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장부인가
바야흐로 조락(凋落)의 계절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두 아름이나 되는 팽나무의 잎이 우산처럼 하늘을 가리었는데 추풍에 낙엽이 되어 땅바닥에 도배하듯 널렸다. 그리곤 팽나무는 나목이 되었다. 나목이 된 팽나무는 홀가분해 보였다. 마치 잎을 버려야 새 잎을 얻는다는 비결을 알고 있기라도 하는 양 거리낌 없이 잎을 떨구는 것 같기도 하다.
일전의 일이다. 길가로 차를 내몰기에 웬일인가 하였더니 대통령 후보 한 사람의 방문 때문이었다. 정차하는 도중 차제에 대장부(大丈夫)를 생각했다.
일찍이 맹자는 대장부에 관한 좌표설정과 가치 기준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제시했다.
‘천하의 넓은 인(仁)에 주거하며, 천하의 바른 위치에 서며, 천하의 대도(大道)를 실행하여 뜻을 얻게 되면 국민과 더불어 하고 뜻을 얻지 못하여도 홀로 즐긴다. 부귀로운 생활이 되더라도 음탕한 짓을 하지 않고, 가난하게 살더라도 능히 지조를 팔지 않고, 무(武)의 위협이 오더라도 자신을 굽히지 않는 자를 대장부라고 하느니라’고 <등문공(?文公)>편에 적혀 있다. 맹자만이 말할 수 있는 대단한 설득력을 지닌 대장부론이라 하겠다.
대장부론은 하나같이 행하기 어렵다. 천하의 인(仁)에 살기도, 천하의 바른 위치에 서기도, 천하의 대도를 실천하기도 어렵고 힘든 일이다. 더구나 부귀한데 음탕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참으로 힘들고, 빈천한데 지조를 굽히지 않는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며, 무(武)로써 위협을 가하는데 뜻을 꺾지 않는다는 것도 대단히 힘든 일이다.
누구나 다 대장부가 될 기질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장부보다는 소장부로 사는 게 우선 편하다는 생각에서 그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만다. 역사를 회고해 봐도 영웅은 있어도 대장부는 드물었다. 영웅은 시대를 잘 타고 시기를 잘 잡으면 되기는 하지만, 그 행위에는 대체로 도덕성과 정당성이 결여되어 대장부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나는 이 시대의 대장부를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잘난 사람들보다 가황(歌皇)이라 유일하게 일컬어지는 나훈아로 보고 있다. 그는 2005년 공연을 끝으로 행방이 묘연했는데 15년 만에 무대에 섰다. 바로 작년 추석 전날 KBS 2TV 특집 공연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국민과 재외동포들의 박수갈채 속에 150분 간 19벌의 의상을 갈아입고 ‘잡초’ 등 인기곡 29곡을 소화하며 100% 언택트와 오프라인 공연을 진행했는데, 그의 나이 73세였다.
시들지 않은 가창력, 촌철살인의 멘트는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위트와 정치적인 소신 발언은 찬사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특히 신곡 ‘테스형’은 정치 현실과 사회 실정을 제대로 빗대었다는 평가 속에 젊은이들의 가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후문이다.
취직하기 힘들고, 집 장만하기 힘들고, 결혼해서 아들 딸 낳기 힘든 현실을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지상으로 소환해서 호소했다는 점에서 위정자들에게 보내는 ‘통쾌한 한 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역대급 노래와 퍼포먼스로 국민을 사로잡았지만 출연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수퍼 가황으로 중년 이상의 팬들에게 인기인 나훈아는 작년의 공연을 계기로 젊은 층에게서도 많은 관심을 받으며 최근에는 ‘한계를 뛰어 넘는 이야기’라는 슬로건을 가진 미국의 텔리상(The Telly Awards) TV 예능 부분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는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해외동포들을 위해서 KBS KOERA 채널을 통한 해외 스페셜 방송을 송출하는데 흔쾌히 동의하여 한국의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현지 한류 팬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하고 있단다. 아울러 KBS AMERICA 와 KBS TAPAN에서도 특집 편성을 통하여 나훈아쇼의 감동을 미국과 일본의 교민과 함께 나눈다는 희소식도 들린다.
국민들에게는 희망과 위안을 나라 밖으로는 국위를 선양하는 나훈아, 프로 근성과 큰 배포는 그가 대장부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난을 일러 군자라 했다(蘭似君子). 그런가 하면 공자는 군자불기(君子不器)라 하지 않았는가. 군자는 쓰임새가 한정되어 있는 그릇 같은 존재가 아니다(논어 위정편). 군자불기는 나훈아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는 불기(不器)가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대선을 앞도고 유력 주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지면과 화면을 달구고 있다. 누구나 바라는 높은 자리, 그러나 팔자에 없는 관을 쓰면 이마가 벗겨진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님을 안다.
곡학아세(曲學阿世)가 판치는 세상에 누가 대장부인지 나목의 팽나무에게 물어보고 싶다.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