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장,
종엽이는 술이 잔뜩 취해서 들어온다.
선미는 안방의 눈치를 보면서 동생을 얼른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술 많이 마셨니?”
“누나! 미안해요. 그리고 누나 볼 면목도 없고 세상 사람들 보기가 두려워요!“
“그런 생각을 갖지 마! 어쩌겠니? 그렇다고 이대로 엄마를 혹사 시키겠니?“
“누나!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지요? 마누라에게 버림을 받을 정도로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너희들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야!“
종엽이는 눈물을 흘린다.
“울어! 울고 싶은 것을 참지 말고 울어! 아버지가 들으셔도 엄마가 들으셔도 상관없어! 참지 말고 울고 싶은 대로 울어!“
“내가 무슨 자격으로 마음 놓고 울 수가 있겠어요? 자식을 지키지 못한 애비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말과는 달리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선미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선미는 얼마나 울었던지 눈 주위가 부어있었다.
“종엽아! 내 말을 잘 들어!“
“네!”
“앞으로 재혼을 쉽사리 결정을 하지 마! 그리고 이혼을 하려면 차라리 빨리 해 주고 네 마음을 정리 해! 싫다고 집을 나간 여자 다시 들어온다고 해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해! 그리고 이제는 이 상처를 씻을 수도 없고.“
“누나! 이제 더 이상은 그 사람과 살 수가 없어요. 우리 영애가 떠난 이상 이제 그 사람과의 인연은 끝난 것이에요. 그래도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영애를 입양 보낸다고 전했는데도 아무런 연락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사람을 더 이상 무슨 미련이 남았겠어요?“
“그래! 마음을 독하게 먹고 한 동안은 남을 두 아이들만 생각해!“
“나도 이제는 부모님을 모시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 편하게 살래요. 그동안 가져다준 월급 통장을 가지고 나갔으니 그것으로 위자료를 줬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그래! 너만 마음 편하게 살아간다면 엄마도 더 이상 다른 미련을 두지 않으실 거다. 그러니 우리 엄마를 위해서라도 힘들더라도 참고 이겨내자. 응?“
“누나! 정말 고마워요. 이럴 때 누나가 한 집에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라요. 엄마를 많이 위로해 드리세요.“
"그래! 그럼 어서 자라!“
선미는 동생의 잠자리를 보아주고 방에서 나온다.
집안은 죽은 듯이 조용하다.
잠시 거실 소파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억눌린 듯한 울음소리가 엄마의 모든 피를 토해내는 것만 같다.
엄마는 얼마나 많은 밤들을 지새우면서 저렇게 피를 토해내는 울음을 울어야만 할지 선미의 가슴은 토막토막 끊겨져 나가는 듯한 아픔이 일어난다.
김 여인은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다.
어린 영애의 모습이 눈앞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영애의 가녀린 울음소리가 들린다.
할머니를 찾으며 우는 영애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떠나지 않는다.
“아! 내가 어쩌다 그런 천벌을 받을 짓을 저질렀을까? 자식들이 아무리 그러자고 해도 내가 못 한다고 했어야지.“
영애를 보낸 지가 일주일이 넘었다.
집안의 분위기를 아는지 영빈이와 영훈이도 기가 죽어서 어른들의 눈치를 본다.
영빈이는 동생인 영애가 남의 집으로 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엄마도 집을 나갔다는 사실도 영빈이는 알고 있는 것이다.
두 아이들은 자신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버림을 받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운 눈으로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아이들이다.
“영훈아! 너 말 잘 들어야 해!“
“응!”
“우리가 말을 안 들으면 영애처럼 고아원으로 보내진단 말야!”
“형아! 나도 알고 있어! 영애가 보고 싶고 불쌍하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영애처럼 고아원으로 가지 말자! 응?”
“나도 고아원에 가기 싫다.”
두 아이는 서로 끌어안고 있다.
김 여인은 영빈이와 영훈이의 대화를 우연하게 듣는다.
김 여인의 마음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리는 어지러움을 느낀다.
영애로 인해서 두 아이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 난 정말 할머니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구나!“
김 여인은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할머니를 본 두 아이의 눈에는 겁이 잔뜩 들어 있음을 그제야 깨닫는 김 여인이다.
“영빈아! 영훈아!“
김 여인을 두 아이를 끌어안는다.
“이 할미가 잘못했다. 내 새끼들 가슴이 이리도 새카맣게 타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할미 생각만 했구나! 어린 너희들이 무슨 죄가 있겠니?“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의 눈물을 보자 두 아이도 함께 따라서 운다.
“영애 보고 싶지?”
“네!”
“네!”
“할머니 생각이 너무 짧았다. 이다음에 너희들이 크거든 영애를 반드시 찾아 보거라!“
“할머니! 형아하고 저는 고아원에 보내지 않을 거지요?“
“암! 미안하다! 내 새끼들을 어디로 보내겠니?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고 마음껏 뛰어놀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껏 하고 그래라!“
“정말 그래도 되요?”
“그럼! 할미가 그동안 내 새끼들이 있었는지 조차 생각을 하지 못했구나! 이제 할미도 정신을 차리고 내 새끼들을 정성껏 키워주마!“
김 여인은 조금은 정신을 차리고 영빈과 영훈을 돌본다.
그러다가도 현관문을 열고는 우두커니 밖을 내다본다.
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 마치 영애가 있기라도 한 듯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이들을 한없이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다.
“영애야! 내 새끼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니? 이제 이 할미 생각은 얼마큼이나 잊었니?“
한사코 당신의 품속을 떠나려하지 않던 어린 손녀딸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선미는 밤마다 소리죽여 흐느끼시는 엄마를 잘 알고 있다.
열흘이 다 되어가는 데도 엄마의 슬픔과 아픔은 조금도 사그라들지를 않는다.
엄마의 모습은 날이 지날수록 더 황폐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선미는 선정을 기다린다.
선미는 생각하다 못해서 선정을 가게로 나오라고 한 것이다.
이 상태로는 엄마를 지탱시킬 수가 없다.
점심이 조금 지나서 한가한 시간에 선정이가 모습을 나타낸다.
“어서 와! 점심 아직 안 먹었지?“
“언니!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점심을 안 먹어? 그냥 여기 커피 한잔만 줘라!“
종업원에게 말을 하고는 선정은 긴 한숨을 푹 쉰다.
“엄마는 어떠셔?”
“선정아! 영애 아직 한국에 있지?“
“응!”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이건 영애를 위한 일도 아니고 엄마를 위해서 하는 일은 더욱 아니다. 대체 우리 형제가 몇이냐? 우리 칠남매가 이렇게 버젓이 있는데 조카하나를 거두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겨야만 하니? 엄마가 밤이면 주무시지도 못하시고 소리를 내시지도 못하시고 피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선정아! 우리 달리 생각을 해 보자!“
“.............................”
“어떻게 어렵겠니?‘ “언니! 나도 요즘 마음이 너무 괴롭다. 울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영애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히고.......... 그리고 아직도 영애가 할머니를 찾고 울고 있다고 하고.............“
선미는 조금 더 선정이 앞으로 의자를 끌어당긴다.
“선정아! 내가 책임을 질게! 엄마가 힘들지 않으시도록 파출부를 부르고 영애도 놀이방에 보내면 전같이 엄마가 힘이 드시는 일은 없을 거다. 내가 엄마를 위해서 그렇게 하도록 할 테니까 다시 영애를 데려오자!“
“정말 그래야겠지? 허지만 정말 어떻게 말을 해야만 할지........“
“내가 그 집에 갈게! 네가 곤란하면 내가 그 집에 가서 사정을 하고 위로금이라도 드리고 오면 안 될까?“
“....................”
“이건 하루라도 늦추지 말고 결정을 해야 해! 엄마를 네가 보지 못해서 그러지 엄마의 모습을 가서 봐라!“
“언니! 하루 이틀만 시간을 줘!“
“그러다 그 사람들 우리 영애를 데리고 떠나면 어떻게 하니?”
“아직 출국을 할 시간이 삼 개월 남았어! 그러니 그런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시댁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찾아 갈 수는 없어!“
“그럼 한 가지만 분명하게 약속 해! 영애를 다시 데리고 온다고 약속해라!“
“언니! 그럴게! 처음부터 내 생각이 짧았어! 우리가 너무 생각들이 모자랐어! 엄마가 힘이 드시면 우리 모두가 조금씩 돈을 거둬서 언니 말대로 파출부를 부르면 될 것을 내가 올케가 밉다는 생각에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어!“
“말리지 못했던 나도 잘못했지! 마음은 그게 아니다 하면서 나도 너처럼 올케가 미웠던 모양이다. 영애 떠나던 날 종엽이가 밤새 흐느껴 울고 엄마가 피를 토하시는 울음을 숨죽이며 우시고 있는데 가슴을 칼날로 도려낸다고 해도 그렇게 아프지는 않을 것 같더라!“
두 자매는 그렇게 한참을 영애를 다시 데려올 의논을 한다.
선정이가 돌아가고 나사 선미는 숨통이 조금은 트이는 것만 같다.
이제 이삼일만 지나면 엄마의 심한 고통이 덜어지실 것이다.
그날 밤도 선미는 엄마의 흐느끼시는 소리를 듣는다.
엄마의 흐느낌은 당신의 창자를 모두 쥐어짜내는 듯한 심한 오열이었다.
자식들을 유별나게 사랑하시는 엄마의 심정은 손녀딸인들 어찌 사랑하지 않으시겠는가?
오히려 자식들보다 더한 사랑으로 당신의 가슴에 품고 계셨던 손녀딸이 아닌가?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라서 말씀을 드리지도 못하고 엄마의 피를 토하는 듯한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선미의 가슴은 꽉 막혀온다.
내일이라도 정확한 것을 알고 엄마의 마음을 달래 드리고 싶다.
선미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침에 가게 문을 열고서도 선미는 머리가 어지럽다.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대충 준비를 하고 선정이에게 전화를 하려고 수화기에 손이 가던 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작은언니! 나 지금 영애를 데리고 엄마에게 가는 길이야!“
밝고 힘찬 선정이의 음성이 전화선 저 쪽에서 들려온다.
글: 일향 이봉우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자식들 (15회)"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