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시부문 당선작] 김민경 유은우
■당선작
Zombie
김민경 학생(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센서등이 없는 비상구를 오른다 맨발에 누군가의 장기들이 밟힌다 미끄럽고 질퍽해 게다가 징그럽고, 생각하는 순간 엎어진다 고개를 들자 뚝 뚝 떨어지는 핏물들
양떼 같은 몸들이 기계적으로 계단을 오른다 깡통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다 간헐적으로 서로에게 부딪치며 경쾌한 소리를 낸다
사람은 아니에요, 눈알이 뽑힌 여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대답한다
언제부턴가 걷고 있었어요 출근을 했던 것도 같은데, 고개를 기울이는 남자의 귀에서 달팽이관이 흘러내린다 완전히 빠져나온 귓속 부속물들이 계단을 타고 미끄러진다 여긴어떻게오신거예요! 소리쳐도 남자는 대답이 없고, 뒤에서 머리가 터진 학생이 입을 연다
밤새 수학 문제를 풀었어요 의자 뒤에는 익숙한 얼굴의 몽둥이가 앉아 있었고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죠 두 시간씩 숨을 참다가 화장실에 가면 빈 욕조에 들어가 누웠어요 차오르는 욕조에서 쪽잠을 자다 보면 부서질 듯한 노크 소리, 젖은 얼굴을 닦고 나오면 무자비하게 따귀를
맞았어요
말하는 입술에서 침이 줄줄 흐른다
손이 없는 남자가 박수 대신 구둣발을 구른다
이 위에는 무엇이 있나요
미래가 있대요
그게 뭔데요
유엔빌리지 첼리투스 트리마제
일단 걸읍시다
텅 빈 이마에 손을 올리자 힘이 풀린 뇌가 우르르 쏟아진다 손 안 가득 대뇌 소뇌 뇌들보 뇌궁체, 고개를 들면 사람 같은 눈들이 따라붙는다 원래 처음에는 다들 모르더군요, 가슴이 터진 여자가 덜렁거리는 혈관을 뜯어내며 말한다
다시 걸읍시다
꼭대기를 향한 대이동이 시작된다 어디선가 비명 같은 함성이 쏟아진다 더 가! 더 올라가! 씨발 그냥 미친 듯이 뛰란 말이야! 유엔빌리지첼리투스트리마제, 나는 프로야구 홈경기처럼 응원받는다 걷고 걷고 걷고 걷는다 이유를 모른 채 엔딩크레딧처럼 박수를 받으며
터벅 터벅 터벅
열심히 망가진다
■가작
북회귀선
유은우 학생(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나 돌아갈 곳 없어서
앉은 의자가 내려앉았다
서늘한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면
귀신은 나에게 무릎을 내어주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는데,
침엽수를 베는 사람들은
영원히 악몽에 시달릴 것이다
열매가 괜히 딱딱하다
입 안쪽에 숨긴 것은
너의 어린 낯이었고,
내가 숨어 사는 곳
어디에도 진짜 같은
이야기가 없어서
신을 믿기도 했다
캠프파이어 뒤에 남아 있는
귀신의 시체가 그을려 있다
손 끝으로 건드려본 시간과
그림자를 약통에 넣고 흔든다
잠이 들면
내가 깨지 않기를 바라면서
점친 미래가 소금처럼 반짝였다
손바닥을 펼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허공으로 돌아왔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되자
2023 제69주년 명대신문 시 부문 심사평
여기 좀비떼가 걸어간다
가을의 초입, 2023년 백마문화상 시부분 심사위원들은 응모된 작품을 2~3주에 걸쳐 나눠 읽고, 총 아홉편의 작품을 본심에 올린 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가작으로 선정한 「북회귀선」 외 2편의 경우, 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을 유려하게 구사할 줄 아는 응모자의 능력이 돋보였다. “내가 숨어 사는 곳/어디에도 진짜 같은/이야기가 없어서/신을 믿기도 했다”(「북회귀선」)라든지, “고양이와 아기 울음소리를 구별 못해/사랑이란 것을 자주 빼앗기곤 한다”(「이심률과 도덕성」)와 같은 문장은 쉽게 쓸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삶의 비극성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진지한 고뇌들이 내면에서 치열하게 불타올랐다가 천천히 숙성된 뒤, 시를 쓰면서 문장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어나고 있었다. 개별 문장들의 서글픈 아름다움이 서로 조응하여 완결성 있는 주제로 조금만 더 치밀하게 묶인다면 한결 묵직한 파괴력이 생길 것 같은 인상적인 작품들이었다.
큰 어려움 없이 당선작으로 「Zombie」 외 2편을 골랐다. 「Zombie」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작품이다. 영화나 드라마, 장르물과 웹소설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좀비’라는 테마 자체야 이젠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걸 시로 형상화하는 일은 또 다르다. 눈알이 뽑힌 여자, 달팽이관이 흘러내리는 남자, 머리가 터진 학생으로 대표되는 인간 좀비들이 비명 같은 함성에 취해 삐걱
이며 걸어간다. “유엔빌리지 첼리투스 트리마제” 등 소위 성공한 삶을 상징하는 고급 빌라 혹은 아파트를 향해 자기 몸이 다 망가져 흘러내리는 줄도 모른 채 떼를 지어 걸어가는 이 장면에서 자유로운 자는 누구인가. 삶의 진정한 가치 따위는 배부른 소리일 뿐, 오직 즉자적인 생존과 물질적 성공을 위해 어떠한 자의식이나 성찰도 없이 무조건 전진하는, 혹은 전진하게 만드는 우리 시대의 비극과 욕망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솜씨가 발군인 작품이었다. 신체 훼손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구사하는 능력, 좀비 테마를 공간적으로 구조화하는 능력, 시적 긴장감을 유지한 문장과 현장감 넘치는 적절한 서사의 리듬감 또한 설득력을 높이는 힘이었다.
오랜만에 압도적인 시를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마음을 다해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이외에 「경계」외 2편, 「블루펭귄의 로맨스」외 2편, 「월요일」 외 2편을 응모한 세 사람 역시 선명한 인상을 남겼음을 꼭 전하고 싶다.
남진우 박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