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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여행기 - 포르투칼 리스본~ 까보다로카~ 파티마
세비야의 Covandonga 호텔을 떠나 이제는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한다.
이꽃은 이번 여행내내 많이도 만나는데 꽃이름을 모르겠다.
구절초 비슷한 꽃들이 휴게소 한켠을 장식하고 있다.
어찌보면 민들레같은 이꽃도 유럽에서는 흔한 꽃이다.
리스본에 도착을 한다.
리스본의 타호강을 건너고 있다.
타호강의 4.25다리를 건너면서 차창으로 담은 리스본 모습이다.
리스본은 대항해 시대의 꿈과 낭만을 간직하고 있는 포르투칼의 최대의 도시이자 수도이며,
일찍이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시대부터 항구 도시로서 잘 알려져 왔습니다.
유럽공동체(EC)는 1994년도의 유럽문화도시로 이곳을 지정하였습니다.
유럽에서 접하기 힘든 이슬람 문화가 군데군데 섞여있어 흥미롭고 싫증나지 않는 곳이 리스본 도시의 매력입니다.
또한 인접국가인 스페인의 주요도시와 열차편으로 손쉽게 연결되어
스페인과 주요 유럽도시와 함께 여행하시는데 불편함이 없는 도시입니다.
다칼라우라고 부르는 우리의 대구탕 비슷한것으로 점심식사후 로시우광장과 거리를 돌아본다.
리스본 로시우 광장의 정식이름은 '동 페드로 광장'입니다.
광장 가운데에는 동 페드로 4세의 동상이 있으며, 동 페드로 4세는 독립 브라질의 첫번째 왕입니다.
이 광장은 리스본의 중심지이며, 모든 공식행사가 열리는 장소로써 트램,
버스들이 광장 주변에 많아 교통이 아주 편리합니다.
오래전 밀라노의 피사의 탑앞의 어느 기념품가게에서 담았던 썬그라스진열대 생각이 나서 더욱 멋지게 담아보았다.
주변에는 카페와 레스토랑도 많아 리스본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꼭 로시우 광장을 찾습니다만
관광객들이 많은 만큼 언제나 소매치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개인물품 관리를 철저히 해야합니다.
유럽의 전형적인 거리풍경이다.
모짜르트와 무슨 연관이 있을것 같은데~~^*^
로시우 광장 저~ 끝에 개선문이 있고 동상이 보이는곳이 코메르시우 광장 (Praca do Comercio)이다.
꼬메르시오 광장이라는 저곳에서 교황 내방시 집전을 하였다고 한다.
로시우 광장이나 피게이라 광장에서 번화가인 바이샤(Baixa)지구를 지나 쭉 내려가면
끝에 웅장한 아치 개선문이 보이며, 그 문을 통과하면 태주(Tejo,Tagus)강변에 있는
리스본에서 가장 큰 광장인 코메르시우 광장이 나온다.
이 곳에 원래 있었던 파코 리베이라(Paco da Ribeira)왕조의 궁전은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물에 잠겼다가, 퐁발 후작(Pombal)이 사태를 수습하며 세운 도시계획으로 재건하였다고 한다.
광장 중앙에는 조세 1세의 기마상이 있다. 개선문은 19세기에 세운 것으로 퐁발 후작과 바스코 다 가마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리스본에는 바스코 다 가마와 관련된 건축물들이 많은데,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항로를 개척하여 리스본에 부(富)를 안겨주었기 때문에 영웅으로 인식된다.
같이 생긴 건물 사이로 보이는 동상이 바로 아래에 있는 차창으로 담은 동상이다.
점심식사를 맛나게 들고, 로시우광장을 둘러본후 떠나오면서 차창으로 담았는데
또 다른 동 페드로상인것 같다.
나폴레옹 군대가 칩입하였을때 브라질로 도망갔다가 나폴라옹군이 물러간후 돌아왔다고
조선의 선조만도 못한 O 이라고 가이드가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이 여행기를 쓰는 시점이 여행후 1년이 지나서 메모수첩을 뒤적이며 쓰고 있어서 정확한지는*^^
건너편에서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 있는 예수상을 본따 만들었다는 예수상이 있고,
보이는 다리는 4.25다리(카네이션 혁명다리)라고 부르고,
강 이름은 떼주강(타호강)이라 하는데 대서양과 연결되는 곳이다.
이제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외관만 감상하고, 벨렘탑을 여행한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앞의 분수대가 시원스럽게 뿜어대는 물줄기가 두둥실 떠가는 흰구름과 멋지게 어울린다.
석회암으로 된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한변의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며 웅장하고 화려한 노르만 고딕양식을 띠고 있습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대항해시대의 선구자 엔리케 항해 왕자가 세운 예배당에
미누엘 1세가 제로니모스 파 수도사들을 위해 수도원으로 건립하였으며 마치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과도 같습니다.
때마침 대서양의 바람인지 따호강의 바람인지 거센 바람에 물보라가 일기도 하였다.
제로니모스 수도원(Mosterio dos Jeronimos)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인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포르투갈을 해양강국으로 만든 엔리케 왕자가 지은 교회
자리에 16세기 초 ‘마누엘 1세’가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발견을 기념해서 건설한 것이다.
대항해 시기에 신대륙에서 들여온 막대한 재화를 가지고 세운 수도원 건물은 16세기에 만든 건물과
19세기에 만든 두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우 웅장하면서도 화려하다.
남문 입구의 중앙 상단에는 엔리케 왕자의 동상이 서있고, 수도원 안에는 ‘바스코 다 가마’와 대항해 시대
포르투갈의 활약상을 대서사시로 읊은 이 나라 국민시인 ‘루이스 데 까몽에스’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
인증샷 하나 남기고 가이드가 모이라고 한곳에 가니
벨렘빵(풀빵종류)을 한박스 사다놓고 나누어주는데 꽤 맛이 좋았다.
이때가 조금 무더웠는지 시원한 분수를 여러번 담았나보다^*^
발견기념비 주변 바닥에는 대리석으로 세계지도를 만들어 놓고
포르투갈 함대가 지나간 연도를 기록해 두었다.
발견 기념비 "발견"이라는 의미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했다는 뜻인 모양이다.
태주강(스페인에서는 타호강)을 마주하고 있는 발견기념비는 1960년에 엔리케 해양왕자의 50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52m의 기념비를 범선을 모티브로 했다.
바다로 출정한"카라벨선"을 손에들고 선두에 서있는 것은 엔리케 왕자
그뒤에 천문학자, 선교사, 선원, 지리학자 등이 뒤따르고 있다.
맨 앞 엔리케 왕자, 페르난도 왕자(구부린 사람), 천문학자, 선교사, 선원, 지리학자 등이 조각되어 있다.
요트하나가 가만히 떠있는데 갈매기 한마리가 신나게 날고 있다.
요트들이 수도없이 정박하여 있다.
대서양을 처음으로 비행한 비행기(모형)
발견기념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건축양식은 마누엘 양식이라고 하는데, 높지는 않지만 해질 무렵 강가에 앉아 바라보고 있으면
물 위에 뜬 궁전 같아 보인다고 한다.
이 곳은 원래 인도·브라질 등으로 떠나는 배가 통관절차를 밟던 곳이다.
탑의 모양이 귀부인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떼주 강의 귀부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탑이 만들어진 이후 스페인이 지배하던 때부터 19세기까지 탑의 1층은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이 탑의 1층은 간조와 만조 때 물이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했는데 정치범들을 이곳에 수용해 고통을 주거나 죽게 했다고 한다.
2층은 대포실, 3층은 귀빈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 테라스에서는 4월 25일 다리와 강 건너의 끄리스토 레이가 바라다 보인다.
타호강 근처에 있는 벨렘 탑은 4층의 등대로서, 1515∼1521년 프란시스코 데 알다가 가마의 업적을 추모하여
건물 모퉁이마다 감시탑을 세우는 형식으로 지었습니다.
총 3층구조로 되어있는데 만조 때 물에 잠기는 1층은 19세기까지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되었으며,
2층은 포대, 3층은 망루 및 세관 역할로 사용되었습니다. 포르투갈 특유의 마누엘 양식을 띠고 있으며,
198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습니다.
따호강과 4.25다리를 배경으로^*^
벨렘탑에서 본 4.25 다리
1974년 4월 25일 무혈 쿠테타로 살라자르 독제정원을 무너뜨린 기념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카보 다 로카인데 휴~~이곳바람은 대서양의 모든 바람이 집결하는곳 같았다^*^
까보 다 로까 (Cabo da Roca) - 유럽의 땅끝 마을
대서양과 가장 가까운곳으로 바람이 세기로 그 유명한 까보다로까는 대서양 바람이 정말 무서웠다.
포루투갈의 서쪽 끝이자 유라시아 대륙이 끝나는 곳이다.
몇몇 CF를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하는데 별 기억은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 해남의" 땅끝마을"이 유명하게 됨에 따라,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 더 친숙한 이름으로
와닿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가는 날에도 광광버스로 온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여하간, 끝없이 펼쳐지는 대서양의 대해와 절벽과 바위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보고 있으니
땅이 끝나고 미지의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서 과거의 포르투갈인들의 상상력과 탐험정신이 상상된다.
이제껏 여행하면서 이곳처럼 위험하도록 매서운 바람은 처음 보았다*^^
까보다로까는 유럽대륙의 서쪽 땅끝마을입니다.
포르투갈의 서사시인 카모잉스(Camoes)는 이곳을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표현했으며
관광안내소에서 유럽대륙 서쪽 끝에 왔다는 기념증명서를 발급해주기도 합니다.
해안가 근처라 급작스런 소나기가 오는 경우가 많지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넓은 수평선과 함께 아름다운 꽃밭에서 낭만적인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곳입니다.
이날은 아예 해변의 그 멋진 절벽방향으로는 통제를 할 정도로
거센 해풍이 불어와서 제대로 돌아볼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파두 (Fado) - 신문기사에서 발췌
포르투갈의 전통 대중음악인 파두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음악이지만 포르투갈인들에게는 우리의
`아리랑`처럼 '숙명", `한`과 `설움` 등의 비슷한 정서인 `사우다드(Saudade)`가 깔려 있어 언어와 상관없이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콜로니얼이 포르투갈의 전통 건축 양식을 대표한다면 `파두`는 포르투갈인들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대중적인 음악이다. 아주 소박하고 절제된 감성으로 구슬프게 노래하는 것이 외로움과
그리움에 지친 한 선원의 아내를 생각게 할 만큼 슬프다.
파두의 기원을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리스본 항구 근처에 있는 선술집에서 선원들이 술을 마시며 고달픈
자신들의 생활을 푸념하면서 부른 노래라고 한다. 아마 15세기 포르투갈이 바다를 향해 거센 파도와 싸우며
새로운 식민지 건설과 지리상 발견 등 대항해 시대를 열었을 때 선원들이 바다에 나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달빛 아래서, 갑판 위에서 파두를 부르며 외로움에 지친
영혼을 서로 달랬을 것이다.
희미한 불빛, 자욱한 담배연기 가득한 선술집 그리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 애절한 여가수의 목소리와
감미로운 기타 그리고 비올라 선율은 술에 취한 청중을 한층 더 외롭고 슬프게 만든다.
포르투갈 특산품인 화이트와인을 몇 잔 걸치고 나면 어느새 파두는
`아리랑`이 돼 눈시울을 적시고 마음을 낭만으로 물들인다.
휴~~~CABO DA ROCA 잊지못할 까보다로까를 떠나 파티마로 향한다.
파티마 면세점에 들려서 손자와 사위 딸들 선물을 산다.
아주 저렴하고 기념품 품질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파티마(Fatima) 성모 발현지
1917년 5월 13일, 인구 1만 명의 작은 마을 파티마의 한 목초지에서 양치기하며 사는
열 살의 루치아, 일곱 살의 히아친타, 아홉 살의 프란치스코 등 세 명의 어린이는
갑자기 번개와 같은 섬광이 내려치면서 아이들 앞에 있는 작은 떡갈나무 위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
루치아는 당시 자신이 목격한 성모의 모습에 대해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매우 아름다운 부인이었는데 그 부인이 입은 옷은 반짝거리는 물이 채워진
수정 유리보다 더 강하고 밝은 빛을 쏟아내는 찬란한 것이었다.
부인이 입은 옷은 발 밑에까지 늘어뜨려졌으며 그 경계 부분은 별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상의 빛으로 가득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듯한 슬픔도 배어 있었다.
가늘고 섬세한 그 부인의 손은 진주 같은 것으로 엮어진 묵주를 들고서 가슴 부분에서 서로 맞잡고 있었다." 라고 설명하였다.
루치아의 진술에 따르면, 성모는 세 아이에게 일명 "파티마의 비밀" 이라고 불리는 세 가지 비밀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와 고행을 바치라고 당부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낮 동안만 고통을 가져오는 굵은 밧줄을 허리 맨 살에 단단히 묶고 다녔으며,
더운 날에 물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포르투칼 여행중 버스에서 파티마 성모 발현지에 대한 영화를 보았었는데,
파티마는 카톨릭의 중심지로 보이는 건물은 바실리카 성당이고,
성모를 알현한 루시아라는 소녀는 수녀가 되어서 이곳을 지켰으며 역사가 얼마 안된것으로 기억된다.
파티마 성당 광장의 십자가 조각이 드높이 세워져 있다.
성모가 전해준 3가지 비밀과 전문을 교황에게 전하였는데,
1. 지옥의 현실.
2. 1차대전의 종식.
3. 2차대전의 출현과 종식과 러시아의 붕괴라고 한다.
전문의 내용은 성직자들이 깨어나야 한다는것이다.
교황이 이 전문의 발표를 미루게 되는데,
요한바오르 1세는 발표 하루를 앞두고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고 한다.
***위 내용은 가이드가 하는말을 메모장에 부지런히 흔들리는 차내에서
부지런히 받아적은 내용으로 지금보니 글씨가 흔들려서 알아보기도 힘들다*^^
파티마 성당 관리실로 보이는 건물들이다.
파티마는 치유의 땅이 되어서 세계 3대 성지순례지라고 한다는데,
루시아가 소녀일적에 성모출현으로 알현하고 수녀가 되어서
루시아 수녀는 2005년에 95세로 선종(善終)하였다고 한다.
바실리카 성당과 광장을 창밖으로 볼수있는
이곳 파티마 호텔에서는 술파티를 쉬고서
마음껏 푹 쉬었는데
여행중 항상 술이 문제로다^*^
벌써 몰라보게 나와버린 뱃살을 어찌할꼬?*^^
2016. 4. 5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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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모처럼 서늘한 날씨였어요
가이드가 열심히 얘기해주었지만 메모는 커녕 건성으로 듣는둥 마는둥 그랬는데 여기서 기록을 보며 비로소 정리가 되는군요 ㅎㅎ
대서양을 향한 땅끝에서는 겉옷을 하나 걸치는 정도였구요 바다 선인장이 노랗게 피어있었죠
버스안에서 영화본 것도 똑 같아요
올해 5월 13일에 두 소년 소녀가 성인으로 인정되어 교황이 이성당에 오시고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고 합니다.
포르투칼은 몇군데 가보지못하였지만 기억속에 많이 남는것 같아요.
얼마 남지않은것 같은데 건강 조심하여 잘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