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번 안내양 내 친구는 (20240418)
김동국 시인의 시 <개미>의 2연은 ‘76번 시내버스/ 복잡한 사람들 틈에’로 시작한다.
76번 시내버스에 화살처럼 시선이 꽂혔다. 학창시절에 기억하는 동화사 노선의 버스가 76번이었다. 75번은 영남대학교, 32번은 필자가 사는 옥포, 31번은 사문진 주막촌으로 불리는 화원유원지 노선이었다.
75번 버스를 생각하면 여고친구 K가 생각난다. 그는 영대를 다녔고 아르바이트로 그 당시 영대 노선인 75번 버스차장(안내양)을 했다. 아르바이트 할 수 있는 곳을 찾으면 많이 있을 텐데 하필이면 왜 그 번호를 선택했을까. 다른 사람이라면 부끄러워서라도 그 번호만큼은 피했을 텐데.
서부정류장에서 탑승하여 종점까지 가면서 친구가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승객들이 많아 흔들리는 차 안에서 요금을 받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는 또 재활병원에서 지체·정신 장애자들과 몇 년을 동고동락 하며 살았다.
그랬다. 그는 수녀원에 입소하기 위해 나름 그렇게 가장 힘든 곳에서 생활하며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를 포항에 있는 수녀원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부모가 자식을 시집보내는 마음이 이랬을까,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나는 하나님을 모르고 천주님을 모른다. 그는 그 길이 가야할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봉쇄수녀원인 앞산 가르멜 수녀원에서였다. 면회시간이 아님에도 면회시켜줄 때까지 가지 않을 거라고 떼를 썼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며 직접 만든 쿠키를 내놓으며 절차를 거쳐 승낙이 떨어지면 면회시켜주겠단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해맑은 얼굴을 한 그녀가 나타났다. 텔레비전에서 보듯 영어(囹圄)의 몸이 된 분과 면회를 하는 것처럼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가림막이 낯설었다. 그것도 잠시 고요하고 맑은 모습에 출렁이던 내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살만한 세상이라고, 그는 가르멜 수녀원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가 걸어온 길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기에 고양이 눈물만큼은 이해하려고 했다.
그를 만나고 나오는데 성당의 저녁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그 종소리를 밝고 걸을 수 없어 그 자리에 멈추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75번 버스는 없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아직도 그 번호의 버스가 또렷이 남아있다. 보고 싶다. 잘 지내겠지.
첫댓글 제 질녀 한 녀석도 수녀원에 수도 중이랍니다. 봉쇄수도원이 막혀 있는 공간이 아닐 겁니다. 친구가 신앙으로 인해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네
편안해 보였어요
수녀가 되기 위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