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6년
소슬한 늦가을바람이 휩쓰는 낙양성문에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른 아침 성문을 빠져나온 두 필의 말이 곧장 동편으로 질주하더니 숭산 북쪽의 관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마상에는 털옷으로 머리까지 온통 감싸고 얼핏 보아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두 사람이, 단정히 앉아 제법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말에 채찍을 가하고 있었다. 양인의 등에 비스듬히 멘 장검의 검수劍穗가 칼바람에 춤을 추었다.
“오늘 중으로 이백 리를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좌측의 기수가 우측의 사람에게 말했다.
“우리 말들이 너무 불쌍하구나. 하루에 이백 리를 달려야 하다니.”
“날 저물기 전에 일찍 여관을 잡아서 쉬도록 해요. 아씨를 이토록 고생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 말 하지 말거라. 너는 나의 친 자매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말들이 걱정되는구나.”
“전장에서 단련된 명마들이어서 그 정도는 끄떡없을 거예요.”
두 사람은 묵묵히 한참 동안 달리다가 이루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의 부모님이나 조부모 얘기를 평소에 한 번도 하지 않다가 뜬금없이 조부를 뵈러 간다고 하니, 이상한 생각이 드는구나.”
“아씨, 죄송합니다. 말씀 드리기 어려운 고충이 있습니다. 혹시 이번 여행길에서 아씨도 그 까닭을 아시게 될지 모릅니다.”
여미아는 잠시 숨을 돌린 후 부언했다.
“하지만 혹시 의혹이 생기더라도 묻지 마시고 저를 믿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너는 참으로 비밀이 많은 아이야.”
“비밀은 무슨 비밀이 있겠어요? 이 세상엔 비밀이 없습니다.”
그녀는 이루하를 돌아보며 그녀의 표정을 살피다가 말을 이었다.
“참된 비밀은, 우리 구주 예수님뿐입니다.”
“그렇구나. 듣고도 믿지 않고 보고도 믿지 않으며 알고도 믿지 않으니, 비밀 중의 비밀이 바로 그분인 것 같다.”
“그래요. 예전에 고양원 대덕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제아무리 설득하고 애원하고 알려주고 주지시키고 인식시키고 각인시키고 기억시키고 납득시키고 이해시키고, 잡히도록 손에 쥐어주어도, 백번 죽었다가 깨어나기까지 끝내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다고요.”
“호호호! 그 분이 그렇게 여러 어구를 사용해서 말씀하셨단 말이지?”
“네! 호호호호호!”
이루하와 여미아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찬바람에 흩어졌다 모아졌다 하기를 수차례나 되풀이했다. 인적조차 드문 길에서 두 여인은 마음껏 웃어 제쳤다. 모든 울분과 속상했던 일들이 죄다 아침 안개처럼 흩어져버리고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해질 때가 아직 멀었을 무렵 두 여인은 매우 붐비는 큰 성읍에 들어섰다. 이 성읍은 대하大河(황하)의 북쪽과 여러 길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고, 행인들의 말투를 들어보니, 하남과 하북의 많은 사람들이 들끓는 것 같았다.
두 여인은 조용하면서도 규모가 있고 깔끔해 보이는 객잔을 찾아냈다. 객잔 입구에는 커다란 편액이 소슬바람을 맞으며 손님들을 반기고 있었다.
滿 樂 客 棧 만 락 객 잔
“즐거움이 가득 찬 객잔이라? 이름이 좀 이상하지 않느냐?”
이루하가 들어가면서 여미아에게 말했다.
“즐거움이 가득하면 좋은 게 아닌가요?”
“넌 너무 순진해서 탈이야.”
“아무튼 손님들이 붐비는 것 같으니, 일단 들어가 봐요.”
그 때 사환이 안에서 나와 두 여인을 맞으며 인사하다가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손님, 어서 오세······.”
“왜 그리 놀라세요?”
이루하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묻자 사환이 얼버무리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아, 아닙니다···, 아씨들이 생전 처음 보는 절세가인들이라서.”
“얼굴을 옷과 모자로 감싸고 있는데,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요?”
이루하가 다소 냉정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 얼굴이 다 보이진 않아도, 어쩐지 경국지색 같이 느껴집니다.”
이루하는 속으로 은근히 기분이 좋았으나, 한 마디 냉담하게 뱉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방이나 안내하세요.”
사환은 두 여인이 등에 검을 걸머지고 있었으므로 무림武林의 여협女俠들이라 생각했는지,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무림의 여인들은 대부분 성깔이 까다롭고 거칠다는 것을 사환은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여인은 말을 사환에게 맡기고, 방에 들어가 피곤한 몸을 잠시 눕혔다.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이루하는 잠깐 잠이 들고, 여미아는 단정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기도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 때 밖에서 여인들의 호들갑스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여기서 멋진 낭군이라도 만난다면, 즐거움이 가득하지 않겠느냐?”
“얘는 시집 못가 환장한 여자 같구나.”
“히히히! 낙樂이 가득 찬 곳엔 악惡도 가득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거야.”
“얘네들이 밖으로 나오니깐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못하는 말이 없구나.”
마지막 여인의 음성은 좀 점잖게 느껴졌다. 그 음성이 다시 말했다.
“의젓한 공자님들 앞에서 무슨 추태냐?”
젊은 아녀자들의 소란스런 수다에 깨어난 이루하와 여미아가 잠시 바깥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이, 여인들의 목소리와 발자국소리는 어디론가 멀어져갔다.
잠시 후, 여러 사람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사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이 방 둘이 아주 정갈하고 조용합니다.”
그 때 다른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저쪽 방은 어떻습니까?”
이루하와 여미아는 그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하마터면 문을 열고 내다볼 뻔했다.
다시 사환이 말한다.
“아, 그곳이 더 아늑하긴 한데요, 좀 전에 다른 손님들이 드셨습니다. 하지만 이 두 방도 아주 좋습니다.”
“아씨, 그럼 이쪽으로 들어가십시오. 저희들은 여기 맞은 편 방에 머물겠습니다.”
뒤의 목소리를 듣고 이루하와 여미아는 다시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루하가 소곤거렸다.
“어쩜, 목소리가 이리도 똑같으냐?”
“그러게 말이에요.”
“휴! 내 마음이 온통 그 분께 가 있나 보구나. 그래서 남의 목소리까지 오인하고.”
그 때 밖에서 옥을 굴리는 듯한 아리따운 여인의 음성이 울리며 이루하와 여미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공자님, 노고를 끼쳐드려 너무나 죄송해요. 저녁 식사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니 좀 쉬세요.”
그녀의 음성에는 마치 신부가 낭군에게 말하는 듯, 이상하고 교태스런 어감과 느낌이 배어 있었다.
이루하와 여미아는 다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쩜!”
여미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속삭였다.
“아씨, 제가 나가서 한 번 확인해볼까요?”
“아니다. 세상에 목소리 비슷한 사람이 한 둘이겠느냐? 그 분들이 어찌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겠느냐?”
“그러게 말이에요.”
두 여인은 실소를 흘렸다.
“아마도 대갓집 신혼부부가 하녀들과 하인들을 거느리고 장인 댁과 친정 나들이라도 가는 것 같구나.”
이루하는 다시 몸을 눕히고 여미아 역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한참 후 식사 시간이 되어 두 여인은 방에서 옷을 갖춰 입고 나서려다가 어떤 목소리에 몹시 놀랐다.
“사비우四比羽형! 형은 식사 때나 어느 때나 되도록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말고 나와 함께 해주시오. 물론, 아씨에게서 눈길을 돌려서는 아니 되오. 만에 하나 아씨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닥친다면, 우린 목숨을 보장받지 못하오.”
“아, 예! 조영 형! 명심하겠수다.”
우직하고 걸쭉한 한 음성이 먼저 말한 사람에게 대답했다.
여미아는 문을 반쯤 열다 말고, 아연한 표정으로 이루하의 낯을 쳐다보았다. 이루하 역시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이루하가 서둘러 문을 다시 닫으며 속삭였다.
“우리가 착각한 게 아니로구나. 무슨 일이지?”
“글쎄요. 우리가 밖으로 나가서 그분들을 만나 뵐까요?”
잠시 생각을 굴리던 이루하가 대답했다.
“아니다. 우선 우리 정체를 숨기고,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그 분들이 여기까지 왔는지 살펴보자꾸나.”
“식사하러 나가면 만나게 될 텐데요.”
“하는 수 없지. 귀찮은 일 피하려면 변장하는 수밖에. 방금 전 사환도 우릴 귀찮게 하지 않았느냐? 절세가인 어쩌고저쩌고.”
“아씨 말이 옳아요. 변장하는 게 좋겠어요. 하지만 이미 사환이 우리 얼굴을 보았는데 어쩌죠?”
“얼굴을 감싸고 있어서 잘 보진 못했을 거다. 그리고 아까 내가 좀 냉정하게 나무랐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어.”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이루하와 여미아는 강호의 변장술을 십이분 이용해 얼굴을 꾸몄다. 화장품과 기타 도구로 색다르게 바꾸니, 두 사람의 낯은 완전 딴판이 되었다. 두 여인은 서로를 변장시켜 주고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리따운 소녀들이 어느 덧, 나이가 좀 들어 보이고 다소 순박해 보이는, 그런데다 어설프게 멋까지 낸 시골 아낙네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목소리와 눈빛만 조심하면 되는데, 우리의 옷차림과 걸음걸이가 마음에 걸리는 군요.”
“어쩔 수 없지. 좀 달리 꾸미는 수밖에.”
두 여인은 새로운 옷을 꺼내 입었다.
이루하와 여미아는 다시 서로를 보고 희희낙락거리다가 방문을 열고 나섰다. 주루로 들어가 여미아가 목소리를 바꾸어 음식을 주문했다.
이루하는 사방을 휘둘러보며 조영을 찾았으나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참 동안 두리번거리다가 겨우 어떤 사람에게 그녀의 시선이 멈추었는데, 그녀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조영이 새신랑 차림으로 의젓하게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맞은편에는 어처 극시아가 새색시처럼 앉아 가끔씩 그윽한 눈길로 조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곁의 다른 상에는 사비우가 하인 차림으로 앉아 있고, 극시아의 시녀들이 함께 어울려 음식을 먹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여미아도 그들 일행을 발견하고 웃음이 나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여미아가 소곤거렸다.
“여기엔 분명히 우여곡절이 있어요. 어쩌면 극시아도 나와 같은 목적으로 여행하는지 모르겠어요.”
“두 사람이 영락없는 신랑신부니, 부럽구나.”
이루하의 속삭임이다. 이루하는 조영과 극시아가 마치 신랑신부처럼 다정하게 웃음을 교환하며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에 은근히 샘이 나서, 한바탕 골려주고 싶기도 했다.
여미아는 이루하의 이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조그맣게 속삭였다.
“아씨, 경거망동해선 안돼요. 조심해야 해요.”
“네가 이젠 날 훈계하는구나.”
“죄송해요. 아씨.”
이루하와 여미아는 정체가 탄로날까 두려워 더 이상이 조영 쪽을 바라보지 않고 조용히 음식 먹기에만 열중했다.
그 때 주루의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의 손님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눈으로 장내를 쑥 훑어보고 한쪽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루하는 마침 출입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들의 안광이 예사롭지 않은 게 무림의 인물들 같았다. 그들은 죄다 이십 대로 보이는 장정들로서 얼굴이 미끈했으나 순박해보이진 않았다.
이루하는 이상하게도 그들에게 신경이 가서, 은밀하게 그들을 살펴보았는데, 그들은 이따금씩 조영과 극시아 쪽을 훔쳐보는 것 같았다. 이루하의 예감에 그 장정들은 결코 좋은 사람들 같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정말 조영과 극시아를 엿보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여미아에게 속삭였다.
“아루! 방금 들어온 세 남자를 너도 주의해 보았니?”
“아루”는 이루하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편의상 임시로 여미아에게 붙인 이름이다.
“네, 저도 보았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이에요. 하지만 지나치게 마음을 쓰면 판단력이 흐려져요.”
“보기엔 꼭 흑도의 강도들 같은데, 혹시 조영공자와 극시아를 표적으로 삼고 미행하는 게 아닐까? 어쩐지 그런 예감이 드는구나.”
“사비우까지 있으니 세 사람 정도로는 어림없을 거예요.”
여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루하의 말에 동의하는 듯, 한 발짝 건너 뛰어 말했다.
“만에 하나 극시아나 시녀들 중 하나를 인질로 잡는다면?”
“아마 극시아도 장정 몇은 당해낼 만한 무예가 있을 거예요. 시녀들도 마찬가지고.”
실내에는 사람들의 떠들썩한 목소리들이 매우 소란스럽게 들리는데다, 두 사람은 조용히 속삭였으므로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이루하와 여미아가 식사를 마치고 주루 밖으로 나오니, 사방은 캄캄했다. 여기저기 걸린 등불들만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스산하고 차가운 늦가을바람에 두 여인은 따스한 방안이 그리워 종종걸음으로 숙소를 향했다.
“아씨,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리가 이렇게 변장하고 숨어 다니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방안에 들어와 화롯불 가에서 여미아가 말했다.
“어째서?”
“우리가 조영공자님과 극시아 마마를 감시할 이유가 없잖아요?”
“하긴 그렇구나. 하지만, 그 강도 같은 자들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혹시 그들이 조영공자 일행을 노리고 있다면, 우리가 숨어서 도와야 하지 않을까?”
“차라리 그분들에게 수상한 자들의 존재를 귀띔해 드려, 그분들이 스스로 대비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게 더 나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서로 모른 척하기로 약속한다면, 우린 그분들과 동행하면서도 암암리에 도울 수 있을 거예요.”
“네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구나. 그럼 우선 분장을 지울까?”
“그래요. 그분들이 묵고 있는 방으로 밤에 은밀히 찾아가기로 해요.”
분장을 지우고 나니 얼굴이 개운했다. 거울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넌,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어쩜 그렇게 얼굴이 예쁘니?”
이루하가 새삼 여미아의 낯을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찬탄의 말을 쏟았다.
“과찬이에요. 아씨가 저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요.”
“그거야말로 거짓말이구나.”
“사람의 아름다움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각자가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요. 난초와 모란화의 아름다움을 상호 비교해 우열을 가릴 수 없잖아요?”
“하긴 네 말도 옳은 것 같구나.”
이루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널 보는 사람들마다 일견지하에 크게 놀라고 매혹을 당하는 것 같아. 반면에, 사람들이 날 볼 때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사람의 혼을 가로채는 그 신비로운 매혹은 어디서 나오는 거니?”
“아씨도 새삼스럽게······.”
여미아가 말끝을 흐리다가 다시 이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죽도록 사모하고 사랑하는 분은 저의 임금이신 그 분뿐이에요. 그 분은 얼마나 매혹적이고 아름다우신지 그분을 생각하고 쳐다볼 때마다 저는 황홀경에 빠지곤 해요. 어쩌면, 그분이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저에게도 그분의 아름다우신 성품을 아주 조금 나누어주셨을 거예요. 제게서 혹시라도 어떤 아름다움이 보인다면, 그건 저의 본바탕이라기보다 제 안에 계신 그분의 영에서 나오는 걸 거예요.”
“네 안에는 어진님의 영이 계시는데, 어째서 내 안에는 없는 거냐?”
“아씨 안에도 계세요. 아씨도 예수님을 진정 임금으로 섬기고 계시잖아요?”
“하지만 내게는 왜, 너에게서 풍기는 그런 신비로운 매력이 없느냐?”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추측하기로는, 어진님의 놀랍고도 신비로운 사랑과 아름다우심에 도취하는 만큼 그에 정비례해, 그런 아름다움이 우리 내면에서도 나타나지 않나 해요. 말하자면, 일종의 반사라고 할까요? 달빛이 햇볕을 반사하듯이, 어진님의 그 영광스런 빛을 받고 본 만큼 외면으로 표출하는 거예요.”
여미아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특별한 은총인지도 몰라요.”
“그럼 어진님은 너와 나를 차별하고 있다는 거니?”
“그건 아니에요. 어진님께서는 아씨께, 저에게 없는 지위와 명예, 부귀 등을 주셨잖아요? 전 비천한 하녀이고. 어진님은 공평하게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대덕님께 들었어요.”
이루하가 미심쩍은 듯한 얼굴로 여미아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밖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
“실례합니다. 안에 계십니까?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여관 사환의 목소리였다. 손님의 내방을 알리는 말에 두 여인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혹시나?
여미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건장한 체격의 한 남성이 온화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얼굴이 눈에 익었다.
“누구······?”
여미아가 말을 맺기 전에 상대가 먼저 대답했다.
“낙양성 무후군 장수 무유서입니다.”
“아!”
그 때서야 여미아는 상대의 얼굴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늘 보던 때와는 달리 평복을 입고 있었다.
“장군께서 웬일로······?”
“폐하의 심부름을 받잡고 왔습니다. 혹시 안에 이루하 아가씨께서 계신가요?”
“네, 계십니다만······.”
이 때 이루하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문을 열고 나왔다. 무유서가 이루하를 보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폐하께서 두 분을 모셔오라고 제게 이르셨습니다.”
이루하가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니, 남녀유별인데 제가 어떻게 아씨 방으로?”
무유서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사양했다.
“아뇨, 괜찮아요. 들어오셔서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세요.”
이루하는 무유서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무유서는 두 여인이 앉은 곳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에 점잖게 앉았다.
“장군님, 괜찮으니 이리 화롯불 가까이로 오십시오. 거긴 너무 춥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가 굳게 사양했다.
“폐하께서 왜 우릴 데려오라 하셨나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좀 곤란해요. 여기, 나의 비자 여미아가 일이 있어서 지금 계성 쪽으로 가는 거예요.”
(다음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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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4. 4. 5. 식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