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한국 재림 교회 여러 신도들로부터 진용식씨의 저술 안식교의 오류(도서출판 복음사역, 1998년)가 교계에 혼란을 조성하여 왔으며 특히 진씨의 엘렌 G. 화잇에 대한 비평의 정당성에 관한 문의가 있어왔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용식씨의 저술 안식교의 오류제5장 “화잇은 선지자인가”(127쪽으로부터 159쪽까지)에 나타난 진씨의 허구와 오류 및 왜곡을 들춰내고자 한다. 진씨가 동 저술을 안식교의 5대 오류란 책명으로 처음 발간하였을 때 (국제복음선교회 국종출판사, 1993년) 총신대학장 차영배 박사의 추천서를 개제한 사실을 두고 필자는 곧 차영배 박사에게 전화를 통하여 정중하게 추천 사실 여부와 진씨의 책을 읽고서 추천하였는지를 문의한바 있었다. 그는 진씨의 책을 추천하였다고 하면서 진씨의 책을 읽지 않고 그가 써온 추천서를 그대로 서명하였다고 하였다(추천서의 내용이 어법에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 필자는 차영배 박사에게 진씨의 학문적 방법론이 타당한지 여부를 물은 바 있었다. 진씨는 재판에서 동 추천서를 작성하였다. 왜 추천서를 삭제하였는지 자못 궁금하다. 그의 비판내용의 실상을 알고 나면 더 이상 추천할 수 없다는 단적인 증거가 아닐까 한다. 추천하는 사람의 명예가 실추될 만큼 돈 저술에는 과오와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Ⅱ.진씨의 책의 외형적(표기적) 과오들
진용식씨가 재림교회의 교리나 기사를 바르고 정직하게 인용하였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의 주장이 객관성을 유지하려면 최소한도 재림교회의 주장이나 기사를 바르게 인용하였어야 한다. 만일에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문맹이나 중요기사를 무시, 간과 내지 삭제하고 있다면 그의 비판 논조는 객관성을 지녔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한 인용을 하여야 원문을 쉽게 대조하여 볼 수 있으며 그가 재림교회를 정직하게 분석 또는 비판하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진씨가 그 책에서 어떠한 태도를 보여 주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1.의도적 생략
진씨는 수많은 인용을 하면서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있고 단정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 예를 한가지 들어보기로 한다. 진씨는 그의 책 128쪽에서 A. J. 워너의 책, 성경교리의 기초 335쪽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참 교회라 주장하는 교회는 그 쇽에 예언의 선물이 나타나야만 한다고 우리는 믿는 바이다. 우리는 화잇〔부인〕이 그 예언의 선물을 가졌으며 그의 저서들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한 계시와 더불어 교회를 이끌어 성서에로 돌아가게 하시지만 ․․․예언의 신이 주신 지시들을 쫒아야 한다. 이 세대를 위한 진리들을 사랑하고 순종하여야 한다. ”
진씨의 위 인용문을 보면 원저(성경교리의 기초)가 인용하고 있는 각기 다른 두 저자로부터의 인용을 중간에 의도적으로 생략하고는 마치 한 저자의 글로부터 인용된 글처럼 그래서 재림교회가 위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조립한 방식은 다분히 사기성이 내포되어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워너는 A. J. 배컬의 글과 엘렌 G. 화잇의 8T 298쪿을 분리 인용하였는데 진씨는 이 두 저자의 글을 한 묶음으로 인용하여 왜곡시킨 것이다.
워너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성경의 우월성에 있다. 엘렌 G. 화잇의 글과 결합시켜 마치 재림교회에서는 엘렌 G. 화잇이 받은 예언적 은사가 성경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인상을 심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진씨가 배컬의 글 “성서에로 돌아가게 하지만”을 엘렌 G. 화잇의 글 “예언의 신이 주신 지시를 쫒아야 한다”고 결합시킨 방식은 자기의 비판목적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 진씨가 인용한대로 읽는다면 예언의 신이 성경이상이거나 또는 성경과 대립적인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리고 진씨가 인용한 8T 298에 나오는 “예언의 신”은 예언을 하도록 헌 성령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무시하게 한다.
2. 부정확한 인용이나 표기상의 오류
진씨가 내 놓은 저술에는 다음과 같은 잘못된 표기들이 널려 있다.
127쪽 16행 - “Ellen g. hermon"
131쪽 6행 - “Spiritual Gifte"
131쪽 9행 - “Tubilee"
131쪽 12행 - “Avision"
132쪽 25행 - “Revies White"
133쪽 2행 - “Top Shanme"
133쪽 7행 - “Bor Bates"
136쪽 12행 - “Strychine"
136쪽 14행 - “미국의 사회잡지(The Journal of Amercal Association)"
137쪽 1행 - “Suecedal"
139쪽 10행 - “땅에서 올라온 것으로 생각되고 후에는”(엘렌 G. 화잇이 사용한 표현이 아님)
140쪽 2행 - “의복 개혁을 포기하고 말았다.”(엘렌 G. 화잇의 취지에 대한 오해)
143쪽 2행 - “Curits"
143쪽 9행 - “톱샴(Top Sham)"
143쪽 14행 - “트루스테일(M. Truesdall)"
143쪽 18행 - “주님”
144쪽 3행 - “Sani Tarium"
144쪽 5행 - “로버트 장로(Elder Lough Borough)"
144쪽 12행 - “일만 일천 달러의 정금” - (수천달러가 맞음)
153쪽 24행 - “<사도 바울의 생애와 시간들>(The Life and Epistles of the Apostle Paul)
153쪽 27행 - “<바울의 생애에 대한 서울>은 더 이상 출간되지 않았다.”
154쪽 2행 - “메이간(Wellesley P. Magan)"
154쪽 3행 - “알프레드 이더쇄임(Altred Edersheim)"
154쪽 9행 - “<부조와 선지자>(Patriarchs and Prophets)"
154쪽 12행 - “<예수님에 관한 신학 역사>(New Testament history on the life of Christ)."
155쪽 8행 - “호응아래 교세가 성장일로에 있다.”(사실은 쇠퇴일로에 있음)
157쪽 7행 - “포글랜드”
3.출처미상의 인용
진씨는 자기 자신의 저술에 엘렌 G 화잇의 글을 수없이 인용하면서 그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저술의 정직성이나 정당성을 독자들이 비판하고 탐색할 길을 차단하는 부도덕한 행위이며, 학문의 세계에서는 용납될 수도 없고, 있을 수조차도 없는 사항인 것이다. 그가 이처럼 출처조차 밝히지 않고 있는 인용들은 다음과 같다.
a. 134쪽 25행부터 135쪽 12행까지
b. 136쪽 11행부터 13행까지 - 쪽 표기가 없음
c. 137쪽 25행부터 138쪽 2행까지
d. 138쪽 22행부터 139쪽 4행까지
e. 139쪽 14행부터 139쪽 25행까지
f. 140쪽 5행부터 140쪽 12행까지
g. 141쪽 4행부터 141쪽 8행까지
h. 141쪽 11행부터 141쪽 13행까지
I. 142쪽 4행부터 10행까지 - 쪽 표기가 없음
J. 142쪽 13행부터 23행까지
k. 143쪽 1행부터 7행까지
l. 143쪽 9행부터 13행까지
m. 143쪽 16행부터 19행까지
n. 144쪽 15행부터 24행까지 - 쪽 표기가 없음
o. 144쪽 25행부터 145쪽 7행까지
4.부정확하거나 모호한 출처 표기
128쪽 각주에 나와있는 “74. 위의 책, p.335", "75.위의 책, p.336"에서 ”위의 책“은 앞의 책 이라고 하여야 함.
145쪽 각주 “76. 위의 책” - 어느 책인지 불분명
130쪽 14행 - “MWHC. P.102"
130쪽 13행 - “엘렌 G. 화잇HC. P.337"
131쪽 22행 - “(G.G.D)"
131쪽 2행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노예) - 원문에 없음
5.오역
a. 135쪽 9행부터 11행에서 진씨는 다음과 같이 번역 인용하였다.
만일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이 당신의 교회의 의무라면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두 세 사람이상의 사람들에게 계시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그들의 의무를 가르쳐 주실 것이다.
필자는 동 번역이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출처를 찾느라고 애썼다. 동 인용의 출처는 1T 206,207쪽으로, 원문을 충실히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라면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두 세 사람에게 깨닫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의무를 당신의 교회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다.
진씨가 “두 세 사람 이상의 사람들에게 계시해 주실 것이다”라고 번역한 것은 “두 세 사람이상에게 깨닫게 하실 것이다”로 번역되어야 옳다. 그리고 원문에서 당신의 “교회”를 이탤릭체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번역에서도 표기해 주어야 원문의 의미가 올바로 드러날 것이다.
b. 130쪽 12행 - “인내의 밤”
c. 142쪽 21행 - “하늘문”
우리는 이상에서 진씨의 책에 나타난 의도적 생략, 부정확한 인용이나 표기상의 오류, 출처 미상의 인용, 부정혹하거나 모호한 출처 표기 및 오역들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진씨의 책 제5장(127-159쪽)에서만 살펴본 현상이다. 만일 그의 책 전부를 살펴본다면 그 오류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런 오류 투성이 책을 출판한 진씨의 저돌적인 무지성에 대하여 경악할 뿐이다. 표기가 부정확하면 그 내용이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 없게된다. 책을 출판할 때, 특히 전 세계적인 교단을 비판하려 들면 저술 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이토록 무식하거나 부정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감히 한 교단을 비판 할 수 있다는 것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저돌적인 만용을 상대하여 답변이나 반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주저스럽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러한 불완전한 정보를 의지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측은 할 뿐이다. 진씨는 남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비판하여야 한다. 자기가 무식하면 독자도 무식한 줄 착각하고 있는 진씨가 가여울 뿐이다. 초판에서 잘못된 것을 정오표도 붙이지 않고 재판에서까지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기독교 출판을 저질화 시키는 소행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Ⅲ.진씨의 책의 사상적 오류들--엘렌 G. 화잇을 거짓 선지자로 비판한 허구성
A. 예언이 선취되지 않았다는 주장
1. 진씨의 주장
1856년 계시에서 살아서 재림을 맞을 자가 있다고 하였는데 빗나갔다.(130쪽)
2. 반증
성경예언 중에는 조건적 특색이 들어있는 예언들도 있다. 하나님의 축복과 심판은 조건적이다. 조건적 예언의 경우에는 인간의 반응에 따라서 그 성취여부가 좌우되므로 때에 따라서는 그 예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선택 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를 수용하여 순종한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 예언을 꼭 성취시켜 심판하셔야 할 이유가 없다. 심판의 엄중한 경고를 하는 하나님이기도 하시지만 또한 인간이 회개하도록 1000년을 하루처럼 기다리는 하나님이시기도 하다(벧후 3:9). 하나님은 이미 멸망한 것이라고 예언하신 거 때문에 그 예언에 집착하여 빗나간 길을 돌이켜 회개한 사람들까지 멸망시키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던 사도들이 그의 재림의 임박성을 그토록 선포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2000년 동안 재림을 미루어 오셨다.
백성들이 돌이키려면 내리기로 했던 재앙에 대한 뜻을 돌이키는 하나님이시라고 예레미아는 말하였다 (예레미아18:7-10). 니느웨 백성이 돌이키자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하시지 않으셨다(요나 3:5,10). 이 조건성은 악인이 돌이키는 것뿐만 아니라 의인이 의 가운데서 계속 살도록 하는 목적이 담겨있다(히스기야 경우 - 왕하 20:1-5 참조).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선택의지를 활용할 은혜를 주시고 계시에 일치한 길을 선택하도록 권고하신다. 엘렌 G. 화잇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멸망당하는 일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연시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2T 174).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서 있다면 벌써 하늘 가나안에 가 있었을 것이라고 마하고 있다(GC Bulletin 1903. 3.30 p.3). 엘렌 G. 화잇이 한 얘언이 성취되지 않았다고 매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성경에 나와 있는 여러 조건적 예언을 한 선지자들도 매도당해야 마땅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B. 노예제도의 지속을 주장했다는 비판
1. 진씨의 주장
엘렌 G. 화잇은 옛날의 노예제도가 종말 때까지 (7재앙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였다(130-132쪽).
2. 반증
a.엘렌 G.화잇의 글을 보면 미국에 과거 노예제도가 있었던 때의 참혹 상을 그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진노로 보응하시는 날 과거의 악독한 노예주인들이 7재앙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b.“경건한 노예는 승리중에 일어날 것이다”(1 SG 206)는 진술은 과거의 노예제도가 계속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지나간 날 경건하게 살았던 노예들이 승리중에 부활 할 것을 뜻하고 있다.
c."경건한 남자 노예와 여자 노예(the bond-men and bond-women) (1 SG 191), 즉 진리를 분별하는 경건한 노예가 있는 반면에 진리를 분별치 못한 노예들도 있다. 모든 노예가 꼭 같이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도덕성이 마비된 노예들은 심판도 부활도 없다. 모든 죄인이 다 어떤 형편이든지 부활치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달려 있다. “모든”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초청에 기꺼이 응답하는 자들이다(요 12:32). 선악 판별 능력이 상실된 인간까지 엄중한 심판의 책임을 묻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각”종은 심판 받을 책임이 있는 자들이다(계6:15).
d. 엘렌 G. 화잇의 최후사건 묘사에서 노예가 등장하는 표현은 계 16:15에도 나온다. 그렇다고 미국 노예제도가 최후까지 계속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특별 부활을 통하여 그 당시의 악독한 노예가 심판 받게 하고 경건한 노예가 구원받게 하면서 7재앙을 거칠 수도 있다는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e. 과거와 같은 노예제도는 아니다. 변형된 상황에서도 사실상 노예취급을 한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엘렌 G. 화잇의 글 전체가 19세기의 노예제도에 국한된 표현이기보다는 19세기와 마지막 사건이 압축된 표현일 수 있다. 마지막 때에 안식일을 준수하는 자들이 박해를 받아 노예처럼 취급된다는 기사는 과거의 노예제도가 계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남은 백성이 당하는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이 노예처럼 취급될 수 있다는 것이다.
C. 안식일 시작 시간의 문제
1. 진씨의 주장
진씨는 만일 하나님께서 엘렌 G. 화잇에게 안식일 시작 시간에 관련된 계시를 주셨다면, 왜 1846년 계시를 주실 때에 해질 때가 바른 시간이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았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베이쓰 씨의 6시설에 반대되는 일출시설이 틀렸다는 묵시를 왜 주셨을까?” “처음에는 베이쓰 씨 설을 찬성하여 그와 대립되는 일출시설을 배격하는 묵시를 보았었고 나중에는 앤드류씨의 일몰시설을 찬성하여 그의 설을 시인하는 묵시를 본 것이 명뱍하지 않는가!!”라고 비판한다(133-134쪽).
2. 반증
a. 엘렌 G. 화잇의 안식일 준수 과정
1846년 초 엘렌 하몬양(Ellen Harmon)은 마사추세츠 주 베드포드 방문중 조셉베이츠(Joseph Bates)로부터 넷째 계명에 관한 기별을 들었다. 처음에는 넷째 계명의 중요성은 인식하지 못한채 베이츠가 너무 그에게 집착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1846년 8월 30일 제임스 화잇과 결혼한 직후 동년 가을에 이들 부부는 베이츠의 소책자 “영원한 표징 제칠일 안식일(The seventh-day sabbath a Perpetual Sign)"을 연구하고서 안식일 기별을 받아들이고 안식일에 관한 첫 계시가 있기 전부터 준수하기 시작하였다.
1847년 4월 2일 안식일에 엘렌 G. 화잇은 계시 중에 십계명이 들어있는 두 돌판과 넷째 계명 위를 영광스러운 후광으로 둘러 쌓인 것을 보았다(LS 100, 101; EW 32-35).
b. 안식일 시작시간에 관련된 입장들 개요
재림교회 역사 초기 수년간 금요일 오후 6시를 안식일 시작 시간으로 보았다. 1855년 가을에 Review지는 일몰시간을 안식일 시작시간으로 가르쳤다. 그래서 재림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안식일 시작시간을 금요일 오후 6시에서 일몰 시간대로 바꾸어 지켰다. 이 변경과 관련된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6시 시작설에 대하여는 1847년부터 의문이 제게 되어 왔다. 어떤 사람들은 일출설을 또 어떤 사람들은 일몰설을 선호하였다.
(2) 안식일의 중요성을 일찍이 역설하여온 조셉 베이츠가 오후 6시설 유포에 제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 6시설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후에도 그의 경건하고 헌신적인 삶의 감화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6시설의 타당성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하지 않은 채 따랐다.
(3) 1855년 가을에 J. N. 앤드루즈(J. N. Andrews)가 베틀크릳에 방문하여 제임스 화잇에게 안식일 시작 시간에 금요일 일몰 시간이라는 것을 성서적으로 설명하고 그 내용이 담긴 글을 남겨 두어 베틀크릭 총회사에 발표하고 검토 과정을 거쳐 베이츠와 다른 두 서너 명 외에는 일몰 시간부터 안식일을 성수하기로 하고 동 기사를 1855년 12월 4일자 리뷰에 게재하였다. 이 일 후에는 재림교회 대부분의 신도들이 이에 따랐다. 하지만 엘렌 화잇이 오후 6시에 안식일이 시작된다는 계시를 받았으나 후에 일몰에 시작된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거짓 소문과 출판물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교회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심지어는 화잇 여사가 계시 중에 한 손이 안식일 시작 시간인 6시를 가리키고 다른 손이 안식일을 마치는 7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 원판을 보았다고 하는 낭설까지 돌았다.
c. 제임스 화잇의 가사 요약(“Time to Commence the Sabbath" 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 1863. 2. 25)
재림교회 내에 안식일 시작 시간과 관련하여 야기된 혼선과 엘렌 화잇을 곡해하는 현상에 대하여 제임스 화잇은 사태의 진상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올바른 이해를 촉구하였다.
(1) 화잇 여사가 안식일 시작시간에 관하여 두 개의 계시를 보았다. 첫 계시는 1847년 초에 톱샴(Topsham)에 있을 때 받았다. 이 계시에서 일출 시에 안식일이 시작된다는 견해가 틀렸다는 것을 보았다. 화잇 여사는 천사가 “저녁에서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너희는 안식일을 경축할 것이다”고 반복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다. 베이츠가 이 계시를 목격하였으며 모두가 다 “저녁”은 6시를 뜻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여겨 만족해하였다. 그러나 톱샴에서 엘렌 화잇의 이 계시는 오후 6시 시작설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 단지 일출 시작설을 교정하였을 뿐이다. 도 계시가 6시 시작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어떤 여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1855년 12월 4일자 리뷰지에서 다음 내용을 제시한다. “우리는 6시를 지지하는 주장들에 대하여 결코 만족할 수 없다. . .우리는 도 계시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하였으나〔안식일 시작〕시간을 발견하지 못했다.”
(2) 제임스 화잇은 안식일 시작시간에 관하여 엔드루즈 형제에게 저간의 사정을 진술하고 이로 인하여 어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성경의 기별을 조사연구 하라고 부탁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6시 시작설이 성령의 직접적인 현현에 의해서 가르쳐졌다고 하는 인상을 받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재림교회 안에서 “저녁부터 저녁까지”라는 말이 성경적인 연구 없이 6시라는 개념으로 추론되어 가르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20명의 증인들이 화잇 여사의 계시에 관하여 증언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1849년 록키 힐 안식일 집회에서(알버트 벨튼의 집) 안식일 시작 시간이 논란거리가 되었다. 한 형제가 마루 위에 걸려져 있는 시계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자기의 영적인 경험과 확신을 힘있게 눈물로 증거하는 일이 있었다.
(3) 베틀크릭 총회 끝에 목사들과 다른 사람들이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기도회를 개최하고 있을 때에 화잇여사가 계시를 보았다. 그 계시 가운데서 “일몰 시작 시간이 맞다.”라고 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서 죠셉 베이츠와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것으로 재림교도들 사이에 이 문제에 있어서 일반적인 조화가 있게된 것이다.
그러나 진씨는 만일에 계시가 잘못된 것을 교정하기 위해서 주어졌다면 왜 화잇 여사는 곧 6시 시작설의 과오를 보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하신 시간에 따라서 과오를 교정하신다. 주께서 안식일 시작 시간과 관련하여 보여주신 것은 그분의 뜻에 따라서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재림교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때에 적절한 교훈을 주시고, 주신 영적 은사들과 가장 조화되게 인도하여 오셨다. 여기서 특별히 유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가르치시는 일을 그 종들에 열심히 말씀을 탐구하기까지는 나타내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안식일 시작 시간에 관한 주제에 있어서 잘 드러났다. 거룩한 성경은 신앙과 의무를 위하여 주어진 것이어서 우리는 부지런히 그것을 살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성경 연구는 등한히 하면서 성경 진리를 추구하는데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그것을 제시해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면 되겠는가! 은사는 교회에 그 적당한 자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은사들을 맨 앞자리에 두시지 않고 우리들에게 명하시기를 우리가 진리의 길, 그리고 하늘에 이르는 길에 인도함을 받기 위하여 살펴보아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신구약 성경은 우리로 천국에 가는 길을 비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빛에 따르라! 만일 그대가 성경의 진리로부터 과오를 범하여 위험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대를 교정하시도록 당신의 선택의 시기 가운데서 그대를 교정하실 것이요 그리고 성경의 진리가운데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진용식씨가 말한 대로 화잇 여사가 6시설을 인정하는 묵시를 본 것이 아니다. 8년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록 정확한 안식일 시작 시간을 주시지 않았다고 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비난한다면 이는 상대할 가치가 없는 비난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제8장의 2300주야에 관한 묵시를 548 B. C 경에 주셨지만 그 이상의 내용을 즉각적으로 깨닫도록 설명하시니 않고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야 예레미야서를 연구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기 만족이 당할 수난기간에 관하여 깨닫고(단 9:2), 2300주야와 같이 시작되는 70이레에 관하여 가브리엘의 설명을 들어야 했다.(단9:24-27). 예수님께서 부활에 관하여 이미 기별을 주셨지만 제자들은 이를 더디 믿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길을 걸어가시면서 말씀연구로 깨우치셨다. 구약성경을 연구하면 일몰 시작이 확연하다. 그러나 말씀 연구를 등한히 한고 있는 상황에서 말씀연구 정신을 대체하는 계시 기대는 백성들에게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 말씀연구를 하지 않고 인간의 말에 따르는 일의 위험성을 깨닫게 할 필요도 있었다. 필요로 하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일조일석에 오늘날처럼 이해되거나 다듬어지지 않았다. 100여년 이상의 연구와 논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진용식 씨는 “ ‘저녁때로부터 저녁때 이르기까지 너희는 너희 안식일을 지킬 것이라.’. . .그리하여 그는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천사가 말한 (저녁때) 이 여섯 시라고 합의케 하는 데 성공했다.”(p.133)고 하였으나 그 본래의 내용은 “천사가 ‘저녁에서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너희는 안식일을 경축할 것이다’고 반복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다...참석자 모두가 ‘저녁’은 6시를 뜻한다 라고 보아 만족하였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이 ‘저녁’을 일방적으로 6시로 해석한 것이지 합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진씨는 제임스 화잇의 글을 잘못 읽었다. 더구나 과오 지적이 6시 시작설을 옹호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악의에 찬 비난일 뿐이다.
D. 돼지고기 문제
1. 진씨의 주장
a. 엘렌 화잇은 1859년에 A씨가 ‘영양 있는 음식’인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을 믿음의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나쁘다고 가르치시는 사람들을 지적하여 ‘스스로 고난의 때’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135쪽)
b. 엘렌 호잇을 후에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정죄하였다.(135쪽)
2. 반증
a.진씨는 엘렌 화잇이 A씨에게 한 편지의 핵심 내용을 간과하고 있다. A씨의 최대의 문제는 신자들의 신앙을 극단주의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엘렌 화잇이 경계한 것은 바로 A씨의 극단주의에 있다.
b. 진씨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나쁘다고 한 A씨의 주장이 틀렸다는 점을 엘렌 화잇이 계시 중에 “내가 보았다” 한다. 그러나 원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돼지고기*에 관한 그대들의 견해를 그대들만이 간직하고 있으면 그 견해가 손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그러나 그대들의 판단과 의견으로 이 문제를 하나의 시험거리로 만들고 그대들의 행동이 이 문제에 관한 그대들의 믿음을 분명히 나타내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요구하신다면 그분께서는 이 문제에 관하여 그들에게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그분은 마치 당신의 사업의 책임을 맡긴 사람들에게 의무를 알려 주시는 것처럼 당신의 정직한 백성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즐겨 알려주고자 하신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교회의 의무일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 이상에게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그분은 그들의 의무를 당신의 교회에 알려 주실 것이다.(Testimonies, vol. 1, p.206,207)
위 글을 보면 1859년 당시에 아직도 돼지고기에 환하여 확실한 계시를 받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엘렌 화잇의 이 문제에 관한 계시는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863년에 있었다. “돼지고기”옆에 *의 표시에 나타난 난하 주에서도 이점을 말하고 있다. 엘렌 화잇이 본 것은 A씨가 돼지고기를 안 먹는 것을 신자 자격 요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다.
또한 진씨가 그의 책 134쪽에서 인용하고 있는 엘렌 화잇의 글을 보면 계시 중에 본 것이 무엇인지 확연하여진다. “나는 그대들이 육체를 고통스럽게 하고 그대 자신에게서 영양분이 많은 음식물을 박탈해 버리는데 관하여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보았다.” 여기서 본 것은 고기 같은 영양 있는 음식들을 금하게 하여 육체를 고통스럽게 하는 극단주의적인 사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본 것이다. 엘렌 화잇의 글 문맥에 나타난 기사에 A씨의 권고를 따르는 사람들이 병들어 건강이 오히려 악화된 상황임을 고려하면 엘렌 호잇의 계시와 권고의 초점이 확실하여진다.
c. 진씨는 예언자에게 주시는 계시가 점진적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니엘도 2300주야 예언 기간과 70이레에 관하여 처음부터 그 전모를 다 알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엘렌 화잇에게 후에 포괄적인 건강계시를 주셔서 더 밝은 이해를 하도록 하셨다. 후에 주신 돼지고기 유해 관련 계시는 이러한 점진적인 계시의 선상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E. 스트리키닌에 관한 계시 문제
1.진씨의 주장
엘렌 화잇이 스트리키닌에는 해독제가 없다고 하는데 해독제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136-137쪽
2.반증
진씨의 비판은 엘렌 화잇의 기별을 왜곡 이해한 소치로 근거가 없다. 진씨는 먼저 엘렌 화잇의 저서 Spiritual Gift제4권 138쪽에서 스트리키닌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데 앞서 문제를 삼은 몇 문장의 전후 문단들을 통하여 저자가 주고자 하는 문맥의 핵심내용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범주 내에서 고찰하였어야 했다.(참고, 동 저서 제39장 Health). 문제로 삼은 문장들 전후문맥은 약물 사용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과 유해성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이런 맥락에서 엘렌 화잇은 그 당시에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처방하던 약물 가운데 하나인 스트리키닌이 인체에 얼마나 무서운 해를 끼치고 있는지를 알리며 그 사용에 경고를 하는 것에 초점이 있다.
엘레 화잇은 당대의 무분별한 정도를 넘어서 인체에 손상을 주는 의약품에 대한 경고를 하면서 그 예로 스트리키닌의 남용에 대하여 경고한 것이다. 스트리키닌에 해독제가 없다는 엘렌 화잇의 지적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았는가를 생각할 때 그의 기별에 오히려 감사하여야 할 것이다.
20세기에 동 맹독성 물질을 해독하는 기법을 알아냈다고 하여서 엘렌 화잇의 기별이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고 볼 수 없다. 19세기 미국 의사들이 맹독성 약품을 무분별하게 처방하는 심각한 문제성을 제시한 것은 선견적 통찰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엘렌 화잇의 선견성을 확증하여 주고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동 맹독성 물질을 허가 없이 제조, 거래, 및 수입을 국법으로 금하고 있으며 학자들이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범위 안에서 동 맹독성 물질의 사용을 제한하는 예방 조치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실례로 관보, 환경부고시 제1996-75호에서 개정하여 발표된 제조, 수입, 판매 또는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특정유독물 고시 내용중에 22번 사항을 보면 “스트리키니딘-10온〔Strychnidin-10-one: Strychnine〕과 그 염류 및 그중 하나를 함유한 제제”를 “제조, 수입, 판매 및 사용금지”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Steadman Shorter's Medical Dictionary에 따르면 스트리키미은 자연산 독소(마전)로 주로 척수에 영양을 끼치는데 중추신경계 세포에 직접적인 자극을 가함으로 간질형태의 발작을 일으킨다. 그리고 철수에 영향을 주어 억제성 절후 신경을 억제하고 흥분케 하며 경련 발작이 사망의 원인이 된다. 간이 그 해독 작용을 시작하면 간 기능에 즉각적 손상을 준다. 인체 내에서 맹독성 반감기간은 약 10시간이다. 대체로 복용 후 15-20분 안에 증상이 나타난다. 인체 치사량은 5-8㎎/㎏(몸무게)이다.
스트리키닌에 대한 해독이라는 것은 물질적, 화학적 해독이 아닌 기능적 해독이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따라서 해독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 맹독성은 인체에 타격을 준다. 진씨가 예로 들고 있는 스트리키닌 독약을 해독할 수 있다는 경우에 있어서 진씨는 그 해독의 범위를 명시하고 있지 않다. 맹독성 물질이 인체 내에 주입되었을 때 그 피해가 전혀 없는 해독제란 있을 수 없다. 이미 독성이 인체의 특정 부위를 손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양재물을 먹은 사람을 해독시킬 수 있으나 이미 식도나 위의 점막을 손상시킨 것에 비견할 수 있다. 해독제가 혹 있다고 해도 이미 신체가 입은 상해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인명과 관련하여 볼 때 독성이 큰 것을 경고하고 해독제가 없다고 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날드 넘버가 엘렌 화잇의 건강 기별을 비판한 내용에도 이 스트리키닌이 들어 있지 않으리만큼 문제성이 없다는 점을 참작하여야 한다.
약리한 박사 정재훈 교수는 스트리키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정보를 제공하였다.
“척수흥분제중 하나인 스트리키닌은 중추 전반에 걸쳐 흥분효과를 유발하는 물질이다. 이 때 중추 흥분 효과는 경련 형태로 표출된다. 이러한 경련 효과는 연수의 게재신경과 운동신경의 중요한 억제성 전달물질인 Glycine과 상경적인 길항작용을 함으로써 발생된다. 즉 운동의 억제성 전달 경로인Renshaw cell-motorneuron 시납스에서 Glycine의 작용을 상경적으로 길항하는 절후성 억제작용에 의해 (억제성 전달이 억제됨) 흥분효과가 발현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Glycine을 전달물질로 이용하는 중추 전반에서 그 작용을 발현할 수 있다. 경련은 주로 강직성 형태로 발현되며, 지나친 경련과 지나친 연수 흥분에 따른 연수마비- 호흡마비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된다. 독일에서 처음 소개되어 호흡, 심기능-혈압, 체온 조절과 관련하여 마취 후 회복 시 연수 흥분제로 응용되기도 하였지만 맹독성이기 때문에 사용되지 않으며, 현재 경련 유발 등의 실험용 시약 또는 살서제로 사용되고 있다. 스트리키닌을 치명적인 독성물질이기 때문에 독성이 발현되면 회복하기 어렵지만 호흡마비에 이르지 않는 용량에 의한 경우에는 호흡유지나 경련억제를 위해 근이완제, diazepam, barbiturates 등이 해독제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능적 해독이지 화학적, 물질적 해독이 아니다. <참고 문헌: C. D. Klassen(1995)Nonmetallic environmental toxicants. In, Goodness & Gilman's The pharmacological basis of therapeutics. (J. G. Hardman. et. al., rd) TheMcGraw-Hill companies. New York.. pp 1689-1690 W.G. Clark. D. C. Brater and A. R. Johnson(1992) Drugs for treament of movement disorders. In, Goth's Medical pharmacology. Mosby-year Book. Inc.,St.Louis. pp303-305>"
F. 개혁복에 관한 계시문제
1. 진씨의 주장
엘렌 화잇이 한때는 개혁복을 정죄하고 후에는 옹호하는 기별을 주었으니 그의 선지자성을 신뢰할 수 없다. (137-140쪽)
2. 반증
이는 진씨가 엘렌 화잇의 기별을 피상적으로 읽은 소지에서 나온 단견이다. 만저 외양적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1863년의 개혁복 정죄에 관한 기별과 1867년의 개혁복 옹호의 기별을 보도록 하자.
a. 개혁복 정죄 기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소위 개혁 의복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읏긴다. 그것은 얌전하고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전혀 적합하지 않은 불건전한 의복이다.(1T 421)
b. 개혁복 옹호 기별
“오늘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개량된 의복을 입게 하시는 것은, 그들을 당신의 ”독특한 백성“으로 세상에서 구별하실 뿐만 아니라, 의봇의 개량이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넙ㄹ은 범위에 걸쳐 그들의 특성을 잃어 버리거 점차적으로 세상을 본받고 그들과 섞이고 마침대 많은 점에서 그들과 같아졌다. 하나님은 이것을 불쾌하게 여기신다. (1T 525)"
c. 엘렌 화잇은 이에 관하여 알고 있었다. 이는 외양적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기별에 당황한 신자들에게 준 다음의 기별에 잘 나타나 있다.
그대들의 주의를 의복에 관한 분재로 다시금 집중시키는 이유는, 내가 전에 기록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고, 또한 내가 기록한 바를 믿고자 하지 않는 자들이 이 중요한 문제에 관하여 교회에 혼란을 야기시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서 답신을 보내지 못한 어려운 문제를 영원히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는 바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증언 10호에서 내가 기록한 것이 “생활의 방법”이라는 제복으로 쓴 나의 증언과 일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것들은 동일한 견해에서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서로 상치되는 두 개의 견해가 아니다. 만일, “어떤 경우에서도, 불신자들이 우리를 , 우리의 독특한 신앙상 불가피한 것 이상으로 생각하게 반드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진리를 믿는 어떤 사람들은 자매들이 미국식 의상을 입는 것이 건강에 더욱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1T 456)
d.“소위 개혁복”의 문제성
(1)진씨는 개혁복을 정죄한 기별에서 “소위 개혁복”이라고 표기된 것의 의미를 간과하였다. “소위”라는 것은 당대 개혁복을 지지하고 사용하던 사람들의 주장에 입각한 개혁복이라는 뜻이지 생활에 편리한 개혁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씨는 두 용어를 혼동하는 과오를 범하였다.
(2)단대 의복이 지닌 문제들 지적
엘렌 화잇은 1865년에 당대 미국 의상과 ‘소위 개혁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별을 주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는 옷을 입어야 한다. 저들은 극단적인 것들을 피해야 한다. 저들은 칭찬이나 비난에 관계없이 겸손한 정신으로 똑바른 길을 따라가야 하며 보람이 있는 바른 원칙을 고집해야 한다."
여성들은 건강과 편안을 고려하여 팔다리는 가리우는 옷을 입어야 한다. 저들도 남성들처럼 팔다리를 덥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유행을 좇는 여성들이 입는 긴 드레스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못마땅하다.
① 긴 드레스는 낭비와 사치를 조장하며 불필요하고 그런 치마는 행길의 인도에 있는 모든 먼지를 쓸고 다닐 것이다.
②긴 드레스는 풀의 이슬과 길가의 먼지를 묻히고 다니기 때문에 항상 더럽게 된다.
③축축하게 젖기 쉬운 치마 자락이 감각이 예민한 발목에 닿아 별로 가린 것이 없는 발목 부위가 금방 차가워져서 카타르나 선병의 부기(연주창)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되며 건강과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④필요치 않은 길이의 드레스는 허리와 내장에 필요 없는 무게를 더해준다.
⑤긴 드레스는 보행에 거추장스러우며 다른 사람의 보행머저 방해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소위 의복 개량을 주장하는 세상 사람들이 채택하게 될 또 하나의 드레스 스타일이 있다. 저들은 가급적 이성(理性)의 보습을 흉내내는 의복을 만들 것이다. 여성들은 남자들이 쓰는 것과 같은 모자, 바지, 조끼, 코트, 장화 등을 착용하게 될 것이며, 그 중 장화는 유행에 가장 민감한 것이다. 이러한 드레스 스타일을 채택하고 선전하는 자들은 소위 의복개량 운동을 극단적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며 그 결과로 혼란을 빚어놓을 것이다. 이러한 의상을 채택한 사람들의 건강을 참적한 견해가 일반적으로 옳을지는 모르나 만약 저들이 의복 문제를 그와 같은 극단의 한계에까지 이끌고 나가지 않았다면 더욱 훌륭한 성과를 거드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2SM 477)
엘렌 화잇은 당대의 미국 전통적 이상과 소위 개혁복 모두를 문제시하였다. 그래서 제3의 대안으로 개혁복 사용을 제한 하였다.
e. “소위 개혁복이 안고 있던 문제들"
*신중성 결여 - “소위 의복의 개혁에는 그 의복에 꼭 같이 발맞추어 경솔하고 무모한 정신이 따른다. 그런 모양의 의복을 입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서 품위와 겸양이 떠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일관되고 합리적인 길을 따르기를 바라고 계심을 보았다.”(1T 421)
*여성을 남성화시키는 의복 - “여자들이 그들의 의복과 모습에 있어서 가능한 한 이성과 유사해지고자 하고, 그들의 옷을 남자들의 옷과 흡사하게 만들고자 하는 경향이 더해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증한 일이라고 선언하신다.”(1T 421)
*강신술 신봉자로 오인 받는 표 - “강신술사들은 꽤 넚은 범위에 걸쳐서 이런 독특한 의복의 형태를 적용해 왔다.은사의 회복을 믿는 제칠이 안식일 예수 재림 교인들은 흔히 강신술사들과 같은 위치에 놓고, 그들의 말을 듣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1T 421)
*특정 정치적 운동에 종사하는 자로 오인됨 - “여성의 권리와 소위 의복의 개혁을 옹호하는 운동에 가담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세쩨 천사의 기별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전자와 정신이 후자의 정신과 조화가 될 수는 없다. 성경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관계와 권리를 분명히 밝혀 놓았다.”(1T 421)
재림교인들은 세속적인 요란한 성장 차림이나 “소위 개혁복”이라는 미명하에 강신술 신봉자나 여성 해방 정치 운동적 표징이 되는 복장, 경망스러운 옷차림, 남성과 구별이 안 되는 차림새 등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소위 개혁복”을 배척하였다. 그러나 1864년 늦여름에 뉴욕주 단스빌을 방문한 후 재림교도들에게 어울리며 일상 생활을 편리하게 할 수 있는 개혁복을 추진하였다. 그렇다면 진씨가 말한 모순되는 비판은 엘렌 화잇의 기별에 대한 피상적 고찰에 불과하다.
f. 치마의 길이 문제
진씨는 엘렌 화잇이 치마 길이를 1-2인치가 땅에서 올라와야 한다고 해 놓고서는 후에 9일치가 올라 와야 한다고 하여 모순을 밤하였고 또한 길이에 관한 해명을 두고 사적 견해라고 궁색하게 변명하였다고 힐난하였다.(138-139쪽)
g. 치마 길이에 관한 엘렌 화잇의 기별
“우리는 미국식 의상을 입거나, 후프를 사용하거나, 보도와 거리를 쓰는 긴 옷을 입음으로 국단에 치우치는 것이 우리의 믿음과 일치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여인들이 거리의 더러움을 청소하지 않도록 그들의 옷 길이를 한 인치나 두 인치 간격을 두도록 입는다면, 그들의 옷은 아담해질 것이며, 옷이 훨씬 쉽게 깨끗이 보존 될 수 있으므로 조금 더 오래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다.”(1T 424)
이 기별에 따르면 진씨가 분별력 없이 단정한 (139쪽 9행) “땅에서”라는 표현이 안 나온다. 또한 엘렌 화잇이 1-2인치로 유연하게 표현한 것을 진씨는 1일치로 단정하였다.(139쪽) 엘렌 화잇을 치마의 길이를 한 가지로 고정시키지 않고 유연하게 말했다. 이는 외출 시와 일하는 때에 각기 다른 길이의 옷을 입는 것과 사람의 키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유연성은 “몇 인치”(RH Oct. 8,1997), "의복의 끝 부분과 마루 바닥과의 적당한 거리“(RH Oct. 8,1967), "약 9인치”(1T 521) 등의 표현에서 더 확인할 수 있다. 표현한 수치들은 예시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엘렌 화잇은 이 점에 있어서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일관적이다. 엘렌 화잇의 의복 길이에 관한 입장을 기능적이지 정적인 정의가 아니다. 그의 표현을 그 시대의 흐름에서 읽어야 한다. 당대의 여성의상이 건강을 몹시 해롭게 하며, 현란하고 허례적이고 실용적이지 못하고, 경박한 것을 개혁하지는 취지에서 여러 메시지를 주었다. 어느 특정 인치를 강요하자는 데 이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여성다우면서도 거리를 청소하지 않도록 짧아야 하고 편리하고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두는 권도로 보아야 한다. 이는 사도 바울이 결혼 문제에 관하여 “ 내가 이 암을 함은 권도요 명령이 아니라”(고전 7:6)고 한 것과 유사하다.
h. 엘렌 화잇의 의복 개혁 문제
진씨는 그의 책 140쪽에서 엘렌 화잇이 1875년 1월 3일자 계시를 받고(4T 637-640) 의복 개혁을 포기하였다고 비판하며 실행되지도 못할 의복개혁 기별을 주었느냐고 힐난하였다. 지나간 성서 시대에 예언자가 준 기별 대로 모두가 다 따르지 않았다. 예언자는 원칙을 제시했으면 됐지 경찰과도 같은 기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엘렌 화잇의 기별은 오히려 개혁 지향적이었다. 이는 “덜 반대를 받을만한 스타일”을 여성들이 선호하는 것에서 원칙에 순종할 가능성을 보았다. 백성이 완악하여 기별을 받지 않으면 그대로 허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혼허락의 경우나 왕 제도를 허락한 경우에 이러한 하나님의 허용이 나타났듯이 개혁의상의 경우에도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고 엘렌 화잇이 의상개혁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검소하고 편리하며 건강에 이로운” 의상에 대한 잡념은 그의 책 도처에 나타나 있다.(1897년 편지 19 참조) 엘렌 화잇은 스스로 개혁된 의상을 입고 다니므로 모본을 통하여 계속 가르쳤다. 의상개혁을 강요하지는 않았으나 강조는 하였다.(4T 639-640)
G. 남북 전쟁에 관한 계시 문제
1. 진씨의 주장
진씨는 엘렌 화잇이 남북 전쟁에 관련하여 (1)아브라함 링컨을 비판하였고, (2)영국이 선전 포고할 때에는 모든 국가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참전하게 되어 전체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3)미국이 망할 것을 예언하였으나 이러한 예언들이 성취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141쪽)
2. 반증
진씨의 주장에 근거가 있는지 여부를 일기 위하여 먼저 엘렌 화잇의 남북 전쟁에 관한 계시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a.남북 전쟁에 관한 계시
(1)1861년 1월 12일 미시간주 파크빌 교회 헌당 예배시의 계시
①남북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②이 전쟁은 대량 학살, 포로 수용소, 필설로 어려운 더러움과 질병이 수반되는 장기전이 될 것이다.
③헌당 예배에 참여한 회중들 중에는 이 전쟁에서 아들을 잃을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이 계시가 주어진 3개월 후 1861년 4월12일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당시 일반적으로 남부가 전쟁을 일으킬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보아 전쟁이 발발치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였고, 설사 발발한다하여도 속히 끝날 것ㅇ로 얘상하뎐 상황에서 엘렌 화잇의 걔시는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적중하였다. 파크빌 교회에서도 5가정에서 아들들이 전사하였다.
(2)1861년 4월 3일자 뉴욕 주 루스벨트에서의 계시
①법규가 동 제도를 옹호하고 있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반대된다.
②하나님께서는 남북 모두를 징계하고자 남북 전쟁을 사용하고 계신다. 남부는 죄악적 노예제도를 고집하는 문제와 북부는 그 교만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었다.
③단기전 전망자들이 충격을 받아 낙심할 것이다.
④남부와 북부는 상대방의 상황에 부지하였다. 남부는 예상한 이상으로 전쟁 준비를 더 잘 하였고, 북부는 남부가 예상한 이상으로 용감하고 지구력이 있었다.
⑤개전 벽두에 북군이 즉각 대응하였더라면 남군을 쉽사리 격퇴하였을 것이나 지연 대응을 하므로 남군이 전력을 강화할 틈을 주어 전쟁이 길어 질 것이다.
⑥북부 연방정부에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자들이 비밀리에 님군을 지원하는 반역적 행위가 있을 것이다.
1861년 7월 21일 버지니아주 마나사스 정선에서의 전투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천사의 개입으로 승리하고 있던 북군이 갑자기 철수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 북군이 승리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이 승리할 수 있는 절호의 챤스에 북군이 철수한 것은 전쟁사에 있어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일이 되었다.
(3)1862년 1월 4일자 베틀크릭에서의 계시
①북부 부캐년(아브라함 전직 대통령) 행정 진영 내에는 남군이 북부로부터 전쟁불자를 밀반출할 수 있도록 돕는 자들이 있다.
②북부는 남부가 얼마나 북부를 증오하고 있는 지와 어떠한 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노예제도를 유지 전달하고자 결단한 것을 이해 못 하고 있다.
③연방 제도 유지와를 관한 북부의 정치 지도자들의 경건한 연설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평가로는 노예제도가 전쟁의 뿌리가 된다.(실질적 이슈가 된다.)
④개전 초기의 북군 승전 전망이 있었으나 개전 1년 후에는 오히려 승전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나님께서는 북부가 노예제도 철폐를 공적으로 확실하게 하기까지는 북부의 승리를 지연시키고 계셨다.(노예제도를 철폐한 것을 1863년 1월 1일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 선언으로 실시됨.)
⑤북군의 노예제도지지 사령관들이 교묘하게 노예제도 반대 병사들을 노축시켜 그들을 적대 발포하게 하고 파멸에 이르는 철군 감행을 한다. 그리하여 노예제도 반대는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⑥전쟁의 이슈가 되는 노예제도를 폐기하기까지는 북부가 전쟁 지원을 위한 금식과 기도를 온 국가에 호소하는 일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절하는 행위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금식을 받지 않으신다.
⑦북부가 처음부터 노예지도 폐지를 목표로 하였다면 영국이 곧 지원하였을 것이다.(영국은 노예제도를 1807년에 이미 폐지하였음) 그러나 지금은 영국이 어느 편을 지원하는 것이 국익에 더 부합하는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⑧“이 나라가 아직도 더 낮아서 먼지가 되어야 한다.”
b.1863년의 계시
(1)많은 군사령관들이 강신술과 영매를 동원하여 고대와 중세의 유명한 장수들의 영을 불러내어 전쟁 지휘를 위한 교훈을 받고 있다.
(2)이러한 일은 남북전쟁이 장기전이 되고 상식에 맞지 않은 군사적 행동과 결단을 하게 된 이유가 된다.
c.엘레 화잇의 남북 전쟁에 관한 기별은 정당하다.
진씨는 이러한 엘렌 화잇의 계시를 잘 모르고 그의 책에서 엘렌 화잇이 예언을 잘못한 것처럼 헛소리를 하였다. 아브라함 링컨은 1861년 4월 12일에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링컨은 처음에 연방제도 유지를 위하여 노예제도를 계속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처사였다. 이점에서 비판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는 2년이 지난 후에 1863년 1월 1일자로 노예해방 선언을 하여 남북 전쟁의 이슈를 분명히 하였다. 그리하여 전쟁의 승리를 확실히 하였다. 그 다음에 영국의 지원은 노예제도 폐지의 선명성을 조선으로 하였다. 영국이 전쟁을 선언하는 “때(when)"는 “만일(if)”과 동의어 적이다. 이 조건의 충족이 없어 영국은 어느 쪽을 지원하여야 국익에 더 부합하는지 저울질하게 되었고 결국 북부 지원 참전을 하지 않게 되었다. 북부가 더 시련을 당하고 승산이 없는 단계까지 낮아져 먼지처럼 되어야 한다는 기별은 영원한 멸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교만한 느부갓네살 왕이 짐승처럼 된 후 다시금 사람 구실을 한 것에 비추어 이해하게 되면 된다. 교회증언 1권 256에 나오는 “사령관들 중 몇 사람들이 남부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노예제도 지지자들이면서도 정부가 분리되는 것은 반대하는 자들이라는 점이다. 전쟁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열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남부를 유리하게 하는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에서 엘렌 화잇의 전쟁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본 것은 문맥을 무시한 단견이다. 적과 내통하는 정부 지도자들의 활동, 강신술을 의지하는 사령관들, 및 전쟁의 쟁점 모호--이러한 상황에서 승전의 어려움을 선견적으로 말한 것이다.
H. 사람과 짐승의 혼종에 관한 문제
1. 진씨의 주장
진씨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화잇은 노아 홍수 전후에 사람들이 짐승과 혼종하는 죄를 지었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으신(The confused species which God did not create)' 혼합종을 냈다는 것은 분명히 진화론을 방조하는 언사가 아니고 무엇이냐?(141-142쪽)
2. 반증
a. 진씨는 “amalgamation of man and breast”를 번역하면서 전치사 “of"의 반복 사용이 생략된 것을 고려치 않고 “사람과 짐승의 혼종”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amalgamation of man and〔of〕breast"로 and 다음에 전치사 “of"를 넣어 번역하게 되면 ”인간끼리의 혼종과 짐승끼리의 혼종“ 이 되는데 그 의미는 서로 다른 인종끼리 혼종과 종류가 서로 다른 짐승끼리의 혼종이 된다. 인간끼리의 혼종으로 번역 이해하는 근거는 진씨가 문제시하고 있는 부분의 이전 문맥에 나타난다. (spiritual Gihts제3권 60-64쪽) 즉 셋의 자손과 가인의 자손이 언급되고 있는데 “셋의 자손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지고 -가인의 자손은 사람의 아들”로 불려 졌다. 이들 두 분류의 인간들은 장기간 살아가며 신체적 외모와 도덕성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가 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권위를 시하는 한쪽은 저주받는 흔적이 훨씬 더 역력하여 고상한 미가 사라졌으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른 쪽은 그 농도가 경미하였다. 그러나 이 두 인종사이의 통혼으로 말미암아 우상숭배가 만연되고 일부다처제가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은 더욱더 사악해져 가고 불행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형상이 말소”되어 갔던 것이 홍수 전 죄악으로 그려지는 혼종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b.“혼합(amalgamation)”-엘렌 화잇은 동 용어를 사용할 때에 그 의미가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엘렌 호잇이 동 용어를 퇴락한 식물들, 동물들 및 인간들에 관련시킨 것 외에는 그 정확한 의미를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더더군다나 넬렌 화잇은 잡종 또는 교배(hybredizayion)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동 용어를 인간과 동물사이에 혼종, 또는 교배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된다.
c. 진씨가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전후 문맥의 전체적인 흐름과 관점에서 문장들을 파악했더라면 “사람과 짐승의 혼종”이라고 이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더더군다나 오늘날에도 계속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식물이나 동뭉 세계에서의 교배로 잡종이 생기는 것을 진화론과 결부시켜 “하나님의 창조론을 부인하는 비성서적 언사”, “진화론을 방조하는언사”라는 망발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죄의 결과로 식물계에서 가시엉퀴가 나온 것을(창 3:18)두고 이것을 진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무와 배추를 각각 창조하셨지만 오늘날 인간은 무오 배추를 교배하여 무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또 사람들은 말과 당나귀를 교배하여 노새를 생산하고 잇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진화가 아닌 하나님께서 이미 유전 염색체들의 교배에 불과하다.
e. 창조세계에 있어서 마땅히 있어서는 안되지만 가능한 혼종을 두고 엘렌 화잇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지 않으신 혼합종을 비평하였다.”고 말한 기사를 진씨가 문제시하여 엘렌 화잇이 창조론을 부인하고 진화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비평을 하였다. 이는 교배 혼종이 어느 범위내에서 가능한 창조 세계의 현상인 점을 무시한 논리의 비약이며 억지이고, 엘렌 화잇의 책에서 창조 부분을 보면 단번에 그가 창조론자인 것을 알 수 있을 터인데 진씨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어설픈 논리로 그를 진화론자로 몰아 부치는 우를 범하였다.
I. 유성에 관한 계시 문제
1. 진씨의 주장
“최근 천문학은 목성과 토성이 화잇이 본 것들보다 더 많은 별들을 가지고 있음을 발표하였다.(목성은 열 두 개, 토성은 열 개) 화잇은 그 당시의 미개한 천문학 곧 배이스 T기에겓서 들은 것을 묵시로 본 것이다.”(143쪽)
2. 반증
a. 엘렌 화잇은 1846년 11월에 톱샴에 있는 스톡브리지 하우랜드 가정에서 개최된 소수의 안식일 준수자 집회에서 천체에 관한 계시를 보았다. 동 집회에 조셉 베이츠와 화잇 부부가 참석하였다. 이 계시는 다른 천체 행성에 관한 첫 번째 계시였다. 계시후에 자기가 본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였다.
b. 엘렌 화잇의 진술에는 어느 특정한 행성의 이름을 지칭하였다거나 무슨 행성에는 달이 몇 개라고 한 묘사가 나와 있지 않다. 그는 단순히 계시가운데서 “다른 행성들”을 보았다고 하였고, “다른 세계들”에 대한 계시가 자기에게 주어졌다고 하였으며, “일곱개의 달이 있는 세계”로 이끌려 갔다는 표현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의 단초는 엘렌 화잇이 어떤 유성을 묘사 할 때 그 자리에 함께 한 죠셉 베이츠가 곁에서 목성, 토성, 천왕성등, 행성의 이름을 명명하여 동석자들이 오해하게 된 것에 있었다.
c.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제임스 화잇이나 M.C.트루즈데일 무인의 진술 내용에서 특정한 행성의 명칭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엘렌 화잇이 묘사하는 행성들을 베이츠가 나름대로 해석하여 명칭을 부여한 것에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d. 엘렌 화잇의 진술 내용에서 보면 조셉 베이츠는 엘렌 화잇의 걔시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1846년에 행성에 관한 계시를 처음으로 받은 자리에서 계시가 끝난 후 아마추어 천문학 연구가 베이츠가 엘렌 화잇에게 천문학을 공부했는지 묻자 전혀 없다는 엘렌 화잇의 답변을 듣고서 계시가 주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확신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베이츠는 엘렌 화잇의 계시에서 행성의 수나 달의 수에 놀란 것이 아니라 ‘열린 하늘’(진씨는 이것을 ‘하늘 문’으로 오역)에 대한 묘사를 들으면서 영국의 위대한 천문학자인 존 로제경이 이 자리에 와서 ‘하늘 문’에 대한 묘사를 들었어야 하는데 라고 안타까워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섭렵한 모든 천문학 도서들의 범주를 능가하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엘렌 화잇의 계시가 그녀의 지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임을 더욱 굳게 믿었다.
그런데 진씨는 이렇게 명확한 사실을 두고 마치 엘렌 화잇이 각 행성의 이름을 말한 것으로 왜곡하였으며, 더나아가서 “화잇은 그 당시의 미개한 천문학 곧 베이스 씨에게서 들은 것을 묵시로 몬 것이다.”라는 말로 모함을 하는 그리스도인 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e. 과학 잡지 Discover1997년 9월 호에 “Impossible Planets"라는 제목의 기사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우리는 끝내 또 다른 태양들의 궤도를 따라 도는 행성들을 발견했다. 이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 와서 이처럼 지구가 도는 태양계와는 구조를 달리하는 또 다른 태양계들의 행성들이 있음을 천문학자들이 발견하고 있는 사실로 보아 엘렌 화잇이 지금보다도 천문학이 발달하지 못한 1840년대에 계시 중에 본 행성이 이렇게 많은 태양계 가운데 어느 것이었음을 볼 때 오히려 이는 시대를 앞서 가는, 다시 말해서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을 사실이 더욱 확실해진다고 볼 수 있다. 계시 중에 엘렌 화잇이 방문하여 에녹이 살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는 “일곱 개의 달이 있는 세계”가 이들 다른 태양계들의 어느 한 행성일 수 있다. 요컨대 진씨는 엘렌 화잇의 주변 인물들의 일방적인 해석을 엘렌 화잇의 계시 내용인양 비판하는 잘못을 범였다.
J. 베틀크릭 위생병원 건축에 관한 계시
1.진씨의 주장
진씨는 베틀크릭 건강개혁 요양원 건축과 관련하여 엘렌 화잇이 상반된 기별을 주었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제임스 화잇의 주장에 따라 요양원을 헐게 하여 11,000달라의 손실을 보게 하였다고 한다.(144-145쪽)
2.사건의 전말
남북 전쟁 이후 교회 지도자들은 거의 병약하였다. 녹슬어서 없어지는 것보다 달아져서 없어지겠다는 선구자들은 건강 행활의 원칙들을 철저하게 준수하지 않은 채로 살아 왔다. 동분서주하며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던 제임스 호잇을 비롯하여 여러 지도자들은 동시 다발적으로 병으로 쓰러졌다. 당시 명성을 날리던 단스빌 요양원에서 정양 생활을 하여야 했으나, 신앙적 관심 결여, 호외 활동제한 , 무염식 강조, 휴양과 정신 치료를 위하여 카드놀이, 댄스, 극장 가기 등을 처방한 동 요양원의 프로그램에 만족하지 못했다. 엘렌 화잇은 1865년 크리스마스 계시 중에서 건강개혁과 신앙적인 건강요양원 건립의 필요성에 관한 기별을 받았다. 그는 1866년 대총회에서 건강개혁기별을 전하였다. 대총회 지도자들은 이 기별에 호응하였고 건강 잡지를 발행하고 건강개혁기관을 창설키로 결의 하였다. 병약한 몸으로 대총회 회장직을 맡고 있던 제임스 화잇은 이 새로운 기구에 힘을 쏟기 어려워 당시 미시간 합회장이었던 J.N.러프보로우가 추진하였다. 베틀크릭 교회를 비롯하여 여러 교회들의 2,625달라 모금으로 이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여 동년 5월에 Western Health Reform Institute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이러한 기구에 관한 법규가 없어 베틀크릭 후원자들은 규정도 만들었다. 동 기관은 이사회의 관리체제 하에 있다가 곧 증권사에 합병하여 1,000달라를 서명 받았다. 요양원 사업을 처음 시도하는 일이어서 노하우는 없었고, 자금 부족,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추진한 지도자들은 RH지를 통하여 대대적 홍보를 통하여 배당금이 절실히 필요하였던 것으로 큰 호응도를 얻어냈다.(1867년 2월 19일 자 RH지 참조) 그리하여 공사는 계획대로 진행시켜 갔다. 이 일은 영리 추구에 기본 모티브가 있어 자선적 성격이 강조되기 어려웠다.
이 확장 프로젝트는 하나님 보시기에 소망스럽지 못하였다. 직원들도 다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고, 몰려오는 환자들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세속적 마인드가 파고들었고, 영적인 것 보다 물질적인 것이 더 판쳤다. “형제” “자매” 칭호 대신 Mr.와 Mrs가 사용되었다. 아침 예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잔디밭이나 실내에서 게임과 오락에 열중하여UT다. 질펀하게 누워 쉬는 일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어느새 이 재림교회 요양원은 또 다른 단스빌 요양원과 같이 되어 갔다. 엘렌 화잇은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초기부터 여러 번 경고하여 운영 방향을 전환하도록 기별을 보냈다.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1865년 당시에 본 _____에 있는 기관은 미국에서 가장 좋은 것이었다. 환자의 치료에 관한 한 그들은 위대하고 훌륭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환자들에게 댄스와 카드놀이를 장려하고,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과 정반대가 되는 극장과 세속적 오락의 장소에 가도록 권장한다.
오늘날 배틀크릭에 있는 건강 기관과 관련된 사람들은 그들이 중요하고 엄숙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과, 신앙과 오락 문제에 있어서는 _____에 있는 기관의 의사들을 결코 본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점에서 그들을 따라감으로 이 위대한 사업의 고상한 특성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만일 이 사업에 관련된 자들이 높은 신앙적 견해에서 그들의 사업을 보지 않고 건강의 회복만을 위하여 환자들을 취급하는 기관들을 지도하는 자들의 이론과 행동을 본받기 위하여 현대 진리의 고상한 원칙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우리의 기관은 타락한 이론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기관보다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더 못 받게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고 고통받는 인간의 복리를 위하여 함께 조화롭고 사심 없이, 그리고 열정적으로 일할 의사들을 발견하기가 쉬운 문제가 아니므로, 매우 광범위한 사업이 짧은 기간에 성취될 수 없을 것을 보았다. 이 사업을 통하여 달성되어야 할 큰 목적이 건강뿐만 아니라 병든 육체와 마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완전함과 거룩함의 정신임을 언제나 뚜렷하게 명심해야 한다. 이 목적은 단순히 세속적 견해로 일하므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육체뿐만 아니라 나이 어리고 경험이 없는 자들의 영적 아버지로서, 죄로 병든 심령까지 고쳐 주는 의사로 이 사업에 종사하도록 그들의 자격을 갖추어 주실 것이다.” (1T 554)
이러한 메시지에 대하여 베틀크릭 사람들은 화잇 부부를 근거 없이 비판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 때는 J. N. 앤드류스가 대총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린빌의 작은 농장에서 휴양한 제임스 화잇이 건강을 되찾아 오랜만에 화잇 부부는 베틀크릭에서 돌아와 보니 요양원은 물질주의 거품으로 인기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요양원에 대한 조종을 하여 감축하도록 권고하였다. 이것은 요양원의 경기를 부양하려는 사람들을 낙심케 한 일이 되어그 권고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 요양원의 수입은 교회의 건강 목회에 대 재난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건물 공사는 중단되고 건축 자재를 팔았다. 이 일로 요양원은 수천 달러의 빚을 지게 되었다. 1868년 봄에 건강을 되찾은 제임스 화잇은 교회 행정에 복귀하였다. 엘렌 화잇은 주식 투자 방식의 운영에서 탈피하여 자선적 기관으로 구조 조정을 하도록 재촉하였다. 1868년 대총회는 이 권고를 받아들여 경영진을 개편하고 기부금으로 운영하도록 결의하였다. 요양원 직원들의 새로운 헌신과 신앙의 각성이 일어났다. 확장 시에는 유자격 의사의 존재를 전체로 하여 내실을 기하였다. 화잇 부부는 후에 J. H.켈록을 의과대학에 보내는 등 재림교회의 의사 양성에 진력하였다. 그리하여 선교 병원으로서의 구실을 하여 갔다.
3.진씨 비평이 간과하고 있는 점
a. Western Health Reform Institute이 세워지게 된 것은 엘렌 화잇이 1866년 대총회에서 호소한 결과였다. 확장 기금 25,000달라는 당시 대총회 1년 예산의 7배나 되는 거애이었다.(RH 27:196 참조) 이 금액은 1년이 지난 후에도 다 채워지지 않았다. 요양원 개원 4개원째에 모금 호소가 있었다. RH지 (1867,1,29)에는 15,000달라라는 금액은 최소한도의 금액에 불과하다는 식의 홍보하는 기사가 나돌았다. 이 때는 25,000달라의 절반 정도가 서양하고 만불 정도가 주식 투자로 들어 온 정도였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지도자들이 엘렌 화잇의 제한된 표현의 증언을 자가들 목적 달성을 위하여 사용하였고 그 사영은 엘렌 화잇이 마치 영리추구를 위한 투자를 마치 인정이나 한듯한 인상을 주게 된 것이다.
b. 엘렌 화잇은 1865년 크리스마스날에 받은 계시 내용(건강 개혁 필요성, 요양원 설립 필요성, 건강 잡지 발행 필요성)을 모두 다 쓸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요양원 프로젝트를 위한 지원 호소를 위한 글을 써 달라는 독촉을 받고 엘렌 화잇은 요양원 설립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요양원 사업의 가치와 중요성 및 금전적 지원을 호소하는 글을 증언 11호에 담았다.(1T 492-493) 그러나 충분한 시간 결여로 증언 11호에서 건강 요양원 설립과 그 운영 및 특성에 관하여 완벽하게 다룰 수 없었다. 따라서 이 불완전한 형태의 글은 증언 12호에서 잘 제시되어 있다. 예언자는 여기에서 기다림의 교훈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체득하였다. (1903년 편지 135; 1T 563) 남편의 병간호를 위하여 베틀크릭을 떠나 있는 동안에 요양원 지도자들은 동 요양원 사업을 재림교회의 신앙적 특성과 조화시켜 발전시키기보다는 단스빌 요양원 모델에 따라서 발전시켜 갔고 더구나 주식 투자식의 경영 체제로 꼴지어져 갔다. 교회는 당면한 중차대한 일을 세심한 배려 없이 진행시켜 나간 것이었다. 증언 12오가 곧 출간될 것으을 덧 붙였다. 그리하여 건강기관 책임자들이 엘렌 화잇이 하나님께서 인정할 수 있는 의료기관 설립에 관한 빛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요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어서 엘렌 화잇의 빚의 지원을 받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보습으로 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엘렌 화잇을 건강 기관기에 관하여 11호에서 몇가지 기사화한 것이 과오였다고 고백한 것이다. (1T 563) 그리고 “기관 문제를 너무도 성급하게 강요하기 위하여 나타낸 기질은 내가 지금껏 감당해 온 가장 무거운 시련들 중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1T 564)라고 하면서 재정적 지원을 호소하게 위하여 증언을 사용한 사람들이 그 증언으로 감동을 먼저 받았을 것 같으면 사태가 이 지경이 안되었을 것이라고 호소하였다.
c. 엘렌 화잇의 다음 기별은 엘렌 화잇이 처음부터 요양원을 크게 하지 말고 훌륭한 의사들과 조력자들을 둔 작은 규모로 운영하여야 하고, 자금 여력이 있는 범위 내에서 조심스럽게 확장할 것을 권고한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베틀크릭에 있는 건강 기관의 시설 범위에 관하여, 나는 전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처음에는 작은 기관을 가지고, 훌륭한 의사들과 조력자들의 수급에 따라, 그리고 자금이 확보되는데 따라, 또한 환자들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여 조심스럽게 확장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셋째 천사의 기별과 겸손의 정신에 엄격히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도 보았다.”(1T 558)
요컨데, 진씨는 이상에서 묘사한 여건들을 무시하고 마치 엘렌 화잇이 과오를 범한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