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뭐지? 뭐야?
바리 공주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다는 연극이라서 좀 기대를 하고 갔다. 가족극이나 뭐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가볍게 볼 수 있는 극은 아닐 것이며, 뭔가 심오하겠구나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심오하더군. 하지만 나름대로 즐거웠다. 특히, 음악. 그런 식의 음악을 난 무척 좋아한다. 지나친 효과음 사용에 지쳐버리는 공연들이 너무 많아서 요즘은 적재적소에 음악을 넣는 공연을 보면 감탄을 하고 말지. 그리고 한 일년 전 쯤에 본 공연처럼 무대위에서 작은 악기들을 가지고 효과음 및 음악을 넣는 것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공연은 큰 악기(??)를 가지고 멋지게 표현해내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난 뭐든지 눈보다 귀가 먼저 반응하는 타입이라니까. 하여간 음악에 감탄하며 공연 시작.
공연은 우선 배우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더군. 팜플렛을 샀는데, 배우 소개가 한장 반이이서 놀랐다. 하지만 공연 볼 때는 무대가 넘치게 나온다기 보다 필요한 부분에서 자기 역할을 하면서 조금씩 등장해서 그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마지막에 무대 인사를 할 때 보니 무지 많아서 놀랐다. 그렇지만 많아서 넘쳐버린 것은 아니고, 다른 배우들이 작은 에피소드 하나하나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어서 되려 좋았다. 예전에 배우들만 넘쳐나는 엉망인 공연을 한번 본 이후로 많이 나오는 걸 별로 안좋아했는데, 역시 사람나름이며 연극나름임을 알았다. 특히 노파 역은 대단했다. 진짜 할머니인 줄 알았다. 나중에 무대인사 할 때보니 그렇게 분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조명과 놀라운 연기력이었다. 감탄 감탄. 전체적으로 연기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그리고 배우들이 발성을 잘 한건지, 공연장의 구조가 뛰어난 건지 목소리가 굉장히 울리며 들릴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목소리로 낸 효과음같은 기분이어서 새로웠다. 맨날 스피커 달린 쪽에서만 효과음이 나서 왜 공연장은 영화관처럼 스피커를 여러군데 안달까 하고-너무 달아서 시끄러운 것도 곤란하겠지만- 생각했었는데, 무대에서 소리가 나니 집중도 잘되고 좋았다. 공연 스타일은 "생생"이라고 할까. 소리 뿐아니라 행동도... 암전이 되지 않아 배우들의 움직임이 보이고, 그래서 관객들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내용은 바리 공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었다. 지극한 효심에서 벗어나 그녀의 선택으로 이뤄지는 이야기들. 운명이란 우리 선택의 또다른 이름임을 말하는 듯 하면서도, 마지막에 작가를 데려가며 "그것이 당신의 운명이니까요."할 때는 지금까지 한 얘기를 그녀 스스로 뒤엎는 거 같아서 왠지 배신당한 기분이기도 하고... 결국 죽음의 신도 인간이었고, 그 인간의 어리석음이 죽음을 부르며, 또 운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낳았다고 다 부모가 아니지만, 또 부모인 사람들. 또 자식인 사람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그러한 모순 속에서 맴돌며, 언제만날지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과 선택 속에서 운명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죽음의 문제에 부딪히면 운명인 것이 아닌가, 결국 죽음에서 벗어난 인간이란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으며, 그것은 신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그 무언가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 같아 보이니 말이야. 바리의 딸처럼 우리는 또 삶을 시작하고 운명 속에 휘말려야 함을 생각하니, 암담해지기도 하고 그랬다. 아, 바리의 딸 얘기가 나오니 생각난 것인데, 그 전체적인 연극의 메시지 속에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요한 부분이 바리의 딸인 것 같은데-전체적으로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지만..-별로 인상에 남지 않는 거 같았다.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여러가지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