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2: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골 2: 7 세움을 받아
2. 그리스도 안에서 ( 2: 6 - 7 )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
바울은 앞 절에서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자기의 염려와 노력을 말하고, 또한 그들의 규모와 신앙에 대한 칭찬을 말한 뒤에, 여기서는 그들을 권면한다.
1]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주'라는 말은 예수님을 가리킬 때 있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차지하신 '메시야' 곧 '그 주님'을 의미한다.
* 마 28: 18 -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요 3: 35-36 -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함은, 부패하고 어두워진 인간이 자력으로는 할 수 없고, 오직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참 신자만이 할 수 있다.
* 롬 14: 9 -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주'라 함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 롬 10: 9 -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따라서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신앙은 복음의 진수(예수님의 수난과 부활)를 신앙함과 동일한 내용이다. 우리는 오직 이 신앙으로만 구원을 얻는다.
골로새 성도들이 사도들과 같은 신앙의 선진들로부터 신앙의 내용을 전수 하였음을 나타낸다.
골로새 성도들은 에바브라의 복음 선포를 통해서 그리스도에 대해 전수받았다(O' Brien). 그들이 받아들인 기독교의 유전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믿는 신앙이다.
2] 그 안에서 행하되
'행하되'에 헬라어 '페리파테이테'(*)는 어떤 특별한 행위보다는 일상적인 생활을 가리킨다.
골로새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서서 모든 미혹하는 것들을 거부하며 그리스도의 뜻에 부합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 롬 14: 15 -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 고후 4: 2 -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 갈 5: 16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 바울의 권면에는 세 가지 비유가 암시된다.
① 행인 비유(그 안에서 행하되 - 6절 끝).
골로새 성도들은 행인과 같다. 그들은 그들의 구원의 길인 그리스도 안에서 탈선하지 않고 행하여야 목적지에 찾아 들어가게 된다.
* 요 14: 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② 나무 비유(뿌리를 박으며 - 7절 초).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므로 생수(영생)를 섭취하여 과실을 많이 맺고 또한 시험과 환난을 선히 견딘다.
* 시 1: 3 -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행사에) 다 형통하리로다.
* 요 4: 14 -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요 15: 5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요 16: 33 -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 고전 3: 6-9 -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 롬 8: 35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③ 건물 비유(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 7절 하).
여기서 '세움을 입어'란 말은 헬라 원어(*)의 의역(意譯)인데 그 직역(直譯)은 '지음을 입어'(being built)이다. 이 말은 현재 분사이므로 계속적으로 건축되어 감을 가리킨다.
신앙 인격의 건설을 그리스도인이 일생 동안 계속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란 말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에바브라에게서 받은 교리를(1: 7) 신앙으로 굳게 지키라는 부탁이다.
본 절의 교훈의 요점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는 것이다. 본 절의 교훈은 골로새 교회 교인들이 주님,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였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라는 원어(파렐라베테 톤 크리스톤 예순 톤 퀴리온)는 '주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였으니'라는 뜻이다.
예수님을 주님과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보내신 참 선지자와 참 제사장과 참된 왕으로 인정하고 영접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는(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라고 대답한 시몬 베드로의 대답과 같다(마 16: 16).
로마서 10: 9-10은 말씀하기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구원이다.
요한복음 1: 12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했다.
여기에 교회의 기초가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바른 지식과 믿음 위에 세워져있다. 교회는 세상의 교제 단체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의 단체이다.
여러분은 확실히 구원을 얻었는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했는가?
그를 영접했는가?
골 2: 7 세움을 받아 -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
바울은 신앙이 깊어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1]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뿌리를 박으며'의 헬라어 '에르리조메노이'(*)는 식물에 비유한 것으로 완료형이다. 이 완료형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 단번에 그리고 영구적으로 된 것임을 시사한다(Vaughan).
골로새 성도들은 이미 과거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에 대한 신앙이 자리를 잡았다.
'세움을 받아'의 헬라어 '에포이코도무메노이'(*)는 터 위에 건물을 지어 올라가는 형상을 비유한 것으로 현재 시상이다.
이것은 이미 완료되어 뿌리를 박은 터 위에서 이제는 계속해서 성장해 가야 함을 시사한다.
2]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교훈'은 에바브라가 전하여 준 것을 가리킨다(1: 7).
골로새 성도들은 에바브라가 전하여 준 그리스도와 복음의 진리 가운데 머무를 뿐만 아니라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서 감사하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
'믿음에 굳게 서서'란 말은 '믿음으로 굳게 서서'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Meyer, Lightfoot).
이단의 유혹에 감염(感染)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굳게 지키는 방법은 오직 신앙이다. 그 이유는, 신앙은 영적 전투에 있어서 방패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엡 6: 16 -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의 헬라어 '페릿슈온테스'(*)는 문자적으로 '강물이 제방을 넘쳐흐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재 시상이다.
이는 골로새 성도들의 감사 생활이 몸에 배어 일상화 되어야 함을 뜻한다.
성도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께 감사함을 내포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미 하나님에게서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받은 교훈에 충실하고 믿음에 굳게 설 때 그들의 삶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가 넘치게 된다.
본 절은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골로새교회 교인들에게 세 가지의 내용을 권면하고 있다.
첫째, 믿음에 굳게 서라고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예수께서도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돌밭에 떨어진 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여 환난이 닥칠 때 넘어지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뿌리를 내려 믿음에 굳게 서야 할 것을 교훈하셨다.
우리는 어떻게 믿음에 굳게 설 수 있는가? 그것은 '교훈을 받은 대로' 즉 성경말씀을 통해 될 수 있다.
시편 19: 7-8은 말씀하기를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했다.
누가복음을 쓴 누가는 복음서 초두에서 자기가 쓰는 내용을 '우리에게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라고 표현하였다.
그 말의 원어(페리 톤 페플레로포레메논)는 '우리에게 충분히 확정된(fully established), 지극히 확신하는(most surely believed) 사실에 대하여'라는 뜻이다.
또 누가는 그가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이는[데오빌로]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certainty)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고 말하였다.(눅 1: 4)
요한 사도도 자기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 30-31).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확실함을 위하여 주신 것이 성경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을 첫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연구해야 한다.
둘째, 본문은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왜 감사해야하고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가 감사함을 넘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구원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것은 우리의 많은 죄들을 용서하셨고 우리에게 의롭다하심과 영생과 하나님의 자녀 됨과 천국 백성의 특권을 단번에 은혜로 주신 것이었다.
이 구원이 놀랍지 않은가? 이것이 감격적이지 않은가?
하나님의 크신 구원을 깨닫는 자마다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이미 골로새서 1: 3-5에서 골로새 교회 교인들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인하여, 즉 그들의 구원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증언하였다.
또 1: 12에서는 그들을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하나님께 그들이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에베소서 1장에서 강조한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었다.
우리의 찬송 제목, 찬송의 이유, 우리의 헌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이 지옥에 가야 마땅했던 죄인을 은혜로 구원하여 그의 존귀한 자녀로 삼으신 이 놀라운 구원의 크신 은혜와 긍휼 때문에 우리는 찬송과 감사를 넘치게 그에게 돌리며 우리의 모든 삶을 그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2차 목표이다.
우리가 먼저 믿음에 굳게 섰다면 우리는 또한 감사와 찬송을 넘치게 하나님께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고 권면한다.
이것이 본문의 요점이다.
믿음은 순종의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배의 형식보다 실제적 삶을 더 원하신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우리의 주일예배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삶이 더 중요하다. 주일예배가 쓸데없다는 뜻이 아니고 주일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실제적 삶이라는 뜻이다.
실생활에서 주님을 믿고 살기 때문에 주일도 복되고 기쁜 날이 되어야 정상적이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헌신이란 정상적 신앙생활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실한 믿음으로 사는 것이 곧 헌신이다.
세속사회 속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 곧 참된 헌신자의 삶이다. 세상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하지만 성도들은 경건하게 또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
성도들은 부도덕한 세속사회 속에서 정의롭게 사랑과 긍휼과 동정의 심정을 가지고 그리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성도의 3차 목표이다. 즉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고 감사함을 넘치게 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 문은 먼저 우리의 믿음을 점검케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했는가? 우리는 그에게 우리 자신을 굴복시켰는가? 우리는 그를 믿고 따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