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을 읽고
작가: 한강
출판사: 문학동네
출판년도: 2022년
조정임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는 첫 문장이 있다. 보르헤스의 유언 이란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책을 다 읽어도 알 수 없다. 한강의 작품이 그리 쉽게 읽히지 않는다. 더구나 희랍어라는 전혀 낯선 글자를 보면 수학이나 과학에서 기호로 쓰이는 것을 몇 개 알아볼 뿐이다.
희랍어를 배우는 여자와 희랍어를 강의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남자는 열다섯 살에 아빠를 따라 가족이 모두 독일로 이주함에 따라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십칠 년 후 모국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겠다고 가족들의 만류에도 한국으로 돌아와 아카데미에서 희랍어를 강의하고 있다. 그는 독일로 갈 때 보르헤스와 또 열반경과 화엄경강의를 사 가지고 천천히 반복해서 읽은 덕분에 독일에서 그 시간을 잘 보냈다.
여자는 예술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강의를 하였는데 갑자기 말문이 닫혀 모든 일을 중단해야했다. 그녀는 수년전에 이혼했고 소송 끝에 아홉 살 난 아들의 양육권도 잃었다. 게다가 6개월 전에는 엄마도 돌아가셨다. 그녀가 막 열일곱 살이 되는 겨울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한참 만에 불어시간에 비블리오떼끄라는 소리를 중얼거리게 되면서 언어를 찾았다. 그런데 지금 이십 년 만에 그것이 또 온 것이다. 그녀는 이번에는 자신의 의지로 낯선 언어를 통해서 모국어를 찾고자 희랍어를 배우고 있다.
그녀가 말을 잃은 것은 어떤 특정한 경험 때문이 아님을 여자는 안다. ‘셀수 없는 혀와 펜들로 수천 년 동안 너널너덜해진 언어, 그녀는 자신의 혀와 펜으로 평생 동안 너덜너덜하게 만든 언어, 하나의 문장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늙은 심장이 느껴졌다고 말한다.’ ‘누덕누덕 기워진, 바싹 마른, 무표정한 심장’ 이라는 표현은 역설적이게도 언어에 대해 이토록 작가가 고민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가 글을 쓸 때 생각해볼 점이다. 낡은 표현과 구태의연한 글쓰기는 자신의 말을 잃는 것과 같음이라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하나의 단어가 꼭 맞게 들어갈 때 자신의 말을, 언어를 찾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한번 퍼져나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단어들 나보다 많은걸 알고 있는 단어들에 공포를 느껴요.’라고 한다.
그 남자가 독일에 있는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여자는 청각장애인이고 엄마는 뱅골인 아버지는 안과의사이다. 그녀는 열병을 앓다 청각을 잃었고 특수학교를 졸업한 후 목가구를 제작하며 지낸다는 것을 일 수 있다. 그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말한다. 우리가 언젠가 함께 살게 될 것이고, 나는 눈이 멀 것이라고. 내가 보지 못하게 될 때. 그때는 말이 필요할 거라고. 그러자 그 여자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고 즉시 남자를 내쫓아낸다. ‘당장 나가!’ 그는 회고한다. ‘어리석음이 그 시절을 파괴하며 자신 역시 파괴되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음일까. 그 남자는 변명한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함께 살게 되었다면 내 눈이 멀게 된 뒤 당신의 목소리는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보이는 세계가 서서히 썰물처럼 밀려가 사라지는 동안 우리의 침묵 역시 서서히 온전해졌을 겁니다.’ 이 남자는 자신의 눈이 흐릿한 세상만을 바라보기에 이상세계는 눈앞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이데아의 세계라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그는 플라톤을 공부 한 것일까. 희랍어강사는 편지를 쓴다. 이미 청력을 잃은 당신이 주의 깊게 나의 입술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입 맞추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자신은 점점 시력이 나빠지고 있지만 당신아버지가 내가 사십에는 완전히 실명한다고 했지만 아직 볼 수 있다고. 한국의 아카데미에서는 희랍어를 가르친다고. 내가 독일로 가던 해에 나는 열다섯 이었고 마흔 살 이후에는 모국어를 쓰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가족과 스승의 만류에도 기어코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희랍어 강사는 말한다. ‘고대 희랍어는 급격하게 저물어갑니다. 플라톤은 언어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의 석양 앞에 서 있었던 셈’이라고. 희랍어 강사 또한 석양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말을 잃은 여자는 친척들로부터 “하마터면 넌 못 태어날 뻔했지”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장티프스에 걸려 약을 먹었기 때문에 성한 아기가 태어나지 못할까봐 임신중절을 시도했었다. ‘세계는 그녀에게 당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수많은 변수들이 만나 우연히 허락된 가능성, 아슬아슬하게 부풀어오른 얇은 거품일 뿐이었다.’ 그녀는 심리치료사와의 대화에서 생각을 더듬는다. 햇볕이 드는 마당가에서 보낸 한나절의 기억-모국어의 음운들을 처음 발견했던. 그녀는 말을 잃은 뒤 처음으로 거울을 보면서 생각한다. ‘오래전에 끓어올랐던 증오는 끓어오른 채 그 자리에 멈춰 있고, 오래전에 부풀어 올랐던 고통은 부풀어오른 채 더이상 수포가 터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물지 않았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모든 것은 굳어있는 듯싶다.
‘단어와 문장들은 마치 혼령처럼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보이고 들릴 만큼만 가깝게 따라다닌다. 그 거리 덕분에 충분히 강하지 않은 감정들은 마치 접착력이 약한 테이프 조각들처럼 이내 떨어져나간다.’ 작가가 단어와 문장이 감정과 이런 거리를 두고 있음을 이처럼 표현하고 있음에 섬득해진다. 이런 문장도 있다. ‘다만 바라본다. 바라보는 어떤 것도 언어로 번역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것과 언어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을까. 글쓰는 이는 독자가 그 거리를 최대로 가깝게 다가가게 도와주는 사람이 아닐까. 그녀의 생활은 최소한의 의복과 최소한의 음식과 간결한 삶이다. 다만 그녀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피로해지기 위해, 사금파리같은 기억들을 끈덕지게 되불러모으지 않기 위해 걷는다고 한 것에서 극한 감정의 통증을 느낄 수 있다.
그 남자가 독일을 떠나 서울로 돌아온 뒤 처음 맞은 초파일에 경내를 서성이며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그는 생각한다. ‘내가 사는 곳에 영원히 다다르지 못할 것 같고, 그 생생한 밤의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세계는 환이고 산다는 건 꿈꾸는 것이다.’ 그에게 세상은 점점 흐릿해지고 결국 완전한 어둠으로 둘러싸일 테니 이세상은 이데아는 아닌 세상이다. 그러니 피가 흐르고 눈물이 솟을 수밖에 없으리라.
희랍어 시간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담담하다. 희랍어 시간이 시작되기 전 강의실에 두 사람 뿐이었을 때였다. 그녀가 자리에 앉은 뒤 가방에서 주섬주섬 교재와 필기도구를 꺼내고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그 눈길과 마주쳤다.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희랍어 강사는 말한다. ‘이 세계는 덧없고 아름답지요. 하지만 이 덧없고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라 영원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원했던 거지요. 플라톤은.’ 이 남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그도 ‘현실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이것은 환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희랍어 시간이 끝나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어두운 거리를 걷는다. 팔차선과 사차선 도로가 교차되는 번화한 거리에 다다른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에 다다를 때쯤 그녀의 먼지투성이 얼굴은 완전히 담에 젖어 번들거린다. 강변도로의 인도를 그녀는 계속 걷는다. 지하도로를 건너 그녀는 더 걷는다. 극장 앞 버스정류장에서 서있다.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에서 다시 걷는다. 잠든 아이의 눈꺼풀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맞춘다. 곁에 누운 아이는 없다. 싸늘한 침대 가장자리에 꼼짝 않고 누워 수차례 꿈을 일으켜 그녀는 아이의 따뜻한 눈꺼풀에 입 맞춘다.
그 남자의 친구 서른 일곰 살 요하임 그룬델이 죽었다. 그는 이십여 년을 투병생활을 했다. 그는 요하임을 사랑했다. 그는 묻는다. ‘소멸하는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깨끗하게 아름답게 완전하게, 어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진눈깨비 아닐까?’ 요하임은 말한다. ‘죽음과 소멸은 처음부터 이데아와 방향이 다른거야. 녹아서 진창이 되는 진눈깨비는 처음부터 이데아를 가질 수 없는 거야.’그는 생각했다. 네 말을 듣는 순가 덧없는 전 세계가 빛을 잃었지. 어둠에는 이데아가 없음을. 그는 플라톤의 전도된 세계에 이끌렸던 걸까 아니면 한칼에 실제를 베어버리는 불교에 매료되었던 것일까. 결국 그는 보이는 이 세계를 반드시 잃을 것을 안다.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 완전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세상에는.‘
그는 여동생 란에게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적은 수의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 보니 눈빛만 봐도 각자의 관심사를 느낄 수 있는데 그 사람은 처음부터 어떤 텍스트에도 관심이 없었어. 희랍 철학에도 문학작품에도, 간혹 인용되는 신약성경에도. 그렇다고 태만한 건 아니고 오히려 출석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 언어 자체의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할까-문법과 특수한 표현들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어. 하지만 특이한 점은 그 사람이 결코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다는 거야. 그 여자의 침묵에는 두려운 데가. 어딘가 지독한 데가 있었어.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그런 침묵을 본 건 처음이었어.‘
어느 날 새가 희랍어 강의실 건물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다급하게 울며 콘그리트벽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충계의 난간에 머리를 들이 받는다. 여자가 새를 내보려고 하다가 가버린다. 남자가 계단에서 새를 내보려다 미끄러져 안경과 손전등을 떨어뜨리고 도움을 청한다. 소용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소리친다. 마침내 구두소리가 지하계단을 향해 내려온다. 여자가 온다. 연한 사과향의 목욕비누 냄새가 난다. 차갑고 날렵한 두 손으로 그를 일으킨다. 그녀는 다치지 않은 그의 왼손을 끌어다 잡는다. 숨을 들이쉬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에 또박또박 쓴다.
“먼저 병원으로 가요.”
그는 방안에 있는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가끔씩 그녀가 있는지 인기척을 느끼면서.
그녀는 그의 손바닥 위에 쓴다. “첫 버스를 타고 갈께요.”
그가 세찬 빗소리에 눈을 뜨자 여자가 긴의자에 누워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다.
잠기지 않은 현관문이 천천히 열린다. 그 여자 온 것이다. 그의 왼손을 펼친다.
“안경점이 문을 열 시간이에요.”
‘그녀의 가장 부드러운 곳을 찾기 위해 그는 눈을 감고 뺨으로 더듬는다. 선득한 입술에 그의 뺨이 닿는다. 눈을 뜨지 않은 채 그는 입 맞춘다.’ 두 남녀의 깊은 입맞춤은 ‘먼 곳에서 흑점들이 폭발한다’로 표현된다.
마지막 ‘심해의 숲’은 하나의 시로 완성된다. ‘숲’은 그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다. 두 사람이 침잠해 있던 어둠으로부터 현실로 나아간다고 볼 수 있을 듯싶다. 몇 줄만 간추려본다.
그때 우리는 바다 아래의 숲에 나란히 누워 있었어요.
우리 몸은 이제 막 떠오르려고 하고 있었지요.
마치 시간이 나에게 입 맞추는 것 같았어요.
맨 마지막에 있는 문장 ‘마침내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은 이데아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세계를 직시한다고 볼 수 있을 듯싶다.
이제 두 사람 사이의 칼은 결국 치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2024. 5. 31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