 실루엣으로 능선에 어룽져 있다.
하늘재 길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까지 이어진다. 관음세계와 미륵세계를 잇는 길! 역사와 인문학, 자연이 터 놓고 심오한 이야기를 할 것만 같다.
이 길은 충주 땅에서 오르는 게 좋다. 문경새재와 달리, 충주 쪽에는 흙길(약 2.5㎞)이 보존돼 있고, 문경 쪽은 아스팔트 포장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하늘재 길은, 옛길은 모름지기 흙길이어야 함을 가르쳐준다. 양쪽을 걸어보니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흙 기운이 천년, 2천년의 숨결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과 아스팔트가 그 숨결들을 모조리 차단한 것의 차이다.
길의 초입인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는 미륵대원지(미륵리 사지)가 있다. 높이 11m의 미륵부처가 북향으로 사바세계에 은은한 미소를 뿌리고 있다. 이곳이 고려시대 이래 원터(숙박시설)였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하늘재 길 중간쯤에는 '김연아 소나무'(사진)가 있다.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보여준 '비엘만 스핀' 자세와 흡사하다.
충주시 문화관광해설사 권혁춘(62) 씨는 "하늘재 길은 월악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며 현재 충주시에서 옛길 역사탐방코스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2천년 역사가 녹아 있는 왕복 1시간 길이다"고 소개했다.
협찬: 화승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