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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일
연세대학교 석사, 서울대학교 박사 수료
웃음치료사, 스트레스치료사, 숲치료사 등 창시자
한국강사은행 총재
사) 국제웃음치료협회 회장 www.ha.or.kr
KBS, MBC, SBS, 미국, 독일 등 방송 및 명사특강 6,100회
2011 대한민국 교육대상 스타강사 수상
저서 : 웃음치료법, 펀경영리더십, 이기는 펀리더십 등 23여권
성공하려면 비워라 즐겨라 미쳐라
펀(fun)하게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한 가지 일에 미치며 몰입하는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맡은 일에 미치도록 몰입한다. 재능 있는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 못 따라 가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 못 따라 가고, 즐기는 사람은 미친 사람 못 따라 간다.
긍정의 긍(肯)자는 ‘즐길 긍’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름뿐이고 명사형인 긍정만 하지 말고 실천적인 동사형으로 지금! 이 시간! 즐기라는 의미다. 미국 의사들의 93%가 효과를 믿고, 53%가 몰래 처방해 주는 약이 있는데, 바로 효능이 없는 가짜 약 ‘플라시보’다. 하지만 환자들은 그 약이 진짜라 믿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치료 효과를 본다. 이것이 긍정의 힘이다.
건국 년도가 같은 우리 민족과 유대민족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1명인데 비해 유대인은 약 183명이나 받았다. 그 차이가 뭘까? 유대인은 어릴 때부터 부모가 자녀에게 유머, 웃음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박해를 받았던 긴 역사 속에서 유머를 통해 스스로 창조적 극복을 터득한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도 어릴 때부터 유머교육을 시킨다. 웃음은 고정관념이 깨질 때 나오는 것이기에, 그들은 프로이드와 아인슈타인을 최고의 코메디언으로 뽑는다. 위인들은 고정관념을 잘 깨서 훌륭한 과학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건강과 성공의 방해요소, 스트레스
스트레스가 있는 사람은 매력적인 인간이 될 수 없다. 자신이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보이고 여유를 보이려 해도 스트레스가 있는 상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스트레스란 아무리 작아도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강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외래어가 ‘AC'가 아니고 ‘스트레스’라고 한다. 덕분에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직무 스트레스가 세계 1위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는 일의 흥미도와 만족도가 세계 꼴찌로 조사되었고, 1년에 11조의 경제손실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스트레스 때문에 무기력해지고 주의가 산만하여 집중력이 떨어지니, 산업재해, 불만, 불량품, 의료비가 30%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4대 사망원인인 암,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 자살의 가장 큰 원인 역시 스트레스이며 280여 가지의 질병도 걸리게 한다.
사람은 보통 하루에 5만 가지의 생각을 하는데 그 중 75%가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또 사람은 누구나 하루 평균 4번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부정적인 사고는 고민을 낳고, 고민은 고통을 낳는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이런 스트레스에 빠지면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없고, 즐겁게 일을 할 수도 없다.
현대인은 매일같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어쩌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당연시되는 실정이기도 하다. 스트레스는 단순히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구성되는 것인데, 이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느냐, 또는 얼마나 잘 극복해 가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그리고 짜릿한 성공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이 스트레스의 정체를 정확히 안 다음, 효과적으로 스트레스를 없애고 관리해야 한다.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지치게 만드는 일들이 기분 좋은 일보다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이 일은 반드시 오늘 마쳐야 해’ ‘올해는 꼭 승진해야 해’ ‘이번엔 꼭 누구를 이겨야지!’ ‘내년에는 꼭 집을 마련해야지’ 등등의 계획이나 목표, 또는 어떤 대상을 두고서 결심하는 모든 생각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정신과 육체에 스트레스를 준다. 이런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스트레스를 극복하라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끈기 있게 자신의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사고와 감정을 조절하는 정신력 강화 기술이 절실히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면 건강하고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
첫 번째, ‘비워야’ 한다. 우리의 욕심과 부정으로 가득한 몸과 마음의 독소를 비워야 한다. 유명한 시인과 소설가들이 도시에서 글을 써보니 시상이 안 떠올라 시골풍경이 넘치는 자연 속으로 안착하니 시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는 것이다. 비우면 채워지는 철학을 알면서도 실행하기 힘든 우리의 나태함을 반성해야 한다.
두 번째, ‘즐겨야’ 한다. 최고의 약은 웃음이다. 스트레스는 긴장해서 혈압이 올라가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여 뇌와 심혈관계에 막대한 손상을 주는데, 웃으면 긴장이 이완되어 몸과 맘이 이완되고 편안한 상태가 되어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 준다.
금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칭송받고 있는 잭 웰치는 재임기간 20년 동안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60배나 올리고 나서 ‘자신의 성공 비결은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논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그것이 당신의 건강을 위해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당신의 실적을 올려준다.
세 번째, ‘다르게 미쳐야’ 한다. 최고의 경영자로 선정된 애플사의 스티브잡스는 성공의 비결은 ‘다르게 생각하기’라고 강조한다. 즉 남과 다르게 창조적인 사고를 했다는 것, 즉 고정관념을 깼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창조적인 사고를 위해서는 기존의 틀과 사고를 깰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스트레스도 고정관념이기에 이것을 깨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스타크래프트를 창안한 빌로퍼는 ‘창조는 미침이다’라고 했는데, 자기가 하는 일에 즐겁게 몰입하는 사람들, 고정관념을 잘 깨고 자기 일에 철저히 미친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빠질 시간도 없고, 설령 스트레스가 온다 해도 잘 극복해낸다. 즐겁게 일에 몰입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잊게 된다. 웨렌 버핏은 ‘열정에 따르라’고 한다. 즉 열심히 정성을 다하여 자기가 하는 일에 미치고 몰입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남보다 앞서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심이 최대 원인이다.
<개미>, <뇌>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가장 똑똑한 뇌는 현재 만족하고 있는 뇌’라고 한다. 과욕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사는 것이 스트레스 관리에 최선의 방법이다.
임인환
전) KB 국민은행 지점장
주) 한국 HR경영연구원 영남 본부장
통일부 사회통일교육 전문강사/ 통일교육위원
법무부 범죄예방 대구, 경북지역 청소년 선도분과 강연위원
한국강사은행 수석 부총재 / 명강사
(사) 한국 장애인문화협회 대구광역시 문화/봉사단장
(사)국민재난안전 교육단 중앙회 사무총장
(사)행복사회복지회 실버성교육 강사회 회장
퇴직은 행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퇴직은 장난이 아니야~”
이 말을 들을 때면,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라는 노래가사처럼 들리고는 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사랑은 좋고, 높고,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랑을 해보면, 사랑은 아름답고 고귀할 수만은 없을 때가 많다. 특히나 사랑이 장난으로만 끝이 날 경우에는, 본인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과 마음의 상처를 남겨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결코 장난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랑과 마찬가지로 퇴직도 장난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직접 경험을 해 봐야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알 수 있다”
나는 퇴직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퇴직을 하고 나면 직업이 없는 백수이기에 흔히들, “갈 곳은 많은데, 오라는 곳이 없다”고 한다. 퇴직한 이들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회사의 관리자들이 자신이 지원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또 구직할 때는 언제라도 반겨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관리자들이 늘 자신과 함께 일하길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큰 착각이다. 현실의 벽은 높고, 관리자들은 지원자를 늘 기다리고 있지도 않으며, 또한 지원을 했어도 그 사람을 반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퇴직 후의 삶을 더 냉정하게 예측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대비하지 못했던, 퇴직 후의 삶
우선 퇴직 후에는 수입에서부터 통증을 호소한다. 나 또한 퇴직 전에는 매월 25일이면 꼬박 꼬박 급여가 통장에 입금되었기 때문에, 돈이 귀한 줄 모르고 흥청망청 풍족한 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고액의 월급을 받으면서 살다가 갑작스레 수입이 없어지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일하는 동안에는 특별한 계획 없이 한 달을 생활했어도 일정 날짜가 되면 ‘급여, ‘월차', ‘연차'가 통장으로 입금되었기에 돈 관리에 있어서는 무사 안일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주위의 지인들이 퇴직 후를 걱정하면서 “돈을 아끼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애기를 하는 것을 수없이 듣기도 했지만, 그땐 그냥 ‘하기 좋은 말’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그때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뭔가 할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퇴직하고 일을 쉬게 되자,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달라졌고 나 스스로도 위축이 되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포켓에서 꺼내어 자랑스럽게 건네주며 나를 알리던 명함도 사라졌다. 명함이 보이지 않는 얼굴 역할을 하는데 말이다.
퇴직 후, 다시 시작하는 삶
내가 힘들다고 생각한 시점은 기다리던 열차가 이미 나를 지나갔기에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떠나간 열차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다.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 예식장이나 기관, 단체에서 주관하는 일에 참석하면 지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요즘 뭘 하고 지내나?” 라고 물으면 “백수”라고 답하기가 부끄러워 참석을 꺼리게 되었다.
이런 것을 해소하기 위해 나만의 할 일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늦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국가공인자격증은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흔한 자격, 수료증을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간절히 원하던 명함을 만들어 스스로를 위로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자신과 용기를 얻었다.
한국강사은행 강사 2년차라는 계급장을 달고 활동하는 금년의 꿈은 내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야무지다. 100회 이상의 강의를 하고, 100권 이상 책을 읽고, 자서전을 출판하는 것이 다. 즉, 100/100/책 출판이다.
강사 2년차인 주제에 어디에서, 어떻게 100회 이상의 강연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많겠지만, 부지런함과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패트리어트 미사일보다 성능이 우수한 신무기가 개발되어 있다. 내가 말하는 신무기란 ‘정해진 목표를 향해 간절히 바라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분명히 해낼 수 있다.’는 확실한 신념이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자.’라는 강한 의지이다.
퇴직 후를 미리 준비하세요
주위에 나와 같이 퇴직을 준비하고 있거나 곧 퇴직하는데 그간 별 다른 대비가 없었던 분들이 수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
“본인이 바라는 한 가지 계획을 똑바로 세워 놓고, 미리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 진작 준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길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다. 미래는 노력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는 나를 반갑게 기다리지 않는다. 이제껏 퇴직 후를 준비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용기를 내어 시작하길 바란다. 아름다운 꿈만 가진다고 해서 성공이 나를 찾지 않는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간절히 원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할 일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는 진정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노력을 계속 기울이다 보면 세상의 모든 퇴직자들이 “퇴직은 장난이 아니야”가 아닌 “퇴직은 행복의 지름길이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영희
2004년안산공과대학(현 신안산대학)영어과 수석졸업
레크레이션 지도사1급, 펀리더십 지도사1급, 웃음 지도사1급
현 한국강사은행 부총재위촉
한국강사은행 음악교수위촉
안산호수합창봉사회/호수여성합창단 부회장
안산천재영어교실원장
웃음치료사 / 영어, 웃음, 레크레이션, 펀리더십 강사
결코 늦지 않았다
며칠 전, 생애전환기를 맞아 건강검진 안내서가 날아왔다. ‘아 이제 내가 만으로 마흔이 되었구나. 나도 벌써 인생 4학년이구나.’ 하고 어색한 마음과 함께 왠지 이룬 것 없이 청춘이 다 간 것 같아 조바심이 들었다. 마음은 아직도 이십대인데 꿈도 못 이루고 세월만 보냈다는 생각에 약간은 억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들을 통하여 내가 마흔이란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깨달았던 일들이 떠올랐다.
대학졸업장에 실린 용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해,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고 나름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 하고 싶었다. 요양원, 양로원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순회선교사의 일을 하며 보내다 시집을 가고, 두 아이를 낳은 뒤 특별전형으로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들어간 학교인지라 띠동갑들과 수업을 받아야 하고, 나보다 어린 교수님도 몇 분 있고, 캠퍼스에서 처음 본 학생들은 날 교수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위축감이 들었다. 하지만 옆 반에 나보다 10살은 많은 주부학생이 있고, 1년 선배 중에서도 두 살 많은 언니가 있다는 사실에 ‘나만 늦은 공부 하는 게 아니구나.’ 하며 용기를 가졌다.
사실 주부로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꼭 시험기간만 되면 아이들이 아프거나 시댁에 갈 일이 생기거나 김장철이었고, 책은 다 원서라 한글이 한 글자도 없었다. 사전에서 일일이 단어를 찾아 책에 적어놓아야만 겨우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당시 내 영어실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으나 의외로 학생들이 공부에 소홀하여 시험성적이 좋았다. 입학 때는 겨우 들어갔지만 학기 내내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었고, 졸업 때는 100점 만점에 97점, 평점 4.5 만점에 4.37로 총장상과 모범상을 받았다. 비록 또래보다 십여 년 늦은 공부였지만 나의 성적증명서는 그들보다 월등했다. 내 자신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새 출발을 위한 한창 때
졸업 후, 필리핀에서 아이들과 어학연수를 하고 유학 온 아이들을 관리하며 3년 정도를 지냈다. 나름 현지생활로 영어에도 자신감이 붙었지만 이미 30대 후반이라 일을 하려해도 학원 강사로는 뽑아주지 않았다. 결국 개인적으로 작은 영어학원을 운영했고 흥해보기도 하고 쇠해보기도 했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늘 마음 한구석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자라나 현실과 부딪히며 하는 일에 식상함을 느꼈다.
이제는 늦었다고 조바심 내던 어느 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들어간 안산 호수합창봉사회 호수여성합창단에서 연세가 예순이신 선배 언니가 쉰이신 언니를 보며 “쉰 너무 좋은 나이야. 내가 쉰이면 뭐든지 다 해낼 것 같아.”라고 하시는 거다. 그러자 일흔이 다 되신 선배 언니께서 예순 언니를 보시며 “내가 예순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난 이미 마흔이고 뭔가를 새롭게 시도하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쉰도 한창이고 뭐든 할 수 있다니! 그러고 보면 50대 선배들은 40대를 보면서 젊음을 부러워하신다. “한창때다. 뭐든 하겠다.” 하시며 말이다.
그때, ‘늦지 않았구나. 내가 거의 막내뻘인 합창단에서 뭐든 다시 시도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나이 많은 선배님들 모두 얼마나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활동하시는지 아름답고 존경스럽고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 번, 뭐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얻은 것은 영어학원이 제대로 안되고 나름 힘든 일도 많아 우울증이 심해졌을 때였다. 우연한 계기로 웃음치료를 접하게 되고,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단 생각에 웃음치료사에 도전하였다. 교육받을 때 75세 할아버지도 계셨다. 늘 봉사하러 다니시는데 웃음치료사가 봉사에 도움이 될까하고 신청하셨단다. 그 마음이 존경스러웠다. 실제로 웃음치료사를 공부하는 젊은 아가씨들도 많았지만 정작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었다.
젊디젊은 마흔
웃음을 주고 마음을 치유하는 일!
나의 즐거움이 다른 사람의 행복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영어학원은 지금도 하고 있지만 거의 사무실로 쓰는 편이다. 그러나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합창봉사와 웃음치료봉사가 본업처럼 재미있고 더 열정을 쏟게 되기 때문이다.
20대나 30대에는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늘 불만족스럽고 스트레스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아무런 집착이 없는 듯하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 열심히 하면 된다는 여유가 생기고, 뭐든지 시작할 수 있는 ‘젊디젊은 마흔’이라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재력, 명예, 배경, 아무것도 거저 주어지지 않았기에 모든 것에 도전할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
“내가 즐거운 일을 하면서 남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 그것이 ‘착한성공’이다.” 라는 안철수 박사의 말에 공감한다. 나도 그런 착한 성공자가 되고 싶다.
가끔 힘이 들면 대학교 재학 시에 띠동갑들 사이에서 어떻게 공부했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떠올려 본다. 그러면 웃게 된다. 대학교 입학 때와 졸업 때가 달랐듯이 나의 꿈도 이제 시작이고 늦지 않았기에 희망을 본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출발이었지만 결코 늦지 않았다. 마흔이든, 쉰이든, 예순이든, 무언가를 도전하고 시작할 때는 그때가 바로 인생역사의 시작이다.
내 나이 마흔, 한창 싱그러운 나이이다.
금동직
현) 대구동부경찰서 보안계 근무
2002년 월드컵대회 자원봉사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자원봉사 문화관광부장관표창수상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자원봉사
2011년 대한적십자총재표창(자원봉사 1,000시간)
대구지방경찰청 동부경찰서 “미인대칭”양성강사
2012. 1. 27(헌혈왕) 매일신문보도
아름다운 헌혈 봉사자,
나는 진정한 녹색서비스 경찰이다!
가난한 가정 형편 탓이었을까?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마른 체구였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학교에 방문한 헌혈차량에 올라 헌혈을 하려고 했으나 ‘몸무게가 모자라서 헌혈을 할 수 없다’며 퇴짜를 맞기도 했다. 이 일은 어린마음에 큰 상처로 남았고 이후, 군복무 기간 동안 약한 체력을 극복하기 위해 단련을 거듭하여 전역 후 울릉경찰서에 근무하게 되었다.
한 번은 항구에 정박 중인 선상에서 선원들끼리 칼부림이 일어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사건이 있었는데, 50대 초반의 남자가 배 부위가 칼에 찔려 과다출혈로 목숨이 위험한 상태였다. 긴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섬지역이라는 지리적 여건상 피가 모자라 추가수혈이 필요했다. 다행히 같은 A형이기에 그 자리에서 수혈하여 죽어가는 한 생명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이 헌혈로 ‘작은 실천이 귀하고 소중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자부심을 얻었기에 지금까지 꾸준히 헌혈을 할 수 있었고, 헌혈이 습관이 되어 20년 동안 180여 회에 이르는 헌혈을 기록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헌혈 중독’은 점차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더욱더 주민과 함께 호흡하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각지대를 돌아보는, 직접 참여하는 봉사로 바뀌었다.
알아두면 좋은 헌혈
우리나라는 2004년 7월 1일부터 헌혈실명제가 실시되었다. 헌혈에 앞서,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신분이 확인된 후에야 헌혈을 할 수 있다. 이 실명제가 실시된 후, 헌혈자는 헌혈기록 및 검사결과를 정확히 관리할 수 있고, 수혈자는 타인명의의 대리헌혈 및 검사목적의 헌혈로부터 안전할 혈액을 수혈 받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에서는 적십자 혈액사업에 공적이 있는 다회헌혈자를 대상으로 30회 이상은 은장, 50회 이상은 금장 ‘헌혈 유공장’을 수여하였다. 별도의 신청절차 없이 30회, 50회 헌혈을 한 날, ‘헌혈의 집’에서 바로 ‘헌혈 유공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의료기관에서 수혈을 받은 환자가 진료비 계산 시 헌혈 증서를 제출하면 수혈비용 중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 한도 내에서 진료비를 공제받을 수 있다. 의료보험 입원 환자의 경우 총 진료비 중 80%는 의료보험조합에서 부담을 하고, 나머지 20%만 본인이 부담하게 되는데, 이때 헌혈 증서를 제시하면 남은 20%도 공제받는 것이다.
이 시대의 경찰상
2003년에 대구 경찰서로 전입하면서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봉사회와 인연을 맺었다. 그 후로 비번이나 주말이 되면 독거노인 말벗 되어주기, 집안청소 해드리기, 소년소녀가장 상대로 밑반찬 만들기, 달성공원, 두류공원일대에서 무료급식 참여하기 등 많은 봉사활동을 하였다.
2002년 월드컵대회, 2003년 유니버시아드대회, 2011년 세계육상 선수권대회에도 시간이 나는 틈틈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였다. 좀처럼 개인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경찰 업무지만, 봉사에 미쳐 마치 알콜중독자처럼 비번이나 주말만 되면 봉사활동에 참여한 것이다.
그 결과 2011년 10월 27일, 대한적십자사 창립기념일에는 자원봉사 활동시간 1,000 시간을 기록하며 자원봉사자들의 선망의 대상인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을 수상하였다. 현재까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등 40회에 이르는 각종 표창을 수상했고, 2003년부터는 아름다운재단, 월드비젼, 대한적십자사에 매월 일정액을 기부하는 등 크고 작은 실천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웃음치료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여 소외된 독거노인세대나 소년소녀가장을 상대로 웃음을 전파하는 ‘찾아가는 봉사’를 하고 있다.
해마다 연말연시나 명절이 되면 관공서나 기업체 등에서 연중행사로 ‘보여주기 식 봉사’를 강요하고 있다. 아직까지 그런 겉치레 봉사가 변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진정한 봉사를 위해서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봉사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헌혈봉사, 봉사 단체가입, 독거노인 상대 말벗 되어주기, 농촌지역 일손 돕기 등 다양한 봉사거리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가까운 곳부터 돌아보면 의외로 봉사자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다. 이제는 고정식 봉사에서 벗어나 유동식 봉사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 국민들에게서 다양한 형태의 민원 서비스가 요구되는 시대에 언제까지 구시대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경찰관은 누구보다도 모범적으로 봉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그런 경찰관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경찰관의 진정한 봉사란 주민과 호흡하고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닐까. 주민을 위한 봉사 속에서 행복을 얻는 경찰이 이 시대가 바라는 경찰상이 아닌가 싶다.
참 봉사를 실천하는 내가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녹색서비스 경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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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수정해서 올려주신 저의글을 몇군데 삽입 또는 수정할부분이 있어(사실적이며 정확한 표현을 위하여...)
그부분을 다시 수정하여 보내드렸습니다.
진한글씨체로 밑줄그은부분만 삽입또는 재수정 하였으니 참작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네 고맙습니다 잘 다듬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 합니다
수정할 부분이 있습니다
현)대구동부경찰서 안심지구대근무로 수정 해주시고요,
2012년 경찰청 학습리더3기 과정수료를 삽입해주세요
그리고 현재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동구 안심3.4동봉사회장을 삽입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급여일은 21일로 수정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