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행]
현충사와 이충무공 묘소 그리고 독립기념관까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온양온천역에서 하차 후 현충사까지 도보로 약 5km 이동함. 현충사 관람을 마치고 이곳에서 다시 걸어 내려와서 택시로 약 9km 떨어져 있는 거리의 이충무공묘소까지 이동 관람. 이후 온양온천역 인근에서 1박 후 약 25분 거리의 천안역까지 전철로 이동. 시내버스를 타고 독립기념관까지 약 35분 이동)
1.현충사(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
1706년(숙종 32년) 충청도 유생들이 숙종 임금께 상소하여 조정에서 이를 허락해 사당을 건립하였으며 1707년 숙종임금께서 현충사(顯忠祠)란 액자를 하사하였다.
1868년(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현충사는 철폐되었으며, 1906년 을사늑약에 분노한 유림들이 현충사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일제치하에서 이충무공 묘소가 경매로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지경에 처하자 우리 민족 지사들이 ‘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조직하고 동아일보사의 협력으로 민족성금을 모아 1932년 현충사를 중건하였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1967년 본래의 1932년에 중건한 옛 사당 위편에 새로운 현충사를 준공하였고 이순신 장군 탄신일인 4월 28일을 기념하여 매년 정부주관으로 제전을 올리고 있다.
이충무공 초상을 모신 현충사 본각이다. 영정 아랫 부분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필자가 서 있는 정문의 햇볕이 반사되어 보이는 현상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보았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필생즉사: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필사즉생: 죽으려고 한다면 살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원균과 간관들의 모함 그리고 졸렬하기 이를 때 없는 임금 선조의 질투로 한양으로 불려 들어가서 모진 고문을 겪고 백의종군으로 전장에 복귀하였다가 이후 날로 우리 해군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결국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하여 불과 열 두척 남은 배를 모아 전장으로 나가기 전에 병사들 앞에서 전투를 독려하였다는 유명한 말이다.
장군의 고택 앞에 있는 우물, 충무정. 한 모금의 물맛이 달았다.
이순신 장군의 고택. 장군이 상주 방씨(정경부인)와 혼인하여 이곳에 살면서 이 일대에서 10여년 간 무예를 닦으며 무과 급제를 준비한 장소이다.
장군의 후손들 묘소 초입
2. 이충무공 묘소(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산 2-1)
이순신 장군은 전사 후 마지막 통제영이었던 고금도에 모셔졌다가, 이듬해인 1599년 2월 11일 아산의 금성산에 모셔졌다. 그리고 전사 16년 뒤인 1614년(광해 6년)에 지금의 어라산에 이장되었다.
묘소는 부인 상주방씨와 합장묘로서 조선시대 고관묘의 전형적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1970년대 성역화사업 당시 왕릉과 같이 곡장이 둘러졌다.
이 안내판은 글씨가 잘 안보이지만 내용을 읽어보니 충무공의 덕수 이씨 문중땅으로 충무공의 묘소 우측으로 충무공의 형들 동생 그리고 부친의 묘소가 펼쳐져 자리하고 있다는 안내문인데 이 혈족들의 묘소는 현재 국가가 관리하는 묘역이 아니므로 안내판의 구성이 조악한 상태이다.
드디어 충무공의 묘소가 보인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성역화사업으로인해 왕릉과 같이 곡장이 둘러진 현재의 모습이다. 청명한 정신은 여기서부터 가슴이 벅차 오르기 시작하였다.
정경부인 상주 방씨와 합장묘라는 글씨가 보인다.
3. 독립기념관(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
개설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를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복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겨레의 전당이다.
연원 및 변천
국민운동으로 추진되어 1987년 8월 15일에 개관하였으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위치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을 세우자는 논의는 1945년 광복 직후부터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1946년 천도교회관에서 사회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기념관 건설준비위원회가 결성된 것과, 1975년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주최 ‘광복30주년기념심포지엄’에서 정식 안건으로 토의, 합의하여 정부에 건의한 바도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82년 일본의 교과서에 실린 식민지 서술 부분이 한국 국민의 분노를 일으켜, 이에 한국 국민이 국민운동으로 독립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정부에서는 소요 부지인 400만㎡을 매입하여 제공하였다.
국민성금 490억 2432만 5009원(1986년 4월 8일 기준)을 모금하는 한편, 국내외로 독립기념관에 전시할 자료와 유물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1986년 4월 8일「독립기념관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그 해 5월 9일 공포되기에 이르렀다. 원래는 1986년 8월 15일에 개관할 예정이었으나, 그 해 8월 4일 뜻하지 않은 화재가 일어나 1년을 늦추어 개관하였다.
현황
총 9만여 점의 유물이 전시, 보존되고 있으며 주요 시설물은 다음과 같다.
제1전시관(겨레의 뿌리)은 선사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화유산과 국난 극복사를 주제로 하고 있다. 우리 겨레는 수 천 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여 발전시켰고 외부의 침략에 맞서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이 땅을 지켜왔다. 자랑스러운 민족문화 전통이 국난극복과 항일독립운동의 저력임을 알 수 있다.
제2전시관(겨레의 시련)은 1860년대부터 1940년대, 즉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변화의 물결이 들이 닥쳤던 개항기와 근대적인 자주독립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개혁기를 지나 우리 민족의 긴 역사가 일제의 침략으로 단절되고 국권을 상실한 일제강점기 당시의 시련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주변국의 역사왜곡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제3전시관(나라지키기)은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으로 대표되는 구한말의 국권 회복운동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일제에 항거하여 전국 각 지역에서 양반 유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전기와 중기, 후기 의병전쟁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안중근 의사 의거를 비롯하여 을사늑약 이후 국권회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매국노와 침략자들을 처단하는 의사와 열사들의 투쟁과정을 볼 수 있다.
제4전시관(겨레의 함성)은 우리 민족 최대의 항일독립운동인 3·1운동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3·1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식민통치에 맞서 우리나라가 독립국이고 우리 민족이 자주민임을 평화적인 만세운동으로 선언한 비폭력 저항운동이다. 3·1운동의 배경부터 진행과정, 일제의 탄압과 3·1운동이 세계적으로 미친 영향까지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제5전시관(나라 되찾기)은 일제강점기에 조국독립을 되찾기 위해 국내외 각지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만주지역을 근거로 일제와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군의 활동과 개인 또는 단체를 이루어 일제의 침략기관과 주요 인물을 처단한 의열투쟁, 그리고 중국 관내에서 조직되어 활동한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의 활동 등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제6전시관(새나라 세우기)은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수호운동과 민중의 항일운동,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맞서 전개된 국학수호운동, 민족교육 등과 학생·여성·노동자·농민 등 다양한 세력이 주체로 참여한 민족독립운동, 독립운동의 중추기관이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제7전시관(함께하는 독립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조국광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전개된 다양한 항일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체험전시관이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직접 독립운동가가 되어 독립만세를 부르고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항일무장투쟁과 다양한 문화운동 등에 자유롭게 참여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힘을 합쳐 조국광복을 맞이했고 그 원동력을 바탕으로 국가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음을 체험해볼 수 있어 이채롭다.
위의 7개 전시관 외에 본관(겨레의 집)과 입체영상관이 있고, 야외에는 독립운동사의 중요 인물과 단체들의 어록비(語錄碑)와 각종 조각물이 있어 독립기념관에 걸맞는 환경으로 다듬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현재 독립기념관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동곡·서곡·중곡으로 자연 분할된 부지 중 중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곡에는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이 운영 중에 있고 서곡에는 야영장과 자연체험학습장을 조성하여 연중 학생단체 및 일반인의 야영과 오토캠핑이 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독립기념관에는 부설로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는 독립운동에 관한 각종 도서와 자료를 정리, 보관하면서 독립운동사에 관한 학술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라 각 전시관의 내용도 새롭게 정리될 것은 물론, 독립운동사의 연구 수준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