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1일(폰페이를 출발하여 사이판으로)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10시 30분경 폰페이를 출발해서 사이판으로 항로를 맞추었다.
바다에 나오니 비는 부슬비로 바뀌었다.
바람은 약하고 긴 너울이 배를 흔들어 놓고는 무심히 지나간다.
사이판까지 항해거리는 886마일이다.
19일경 사이판 동쪽 해상에서 저기압이 발생한다고 예보되었다.
8일후의기상이어서 확실치는않지만 빨리 발생하면 낭패를 당할수 있다.
하루쯤 더 일찍 출발했더나면 더 나았을 것이다.
17일 도착예정이지만 날씨변화는 더빨라질수도 있고 느려질수도 있다.
나쁘게 변하면 낭패다.
올해 첫 태풍이 필리핀부근에서발생하여 대만을 거쳐 일본 동해안으로 빠져 나갔다.
필리핀 북단에서 일본까지 불과 이틀만에 통과하는 것을 보았다.
항해중에 이렇게 빠른 태풍이 덮쳐온다면 요트는 달아날 수가 없다.
특이하게 빠른 태풍이었다.
오후부터 동풍이 잘 불어주어 배가 6-7노트의 속력으로 달려주었다.
19시경 한국과 시차가 1시간대로 진입하였다.
밤에는 바람이 약해졌다.
5월12일(140마일항해, 사이판까지746마일)
아침에는 바람이 약간 약했지만 북동풍에 이어 동풍이 불어왔다.
폰페이에서 산 배추중 1포기로 김치를 담았다.
나머지 한포기는 라면이나 된장국을 끓일때 넣어서 먹고 있다.
낮에는 기온이 34도 밤에는30도였다.
낮은 비구름은 낮이고 밤이고 자주 출몰하여 비를 뿌렸다.
그러나 비구름 아래에서는 바람이 강해 배의 속력이 8노트에 달했다.
북두칠성의 각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5월13일(173마일항해, 사이판까지 573마일)
날씨가 좋았다. 기압1010,동북동풍이 13노트로 불어왔다.
기상예보를 확인해보니 예상된 저기압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20일 전후로 바다가 거칠어 질것이라고 한다.
달이 제법커져서 항해에 도움이 되고 있다.
5월14일(158마일항해,사이판까지 415,일본 찌찌지마까지 1075마일)
날씨맑음, 오후에 기상예보확인, 날씨좋음,
21일까지 동풍 13-17노트로 파고는 1.5-2.3미터로
예상되는 돛달리기에 최상의 날씨이다.
찌찌지마부근은 변풍대여서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 힘든항해가 될수도 있다.
생각 끝에 일단 찌찌시마로 항로를 바꾸었다.
하루정도 330도 코스로 달리다 내일 다시 기상을 확인하여
별다른 변수가 없어면 계속 찌찌지마로 향해서 올라가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그걸 핑계삼아 사이판으로 방향을 되돌리기로 마음먹었다.
5월15일(142마일항해, 찌찌지마까지 933마일)
날씨맑음,괌섬에서 270마일 동쪽해상 통과하여 북북서쪽으로
낮동안 찌찌시마 야마다네트와 교신을 하게 되었다.
항해 중 처음으로 아마추어 무선으로 교신성공,
아마추어 장비설치 후 처음이다.
찌찌지마 도착 때까지 매일 교신하기로함,
파나마 발보아에서 갈라파고스로 항해중인 요트와 교신하는 내용도 들을 수 있었다.
아마추어 무선이 이렇게 멀리까지 되는 줄 알았으면
진작 좀 시도를 해보는 것인데 그랬다.
교신참가자는 나가사키 사카이씨, 히메켄 하세씨,
찌찌지마의 야마다씨 그와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수신상태가 좋지않아 잘 들리지 않았고 성능좋은 무전기를
갖춘사람들것만 들리는 것 같다.
기상예보가 좋아 사이판에는 들리지 않고 바로 찌찌지마로 가기로 하였다.
5월16일(150마일 항해, 찌찌지마까지 783마일)
새벽3시30분경, 달이 저물었다. 사이판에서 동쪽으로
약180마일 떨어진 해상을 평속6.5노트의 속력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오전에는 낮은 비구름이 수시로 다가와 배를 눕혀놓았다.
오후에는 안정적인 바람과 맑은 하늘이었다.
오늘도 찌찌지마 야마다네트와 무전으로 교신했다.
세계일주 출발할 때 일본 요트잡지 카지에 항해계획이
소개된 적이 있어서 몇몇 세일러들은 인트레피드의 항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내일은 북해도 시갈네트와도 교신하기로 하였다.
오후 5시경 뒤따라 오는 배한척을 포착했다.
바다에서 배를 만나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다.
사모아를 출발하여 며칠 후 어선 한척과 교행한 후 처음 만나는 선박이다.
항해코스가 인트레피드와 비슷했다.
속도 13.3노트로 선명은 그린호프(green hope), 일본 히메지로 가는 상선이었다.
잠시 그 배와 교신을 하였다.
선장을 비롯하여 전원 중국인었다.
예전에 우리나라가 해왔던 부분의 일을 이제는 서서히
중국이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5월17일(154마일항해, 찌찌지마까지 629마일)
날씨맑음,가끔 비구름접근, 아침기온 31도,
사이판으로 갔으면 지금 도착할 시각이다.
그곳에서 2일정도 쉬었다.
다시 출발하면 찌찌지마까지는 750마일로 5일간의 항해거리지만
사이판으로 가던 중간에 항로를 꺽었기 때문에 4일만
더 항해하면 찌찌지마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이판에 들리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날씨가 좋을 때
찌찌지마로 갈 수 있는 것이 더 만족스럽다.
부드러운 동풍에 배의 속력이 6-7노트를 오르내린다.
9시경. 4미터쯤되는 고래 2마리가 인트레피드를 접근한뒤 멀어져갔다.
오후에는 야마다네트와 교신했는데 일부 세일러들은
일본 친구인 고사카씨는 물론 구복요트장까지 알고 있었다.
인터넷의 힘을 새삼느낀다.
요트의 세계는 좁고 좁아서 한 다리만 건너면
다들 아는 사이가 된다.
5월18일(151마일항해, 찌찌지마까지478마일)
5시경. 날이 밝아오자 밤 동안 바다를 밝혀주었던 달님은
니웃니웃 서녁 하늘 아래로 내려앉는다.
군데군데 큰 구름덩이가 있고 바람은 약해졌다.
가끔 지역에 따라 속도가 떨어질 때는 엔진을 가동해서 배를 밀어주었다.
아직 한국과 시간대가 같은 지역까지 가려면
며칠 더 가야하지만 편의상 시간을 한국과 같은 시각으로 맞추어 놓았다.
이제 더 이상 시계를 조절할 필요가 없다.
낮 동안 교신으로 찌찌지마 입항에 관해 소식을 전해왔다.
찌찌지마는 개항이 아니어서 비상시만 입항할 수 있고
특히 토, 일요일에는 입항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무전으로 며칠 전부터
연락이 되어 찌찌지마의 야마다씨가 당국에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 상태여서 오히려 그것이 안좋게 되어 가고 있다.
사전에 연락없이 입항하여 연료부족이나 선체트러블등을
이유로 피난하여 들어가면 별 어려움이 없을것인데
지금은 찌찌지마를 목적지로 가고 있는 상태로 인식되어서
당국에서 입항에 대해 회의적이다고 한다.
처음으로 교신이 되어서 좋아했는데 그것 때문에 되려
일이 좋지 않게 되어가고 있다.
세상만사 세옹지마라고 혹시 찌찌지마에 입항을 못하게 되면
이일로 또 다른 좋은 일이 생기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만월이다. 초저녁부터 스프레더에 갈매기 한 마리가 앉아서
쉬기 시작했는데 밤을 샐모양인지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녀석을 쫒아보려고 고양이소리, 개소리,
까마귀소리까지 내어보았지만 꼼짝도 하지않았다.
‘어이! 자고 가는 것은 좋은데 똥은 싸지마라! 부탁한데이!’
잔잔한 호수에 일어나는 잔물결 같은 파도를 일으키는
약한 바람에도 방향이 좋다보니 속도가 6-7노트(해류가 1노트정도)에 달했다.
선실에 앉아 있을 때는 배가 달리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워서 속도를 확인해볼 때가 가끔있다.
5월19일 목요일(157마일 항해, 찌찌지마까지 321마일)
시각을 미리 한국에 맞추어 놓았더니 4시 반쯤 일출이 시작되었다.
간밤에 하룻밤을 묵어간 갈매기는 동이 터자 숙박료 대신에
물똥 한덩이를 남겨놓고 날아 가버렸다.
상선소요(SHOYO)호와 교행하였다.
나고야를 출발하여 호주 브리즈번으로 가는 배였다.
일본 선박 인듯하여 불러보았지만 필리핀 선원이었다.
아마추어 교신도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같았는데
몇 마디 하기 위해서 한참동안 잡음을 듣고 있는 것이
영 취미와 맞지 않다.(원래 이렇게 소음이 심한 것인지?)
그러는 동안 콕핏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게 더 나을 듯하다.
찌찌지마 해상보안청에서 여권과 선적증서 복사본을 팩스로
넣어주면 토요일에도 상륙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한국외양요트협회에 연락해서 그 일을 부탁해두었다.
오후에 입수한 기상정보에 의하면 5일후인 24일경
사이판과 필리핀사이에서 중대형태풍이 발생해서
일본 동해쪽으로 올라와 28일경에 찌찌지마를 벗어날 것이라고 한다.
장기예보여서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잘못하면 찌찌지마에서
발이 묶여 도착예정일에 차질이 있을 수도 있다.
내일 다시 기상을 받아본 후 찌찌지마를 들릴 것인지
바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것 같다.
만약 찌찌지마에서 태풍을 피항하더라도 지도상으로 볼 때
초대형 태풍만 아니라면 포구는 비교적 안전한 것 같다.
5월20일 금요일(항해거리 141, 찌찌지마까지 180마일)
바람이 약해져서 간밤부터 기범주상태(돛과 엔진을 동시에 사용)로 달렸다.
그러다가 새벽부터는 바람의 방향이 남동쪽으로 돌아서서
돛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너울은 1.5미터정도 있지만 파도는 거의 없다.
평소 엔진 회전수가 2000RPM이면 속도가 보통 4.6노트가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6노트가 넘게 나왔다.
해류가 1.5노트이상 같은 방향을 흐르는 것이 틀림없다.
점심 무렵부터 북동풍으로 바람이 바뀌면서 강해졌다.
잠시 돛 달리기를 했지만 얼마 후 바람이 약해져서
다시 엔진을 가동하여 나아갔다. 하루 종일 흐린 날씨였다.
저녁부터 다시 바람이 살아나서 엔진을 멈추었다.
일본 어선으로 보이는 배한척이 남으로 지나갔다.
5월21일 토요일 찌찌지마에 도착하다.
새벽4시경부터 바람이 약해지고 북쪽으로 돌아서서
배가 계속 다가오는 파도에 저항에 밀려 나아가지 못했다.
엔진을 걸어 도와주었다.
밤사이에 내린 이슬로 콕핏이며 데크가 촉촉이 젖어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밤에도 선풍기를 틀지 않으면
더웠었는데 이불을 덮고 자야했다.
아침기온이 25도까지 내려갔다.
날이 밝았지만 안개가 자욱했다.
찌찌지마까지 45마일 남았다.
하하지마(엄마섬)부근에 도착하니 어선도 몇척 레이더에 잡혔고
어선이 내려놓은 부표도 간간이 보였다.
엄마섬이 제일 남쪽에 있고 그위로 아빠섬, 형아섬, 손자섬, 며느리섬, 사위섬등이 있다.
가족군도이다.
일본지명은 오가사와라(OGASAWARA)군도이다.
오후가 되어서도 안개가 걷히지 않았다.
입항하려면 애를 먹겠다 생각했는데 찌찌지마를
2마일 쯤 남겨두고 거짓말처럼 안개가 싹 걷혔다.
15시경 입항하여 검역, 출입국, 세관, 해상보안청순으로 입항절차를 밟았다.
저녁에는 아리랑이라는 선술집을 찾아갔다.
주인장은 이곳에서 15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먼 오지에 한국사람이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반가웠다.
5월22일
이곳 요트클럽에서 방문록을 가져왔다. 두꺼운 공책으로 3권이었다.
30년전부터 이곳찌찌지마를 방문한 요트들의 기록들이다.
아는 사람도 몇 명있고 아는 요트도 몇척있었다.
1달앞에 이곳을 거쳐간 문선장부부의 기록,
인트레피드가 되기전 프라잉(Flying)이란 이름으로 이곳을 방문한 흔적,
세계일주를 한 보헤미안호의 와타나베씨, 오키나와에서 만난 홍콩요트 제이드, 등등
많은 요트가 이곳을 방문한 것을 살펴보고 그곳에 인트레피드의 흔적도 남겼다.
오전에는 이곳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와타나베씨가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때는 일본식 레스토랑에 가서
돈부리(뜨거운 밥위에 양념에 버무린 참치회)를 먹었다.
오후에는 이 섬에 살면서 아마추어햄을 취미로 하는
야마다씨의 다이빙숍에 가서 인터넷을 좀 했다.
야마다씨는 항해하는 요트들에게 서포트하는
무선클럽인 오케라네트의 주장이다.
저녁에는 이곳 요트클럽 회장 칸도씨를 비롯해 회원분들이 찾아와
인트레피드에서 작은 파티를 열었다.
모두가 올때 음식과 술을 가져왔는데 내가 내어놓은 소주, 위스키외에
그들이 가져온 막걸리(와타나베씨가 좋아함),맥주, 과일주,
아마미오시마특산 럼주, 일본이모소주등등 술종류만 거의 10가지가 되었다.
6시쯤 시작한 파티는 밤 11시가 되어서 끝이 났다.
칸도씨는 자신의 요트(30피트)를 타고 20년전에 남태평양의
섬들을 돌고 왔다고 하였다. 태풍은 29일쯤 일본동해를 빠져나간다고 한다.
찌찌지마를 출발하여 종착점인 부산으로
6월1일
찌찌지마에 도착한 후 잠시 쉬었다 떠나려 했지만
느림보 태풍 ‘송다’에 발목이 잡혀 11일간 섬에 피항해 있어야 했다.
6월6일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월31일에 떠나야 했지만
4미터의 높은 파도와 북서풍 때문에 결국 출발을 미루었다.
가능하면 휴일에 도착하여 그 동안 응원해주었던 사람들과
세계일주를 마감하는 기분을 함께 하고 싶었지만 늦어버렸다.
도착 일을 미리 잡은 그 오만함을 나무라듯 바다는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5시쯤 일어나 출발준비를 했다.
아침 일찍 배웅 나온 찌찌지마 세일러들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포구 안은 잔잔했지만 밖을 나서자 북쪽에서 3-4미터가 되는
높고 긴 너울이 끊임없이 일어섰다간 남쪽으로 멀어져갔다.
아침에는 북북동풍이 불었지만 오후로 가면서 북서풍으로 바뀌었다.
배는 옆바람을 받아 잘 나아갔다.
이제 종착역인 부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세계일주를 끝내고 돌아가는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디쯤 가면 그 느낌이 다가올까?
내가 뭔가를 하긴 한것인가?
6월2일 (부산까지 698마일)
바람이 남동풍으로 바뀌어 순풍을 타고 나아가고 있다.
실내온도는 26도, 기압은 1018미리바로 높아졌다.
정오부터 속도가 뚝 떨어졌다.
물을 가르고 나아가는 속도는 변함이 없는데 GPS 속도만
갑자기 떨어져 해류의 영향을 받는 것인가 했지만 다시 속도가 되살아났다.
저녁 무렵 지난 5월16일 사이판 동쪽해상에서 인트레피드를
추월해 일본으로 갔던 일본상선 그린호프(Green hope)가
다시 남쪽으로 향해 내려갔다.
날씨가 흐려지고 기압계가 1016으로 떨어졌다.
자정무렵부터 가는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6월3일 (부산까지 남은 거리 550마일)
새벽3시경 상하이로 가고 있는 상선 하루에스트 레젠드(Haruest Regend)호가
동쪽에서 다가와 앞을 가로질러 경도선을 따라 서쪽으로 나아갔다.
두 선박이 그대로 코스를 유지하다가는 근접할 위험이 있어
무전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있는지 체크했다.
비구름이 간헐적으로 다가와 레이더 알람이 울려대었다.
날이 밝고 나서부터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이어 거센 바람이 일어 바다가 온통 백파로 변했다.
덕분에 속력은 빨라졌지만 비속에서 돛과 윈드베인을
조정하느라 옷을 홈빡 젖었다.
이제 점퍼를 입지 않으면 쌀쌀함을 느낀다.
실내온도는 25도이다. 기압계를 보니 1010미리바까지 떨어져있다.
오후 들어서 좀 개이는가 했더니 저녁이 되자
다시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바람은 북동풍에 풍속은 18노트, 파고는 2미터에 백파가 일고 있다.
메인세일은 2단축범한 상태로 짚세일을 활짝 펼치고
평속 6.5노트로 고향인 부산을 향해 북서진하여 나아간다.
비는 밤9시경까지 가늘게 뿌리다 그쳤다.
자정 무렵, 일본에서 출발하여 필리핀으로 가는
상선 트로피칼 스카이(Tropical sky)와 근접하여 지나갔다.
이때쯤 바람이 약해져서 메인세일을 모두 올려 항해했지만
속도가 점점 떨어져서 엔진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6월4일(부산까지 남은 거리 마일)
아침이 되어서는 바람이 완전히 사라져 해면이 거울처럼 되었다.
선실온도가 다시 30도까지 올라갔다. 상선들의 출현이 많아졌다.
오전에만 3척의 상선과 2척의 유조선을 만났다.
해면이 잔잔해서 배도 별로 꿀렁이지 않아 선실에서 이런저런 작업을 하기 좋았다.
사용하지 않을 물건들은 챙겨서 넣고 배에 두지 않을 것들도 따로 분리했다.
오후에 들면서 구름이 많아지면서 동풍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오후에도 상선 몇 대 지나갔다.
저녁무렵에는 꽤 많은 배들이 오키나와쪽 동남아쪽 항로로 내려갔다.
한밤중넨 오사카쪽으로 가거나 그쪽에서 나와서
동남쪽으로 길을 잡고 내려가는 배들이 남동쪽으로 혹은 북서쪽으로 향해 나아갔다.
그중에서 고베로 향하고 있는 상선 비비씨하렌(BBC Haren)과는
1마일 정도로 근접해서 지나가게 되었다.
무전으로 연락해서 서로가 각도를 조금씩
왼쪽으로 꺽어서 위험반경안에 들어가는 것을 피했다.
6월5일
자정을 넘어서면서 배들이 더욱 늘어났다.
20마일 반경에 늘 네 다섯척은 항해중이다.
낮은 비구름이 자주 다가와 비를 뿌렸다.
바람이 동풍이어서 배가 상승각의 끝자락을 잡고 나아가지만
속도는 4노트대로 떨어졌다.
쿠로시오해류가 강한 지역으로 들어온 것같다.
흐린 아침이다. 가는 비를 뿌렸다.
여전히 일본 근해에는 항해하는 배들이 많다.
기압이 1008까지 떨어졌다.
뒤쪽에는 검은 구름이 가득 포진해있다.
간밤에 속력을 좀 낸 덕분에 짙은 비구름대를 만나지 않았다.
일본 본토까지는 30마일을 남겨두고 있다.
배들이 늘어나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멍하다.
해도에는 쿠루시오 해류의 영향을 받는 곳이라고
표기 되어있었지만 아침부터 속도가 살아나 잘 달리고 있다.
바람은 북풍으로 바뀌었지만 돛만으로 항해하면 속도가 3노트를 넘지 못한다.
압력밥솥으로 밥을 하고 찌찌지마에서 산 김치로
찌개를 만들어 아침을 먹었다. 배들이 더욱 늘어났다.
오늘밤은 일본내해로 들어가기 때문에 배들이
더 많이 늘어나서 제대로 자기는 걸렀고 내일 밤은
대한해협을 건너야 하는데 종착점에 도착한다는
기분 때문에 들떠서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
3일 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면 머리가 멍하지 않을까?
어떻게해서든 조금씩 잠을 자야 한다.
7시부터 북동풍이 강해져서 돛만으로도 평속 7노트의 속도로 항진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가운데 11시경 일본 본토에 접근하여 내해쪽으로 향했다.
비구름으로 시야가 2마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16시경 비가 그치고 동풍이 불어왔다.
20마일 감시판내에 수십척의 상선들이 다니고 있다.
밤이 되면 더 신경써서 견시를 해야한다.
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19시경 내해인 수오나다에 진입하였다.
입구는 조류로 인한 파도와 와류가 발생하여 거칠었다.
삼각파도에 배의 선수가 들썩였고 와류지대를 지날때는
배가 제 마음대로 돌아가버렸다.
20분쯤 거친바다를 지나자 다시 잔잔한 바다로 바뀌었다.
그리고 사방이 어두워졌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다.
앞쪽에 낚시배가 4-5백여대 나타났다.
경광등을 밝혀놓고 고기를 낚고 있는 낚시선,
그물로 조업하는 어선들, 또 자리를 옮기는 어선들,
이렇게 많은 배들을 보기는 처음이다.
이곳에 어장이 형성되어 마을의 배란 배는 죄다 나온모양이다.
어선들은 특이한 항해등과 작업등을 동시에 달고 다녀서
수 많은 어선들 사이로 통과하느라 진땀이 났다.
23시경, 히메시마를 안쪽으로 돌아 관문대교 방향으로 선수를 맞추었다.
실내온도는 22도, 기압은 1007미리바였다.
예전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딜리버리 항해를 할때는 몰랐는데
AIS(선박항해정보 송수신장치)를 통해서 보니 배가 정말 바글바글하다.
이렇게 많은 선박을 보면 일본의 경제규모는 상상이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 어느 곳도 이렇게 많은 배들이 다니는 곳은 없었다.
6월6일(부산까지 남은 거리 115마일) 부산으로 가는 세계일주 마지막 밤
졸음이 와서 견디기 힘들었다.
작업하는 어선들도 간간히 있고 항로에서 벗어나 항해했지만
이곳역시 상선들이 수시로 다녀서 5분도 마음편히 졸수가 없었다.
새벽 3시30분경 우베앞바다에 도착하여 다시 키타큐슈쪽으로 항로를 조금 꺽었다.
아침 6시경 관문교 앞에 도착 , 그러나 관문교의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껴있었다.
5노트의 역류을 거슬러 관문해협의 수로 안으로 진입했지만 정말 한치앞이 보이지 않았다.
해협갓쪽으로 붙어 겨우 올라가고 있는데 모지항에서 나온 어선 한척이 다가왔다.
‘안개가 짙어서 못갑니다. 모지항에 들어가서 쉬었다 가세요.’
그 어부의 말대로 배를 돌려 모지항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여기서 잘못 지체되었다가는 다시 한국도착도 연기 될것 같아
해협을 건너 시모노세키항으로 가기로 했다.
‘부-웅, 부-우-웅’
엔진출력을 높여 해협을 건너는데 기적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시정이 채 100미터가 안되었기 때문에 보이는 배는 없었지만
배를 일단 돌려 후퇴했다.
그리고 수초후 거대한 상선의 선수마루가 안개속에서
괴물처럼떡하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다시 방향을 돌려 상선의 뒤꽁무니에 부딪힐듯 다가갔다.
그래야 다음 배가 오기전게 해협을 안전하게 건널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많이 듯던 욕지거리가 들린다. 한국배였다.
‘아저씨들 미안합니다.’
선미루에 나와 있는 선원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랬더니 미안한 듯 손을 흔들었다.
해협을 건너 안벽을 따라 시모노세키항으로 내려갔다.
항으로 들어가는데 큰 상선한척이 항에서 나오는데
나를 발견하지 못한듯했다.
배를 멈추고 그배를 보낸다음 항안으로 들어갔다.
배를 항 안쪽에 배를 붙여놓고 출항수속을 하러 갔다.
출항수속과 출국수속을 모두 마치니 11시경이 되었다.
찌찌지마에서 다시 꼼꼼히 부착한 ‘협성르네상스’
로고가 일부 뜯겨나가 투명테이프로 단단히 붙였다.
그러나 대한해협을 건너면서 또 떨어져 나갈까 걱정이다.
글자중 일부가 떨어져 나가면 보답하려다
오히려 큰 실례를 범하기 때문이다.
좀 더 쉬었다가도 시간을 충분했지만 항안에도
해협을 왕래하는 대형선박이 만들어내는 파도로 쉴새없이
꼴랑거렸기 때문에 12시경 계류줄을 풀고 해협으로 나섰다.
그 동안 조류가 바뀌어서 순류가 되어 출렁거리는 파도와
함께 넓은 바다로 나섰다. 대한해협이다.
‘아! 대한해협!’
‘이런 순간이 온단 말이지!’
안개는 다 걷혔고 바다는 비단을 덮어놓은듯 매끄러웠다.
인트레피드가 남기는 물자국이 길게 꼬리를 만들었다.
저녁이 되어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까지도 바다는 조용했다.
불을 밝히기 시작한 오징어배의 조명이 대한해협을 길잡이가되어준다.
또한 시정이 좋아 항해하는 선박의 불빛이 잘 구분된다.
‘이렇듯 편안한 바다를 내게 보여주는 것은 왜일까?’
‘또 다른 유혹은 아니겠지!’
21시경 시모노세키와 쓰시마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섬 오키노시마를 12마일쯤 떨어져서 부산을 향해 나아갔다.
시모노세키와 부산까지 115마일 거리이다.
넓은 대양에 비하면 짧은 거리이지만 날씨가 험악할 때
거친 삼각파도에 생사를 넘나드는 고생을 할 때도 많았다.
오키노시마는 그때 나와 배를 보호해준 해준 고마운 피항처였다.
지난 이틀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 자투리 잠이라도 자야 했지만
오징어 배가 워낙많아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이들 어선들은 내가 잠이 들어 충돌위험지역까지 들어가더라도
그들이 피하지는 않기 때문에 더욱 잠을 잘 수가 없었다.
6월7일 드디어 한국에 도착하다.
밤 사이 날씨는 계속 좋았다.
아침이 되자 가벼운 서풍이 불어와 주돛고 보조돛을 모두 끌어올렸다.
아침5시경 대마도 북단까지 마중 나온 윈드스타호와 교신하였다.
윈드스타호는 김덕우씨의 30피트요트로 이번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까지 태평양을 횡단한 배이다.
구복요트장에 정박중인 해그리드호 선주인 이선생과 같이 나왔다고 하였다.
윈드스타호 역시 현재 구복요트장에 정박중이다.
내게는 식구 같은 사람들이다.
윈드스타호는 부산쪽으로 8마일쯤 앞에 항해중이라고 했다.
2시간쯤 후에는 만나게 될것이다.
9시30분경 옅은 안개속에 나타난 광안대교를 발견했다.
꿈속에서도 그리던 고향이다.
거친풍랑속에서 홀로 항해하는 절대고독의 많은 시간들을 보내며
대자연앞에 놓여진 나와 나의 작은 범선 인트레피드는
너무나도 보잘것 없는 하찮은 미물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고비를 넘고넘을때마다 언제가는 도착하게될
고향 부산의 풍경을 상상하며 버티어왔다.
그 고향의 심벌인 광안대교가 거리가 줄어듬에 따라 점점 선명하게 다가 왔다.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과연 도착할 날이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 오는것일까?
20개월의 긴 항해기간동안 늘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드디어 그날이 왔다.
어릴적의 막연했던 꿈이 요트딜리버리라는 직업을 하면서
구체화 되었고 그 꿈을 간절하게 그리게 되면서 어느 순간
나는 요트 단독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도대체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지?’
항해를 하면서 수없이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2011년 6월7일 11시 광안대교아래를 돌아 부산요트경기장으로 입항하여
20개월간의 장도의 여정을 마쳤다.
지구를 한바퀴 돌아온 것이다.
실감이 나지 않지만 사실이다.
처음의 설레임을 꾸준히 유지하는 자가 꿈을 이룬다고 했다.
지금 나는 배를 타고 세상을 한바퀴돌아온 단독 세계일주자가 되었다.
어렵고 힘들었든 항해의 순간들도 이제는 아름다운 기억이 된 것이다.
내가 태어난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오면서 나는 도전하지 않는 자는
결코 가질 수 값진 추억을 갖게 되었다.
멋지지 않는가!
-끝-
첫댓글 멋집니다. "짝짝짝"
그러네요...히
단독항해는 외로움과 피곤함 모두와 맞서야 하군요. 다 이겨내신 선장님 대단하십니다.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신다고 수고많았습니다..^^
마치 내가 다녀온것같은 기분 입니다 , 무사항해 , 무사귀환, 무사일주 , 베리굿 잡 ~~
슬슬 잊혀져 가네요
아뻘써 끝나다니 몇달은 더바야되는데... 감사함니다!
감사합니다....^^
처음출발서 부터 잘보았습니다.
선장님과 같이 세계일주를 다녀온듯합니다.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하시는 새로운사업도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윤선장님의 기나긴 여정은 많은 요트맨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어 또 디른 모험의 시작이 될겁니다.큰 일을 해 내셨습니다.
한동안 항해글 읽고 기다리느라 즐거웠습니다.
마지막 부산입항을 읽노라니 가슴뭉클하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요트인들에게 큰 꿈을 주셨습니다.
희망과함께~~~~
감사합니다 ^^
수고많이 햐셨읍니다...
읽는 재미 하나가 없어졌네요...
감사합니다
재미나게 함께 동행을 잘 하였습니다. 저도 요트세계일주를 꿈꾸고 있습니다. 자꾸 떠벌려야 자신과의 약속인것 처름 어쩔 수 없이 갈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을 발견 하려고 합니다. ㅎ
맞습니다 병은 떠벌여야 해결되죠
그동안 선장님의 세계일주 항해기 통해서 간접경험 많이 했습니다.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늠 항해기에서 남아의 기상을 볼수 있어 거움이 더한 기록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부럽습니다...담에 가시면 꼭 데려가 주십시요.....
고생하셨습니다. 짝짝짝..
순간순간의 긴박했던 상황, 다양한 경험 잘 표현해주셔서 옆에서 보는듯 흥미진진했습니다...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