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R8 V8이 처음 나왔을 때 람보르기니 관계자들은 약간 불안해했다. 알고 보면 R8은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R8은 가야르도보다 2기통과 80마력이 모자랐다. 따라서 람보르기니는 여전히 판매전략상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그 뒤 R8 V10이 등장했다. 출력은 30마력 떨어졌지만 4만4,000파운드(약 8,000만원)나 쌌다. 이때부터 R8은 가야르도와 정면대결에 들어갔다. 그러다 곧 R8 V10 스파이더가 이 난투극에 뛰어들었다. 값을 내린 가야르도 스파이더는 람보르기니에게 굴욕의 상처를 입혔다. 판매전략상의 우위여 안녕!그럼에도 최소한 더 가볍고 단단하고 빠른 가야르도 수퍼레제라는 나름대로 파고들 틈새가 있다. 그러나 람보르기니는 이제 돌파구를 찾기에 더욱 어려움이 많아졌다. 아우디가 더 가볍고 단단하고 빠른 R8 V10 버전인 GT를 내놨기 때문이다. R8 GT의 값은 14만2,585파운드(약 2억5,722만원)로 수퍼레제라보다 3만2,000파운드(약 5,770만원)나 싸고, 552마력의 강력한 파워로 네바퀴를 굴린다. 수퍼레제라와 거의 맞먹는 파워다.
당연히 GT는 다른 R8들마저 궁지로 몰아넣었다. 보통의 R8보다 34마력이나 높고 100kg이나 가볍다. 무게를 덜어낸 주요 부분은 신형 수동식 시트. 그것만으로 31.5kg이나 줄었다. 아울러 카펫, 다양한 카본 보디 패널, 얇아진 유리, 마그네슘 엔진 서브프레임, LED 헤드램프, 훨씬 얇은 배기관과 작아진 도어미러가 감량에 힘을 실었다. 이렇게 무장한 바이에른의 배트모빌은 0→시속 100km 가속을 3.6초에 끝낸다.
순수하고 강력한 제동력 일품
R8은 스테로이드를 맞은 TT를 닮았지만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앞머리는 전형적인 아우디의 모습에서 확장된 느낌이고, 중간부분은 카본 사이드블레이드가 뚜렷하다. 그리고 네모반듯한 엉덩이에는 공격적인 에이프런과 충분한 고속 다운포스를 발생하는 초대형 스포일러를 달았다. 아울러 GT 팩에는 서로 다른 그릴 그래픽이 들어 있고 다양한 스플리터,
립과 환기구가 추가됐으며 한 쌍의 아주 큰 머플러와 검붉은 브레이크 캘리퍼와 주문형 19인치 휠이 달렸다. 도어를 열면 반들거리는 킥플레이트가 잠시 환영의 불을 밝힌다. 알칸타라 시트에 들어가기 전에 하니스(옵션인 레이스 팩의 일부)의 헐렁한 네 끝이 마치 꽃잎처럼 펼쳐진다. 벨트를 맨 다음 허리둘레와 가슴 아래를 스트랩으로 죄었다. 이때부터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자리를 잡으면 MMI(아우디의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 조절장치에 손이 닿기가 어려워진다. 도어미러는 작아져 무게와 공기저항을 줄였다. 메인 백미러에는 반들거리는 빨간 롤케이지 일부가 보일 뿐. 계기판과 도어에는 카본파이버가 덮여 있고 기어 레버만이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그 위에 새겨진 일련번호는 000/333.
시동을 걸기도 전에 감동을 준 R8은 키를 돌리면 화들짝 살아나는 엔진이 또 한번의 감동을 준다. V10의 사운드에 맞설 엔진은 없다. 예외가 있다면 두카티 데스모, 혼다 S2000, 2005 일모어 F1 엔진과 TT RS 정도랄까. 비재래식 점화간격, 흡기 시스템의 텀블 플랩, 개폐식 배기관과 벨트 구동식 부속장비와 더불어 독특한 멜로디를 선사한다. 저중회전대에는 온몸으로 소리를 지르고 5,500rpm 이상에서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최고출력은 8,000rpm에서 나오고, 레드라인은 8,700rpm이며, 4,000~8,000rpm에서 최대토크가 터진다. 변속기와 ESP를 스포트에 놓고 잉골슈타트 내륙으로 달려갔다. 이곳은 신이 코너를 발명하기 전에 연습했음직한 와인딩이 즐비하다. 새로운 서스펜션 세팅은 여전히 나긋하지만 예전보다 더 단단해졌고, 좀 더 팽팽해지면서 피칭, 요와 롤링이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카본세라믹 브레이크는 세자릿수 속도와 무관한 B도로에서는 효력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는 진정한 구명장치다. 심지어 차가울 때도 쉽게 조절할 수 있고, 세자릿수 속도에 깊숙이 들어갔을 때는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순수하고 강력한 제동력은 드라이빙에 더할 나위 없는 확신을 가져다줬다.
드라이브 셀렉트, 액티브 스포트 디퍼렌셜과 신형 전자기계식 스티어링과 같은 최신형 콰트로의 첨단장비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아쉬울까?
천만에. 필자는 고정형 서스펜션 세팅을 무척 좋아한다. 고정 규격 유압 스티어링. 가장 열렬한 드라이버보다 훨씬 오래 버티는 카본세라믹 브레이크. 조절형 윙과 덕트 없이도 제 기능을 하는 공력 밸런스. 액셀 지시에 반응하는 것보다 더 빨리 드라이버의 마음을 읽어내는 고회전 자연흡기 엔진. 그러면 회전대를 하늘 높이 끌어올릴 필요가 있을 때는 어떻게 할까? 나는 본격적인 기계식 뒤 디퍼렌셜 록을 사랑한다. 단순히 그립만이 아니라 제어력과 반응을 잘 조율한 타이어. 또한 나는 확실히 달콤하고 맛깔스럽게 균형이 잡힌
이 R8을 사랑한다.
일주일 내내 제구실을 하는 만능 수퍼카
분명히 람보르기니 수퍼레제라가 0→시속 100km 가속에 0.2초, 최고시속에서 3.2km 빠르다. 그러나 람보르기니가 일요일 오전에나 몰고 나갈 수 있는 반면 아우디 R8은 일주일 내내 고성능차로 제 구실을 한다. 그렇다, GT는 골수 R8이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편리한 만능형 수퍼카다.
옵션인 보스 사운드 시스템과 완벽한 내비게이션, 열선 시트를 갖췄다.
나아가 안전벨트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마이크가 달렸다. 주식 브로커와 언제든 연락할 수 있게 말이다. 이러한 모든 장점 가운데 아우디 R8 GT의 역동적 힘의 중심은 무엇일까? 섀시, 스티어링과 드라이브 라인이 서로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주행안정장치를 해제할 수는 있지만, 콰트로를 해제할 수는 없다. GT는 가용 파워의 15%만을 앞바퀴에 보낼 수 있지만 뒤 타이어는 불이 붙어도 여전히 60%의 작업을 떠맡아야 한다.
그건 R8의 핵심적인 무기다. R8은 쓸모가 많고 활용도가 높을 뿐 아니라 안전하고 안정돼 있으면서도 재치가 넘친다. 의문의 여지없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콰트로라 할 만하다. 사소하지만 주의해야 할 약점도 있다. 옵션인 100L 연료탱크를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 온갖 고속 디젤을 추격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주유소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LED 헤드램프를 하이빔에 놓으면 아우디 본사가 있는 잉골슈타트에서 맥주축제가 열리는 뮌헨까지 비칠 정도로 강력하지만 로빔일 때는 제대로 멀리 뻗지 못해 안전에 방해가 된다. 로빔을 켜고 한밤의 아우토반을 달린다면 시속 150km에서는 문제가 되고, 시속 250km에서는 위험하고, 최고시속 320km에 이르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GT의 아킬레스건은 또 하나 있다. 수동기어를 갖춘 아랫급 R8과 달리 GT는 좀 띨띨한 R-트로닉 자동변속기를 달고 있다. 클러치 없는 6단 트랜스미션에는 2개의 운용 모드(수동과 자동)와 2개의 변환 패턴(스탠더드와 스포트)이 있다. 예상한 대로 스탠더드 자동이 가장 무기력하다. 가속은 끈적거리고, 감속은 꿈지럭거린다. 한데 스포트를 선택하고 킥다운하면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엔진의 폭음이 가슴을 뒤흔든다. 회전대는 레드라인을 향해 요란하게 치닫고, 불과 0.1초에 기어변속이 일어난다.
R-트로닉이 GT를 망치지는 않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수동기어가 R8 GT에 훨씬 잘 어울린다는 사실. 차값은 14만3,000파운드(약 2억5,800만원)로 기본형 R8 V10보다 4만파운드(약 7,200만원) 비싸다. 한데 R8 GT는 생산량이 333대에 불과하고, 그나마 시판 48시간 만에 동이 났다고 한다. 이번 기회를 놓쳤더라도 실망하지 말라. 람보르기니가 신형 가야르도 수퍼레제라를 파격적으로 제공한다는 소식이 들리니까.
TECH NOTES
람보르기니 수퍼레제라 vs 아우디 R8 GT
스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싸움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아우디 R8 GT는 람보르기니를 바탕으로 태어났다. 따라서 뼈대는 기본적으로 같지만,
두 차의 성격은 극과 극이다. 람보르기니는 요란하고 단단하며 벅적지근하게 귀청을 긁어댄다. 아우디는 훨씬 조용하고 나긋하며 극도의 스릴을 추구하면서도 람보르기니에 비해 거동이 온순하다. 수퍼레제라는 벽을 장식하던 카운타크 포스터의 환상을 되살린 람보르기니다. 그리고 구형의 전형적인 느낌이 살아 있으면서 굉장히 인체공학적이고 야성적 스릴을 안겨준다. 아우디 R8은 팔방미인 페라리 458과 똑같은 소재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두 모델 가운데 한층 부려먹기 좋고, 특히 건조한 노면에서 그렇다. 아무튼 날마다 몰고 다니기에 훨씬 수월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면 스펙으로 들어가 보자.
둘 다 미드십 V10으로 네바퀴를
굴리고, 550마력/8,000rpm과 55.0kg·m/6,500rpm의 틀 안에 들어 있다. 그러나 속도전에서
람보르기니가 살짝 앞선다.
0→시속 100km 가속에 3.4초와 최고시속 325km. 그에 비해 R8은 3.6초와 322km다. 무게 1,525kg인 R8은 람보르기나보다 95kg 무겁다. 하지만 이태리 수퍼카가 경량경쟁에서 독일을 앞선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끝으로 차값을 비교해 보면 람보르기니 LP570-4 수퍼레제라는 17만4,840파운드(약 3억1,540만원), 아우디 R8 GT는 14만2,585 파운드(약 2억5,720만원)이다. 현금으로 3만2,000파운드(약 5,770 만원)의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