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을 다녀와서 (2)
여섯 시간여 만에 꼬부랑길에서 벗어나 계곡 평지를 반시간여 동안을 달리는데
강줄기가 나오고, 그 주변에 산들이 기이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어 방비엥의
아름다운 경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얼마 후 버스는 넓은 황토광장 한편에
멈추어 섰다. 옛날에 경비행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라고 하였다.
다시 뚝뚝이를 타고 2일 밤을 묵을 실버나가 호텔로 이동하였다.
호텔마당에 내리니 바로 앞으로 쏭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으로
아름다운 산들이 자리하고 있어 전망이 매우 좋았다.
방비엥은 수도 비엔티안에서 100여㎞ 떨어져 있으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작은 도시라고 하였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산들과 이 주위를 끼고 흐르는
쏭강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렇게 산과 강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방비엥(Vang VIENG)은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 낸 뽀족뽀족한 모양의 산들이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이러한 풍광은 중국 계림을 닮았다 하여 소계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하였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물가가 싸고 저렴한 숙소가 많아 배낭 여행자의 천국이요,
자유로운 영혼들의 안식처라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지역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아름다운 산지를 배경으로 잔잔하게 흐르는 쏭강에서 즐기는 튜빙(Tubing)과
카야킹(Kayaking)이 유명하며, 다양한 트래킹 프로그램이 있어 평화로운
여행에 활기를 더해 주는 지역이기도 하단다.
방비엥에 접어들자 나타난 절경
쏭강변에 자리한 실버나가 호텔
호텔 로비로 들어서니 직원들이 차를 권하여 오랜 시간 버스에서 시달려 피곤한
가운데 한 잔의 차로 피로를 달래보았다. 배정 받은 203호실로 올라가 짐을
정리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시내풍경은 시골 장터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았다. 번화스럽지 않고, 소박하면서 무언가 부족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거리도 오토바이와 삼륜차, 뚝뚝이(작은 봉고트럭)와 승용차들이 한가로이 다니고
있었다. 라오스에는 영업용 택시가 없다고 했다. 도로변의 가게여건도 열악한
상태였다. 식당으로 이동하다 주황색 꽃으로 덮인 지붕이 특이하여
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였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칸캄(Khan Kham)이라는 식당에서 삼겹살 구이로 식사를 하였다.
더운 지방에서 생산된 것이라 그런지 아사기 상추가 연하고 맛이 좋아
삼겹살을 싸 먹는데 그만이었다. 일행들은 40도짜리 라오스 소주가 맛이 특이하다며
잔을 기우리며 이국의 밤을 즐겼다. 식당에서 나와 취기가 발동했는지 라오스 맥주를
먹어야 한다며 맥주 집에 들러 취기를 더 했다. 한 병에 1,600원이라고 했는데
한국의 반값 정도였다.
호텔 인근 방비엥 시가지 모습
삼겹살과 독한 라오스 술을 반주로 석찬
맥주 집에서 거리로 나오니 서구에서 여행을 온 젊은 청춘남여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으며, 또 술집과 식당에도 자리를 메우고 이국의 저렴하며 순수한 문화를 즐기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내일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 휴식을 취했다.
새벽 닭 울음소리에 잠이 깨었는데 사방에서 우는 소리가 나 닭을 키우는 집이
많은 것 같았으며 우리의 6⋅7십 년대 시골 풍경이 떠올랐다. 오늘은 여행 4일째
되는 날로 방비엥 지역에서 물놀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날이다. 그래서 물놀이
하는데 편안한 복장인 슬리퍼와 반바지, 반팔 옷, 모자 등으로 복장을 갖추었다.
물에 들어가면 차다고 9시 반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어 아침에 풍경을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다행스러웠다. 날이 밝기 시작하자 호텔 앞으로 나가 쏭강과
산이 어우러져 연출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설레는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일출이 시작되면서 앞산에 연한 햇빛이 드리우고, 푸르른 쏭강으로
긴 모터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지나갔다. 강 건너 황토 길에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소떼, 그리고 노를 젓는 뱃사공도 주변 풍경과 어울려
아름다운 피사체로 다가왔다.
어제 저녁 때 보다 오늘 아침이 스모그 끼가 적어 풍경의 디테일이 살아났다.
많은 여행객들이 빼어난 경관에 감탄하며 여행의 흔적을 사진으로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호텔 앞강에는 위⋅아래에 다리가 있는데 위에 있는 나무다리는
사람과 오토바이만 통행이 가능하고, 아래다리는 뚝뚝이 정도의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데 돈을 내야 한다고 하였다.
호텔 앞에 펼쳐진 쏭강의 아름다운 풍경
두 대의 뚝뚝이 차에 나누어 타고 몬도가네 재래시장 입구로 이동하였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장옥시설과 물건진열대, 상품의 손질 상태 등이 열악하고
고급스럽지가 못하였다. 시장여건도 불결하고 시설이 초라하였다. 주로 상품은
과일류와 야채류, 의류와 신발, 공구류, 수산물과 농산물 등 이었고, 한쪽에
고기집이 있었는데 좌판대의 고기에 쉬파리가 새까맣게 날아 다녔다.
위생적으로 불결한 상황에서 여인네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있어 우리도 못살 때
집안에 파리가 많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이 시장은 원래 아침에만 여는
시장이었는데 관광객의 증가로 종일 여는 시장으로 발전했다고 하였다.
몬도가네 재래시장 입구
몬도가네 재래시장에서
시장에서 나와 찾아간 곳은 탐쌍 동굴 인근의 쏭강변 빈지 주차장이었다.
강 뒤쪽으로 급경사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의
작은 목교를 건너 뾰죽하게 우뚝 솟은 작은 석산이 있었다. 산 아래에 동굴이
있었는데 탐쌍 동굴이라고 하였다. 안쪽에 황금빛의 큰 불상이 있었고,
우측 중간 부위에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는 종유석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이 동굴울 코끼리 동굴이라고도 한단다. 그리고 그 아래에 노란 와불이
안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 있었다. 왼편에 종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미제
탄피로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탐쌍동굴
탐쌍동굴의 코끼리 종유석
이 동굴에서 나와 메마른 논을 지나 산 밑쪽으로 이동하니 탐낭 동굴이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동굴 입구에서 점심 메뉴로 제공될 꼬치를 굽느라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몬도가네 시장에서 구입해온 과일을 먹으면서
순번이 오기를 기다였다. 잠시 후 동굴 앞으로 이동하여 헤드랜턴을 지급 받고
가이드로부터 탐험요령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물이 차가워 심장이 약한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위통을 벗고 바지는 긴바지를 입고와 무릎 위로 걷어 올리고 슬리퍼를 신었다.
카메라는 가지고 갈수 없다하여 가이드에게 맡기고 촬영을 부탁하였다.
일행들이 물가에 모여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튜브를 지급 받았다.
튜브를 타고 탐험 출발
이 동굴은 에메랄드 빛 물속에 잠긴 수중 동굴로서 입구가 낮아 사람이 서서
들어갈 수 없어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튜브에 몸을 뉘인 채 와이프와 나란히
선두에서 줄을 당기며 좁은 입구로 이동하였다. 입구로 들어가려는데 나오던
사람이 균형을 잃어 튜브가 뒤집어 지드니 물속으로 빠져 한참 있다 나왔는데
당황한 모습으로 균형을 잡느라 허둥대었다.
들어가는 동굴 입구는 수면과 30∼50㎝ 정도로 낮아 안전요원이 머리를 조심하라고
하였다. 작은 랜턴 불빛과 길 안내용 밧줄에 의지한 채 캄캄한 동굴 안으로
들어섰는데 랜턴 불빛에 드러나는 천정에는 작은 종유석이 있었다. 줄을 당기며
동굴 벽에 부딪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줄을 당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잘못해서 줄을 놓치면 옆으로 밀리어 균형을 못 잡고, 또 나오는 팀과
교차할 때 엉키는 경우도 있었다.
와이프의 균형을 잡아주며 끝 쪽으로 들어가니 안내요원이 자갈 둔덕에 튜브를
올려놓고 따라오라 하여 따라가니 작은 통로가 나 있었다. 슬리퍼를 준비해 온
일행들은 벗어진다고 맨발로 들어와 자갈통로를 걷느라 발바닥이 아프다고 하였다.
한 바퀴를 돌아 원 위치에 이르러 다시 튜브를 타고 줄을 당기며 밖으로 나왔다.
동굴 내의 종유석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단지 동굴 속의 하천으로 튜브를 타고
들어갔다 나오는 것인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리송하였다.
동굴체험을 끝내고 현지식인 볶음밥 도시락과 빵, 닭 꼬치와 과일 등으로 오찬을
하였다. 빵 맛이 좋은 편이 아니고 꼬치도 닭고기 두 점에 당근, 오이, 양파 등의
야채로 맛이 없어 많이 남겼다.
탐험 후 오찬 메뉴
이곳을 뒤로하고 간 길을 되 집어 나와 방비엥 시내 상류의 쏭강 카야 킹 출발
장소에 도착하였다. 카야킹 투어를 하다 전복될 수 있다며 귀중품을 넣으라고
방수 팩을 주었다. 부부동반 1조로 하고 이에 현지 안전요원이 한 명씩 탑승하였다.
남자들은 앞에서 노를 젓고, 여자는 중앙에 앉아 있고, 안전요원은 뒤에서 노를
저었다. 이렇게 해서 방비엥 여행의 하이라이트 쏭강 카야킹 투어가 시작되어
쏭강의 물살과 주변의 운치를 즐기며 노를 저어 하류로 내려갔다. 카메라를 방수
팩에 넣어 두고 노를 젓느라 멋진 장면을 촬영하지 못해 미련이 남았다.
처음에 사진을 몇 컷 찍는다고 하다 맨 후미로 떨어졌는데 사진기를 방수 팩에
넣으라는 가이드의 성화에 촬영을 접고, 좀 빠르게 노를 저어 중간 지점에서 선두로
나섰다. 강물이 얕은 곳은 배 밑이 돌에 글키는 소리가 났는데 대부분 카야 킹을
하는데 수심이 양호한 편이었다. 강에 나와 고기와 고동을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를 젓는데 힘들지는 않았다. 그동안 아령으로 팔 근육을 단련시킨 덕분인 것
같았다. 카야 킹은 우리 숙소인 호텔 앞에서 끝이 났는데 오지 사람들이
1⋅2⋅3위로 들어왔다.
수려한 절경에서 카야킹을
목적지에 도착하여
카야 킹 투어를 끝내고 툭툭이에 올라 호텔 아래쪽 다리를 건너는데 통행료를
지불하고 건너 비포장도로를 달려 블루라군으로 이동하였다. 비포장도로에서
흙먼지가 너무 심하게 날려 손수건으로 안면을 가리고 호흡을 해야 했다.
도로 양편의 초목들은 황토를 뒤집어 써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도로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매일 먼지 때문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다.
지금 우리나라 같으면 물을 뿌리라고 야단을 치면서 집단행동을 할 것이다.
자전거나 도보로 다니는 사람들의 고초도 말이 아니었다.
블루라군으로 이동하는 동안 우측으로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 낸 기묘한 모습의
산들이 아름다웠다. 블루라군이란 푸른 물이란 뜻인데 프랑스 식민지 시대부터
휴양지로 이용되어 왔다고 하였다.
현장에 도착하니 많은 서구의 청춘 남녀가 수영복 차림으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하천에 보를 막아 물을 가두어 흘러넘치게 하였는데 수심이 5미터 정도라고 하였다.
물은 석회수라 파란 코발트색을 하고 있었는데 매우 깨끗해 보였다. 물가에
큰 나무 하나가 있었는데 나뭇가지가 물 쪽으로 벋어 이에 올라가 뛰어 내리며
스릴을 만끽하고 있었다. 높은 2단의 가지는 대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높이가 5미터는 되었다. 또 나무에 맨 긴 밧줄 한 가닥을 붙잡고 그네 타듯이 하다
물속으로 뛰어 내리기도 하였다. 하얀 살결이 터질 것 같은 비키니 차림의
아가씨들이 몸매를 과시하며 2단 가지위에 올라 과감하게 점프를 하고 있었는데
담력이 대단한 것 같았다.
옥빛의 물색깔이 아름다운 블루라군
나이가 많은 우리일행들이 젊은이들 속에 끼어 물놀이를 한 다는 것이 좀 어색한 것
같았지만 Wife와 여자 두 분이 1단의 나뭇가지에 올라 먼저 뛰어 내리었는데
물속에 떨어져 허우적거려 남자 가이드가 잡아 주었다.
나도 이국의 아름다운 곳에서 추억을 만들어 가기위해 나뭇가지에 올라섰는데
1단인데도 아래가 깊어 보였다. 숨을 고르고 물로 뛰어 내렸는데 팔을
세 번 젖으니 머리가 수면 위로 올라 왔다.
조금 있다 또 밧줄은 타고 뛰어 내렸다. 와이프도 여러 번 뛰어 내리면서 옥빛
석회수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벌말에 거주하는 여자 분은 나무 2단에서 여러 번 뛰어
내렸는데 열정이 대단하였다. 16명중에 5명만 물놀이를 체험하고 나오는데
주변 잔디밭에서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비키니 족들이 많이 있었다.
이곳을 뒤로하고 다시 비포장도로의 먼지를 맡으며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자유 시간을 가졌다. 나는 호텔 앞으로 나가 붉게 물들어 가는 황혼녘의 풍광을
담았다. 황혼 빛으로 물드는 강에는 긴 모터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오가고 있어
낭만적인 분위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
시내 식당으로 이동하는 동안 많은 서구의 젊은이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한국 여행객들도 많이 증가 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였다.
서구 젊은이 들 중 위통을 벗고 다니는 남자도 있었고, 비키니 차림으로 다니는
여자도 있었는데 정말 자유로운 도시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여행객들의 행태가
지속되어 라오스의 순수하고 소박한 사회정서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호텔에서 조망한 황혼 빛으로 물들어 가는 아름다운 풍경
휴가를 내어 장기간 체류하며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가이드가 서비스로 일정에 없는
마사지를 시켜 준다고 했는데 마사지 예약시간이 멀어 두어 시간 시내 쇼핑을
하며 자유 시간을 가지라 하여 거리를 거닐어 보았다.
거리에는 가로등도 많지 않았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꼬치나 호떡 등을 파는
노점도 있었다. 노변의 가게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주로 몸베치마와 반바지 등의 의류와 수영복, 모자, 슬리퍼, 썬그라스
등이었다. 한 시간 동안 전신 마사지를 받고 좀 개운한 기분으로
호텔로 돌아와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밤거리의 노점상
방비엥의 전신 마사지 샵
오늘은 라오스에 온지 5일째 되는 날로 먼저 젓갈마을로 이동하였다.
커브가 많은 도로를 달려 도착한 젓갈마을은 도로 양쪽 노변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에서 건조한 생선류와 젓갈을 진열해 놓고 아낙네들이 판매를 하고 있었다.
생각한 것 보다 상점이 허술하고, 규모도 작았지만 환경은 깔끔한 편이었는데
젓갈은 매우 짜다고 하였다.
수력발전을 위해 남름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수몰지역의 강제 이주민들의
생계대책으로 이곳 남름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팔도록 국가에서 조성해 주었다고
하였다. 남자는 남름호에서 고기를 잡고, 여자는 이를 손질하여 판매한다고
하였다. 남름댐은 우리나라 소양강 댐의 20배에 달하는 큰 호수로 많은 양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하였다.
젖갈마을 상점 모습
젓갈마을에서
마른 생선을 손질하는 젓갈마을 아낙네
젓갈마을을 떠나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조림지가 많이 보였다.
주로 평야지대가 이어 졌는데 농경지는 매우 적은 편이었다. 한 시간 정도 달린
버스가 휴게소에 멈추어 섰다. 용변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나라 코트라에서
지원하여 운영한다는 늘푸른휴게소 였다. 한국인들도 근무하고 있었다.
한국분이 진열된 상품을 설명해 주었는데 석청이 질이 좋다며 시식을 해 보도록
권하여 맛을 보았다. 집사람이 방향제를 구입했다고 하였다. 일행들도 과일
건조한 것과 야자나무로 만든 주걱 등을 구입하였다.
늘푸른휴게소는 한국국제협력지원단(KOICA)에서 한국관광객의 편의와 라오스
지역 발전을 위해 2013년 4월 5일에 설립 기증한 건물이라고 하였다.
이 휴게소는 군관계자와 지역주민들의 공동체 활동을 기반으로 지역 농산물
및 임산물 판매를 통한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수익금은
지역사회(11개 마을)의 발전에 사용된다고 안내판에 표기되어 있었다.
늘푸른휴게소에서 쇼핑
쇼핑을 끝내고 다음 장소로 향하여 가는데 모내기를 한지 얼마 안 된 논이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지나는 노변 인근의 마을들은 주변 환경이 깨끗하지 못하고 가게들도
어수선 하니 깔끔치 못했다. 열대지역의 주택 형태로 주로 2층에 주거시설이 있었다.
촌락 주변은 잡초가 무성하고 야자수가 몇 그루씩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안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 흙먼지에 찌들어 있었다. 전주와 전선도 어수선하게 여러 가닥으로
늘어져 걸리게 되어 있었다. 통신 케이블이 없어 선이 복잡한 것 같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농경지로 만들었을 곳인데 잡초가 무성한 채로 버려져 있는
실정이었다. 버스는 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강변 주차장에 멈추었다.
차에서 내려 다리를 바라보니 영화에서 보던 콰이강의 다리가 연상되었다.
이곳이 비엔티안에서 남쪽으로 23키로 지점의 남름 강변에 위치한 탕원유원지라고
하였는데 선상음식을 즐기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고 하였다.
작은 문을 들어서니 내려가는 계단 양쪽에 붉은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아래쪽 강에 부두시설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 상점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 배로 안내되었는데 배의 식탁에는 오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니 배가 강 상류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강변에는
가두리 양식장 시설이 있었고, 우리와 같이 선상 식사를 즐기는 여행객들의 배가
여러 척 있었다. 내가 10불을 내어 맥주를 구입, 반주를 하였다.
메뉴는 대나무 밥통에 찰밥이 나오고, 야채국신선로와 돼지갈비구이,
버섯야채볶음, 새우튀김, 부침개 등이 나왔다.
선상식사를 한 배에서 바라본 유원지 모습
선상에서 오찬
선상에서 특이하게 식사를 한 후 버스는 우리를 싣고 다음 목적지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넓은 도로가 나왔는데 일본이 지원해서 건설된 도로라고 중앙
분리대가 있는 왕복 4차선 도로였다. 도로가 개통된 후 땅값이 오르고, 도로변은
요지가 되었다고 하였다. 드넓은 평야지대가 초지로 방치된 상태였다.
태국과 같이 석회질의 토양이라 농작물이 안 되는 실정인 것 같았다.
큰 도로를 벗어나 샛길로 들어서 황토 길을 좀 달리니 소금마을이 나왔다.
버스가 멈춰 서자 어디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구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안으로 들어가니 짠 지하수를 퍼 올려 큰 가마에
넣고 불을 때서 소금을 만들고 있었는데 가마가 여러 개가 있었다.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소금을 보니 우리 천일염과 같이 하얗고 맛이 좋았다.
마을에서 작업량을 할당하여 공동으로 소금을 생산해 생계를 꾸려간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일행을 졸졸 따라다녀 껌과 사탕을 주니 떨어졌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용변을 보는데 돈을 내야 되었다. 가마에서 나오다 밀차에 도구를 싣고 소금작업을
하러 나가는 아줌마를 만나 촬영을 하였다.
소금을 만드는 가마가 있는 곳으로 이동
소금을 생산하는 가마에서
소금마을을 뒤로하고 찾아간 곳은 영혼의 도시란 뜻의 왓 씨앙 쿠앙(일명 불상공원)
이었다. 이 공원은 베엔티안에서 동남쪽으로 25키로 정도 떨어진 메콩강변에
자리하고 있었다. 불교와 힌두교 양식이 가미된 공원으로 1958년 루앙 푸 분레우아
술리앗(Luang Pu Bunieua Suliat)이라는 노인이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불교와 힌두교, 철학은 물론이고 신화와 우상까지 한데 합쳐 신비한 조합을
만들어 낸 도사였다고 한다.
매표 후 공원 내부로 들어가니 우측에 호박처럼 둥근 큰 조형물이 있었다.
사람 얼굴 모양의 큰 입속으로 들어가 좁은 계단으로 올라 내부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계단을 오르면 작은 구멍을 통해 지붕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공원 전체가
한 눈에 들어 왔다. 3층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전체 높이가 9.8피트라고 하였다.
각 층마다 조각상들이 있었으며 지옥과 천국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하였다.
공원 내에는 시멘트로 괴기스럽고 우스쾅스럽게 만들어진 불교와 힌두교를
상징하는 조각상들이 수 없이 많았다. 그리고 입구 좌측에 길게 누워 있는
거대한 와불이 눈길을 끌었다.
불상공원 입구의 원형 조형물
불상공원 전경
불상공원의 대형 와불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대통령궁 옆에 위치하고 있는 호파께우(Hophra Keo)
사원이었다. 이 사원은 1565년 세타티랏왕의 명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하였다.
왕도를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천도 할 때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지은 왕실 사원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779년 태국 샴 왕국의 침입 때 건물이
소실되었고, 에메랄드 불상도 약탈당했다고 한다.
약탈당한 불상은 지금 태국의 국보 1호로 지정되어 방콕의 왕궁사원에 안치되어
있다고 하였다. 회갑기념으로 태국에 여행을 갔을 때에 본 기억이 났다.
지금 건물은 1936년 프랑스에 의해 복원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원 앞 계단 양편에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었고, 벽면에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장식이 있어 시선을 끌었다. 정원은 프랑스식으로 조성된 것 같았고,
사원 안에는 큰 좌불상이 있었다. 그리고 국내 각 지역에서 모아진 불상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으며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었다.
호파께우 사원
이 사원에서 나와 도로 건너편에 있는 시사켓(Sisaket Museum) 사원으로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갔다. 화려하게 장식된 탑이 있는 정원을 지나 화랑문 안으로
들어가니 중앙에 본당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본당건물은 사각형의 회랑이
외워 싸고 있었는데 회랑에는 많은 양의 크고 작은 불상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1819년부터 1824년까지 아누윙왕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는데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고 하였다. 일부가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에 파괴 되었지만
중앙에 있는 사원 본당(Sim)은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한다. 이 사원은 총 6,840개의
불상이 있으며 18세기에 출판된 경전도 보관되어 있다고 하였다.
시사켓 입구
사원 중앙에 자리한 본전 건물
이곳을 뒤로하고 1957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하여 건립하였다는 독립기념탑 빠뚜싸이(Patousai)가 있는 광장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빠뚜싸이는 영어 표기로 Victory Gate(승리의 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기념탑 앞 광장의 공원에는 둥근 분수대가 조성되어 물줄기를 세차게 뿜어내고
있었으며 그 주변엔 야자나무와 붉게 꽃이 핀 대형화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분수대는 2004년 중국에서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하였다. 많은 여행객들이
역광으로 빛나는 분수대와 기념탑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하였다.
분수대를 지나 독립기념탑, 빠뚜싸이의 계단을 올라 7층 높이의 옥상에 서니
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다. 분수대 반대쪽 기념탑 앞으로 란쌍대로가 곧게 뻗어
있었는데 이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대통령궁 건물이 있다고 하였다.
란쌍의 란은 100만을 뜻하며 쌍은 코끼리를 뜻하여 란쌍은 100만 마리의 코끼리를
뜻하는 말이라 했다. 1300∼1500년에 이 지역을 다스리던 란쌍제국이 100만 마리의
코끼리 부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이 도시의 중심이 되는 거리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인근에는 라오스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지도자
카이손폼(Kaisonphon) 기념관과 민혁당 당사건물이 있었다.
빠뚜싸이 독립기념탑 앞 분수대에서
독립기념탑 옥상에서 바라 본 란쌍대로
공원 분수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라오스 불교의 본산으로 불탑 안에 석가모니의 유발(遺髮)과
가슴뼈가 소장되어 있다는 탓 루앙(That Luang) 사원이었다. 1566년 세타티랏왕(King
Settathilat)이 건립하였는데 탑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하였다.
위대한 불탑이란 뜻을 지닌 탓 루앙의 높이는 45미터에 이르며 라오스의 상징으로
국가문양에도 들어가 있다고 한다.
오후 4시가 넘어 문이 잠기는 바람에 관람을 못하였다. 라오스는 공무원이 16시에
퇴근한다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좌측으로 이동하니 황금빛의 대형 와불이 있는
왓 루앙 따이 사원이 있었는데 그곳은 들어갈 수 있었다. 담장 주변에 납골묘가
있고, 후문 쪽 한 면을 차지하고 와불(臥佛)이 자리하고 있었다.
탓루앙 사원 앞에서
탓루앙 사원 옆에 있는 황금와불
사원의 내부를 보지 못해 서운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한국 교민들이 타운을
형성하여 거주하고 있는 도심으로 이동한 후 서울식당에서 석찬을 하였다.
식사 후 메콩강 야시장을 보기위해 메콩강변을 찾아 갔다. 차에서 내리니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조성해 준 것이라고 하였다. 라오스 정부에서
한강을 벤치마킹하여 메콩강을 개발하였다고 했다. 공원 아래쪽에 강 건너 태국
땅을 바라보는 짜오아누봉 왕의 동상이 있었다. 란쌍 왕조의 마지막 왕이며 태국이
가장 두려워했던 라오스의 왕이었지만 결국에는 태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이 왕을 기리기 위하여
태국을 바라보게 건립하였다고 한다.
메콩강변 공원의 밤풍경
메콩강변에서
공원을 지나 강변도로에 오르니 2차선의 아스팔트길 한편에 죽 늘어선 가로등의
불빛이 아름다웠고, 강 건너 태국지역에도 불빛이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쪽으로 우리가 묵었던 돈찬 팰리스 호텔도 보였다. 차량 통행이 제한된
도로에는 산책과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으며 강변의
넓은 장소에서 많은 여인들이 활기찬 음악에 맞추어 에어로빅을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몇 사람씩 나뉘어 영롱하게 불빛을 밝히고 각종 물건을 파는
야시장의 정겨운 모습을 체감하며 쇼핑을 하였다.
늘푸른휴게소에서 12,000원에 구입한 야자나무 밥주걱이 이곳에서는 3,000원씩
하여 와이프가 두 개를 구입하였다. 휴게소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 같아
허탈한 감이 있었다. 야시장을 뒤로하고 강변도로를 따라 집결장소로 내려가며
메콩강의 밤바람을 맞으며 이국의 정취를 느껴보았다.
메콩강 야시장 풍경
이어 인근에 있는 마사지 장으로 옮겨 1시간 반 동안 전신마사지를 받고 개운함을
느끼며 귀국길에 접어들었다. 왓 따이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부치고, 한동안
정들었던 이나영 가이드와 석별의 인사를 나누고 출국심사장으로 이동하였다.
출국심사를 받고 여유시간이 있어 탑승 게이트 앞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얼마 후 개찰이 시작되어 진에어 016평에 탑승, 37E와 37F에 집사람과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비행기는 자정이 되어서 어둠에 묻힌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였다.
183석 규모의 B737-800기의 기내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각각 세 줄씩
좌석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좌석 사이가 좁아 앉아 있는데 불편하였다.
그리고 모니터도 없어 볼거리가 없으니 시간을 보내는데 지루하였다. 곧게 앉은
자세로 머리를 뒤에 기대고 잠을 청해 보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순간순간에 조금씩 잠이 들은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제공되는 음료수와
간식을 먹으면서 무료함을 잊어보기도 하였는데 거의 잠을 못 이루고 네 시간여를
비행하자 착륙 예고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후 기체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였는데
밖을 내려가 보니 지상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행기의 고도가 낮아지면서 지상의 불빛이 확연히 보이기
시작하드니 얼마 후 안전하게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두터운 겨울옷으로 갈아입고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을 빠져 나왔다. 대기 중이던 버스에 올라 열대지방의
라오스 여행을 떠 올려 보면서 집으로 향하였다.
이번 라오스 여행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배어나는 곳을 돌아보는 여정으로 다른 여행지에서 느껴보지 못한
순수함을 체감하였다.
라오스는 삶에 지친 영혼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순수의 나라인 것 같았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순수함은 하나의 이상이자 지친 마음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마지막 보루라 일컬어지는 라오스는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만큼 그곳 사람들의 일상에 순수함이 배어있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청정
여행지였다. 순박(淳朴)하지만 기품이 있는 라오스 사람들의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긴장과 경계심이 살아지는 동시에 삶에 지쳐있던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평온함 속에 소용돌이 역사의 흔적(痕迹)을 감추고 있는 세계문화 유산의 나라이며,
인도차이나 반도의 내륙에 위치한 고요한 나라였다. 또한 라오스는 태국, 캄보디아
등 주변국들에 비해 너무나도 소박(素朴)하고 평화로운 나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라오스는 사실 어느 나라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한다.
프랑스 식민지, 일제점령 시기 및 인도차이나 전쟁과 공산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의 평화를 유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려운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아
잘 보존되어 오고 있는 찬란한 란쌍왕국의 문화유산들을 돌아 볼 수 있었다.
특히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길에 늘어서 있는 고산준령(高山峻嶺)의
험준한 산맥은 길을 가던 여행자로 하여금 그야말로 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가고 싶게 만드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오래 동안 마음속에
잔잔한 여운(餘韻)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일행들은 대산상가 내에 있는 식당에서 동태찌개에
아침을 하고 헤어짐으로써 4박 6일간의 여정(旅程)을 무사히 마무리 하였다.
여행객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평화롭고
순박한 라오스의 아름다운 절경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