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ㄱ 가구 ㅡ 도종환 갈등ㅡ 김광림 감옥 ㅡ 강연호 강우 ㅡ 김춘수 거리를 혼자 걷고 있는 아내를 보았다 ㅡ 이창기 결혼 60주년을 기념해 ㅡ 정약용 공백기 ㅡ 권태현 꿈은 멀었다 ㅡ 우대식 그놈의 커다란 가방 때문에 ㄴ 남편ㅡ문정희 내 아내 ㅡ서정주 노부부 ㅡ 정호승 노인일기21 ㅡ 강우식 누에 치는 아내 ㅡ 정약용 늙어가는 아내에게ㅡ황지우 늙은 사내의 시 ㅡ서정주 ㄷ 닭이 우네요 ㅡ 詩經 도꼬마리씨 하나 ㅡ 임 영조 돼지고기 한 근 ㅡ 박형진 동문을 나서니 ㅡ 詩經 디즈레일리의 아내 마틴 루터의 아내 ㅁ 마틴루터의 아내 만점 남편 ㅡ 이은봉 면벽 배알도 없지 코딱지ㅡ 목상 ㅡ 김광균 무우청을 엮으며 ㅡ 임 홍재 ㅂ 바람 ㅡ詩經 바람의 말 부부 ㅡ 김소월.김종길.문정희. 오창렬.이기철.정가일.함민복.황성희 북을 치며 ㅡ 詩經 빙점 ㅡ 미우라 아야꼬 ㅅ 산다는 것 ㅡ 나 호열 생, 그 환한 충전 ㅡ 조 은영 숨결 ㅡ 이 홍섭 ㅇ 아내ㅡ 박필상. 홍 아내 걱정, 소 걱정 ㅡ김영만 아내는 푸른 강물이었네 아내 시편 ㅡ 이승현 아내에게 ㅡ 유금 .정약용 아내와 나 사이 ㅡ 이생진 아내와 다툰 날 밤 ㅡ 복효근 아내의 가방 ㅡ 아내의 눈물 ㅡ 조영환 아내의 손2 ㅡ 서정홍 아내의 손이 따뜻하다 ㅡ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 ㅡ 아내의 재봉틀 ㅡ 아이오와 일기2 ㅡ 황동규 안쓰러움 ㅡ 나태주 영진설비 돈갖다주기 에디슨 부부 오징어3 ㅡ 최승호 은행나무 부부 ㅡ 반 칠환 이부 ㅡ 장적 이십대의 마지막 아내 ㅡ 전남진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ㅡ 전윤호 인도소풍, 말라붙은 손 ㅡ 문 인수 ㅈ 장끼 ㅡ詩經 접기로 했다 정읍사 집을 나간 아내 ㅋ 코고는 아내 ㅎ 후회 흥부,부부상
가구 도종환 아내와 나는 가구처럼 자기 자리에 놓여 있다, 장롱이 그러듯이 오래 묵은 습관들을 담은 채 각자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일을 하곤 한다 어쩌다 내가 아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의 몸에서는 삐이걱하는 소리가 난다 나는 아내의 몸 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돌아 나온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아래위가 꼭 맞는 서랍이 되어 닫한다 아내가 내 몸의 여닫이문을 먼저 열어보는 일은 없다 나는 늘 머쓱해진 채 아내를 건너다 보다 돌아앉는 일에 익숙해져있다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아내의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모나코의 그레이스 켈리 왕비
갈등 김광림 빚 탄로가 난 아내를 데불고 고속버스 온천으로 간다 십팔 년 만에 새삼 돌아보는 아내 수척한 강산이여
그동안 내 자식들을 등꽃처럼 매달아 놓고 배배 꼬인 줄기 까칠한 아내여
헤어지자고 나선 마음 위에 덩굴처럼 얽혀드는 아내의 손발 싸늘한 인연이여
허탕을 치면 바라보라고 하늘이 저기 걸려 있다
그대 이 세상에 왜 왔지 ㅡ 빚 갚으러
감옥 강연호 그는 오늘도 아내를 가두고 집을 나선다 문단속 잘 해. 아내는 건성 듣는다 갇힌 줄도 모르고 노상 즐겁다 라랄랄라 그릇을 씻고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며 정오의 희망곡을 들으며 하루가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해가 짧아지네 아내는 제법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상추를 씻고 된장을 풀고 쌀을 안치는데 고장난 가로등이나 공원 의자 근처 그는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맨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신다 그는 오늘도 집 밖의 세상에 갇혀 운다
강우 김춘수(1922 - 2004)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사람이 왜 갑자기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보다 한 뼘 두 뼘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치 앞을 못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80세에 사별하고 3년 후에 부인의 뒤를 따른다
치매에 걸린 아내는 치매치료하는 병원에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나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알아보고 사랑을 고백
거리를 혼자 걷고 있는 아내를 보았다 이창기 후투티새는 낡은 간판과 기와지붕 틈새로 들판을 걷고 있는 아내를 보았다 그녀는 자기가 제 부리보다 작은 새끼를 잃은 최초의 새인 양 무언가를 생각해내려는 듯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두리번거렸다 아침에 둥지를 나서며 그녀가 혼잣말로 뭐라고 중얼거렸을 때 좀 더 귀담아들었어야 했다 작은 여울 앞에 서서는 날개를 압류당한 듯 자신의 가는 발목만 물그러미 내려다보았다 알에서 깬 새끼들과 뿔뿔이 국경을 넘어 다시 남쪽으로 내려갈 무렵이면 그녀의 무력한 기억도 온전치 못할 것이다 바람에 두근거리던 그녀가 날개깃을 쭉 펴고는 속 모를 들판의 일부가 되어 주저앉는다 무지개 때문이라고 둘러대겠지만 그녀의 웃음은 이제 목에 걸린 휴대폰의 진동 소리에도 화답하지 않는다
결혼 60주년을 기념해 정약용 60년 풍상의 바퀴 눈 깜짝할 새 굴러 왔지만 복사꽃 화사한 봄빛은 신혼 때와 같네 생이별과 사별이 늙음을 재촉하나 잠깐 슬프고 길이 즐거운 건 임금님 은혜겠지 오늘밤 뜻 맞는 대화가 새삼 즐겁고 옛적 치마에는 먹 흔적이 남아 있네 나눠졌다 다시 합해진 내 모습 같은 술잔 두 개 남겨 두었다 자손에게 물려주려네
고갱
공백기 권태현 아내가 죽었다 아내가 죽던 날 나는 처음으로 햇빛을 보았다 금빛 지느러미를 흔들며 나를 흔드는 아내의 유물을 깊이 껴안았다
아내가 죽었다 아내를 묻고 돌아올 때 산은 부쩍 키가 자라 있었고 새 한 마리가 강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물살이 두 팔 벌리는 강의 하단에 이르러서야 나는 알았다 산이 제 빛깔을 떼어내 강물에 띄워 보내고 혼자 황폐해지는 것을 아내가 늘 강가에서 살고 싶어 하던 이유를
그러나 아내는 죽어서 산이 되었다 아무도 찾아와 잡아주지 않는 손을 온몸으로 흔드는 작은 풀잎이 되었다 내가 바다로 합류하는 강의 하구를 딛고 등을 돌리자 비로소 산은 산의 소매로 내 발길에 매달려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다
아내가 죽었으므로 나는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집을 허문 빈 터로 돌아와 젖은 몸을 벗어도 벗어도 더욱 안쪽으로 젖어드는 바람을 만났다
아내가 죽었다 아내의 등을 밀어낸 눈초리들만 시퍼렇게 살아 있는 길을 나는 아내와 함께인 듯이 걸었다 열려 있는 문들 모두 지나고 돌아볼 것이 너무 많은 숲가에 이르러 내 몸의 나뭇잎들을 하나씩 떼어냈다
영화 너에게로 또다시 1990년
꿈은 멀었다 우대식 바람 피운 아내를 죽이는 꿈을 밤새 꾸었다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고 다시 머리를 쳐드는 아내를 계속 죽였다 어떤 놈이냐고 몇 번을 물었지만 아내는 씨익 웃기만 할 뿐 죽일 테면 죽여보라고 돌부처처럼 돌아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그녀를 바라보다 가느다란 철필로 반야심경을 그녀의 등짝에 새기고 싶었다 마음 심을 새기면 하얀 등짝에서 피가 하나 둘 셋 쏙쏙쏙 돋아나다가 긴 강물을 이룰 것 같기도 하였다 강 같은 평화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다 꿈은 너무 길러 자도 자도 끝나지 않았다 이 꿈속을 계속 걸어가면 왕오천축국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꿈이 더 지속되기를 바라기도 하였다 아내를 죽이다가 다시 길을 가는 지랄 같은 윤회 속에서 막내 아이가 계속 울고 있었다 아이 울음에 잠에서 깨어나 오래동안 천장을 보고 누워 있으려니 나와 관계했던 여자들이 스쳐갔다 왜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는지 아내는 이미 왕오천축국에 도달하여 강물에 몸을 씻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녀는 나와 함께 사막을 넘어 강에 이르는 긴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나도 이제 혼자 가야 한다고 굳게 마음을 먹으며 다시 꿈을 찾아갈 때 왜 눈물이 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쓸쓸해지기도 하는 새벽이었다 꿈은 멀었다
샤갈 ㅡ 생일
그놈의 커다란 가방 때문에 성미정1967 - )강원도 정선 남편은 내가 끌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나 궁금해서 결혼했고 나는 남편이 내가 지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을 받아주는구나 착각해서 결혼했고 결혼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좀 더 커다란 가방만을 원했고 남편은 내가 온갖 잡동사니 쑤셔 넣고 다닐까 더 커다란 가방을 못 사게 하고 툭하면 좀 더 커다란 가방 때문에 다투면서도 나는 남편에게 더 커다란 가방이 왜 필요한지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남편은 내가 자기랑 헤어지고 더 커다란 가방을 끌고 다닐 꼴을 못봐서 헤어지지 못하고 오나가나 그놈의 커다란 가방 때문에 헤어지지도 못하고
누군가 보고 있었을까, 아내의 맨발을 신경림 ㅡ 메데진에서 메데진 ㅡ 콜롬비아 제2의도시.인구 2백만.그중백만이 산동네주민. 경사가 급한 산비알에 그들을 위해 전철이 끝나는데서 산중턱까지 케이블카가... 움막집들은 빈 굴 껍데기처럼 달라붙어 있다 지붕을 스칠 듯 케이블카는 위태롭게 기어오른다 가끔 숨을 돌리기 위해 멈추어서는 승객들을 토해내기고 하고 또 주워 담기도 하면서. 한 삼십 년 전쯤 우리 산동네에서 만났던 아가씨들처럼 모두들 눈이 퀭하고 얼굴이 꺼칠하다 골목에서 공을 차거나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의 터진 맨발이 하늘에서 보인다 물지게를 지고 비탈을 올라오던 아내는 늘 맨발이었다 밤이면 그 터진 곳이 쓰려서 잠을 설쳤다. 그때도 누군가 보고 있었을까, 아내의 맨발을 .
남편 문정희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 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내 아내 서정주 나 바람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루와 피리 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쉬는 그 숨결 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노부부 정호승 너거 아버지는 요새 똥 못 눠서 괸이다 어머니는 관장약을 사러 또 약국에 다녀오신다 내가 저녁을 먹다 말고 두루마리 휴지처럼 가벼운 아버지를 안방으로 모시고 가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늙은 팬티를 벗기신다 옆으로 누워야지 바로 누우면 되능교 잔소리를 몇 번 늘어놓으시다가 아버지 항문 깊숙이 관장약을 밀어 넣으신다 너거 아버지는 요새 똥 안 나온다고 밥도 안 먹는다 늙으면 밥이 똥이 되지 않고 돌이 될 때가 있다 노인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 사촌여동생은 돌이 된 노인들의 똥을 후벼 파낼 때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늙은 뒤에 또다시 늙는 다는 것은 밥을 못먹는 일이 아니라 똥을 못누는 일이다 아버지는 기어이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다녀오신다 이제 똥 나왔능교 시원한교 아버지는 못내 말이 없으시다 어머니는 굽은 등을 더 굽혀 설거지를 하시다가 너거 아버지 지금 똥 눴단다 못내 기쁘신 표정이다
노인일기 21 ㅡ 시래기를 삶으며 강우식 아내는 김장을 하면서 남은 채소들을 모아 엮어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았다
시래기 타래들이 20층 허공에 있는 것이 신기해선지 겨울 햇살도 씨익 웃다 가고 바람도 장난꾸러기처럼 그 몸체를 마구 뒤흔들었다
오늘은 고요히 눈이 내리고 왠지 어릴 때 어머니가 끓여 주던 시래기국 생각이 간절하여 배추잎, 무청들을 푹 삶아서 푸르게 살아난 잎새들의 겉껍질을 벗긴다
겨울 해는 내 인생처럼 짧기만 한데
나이들수록 돌아가고픈 옛날이 있다
임청하 부부
누에 치는 아내 정약용 안 하는 일이 없어 올봄에는 누에를 친다고 하네 뽕 따는 일은 어린 딸 시키고 잠박 치는 일은 아들에게 맡겼다지 비법 따라 잠박 놓는 시렁을 더 놓고 쪽물 들여 옛 책을 묶기도 할 테지 문장 짓는 일 내 어찌 좋아서 하겠나 애오라지 파적거리일 뿐이지
니콜라스 사르코지(54세) 프랑스 대통령 카를라 브루니(42세)
늙어가는 아내에게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아 그냥 서로를 사는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캄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 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만큼 그대의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은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잖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거야
늙은 사내의 시 서정주 내 나이 80이 넘었으니 시를 못쓰는 날은 늙은 내 할망구의 손톱이나 깎아주자
발톱도 또 이쁘게 깎아주자
훈장 여펜네로 고생살이 하기에 거칠대로 거칠어진 아내 손발이 손톱 발톱이나 이뿌게 깎어주자
내 시에 나오는 초승달 같이 아내 손톱밑에 아직도 떠오르는 초사흘 달 바래보며 마음 달래자 마음 달래자
닭이 우네요 詩經 ㅡ 사랑하는 부부의 단란한 가정을 그린 노래
여보 닭이 우네요, 아직 어두운 걸 당신 일어나 밖을 보셔요, 샛별이 저렇게 반짝여요 들언덕 여기저기 돌아, 오리 기러기 잡아 오셔요
쏘아서 잡아 오시면 당신 위해 술안주 만들어 당신과 마주앉아 술 마시며 해로하리다 거문고 비파가 어울리듯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네요
당신이 오시는 것 알면 모든 패물 드리겠어요 당신이 다정히 한다면야 모든 패물로 문안드리리다 당신이 저를 좋아한다면 모든 패물 드리겠어요
행복 2007년 황정민. 임수정
도꼬마리씨 하나 임영조 멀고 긴 산행길 어느 덧 해도 저물어 이제 그만 돌아와 하루를 턴다 아찔한 벼랑을 지나 덤불 속 같은 세월을 할퀸 쓰라린 상흔과 기억을 턴다 그런데 가만! 이게 누구지? 아무리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억센 가시손 하나 나의 남루한 바짓가랑이 한 자락 단단히 움켜쥐고 따라온 도꼬마리씨 하나 왜 하필 내게 붙어 왔을까?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예까지 따라온 여자 같은 어디에 그만 안녕 떼어놓지 못하고 이러구러 함께 온 도꼬마리씨 같은 아내여, 내친 김에 그냥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빚이 있다면 할부금 갚듯 정주고 사는거지 뭐 그리고 깨끗하게 늙는 일이다 프레드릭 레이튼(1830-1896) ㅡ 화가의 허니문 도꼬마리 씨
돼지고기 한 근 박형근 내일 모레 몸풀 날이 돌아오는 아내는 어려운 부탁을 하듯 돼지고기 한 근만, 상추 쪼금하고 사다 달라고 어려운 부탁을 하듯 부탁을 했다 남들은 잘 먹지도 않는 돼지고기만을 처?적부터 억시게 잘 먹는, 그래서 돼지고기 한 근만으로도 두 아이를 낳도록 행복했던 아내가 전화에 대고 늦게 와도 좋으니 돼지고기 한 근만 사다 달라고,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용호야, 돈 만원만 빌려다오 호주머니에 단돈 천원 남았다고 아내에게 말은 했지만 나는 맨손으로 집에 갈 수가 없구나 돼지고기 한 근을 사면서 나는 또 우울해진다 그 사람은 이것으로 국을 끓이고 내일 아침 남겼다가 다시 반찬을 만들어 상에 올리겠지 늙으신 어머니를 위해서 나는 돈을 꾸어서 뭘 사간 적이 있었던가 천원짜리 한 장 없이 며칠을 돌아다닌 놈이 아픈 자책을 누르고 잔돈을 쑤셔넣고 저 푸른 하늘을 본다 흰구름만 떠가는
동문을 나서니 詩經 ㅡ 자기 아내만을 사랑한다는 노래
저 동문을 나서서 보니 고운 아가씨들이 구름같이 모였네 비록 구름같이 떼지어 있으나 내 마음 둘 바 아니지 흰 옷에 파란 수건 걸친 아내만이 나를 즐겁게 해주네
저 성 밖을 나서서 보니 아가씨들이 띠꽃같이 귀엽네 비록 띠꽃처럼 귀엽긴 하지만 내 생각할 바 아니지 흰 옷에 붉은 수건을 걸친 아내만이 나와 즐길 것이네
닥터 지바고(1965년)
디즈레일리의 아내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 디즈레일리는 독신으로 지내다가 35세가 되었을 때 15세나 연상인 과부(자신의 하녀)와 결혼했다 50세인 그녀는 아름답지도 않았고 재주도 없었다 그러나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곧 사람을 다루는 기술과 존경심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정치관계로 이 사람 저사람에게 시달리다가 기운이 쇠진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반갑게 맞아주고 존경했다 .....30년을 그렇게 함께 살았는데 디즈레일리는 결혼생활 30년에 아내 때문에 마음 상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디즈레일리(1804-1881) 영국 총리
카를라 브루니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만점 남편 이은봉 안 취하려 안 취하려 하다가 사람들 너무 좋아 그만 고주망태기로 돌아와 누운 밤 오늘도 어김없이 아내는 바가지를 긁는다 당신, 이럴 줄 몰랐어요 정말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이렇게 한시만 사람인 줄 몰랐어요 저 혼자 실컷 왜장 치다가 저 혼자 실컷 핏대 올리다가 저 혼자 실컷 신경질 내다가 이것만 지키면 만점 남편이라뎌 아내는 순식간에 몇 항목 종이에 쓴다 쓰고 큰 소리로 읽는다 ㅡ 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것 ㅡ이, 술 마시지 말고 빨리 귀가할 것 ㅡ 삼, 제 물건은 제 자리에 - 책 담배 양말 등 ㅡ 사, 하루 삼십 분 가족들과 대화할 것 ㅡ 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목욕할 것 하고, 목청 높여 읽다 말고 아이고, 답답한 이 남편네야 아이고, 폭폭한 이 서방네야 아이고, 철없는 이 신랑님아 하며 내 갈비뼈와 엉덩이 마구 꼬집는다 주먹 꼬나쥐고 팍팍 쳐댄다 아이고, 사람 살려요
면벽 김상배 키 작고 귀여운 아내가 십년이 넘도록 과외교습을 해서 우리 네 식구는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어젯밤 꿈 속에 그녀가 나타나 이제는 나이 먹고 힘이 들어서 이 일을 그만 해야 될까 보라고 잔뜩 허세를 부리는 듯 하였으나 나는 혹시, 정말 그만 둘까해서 마음이 생선찌개 국물처럼 졸아 들었다
꿈인줄 알았더라면 꿈 속에서만이라도 당장 그만두라고 큰소리 한 번 쳐보는건데 나는 애간장을 바싹 태우며 빈 벽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고갱 십년 넘게 아내가 과외를 해서 우리 네 식구는 곶. 감. 빼. 먹. 듯 잘 먹고 잘 살았는데
배알도 없지 김상배 보리차가 끓고 있는 주전자 뚜껑이 가스렌지 위에서 저 혼자 들썩거리고 있는 겨울방학 때 나는 혼자 점심을 차려먹는다
아내는 학원을 경영한다 우리끼리 말을 할 때는 학원이라 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교습소다 주로 글쓰기를 지도하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내가 돈을 번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월급이 줄어들어서 금년부터는 보너스가 없는 달이 네번이나 된다고 했고 내년부터는 여섯 번으로 늘어날 거라는 소문도 있지만 아내가 돈을 버는 나로서는 별 걱정이 없다 콧노래를 부르며 설겆이를 하다가 물 묻는 손으로 전화도 받는다
또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보너스나 월급 차감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남편 콧노래 부르고 전화도 받고...여느 전업주부나 다름없이 굳건하게 가정을 지킨다
코딱지 김상배 한밤중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아들과 함께 전단을 뿌린다
민주, 자주, 동지, 투쟁의 함성이 실린 그 시절의 불온전단이 아니라 아내가 운영하는 글쓰기학원의 광고전단을 아파트 현관에 남몰래 돌리다가 그만, 아들의 친구를 만났다
아들은 괜잖다고 부끄럽지 않다고 했으나 거의 일을 마칠 무렵에는 조금 부끄러웠다고 코딱지만큼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는데 바로 그 때 아내의 친구와 마주치게 되었다
나도 코딱지만큼 부끄러웠고 그래서 아들의 코딱지가 얼마나 큰 코딱지였는지 알게 되었다
木像 김광균 집에는 老妻가 있다 노처와 나는 마주 앉아 할 말이 없다
좁은 뜨락엔 5월이면 목련이 피고 길을 잃은 비둘기가 두어 마리 잔디밭을 거닐다 간다
처마 끝에 등불이 켜지면 밥상을 마주 앉아 또 할 말이 없다
연년세세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우리 둘은 목상이 돼 가나보다
미녀 삼총사 파라 포셋(1947-2009) ㅡ 600만불의 사나이 리 메이저스(1939 - ) 부부
무우청을 엮으며 임홍재 춥고 가난한 겨울을 위해 남들은 다 버리는 무우청을 엮는다 갈수록 쓰임새와 먹새가 늘어 가계부는 붉게 얼룩져도 아내는 부끄럼을 감추고 이웃집 것까지 거둬 모은다 배추, 무우값이 똥값인데 요즘도 시래길 다 먹느냐며 수입식품만 먹는 기름진 이웃들 틈에서 우리는 자꾸만 난장이가 된다 주눅이 들면 안 된다고 그래도 아내는 열심히 뛴다 구수한 황토 냄새 고향 맛을 그대로 간직한 시래기가 진귀한 듯 진귀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 곁에서 나는 허리끈을 졸라매듯 매듭을 꼭꼭 조여 맨다 내일, 내일, 내일.... 아내와 내가 믿는 내일은 따습고 밝을 것인가 시래국처럼 구수할 것인가 생각하며 무우청을 엮는다 시집<청보리의 노래> 문학세계사.1980년
피아니스트 백건우 영화배우 윤정희 부부
바느질 하는 손 황금찬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아내는 바느질을 하고 있다 장난과 트집으로 때 묻은 어린 놈이 아내의 무릎 옆에서 잠자고 있다
손마디가 굵은 아내의 손은 얼음처럼 차다 한평생 살면서 위로를 모르는 내가 오늘 따라 면경을 본다
겹시를 꿴 긴 바늘이 아내의 손 끝에선 사랑이 되고 때꾸러기의 뚫어진 바지 구머을 아내는 사랑으로 메꾸고 있다
아내의 사랑으로 어린 놈은 크고 어린 놈이 자라면 아내는 늙는다
내일도 날인데 그만 자지 아내는 대답 대신 쓸쓸히 웃는다
밤이 깊어갈수록 촉광이 밝고 촉광이 밝을수록 아내의 눈가의 잔주름이 더 많아진다
덴마크 메리 도널드슨(호주) 왕세자비 프레드릭왕세자(1968 - )
바람 詩經 ㅡ 남편에게 학대를 받는 애달픔을 노래함
온종일 바람 불 듯하다가도 나만 보면 히죽 웃네 함부로 농담하고 짖궂게 구니 내 마음 아프다오
온종일 바람 불고 흙비 퍼붓네, 다소곳이 날 찾길 바라지만 가지도 오지도 않으니 내 시름 끝이 없다오
온종일 바람 불고 음산한데 하루도 갤 날이 없네 깨면 잠 못 이루고 온갖 생각에 가슴만 답답하네요
먹구름이 하늘을 덮어 우르릉 천둥칠 것만 같네 깨면 잠 못 이루고 온갖 생각에 마음만 아프다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43년 작품)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산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마 종기(1939 - ) 일본 도쿄. 아버지 마해송(1905-1966) 아동 문학가 어머니 박 외선: 최초의 서양 무용가
부부 김소월 오오 아내여, 나의 사랑! 하늘이 무어준 짝이라고 믿고 살음이 마땅치 아니한가 아직 다시 그러랴, 안 그러랴? 이상하고 별난 사람의 맘, 저 몰라라, 참인지, 거짓인지? 정분으로 얽은 딴 두 몸이라면 서로 어그점인들 또 있으랴 한평생이라도 반백년 못 사는 이 인생에! 연분의 진실이 그 무엇이랴? 나는 말하려노라, 아무러나 죽어서는 한곳에 묻히더라
야곱도 레아 옆에 묻어달라고 ...죽어서는 한곳에 묻히더라
로미오와 쥴리엣(1968년)
부부 김종길(1926 - ) 경북 안동, 고려대 놋쇠든, 사기든, 오지이든 오십 년이 넘도록 하루 같이 함께 붙어다니느라 비록 때묻고 이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 제격인 사발과 대접
부부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꽃 만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 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다
파리의 연인
부부 오창렬 늘 허투루 나지 않은 고향길 장에나 갔다 오는지 보퉁이를 든 부부가 이차선 도로의 양끝을 팽팽하게 잡고 걷는다 이차로 간격의 지나친 내외가 도시 사는 내 눈에는 한없이 촌스러웠다 속절없는 촌스러움 한참 웃다가 인도가 없는 탓인지도 모르지 사거니 팔거니 말싸움을 했을지도 몰라 나는 또 혼자 생각에 자동차를 세웠다 차가 드물어 한가한 시골길을 늙어 가는 부부는 여전히 한쪽씩 맡아 걷는다 뒤돌아봄도 없는 걸음이 經行같아서 말싸움 같은 것은 흔적도 없다 남편이 한쪽을 맡고 또 한쪽을 아내가 맡아 탓도 상처도 밟아 가는 양 날개 안팎으로 침묵과 위로가 나란하다
부부 이기철 이 세상 가장 비밀한 소리까지 함께 듣는 사람이 부부다 식탁에 둘러 앉아 나란히 수저를 들고 밥그릇 뚜껑을 함께 여는 사람 이부자리 달걀만한 온기에도 고마워할 줄 알고 저녁놀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하루를 떠나보내는 사람
적금통장을 함께 지니고 지금은 더나 있어도 아이들 소식 궁금해하는 사람 언젠가 다가올 가을 으스름같은 노년과 죽음에 대해서도 함게 예비하는 사람 이 나무와 저 나무의 잎이 닿을 듯 닿지 않을 때 머리카락 스쳐간 별빛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 이 나무와 저나무처럼 가장 가까이 서서 먼 우레를 함께 듣는 사람
이승엽 야구선수
부부 정가일 은사시나무가 온몸으로 비를 맞고 서 있다
그 옆에 나도 온몸으로 비를 맞고 섰다
그렇게 우리는 은사시나무가 되었다
부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소설가 한 말숙, 국악인 황병기 부부
부부 황성희 낱말을 설명해맞히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보이며 아니 네 글자 평생 웬수 황 성희(1972 - ) 경북 안동 남과 여 (1966년 영화)
북을 치며 詩經 ㅡ 싸움터에 간 남편이 고향에 있는 아내를 생각하여 부른 노래
둥둥 북소리 울리면 창칼 들고 뛰어 일어나 남들은 성을 쌓는데 나 혼자 싸우러 남쪽으로 간다네
손자중을 따라 陳. 宋과 화친을 맺었는데 우리를 돌려보내지 않으니 근심걱정 끝이 없구나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탔던 말까지 잃어버리고 어디 가서 말을 찾을까, 숲 속을 헤매이네
한평생 사생을 같이하자고 서로 굳게 맹세하였지 그대와 손목을 잡고 한평생 해로하자고
아 멀리 서로 떨어져 우리 함께 못 살게 되었네 아 멀리 서로 떨어져 우리 소원 풀 길이 없네
빙점 미우라 아야꼬 나쓰에는 무릎을 꿇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양말을 신겨주었다 양말을 밖으로 뚜르르 말아서 게이조의 발끝에 댄다 다음엔 만 양말을 펴올리면 된다 신기는 쪽도 신는 쪽도 여러 해 동안 습관이 되어 있어 호흡이 잘 맞았다 40일 만에 나쓰에의 부드러운 허벅지에 발을 대고 양말을 신으니까 게이조는 새삼스럽게 부부는 부부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양말을 신고 신기는 호흡은 잘 맞아도 마음은 어딘가 엇갈려 있었다
미우라 아야꼬. 한국장로교출판사. 157쪽 소설의 배경은 1946년....요즘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무릎을 꿇고 남편의 발을 자기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남편의 양말을 신겨주는 ....
산다는 것 나호열 집으로 돌아가는 촌로 부부를 태웠다 직업이 뭐요?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칩니다 아! 그거 좋지, 난 배우는 사람이요 땡감만 열려 매년 골탕 먹이는 감나무한테, 삽질, 쇠스랑질에 돌만 솟아오르는 땅한테, 제멋대로 비 뿌리고 제멋대로 비 거두어 가는 하늘에... 옆에서 할머니가 거들었다 소득 없는 일에 저렇게 매달리는 법만 평생 배워야 소용없소, 거두어들일 줄 알아야지 논둑에 깨가 한창이었다 아, 저 깨들 좀 봐, 정말 잘 영글었네, 내 새끼들 같다니까 올해 깨 심었는데 내 눈에는 깨 밖에 안보여 온통 깨 밖에 ?榴募歐? 말 못하는 저것들도 사람 정성은 알지, 마음 좋게, 편하게 정성을 다하면 보답을 한다니까 아! 저 영근 깨들 좀 봐요, 저 주인네 참 실한 사람이겠구먼 산소 가는 길, 집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두 노인네 다시 터벅터벅 사라져 갔다 나 호열(1953 - ) 충남 서천. 경희대 교수.
2006년 혼전 계약서 .... 3년 계약 만료 다음 (둘째아이) 출산에 여자가 130억을 요구하자 남자는 66억을 준다고 ..
생, 그 환한 충전 조은영 뻥튀기 기계가 빙빙 돌아간다 노인을 가린 파라솔은 햇발을 당기며 오후를 충전 중이다 먼지 쌓인 의자 위 졸음도 수북이 쌓였을까 잘 마른 옥수수 까그라기를 털 듯 눈을 비비던 노인, 꿈처럼 앞니 두 개로 웃는다
수 년 전 풍 맞은 아내는 아랫목을 차지한 채 일찍 늙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내를 돌아 뉘는 노인의 앙상한 팔에 플러그처럼 힘줄이 돋는다 아내의 등에 활짝 핀 욕창 꽃 진 자리처럼 쓸쓸하여서 노인은 자꾸만 쓰다듬는다 이제 그만 지고 싶다는 아내에게 얼마의 온기를 전송하는 것인지 손길마다 따뜻한 기운 흐른다
가슴 한구석 통증의 압력도 이 기계만 같을까, 노인은 뜨거운 응어리를 쇠막대로 힘껏 열어 제낀다
펑!
연기로 터져 나오는 저 환한 것들 조 은영 <현대시학> 2004년 4월호 전도연 부부
숨결 이홍섭 키가 크려는지 아내는 자꾸만 악몽을 꾼다
꿈을 대신 꾸어줄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아내는 내가 곁에 없어 그런다고 팔을 당긴다
그러면 철없는 기러기처럼 행장만 꾸리는 남편도 머쓱해져 다시 짐을 풀기도 하는 것인데
선잠 든 아내의 숨결이 고를 때까지 내 숨결도 고르다 보면 이 세상 꿈까지 동행할 수 있는 길이란 참으로 드문 길이라
아내의 고른 숨결 속으로 내 고단한 숨결도 가만가만 보태어보는 것이다
시집<숨결> 현대문학북스. 2002년
오드리 햅번 부부
아내 박필상 비가 오면 비에 씻겨 잎새 더욱 푸르르고
바람 불면 바람 속에 향기 더욱 그윽하게
가난한 나의 뜨락을 지켜주는 꽃이거니
내가 어둠에 들면 등불 되어 길을 열고
내가 빛살로 서면 그댄 늘 흰 그림자
없는 듯 거기 그 자리 미소 짓고 있었다
아내 홍승주 곱게 늙은 아내가 화장대에 앉아 더덕더덕 분가루로 주름을 펴고 시든 입술에 朱를 덧칠 얼굴에 반질반질 생기가 돌 무렵
노새 같은 지아비가 바싹 화장대에 붙어 앉아 딴 여자가 되어가는 아내를 보고 희색이 만면
당신 어디가요...? 나도 데리고 가요
문학집3 <넋새가 운다> 다인미디어.2004년
아내 걱정, 소걱정 김영만 오랜만에 외양간 소를 만져봅니다
바싹 마른 소 더위 먹은 소 새끼 하나 밴 소 우리 엄마 닮은 우리 머슴 닮은 아예 아내를 닮아버린 암소 만져볼수록 반쪽만 남은 반달로 떠오릅니다
음머어...몇 번 내지르는 소 울음 외양간 지붕을 뚫고 내려오는 별빛에 묻혀 더욱 낭랑합니다
더위 먹어 앉은 자리 휘젓지 않도록 아내가 거뜬거뜬 소 새끼 하나 낳도록 호박잎에 싸인 낙지머리통 몇 근 청양고추에 양념 어우러진 아미노산 선물로 주세요, 나의 하느님 두리치기도 몇 근 부탁해요 가루눈 펑펑 쏟아지기 전에 이부자리의 근육을 부풀리며 펴주고 싶어요 아내 그림자를 주무르며 노는 소에게
아내는 푸른 강물이었네 이상인 아내는 푸른 강물이었네 날마다 내 곁에서 흐르고 있었지만 가 닿기에는 너무 먼 강물이었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은어며 눈치며 잉어들이 반짝이는 추억을 퉁기며 헤엄치고 있지만 내가 뛰어들기에는 너무 깊은 울음이었네 멀리에서 바라보면 아내와 나는 하나의 강물 다가와 바라보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두 줄기의 강물 그러나 어이하리 아내는 항상 내 곁에서 흐르고 나 또한 항상 아내 곁에서 흐르고 있는 것을
오드리 햅번 부부 전쟁과 평화(1967년)
아내 시편 이승현 참나무 숯불덩이로 푹 고은 곰국이라도 졸면서 떠오르는 뿌연 것쯤은 있기 마련 오래된 장항아리에 곰팡이 피듯, 그렇게
걷다 보면 뭣 모르고 곁불도 쬐게 되고 꼬인 연줄에 걸려 헛발질도 하게 되지 그러니, 잉걸불인들 어찌 식지 않겠는가
뒷모습 서늘해짐은 가을 나무 보면 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국으로 남으려면 때때로 핵융합 하듯 화학반응 하는 거다
아내에게 김지하 내가 뒤늦게 나무를 사랑하는 건
깨달아서가 아니라 외로워서다
외로움은 병
병은 병균을 보는 현미경
오해였다
내가 뒤늦게 당신을 사랑하는 건
외로워서가 아니다 깨달아서다 김 지하(1941 - ) 전남 목포. 박경리 사위. 시집<花開>. 실천문학사.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첫번째 남편
아내에게 유금 옛날의 여군자를 어긴 적 없건만 지금의 내 아내는 몸이 아파라 한집에서 서로서로 병 걱정하고 8년을 가난하게 함께 살았네 양홍 처는 가시나무로 비녀를 삼고 양홍의 처 맹강은 박색이나 몹시 지혜롭고 검소하여 남편이 스승처럼 받들었다 극결의 처는 손님 대하듯 밥을 올렸지 극결은 춘수시대 진晉나라 사람인데 훗날 대부로 기용되었다 부녀의 도리 잘 따르는 이는 자손이 번성하는 복 누리고말고
이루마 . 손태임 부부
아내에게 정약용 한 밤 새 지는 꽃은 천 떨기 지붕을 맴도는 건 울어 대는 비둘기와 어미 제비 외로운 나그네는 돌아가지 못하니 언제쯤 침방에서 아름다운 만남 가질까 그리워 않노라 그리워 않노라 슬픈 꿈속의 그 얼굴
덴마크 프레드릭 왕세자 부부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폴 뉴먼 부부
아내와 다툰 날 밤 복효근 새로 얻은 전세집 마당엔 편지 대신 들꽃씨가 자주 날아와 앉았지 봄 내내 우린 싸움닭처럼 다투었고 그런 날이면 마당귀 가득 달맞이꽃이 피었지 전세값이 삼백이나 더 오른 날 밤도 달은 뜨고 달맞이꽃은 피었지 하많은 날 수많은 꽃들이 피었다 져도 세상은 아직 그렇게 아름다워지지 않았으므로 밤이 되어 어둠이 세상을 온통 지워버려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그 아픔으로 깨어있는 들꽃 같은 우리네 소망 그리고 아직은 가슴 가득 정정한 그리움도 있어 별이 어두울수록 빛나듯 달 없는 밤에도 꽃은 피는지 우리 긴긴 싸움의 나날 아내여, 귀기울여봐 온갖 것 다 놓아버리고 싶은 밤이면 어둠 가득한 마당귀에 귀 기울여 들어봐 아아, 달맞이꽃 터지는 소리 들어봐
르느와르 부부
아내의 가방 김륭 아내에겐 가방이 많다 시집올 때 가져온 악어가죽 핸드백이 새끼를 친다 평범한 디자인의 손가방만 네개에다 보헤미안 스타일의 크로스백과 토끼털 고급 토트백 벨로체 다용도 보조가방 루이뷔통 복조리백이 있다 여우꼬리가 장식으로 달린 김희선 숄더백은 지난 달 카드로 긁었다 쥐꼬리 월급에 목을 매고 사는 나는 언제나 성에 차지 않는 아내의 가방 욕심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시뻘건 고무장갑을 끼고 매일 아침 찌-익, 여행용가방 지퍼를 열듯 방바닥에 눌러붙은 내 배를 가르는 아내, 음매음매 눈으로 우는 소가죽지갑을 꺼내고 회사근처 지하노래방 마이크와 맥주병을 찾아내고 아뿔싸! 미스 김 입술도장까지 꺼낸다 ..... 지글거리는 프라이팬, 신이 났다 속까지 부실하면 안된다고 우유 한 잔에 토스트 한 조각 물려주는 아내, 넥타이 꽉 졸라매면 루이비통 스타일의 복조리백이 되는 얼굴에 쪽쪽 뽀뽀도 해준다
아침에 꺼낸 것들, 검은 비닐봉지나 장바구니로 담아올 수 없는 그것들 빳빳하고 싱싱하게 다시 채워오라고 날이 갈수록 배 불룩해지는 비닐가죽가방 하나 문밖으로 떠밀어놓는다
카사블랑카(1942년)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항구도시
아내의 눈물 조영환 아내가 이따금 울 때 슬픔은 눈이 까만 물고기 같다 소리없이 울고 울다가 드디어 그녀는 물고기를 토해낸다 세월의 뱃속에서 소화되기는 커녕 아내의 몸 밖에서 힘차게 지느러미를 퍼덕이는 슬픔들 아내는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지 않고도 물고기를 꾸역꾸역 토해낸다 잔잔한 아내의 몸 어디에 저렇게 펄펄 뛰는 슬픔이 있었을까 홀연히 물길을 따라 번쩍이는 비늘을 드러내는 물고기 감을 줄 모르는 물고기의 눈이 죽음을 잊은 슬픔이 슬프다 <다시올 문학> 2009년 가을호.
앵그르 ㅡ 오달리스크
아내의 손2 서정홍 저녁밥 먹다가 문득 눈에 띈 아내의 손
팔자에 복이 없어 아들만 둘 낳아 평생토록 손에 물 마를 날 없겠다고 웃으며 내밀던 손
하루 여섯 시간 잘 때 말고는 밥짓고 빨래하느라 애들 뒷바라지 하느라 살림살이에 보탠다고 밤 까고 도라지 까느라 쉴새없이 움직이는 그 손
나이보다 손이 더 늙은 아내
자이언트 1956년
아내의 손이 따뜻하다 이상윤 아내와 손잡고 태종대에 갔다 바다를 밟고 오는 푸른 바람은 아직도 쌀쌀하였지만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내의 손이 봄볕처럼 따뜻하다 길은 어디든지 살아 있고 길을 만드는 것도 또한 사람이지만, 그립고 아쉬운 길일수록 쉬이 만나지 못하는게 사람 사는 일인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반나절이면 올 수 있는 거리인데도 이 곳에 다시 오는 데 꼭 스물 다섯해가 걸렸다 바라보는 4월은 꽃잎마다 눈부시고 우리는 서로가 그윽한데 스물 다섯해 전, 설레이던 신혼의 여심 하나 아직도 치마 여자의 길 떠나지 못하고 생의 내리막길에 초록으로 남아 있다 아내의 손이 봄볕처럼 따뜻하다
아내의 이름은 천리향 손택수 세상에 천리향이 있다는 것은 세상 모든 곳에 천리나 먼 거리가 있다는거지 한 지붕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아내와 나 사이에도 천리는 있어 등을 돌리고 잠든 아내의 고단한 숨소리를 듣는 밤 방구석에서 처박혀 핀 천리향이 네가 서러운 것은 진하디진한 향기만큼 아득한 거리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지 얼마나 아득했으면 이토록 진한 향기를 가졌겠는가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것은 살을 부비면서도 건너갈 수 없는 거리가 어디나 있다는 거지 허나 네가 갸륵한 것은 연애 적부터 궁지에 몰리면 하던 버릇 내 숱한 거짓말에 짐짓 손가락 걸며 겨울을 건너가는 아내 때문이지 드을 맞댄 천리 너머 꽃망울 터지는 소리를 엿듣는 밤 너 서럽고 갸륵한 천리향아
시집<목련전차> 창비. 2006년
아내의 재봉틀 김신용(1945 - ) 부산 수의를 만들면서도 아내의 재봉틀은 토담 귀퉁이의 조그만 텃밭을 깁는다 죽은 사람이 입는 옷, 수의를 만들면서도 아내의 재봉틀은 푸성귀가 자라고 발갛게 익은 고추들이 널린 햇빛 넓은 마당을 깁는다 아내의 가내공장, 반 지하방의 방 한 칸 방 한 가운데, 다른 가구들은 다 밀어내고 그 방의 주인처럼 앉아 있는 아내의 재봉틀 양철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맨발의 빗소리 같은 경쾌함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자급자족할, 지상의 집 한 칸을 꿈꾸고 있다 지금, 토담 안의 마당에서는 하늘의 재봉틀인 구름이 비의 빛나는 바늘로 풀잎을 깁고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을 깁고 있을 것이다 모든 생명들을 기운 자국 하나 없이 깁는 고요한 구름이 재봉틀 그 천의무봉의 손이듯 아내의 구름인 재봉틀은 지상의 마지막 옷, 수의를 지으면서도 완강한 생활의 가위로 시간의 자투리까지 재단해 가계의 끈질긴 성질을 깁는다
시집<환상통> 천년의 시작
아이오와 일기2 황동규 ㅡ 아내에게 팬츠 바람으로 장갑을 끼고 밤비에 젖어가는 주차장을 내려다본다 잠이 오지 않는다 기다리리라 허락하리라 허락하리라 모든 것을 그대 살고 있는 괴로움이 다시 나를 울릴 때까지 슬퍼하는 騎士를 태운 말처럼 내 그대 마을 건너편 언덕에 말없이 설 때까지
몇 개의 초가집이 솔가지를 태워 그 연기 날개처럼 솟아 그대 사는 하늘의 넓이를 재고
그 하늘 아래 앉아 서로 이를 잡아주는 그대와 나
보이지 않는다 다시 보인다 지워지지 않는다 샤갈 . 벨라
샤갈 ㅡ 에펠탑의 부부
안쓰러움 나태주 오늘 새벽에 아내가 내 방으로 와 이불없이 자고 있는 나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새우처럼 구부리고 자고 있는 내가 많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잠결에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어젯밤에는 문득 아내 방으로 가 잠든 아내의 발가락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다가 돌아왔다 노리끼리한 발바닥 끝에 올망졸망 매달려있는 작달막한 발가락들이 많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내도 자면서 내 마음을 짐작했을 것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다른 방을 쓰고 있다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박철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 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이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아내는 설겆이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로마의 휴일(1953년)
에디슨 부부 발명왕 에디슨(1847 -1931)은 16세의 메리를 처음 보았을 때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가는 귀가 먹은 에디슨은 자기의 마음을 메리에게 전할 수가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모르스 부호였다 에디슨이 모르스 부호를 가르쳐 주자 메리는 호기심과 흥미를 느껴 열심히 배웠다 에디슨과 메리의 대화는 언제나 깊은 침묵이 흘렀지만 말보다 더 깊은 공감대가 흘렀다 어느 날 에디슨은 떨리는 가슴으로 메리의 손바닥에 <저와 결혼해주십시오>라고 쳤다 잠시 후 에디슨은 손바닥에 부드럽게 전해져오는 느낌을 받았다 1871년 24살의 에디슨은 16세의 메리 스틸웰과 결혼하였는데 그녀 역시 전혀 절약할 줄 몰랐다 1884년 메리가 죽자 1886년 39세의 에디슨은 20세의 부유한 M.밀러와 재혼하였다
젊은이의 양지(1951년)
오징어3 최승호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원이 아버지께 이응태공 부인 원이 아버지께 사뢰어 올립니다 당신이 늘 말씀하시되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은 먼저 가십니까? 나하고 자식은 누가 거두어 어떻게 살라하고 다 던지고 당신만 먼저 가십니까? 당신이 나를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며 나는 당신을 향해 마음을 어찌 가졌습니까? '이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와 같을까요? 하며 말슴드리더니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아니하여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십니까? 당신을 여의고 아무래도 내가 살 힘이 없어 수이 당신에게 가고저 하니 나를 데려가소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 세상에서는 잊을 수가 없어 아무래도 서러운 뜻이 끝이 없으니, 이 내 마음을 어디에다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며 살까요? 이 내 편지를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서 말씀하소 내가 꿈에 이 보신 말씀 자세히 듣고저 하여 이리 싸서 넣습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씀하소 당신, 내가 밴 자식 나거든 보고 말씀하실 일을 두고 그리 가시되 밴 자식 나거든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 하십니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을까요? 이런 천지 아득한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리 가 계실 뿐이거니와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그지그지 가이없어 다 못 써서 대강만 적습니다 이 나의 편지를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서 보이시고 자세히 말씀하소 나는 꿈에서 당신을 보리라 믿고 있습니다 몰래 보이소서 하도 그지그지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조선 중기 경상도 안동에 사는 이응태는 10 여년을 아내와 정답게 살다가 31살에 유복자를 남기고 별세. 412년이 지난 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내 한 무덤에서 이 편지가 발견되었다
은행나무 부부 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은 노란 엽서가 수천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때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 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이부離婦 장적(765-830?) 십 년 동안 시집살이 여자 행실 잘못 없는데 박명하군요, 자식 낳지 못하면 쫓겨난다는 옛날의 법
처음엔 해로동혈 말씀하시더니 오늘에 일이 어긋나는군요 당신이 마침내 버리시니 어떻게 오래도록 머물겠어요?
시부모님 계시는 큰방에 올라 무릎 끓고 하직인사 여쭈었어요 시부모님은 저를 보시고 이별을 다시 망설이더군요
옛날 팔찌는 돌려주시고 혼인 예복은 남겨두셨어요 어르신네는 저를 어루만지시고 길 모투잉에서 울어주셨어요
옛날 처음 며느리 적 당신이 가난하였을 때 주야로 길쌈을 하느라 눈썹 그릴 틈도 없었지요 애써서 황금을 쌓아, 기아에 떠는 당신을 건졌었지요
낙양에다 저택을 사고 한단에서 시비를 샀었지요 낭군이 용마를 타시니 출입에 빛이 났었지요
장차 부잣집 며느리가 되어 영원히 자손에 의탁하려 했더니 어찌 알았겠어요, 집을 쫓겨나 혼자 수레 타고 돌아갈 줄!
자식이 있다고 영화롭지는 않지만, 자식이 없으면 비참해지는 것이에요 사람 중에 계집은 되지 말아요 계집 되기 참으로 어려워요!
앵그르 ㅡ 카리스마 제우스
이십대의 마지막 아내 전남진(1966- ) 이십대 마지막 아내가 잠들어 있다 손을 뻗어 이십대 마지막 아내의 얼굴을 만진다 이십대 마지막 아내가 따뜻하다
이십대 마지막 아내는 아이를 갖고 있다 아이는 엄마의 마지막 이십대에 태어날 것이다 아내의 마지막 이십대는 분만의 고통에 바쳐질 것이다
이십대 마지막 아내의 볼이 붉다 붉어서 황홀하다 나의 황홀한 비애에도 아내는 눈을 뜨지 않는다 아내의 마지막 이십대는 늦잠처럼 느리게 갈 것이지만 일요일처럼 빨리 가버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십대 마지막 아내의 잠든 얼굴에 햇살이 선을 긋는다 손을 뻗어 선의 골짜기를 쓸어내리면 지나간 연애가 만져질까 이십대 마지막 아내가 내 손을 걷어내고 돌아눕는다 내 이십대의 마지막에도 그 누군가에게서 돌아누웠던 것처럼 일요일 아침, 이십대 마지막 아내의 잠이 느리게 간다
헨리 8세 ㅡ아내들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전윤호 이삿짐을 싸는데 익숙해진 그녀는 내가 없어도 쉽게 떠날 준비를 끝낸다 내 몫으로 남겨진 가구나 이불들은 너무 낡거나 무거워서 버리고 가도 괜잖은 것들이다 필요하다면 가볍게 그녀는 기르던 개도 이웃에 준다 함께 산 지난 오 년동안 기른 머리를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싹둑 자른 그녀는 요즘 취한 내 옆에서 자지 않고 슬그머니 부엌으로 빠져나와 주소를 쓰지 않은 편지를 쓴다 송곳니가 빠진 날 무표정한 얼굴로 오래 살펴보면서 냉장고와 함께 밤을 새는 그녀는 낯설게 아름답다
인도 소풍, 말라붙은 손 문인수 땔감으로 쓰는 건디기라는 쇠똥덩어리가 있습니다 쇠똥에 찰흙과 지푸라기 같은 걸 잘 섞은 다음 커다란 쟁반 만하게 주물러 널어 말려 쓰는데요 이 일은 주로 여인네들이 합니다. 그러니 이 쇠똥덩어리 마다엔 어김없이 눈 깊어 안타까운 그늘 그 무표정한 얼굴의 야윈 손자국이 낭자하게 말라붙어 있지요
현지의 어느 작은 마을 호텔 앞에서 그날 새벽 할 일 없는 한 사내와 손짓 발짓 상통하며 이 건디기불을 피워 봤는데요, 나는 문득 함께 못 온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돈 번다고 혼자 고생만 하는 늙은 아내의 월급 봉투에도 물론 이런 손자국 무수히 말라붙어 있는 거라 생각하면서, 매운 연기를 피해 이리 저리 고개 돌리며 자꾸 이 사내와 함께 찔끔거렸습니다
미녀와 야수(1991년)
장끼 詩經 ㅡ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생각하며 읊은 노래
장끼가 날아가네,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네 한없는 그리운 임이여, 스스로 괴로와할 뿐이네
장끼가 날아가네, 오르내리며 소리치네 임이여, 그대 생각에 이 마음 달랠 길 없네
저 해와달을 바라보니 내 생각은 아득하네 길이 저렇게 머니 임은 언제쯤 오실까
여러 관원들이여, 덕행이 무언지 모르는가 해치지 않고 탐내지 않으면 어찌 선하지 않겠는가
접기로 했다 박영희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잖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영화 ㅡ 너는 내 운명
정읍사 백제 가요 달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으시어 달하 노피곰 도다샤 멀리 멀리 비춰주소서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시장에 가 계신가요? 져재 녀러신고요 진 데를 디딜까 두렵습니다 어귀야 즌 대랄 드디욜셰라
어느 곳에나 (짐을) 놓으십시오 어느이다 노코시라 임 가시는 곳에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어긔야 내 가논 대 졈그랄셰라 행상나간 남편의 안전을 기원함 어귀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집을 나간 아내에게 황규관 당신과 내가 멀어지니 이렇게 좋군 아이들을 위해 가장 가깝게 뜨겁게 살았을 적에 세상은 얼마나 징그러웠었나 조금만 더 멀어지면 아니 이렇게 마지막을 느끼면서 가만히 어루만질 거리마저 생기고 나니 장미꽃이 유독 붉군 생각해봐 우리는 지금껏 색맹이었어 딸애의 피아노를 위해 다달이 갚아야 할 대출금 이자를 위해 혹은(무엇보다도 하잖은)과한 내 술욕심 때문에 함께 꽃잎 한 장 바라보지 못했다는 게 정말 말이나 되나? 이렇게 멀어지니 좋군, 참 좋아 우리 너무 가깝게 뜨겁게 살아왔어 당신이 정말 내 곁을 떠난대도 사랑이라는 거 좀 유치한 행복이라는 거 대신 그냥 웃을 수 있다는 뜻은 말야 당신이 미워서가 아니지 늦진 않았지만, 이제야 당신이 생각나고 생각나는 당신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는 일 그리고 마지막을 몸으로 느끼는 일이 이렇게 좋군 나마저 달라지는군 영화 ㅡ 봄날은 간다
코고는 아내 이재금 먼 산 부엉새 소리에도 잠 깨어 뒤척이는데
지겨워라 집사람 코고는 소리 몹시도 성가시더니 오랜만에 친정 길 옷 투정하며 훌쩍 떠나버린 빈 자리 코고는 소리 없어 잠 오지 않는다
한평생 살 맞대고 살면 미움도 쌓여 결 고운 사랑 되는가
문득 텅 빈 방 귀뚜라미 소리 늦가을 벌판처럼 텅 비었다 이 재금(1941 -1997) 경남 밀양 부북면 오래리 작은 문학 가을호
페르난도 보테로(1932 - ) 콜롬비아
후회 박남수 낡은 앨범을 뒤지며 그 사진들을 찍었을 때의 일들을 더듬어 보았다 그런데 둘이서 찍은 사진도 꽤 많건만 어느 한 장도 다정히 손목도 잡았다던가 어깨라도 기어 안은 것은 없었다 체모를 차리노라 그랬을까, 이 시대에 아직 살아 남은 풍습 때문에 그랬을까 결국 뜨겁게 살지 못한 증좌이리라 지금 와서 뜨겁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들 무엇하나 맞잡을 손도 없고 끼어 안을 어깨도 없는데
지나간 날은 모두 후회뿐이다 어느 하나 흡족한 것이 없다 다만 후회로 해서 너를 잊지 못하는 것만이 그러대로 위안이다 2000년 화양연화 ㅡ 장만옥.양조위
흥부 부부상 박재삼(1933-1997) 흥부 부부가 박덩이를 사이 하고 가르기 전에 건넨 웃음살을 헤아려 보라 金이 문제리 황금벼이삭이 문제리 웃음의 물살이 반짝이며 정갈하던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
없는 떡방아 소리도 있는 듯이 들어 내고 손발 닿은 처지기리 같이 웃어 비추던 거울면들아
웃다가 서로 불쌍해 서로 구슬을 나누었으리 그러다 금시 절로 면에 온 구슬까지를 서로 부끄리며 먼 물상이 가다가 소스라쳐 반짝이듯 서로 소스라쳐 본웃음 물살을 지었다고 헤어려 보라 그것은 확실히 문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39년)
조르주 드 라 투르 ㅡ 아내에게 조롱당하는 욥 남편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의 아내는 ..... |
출처: 동해물과 백두산이 원문보기 글쓴이: 아침해
첫댓글 부부의 이야기를 한 없이 읽었습니다. 시인님 들의 여러 부부상을 읽으며 입가에 씀쓸한 웃움도,행복한 웃음도,지으며...
이혜우님의 아내에 대한 좋은 시가 많다고해서 한편 나오려나 기대했는데 없더군요. 다음에 기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