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과 임진강 도보(첫 번째-3)
(철원 정자연∼포천 화적연, 2022년 7월 16일∼17일)
瓦也 정유순
조반을 마치고 약 16㎞ 떨어진 백마고지로 이동한다. 백마고지(白馬高地)는 한국전쟁 기간인 1952년 10월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3km 북방에 위치한 이름 없는 한 작은 고지를 놓고 한국군 보병 제 9사단(사단장 김종오)과 중공 제 38군 3개 사단이 전력을 기울여 쟁탈전을 벌인 끝에 우리 국군의 승리로 매듭지어진 전투로, 이 전투로 희생된 아군과 중공군 등 17,535명(아군 3,146명, 중공군 14,389명)의 영혼을 진혼(鎭魂)하기 위하여 위령탑과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백마고지위령비>
<백마고지위령탑>
이 전투는 해발 395m 밖에 되지 않는 고지 하나를 빼앗기 위해 12차례의 공방전으로 24회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0일 동안의 전투에서 아군과 적군 약 1만 7천 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전투 기간 중 적군 5만 5천 발, 아군 22만 발의 포탄이 발사되었고, 처절한 혈투로 변한 산의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백마고지의 점령은 광활한 철원평야를 탈환할 수 있었고, 정전협정에서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백마고지>
철원평야 너머 북한 땅의 김일성고지(일명 고암산 高巖山)가 선명하고, 태봉국 궁예의 궁궐터는 비무장지대의 어딘가에 주춧돌이 자리를 지키며 사람의 발길을 애타게 기다릴 것 같다. 꽃사슴이 뛰 놀 것 같은 평지 숲 건너에는 <낙타고지>와 <세자매봉>이 가깝게 보이고, 그 뒤로 평강고원이 손짓한다. 그 치열했던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던가? 동족의 가슴에 겨눈 총부리는 우리 민족의 비극이었다. 빨리 통일이 오기를 소원하면서 지금 갈 수 없는 내 땅을 뒤로하며 철원노동당사로 이동한다.
<세 자매봉>
철원노동당사(鐵原勞動黨舍)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소련군이 38선 이북에 진주하고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1946년 철원 시가지 한복판에 러시아식 건물로 건립하였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으로 1개 리(里)당 쌀 200가마씩 거두었으며, 주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노동력을 착취하였으나, 내부 작업은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철원노동당사는 북한이 공산 독재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위해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사용한 핵심 기관이었다.
<철원 노동당사>
당시 철원은 경원선의 중심역이였고 분단 직후 잠시나마 북강원도 도청 소재지로 인근 지역인 포천·연천·김화·평강 일대를 아우르는 곳이었다. 건물구조는 대지 1,850㎡의 면적에 지상 3층의 콘크리트 건물이며, 현재 1층은 각 방 구조가 남아 있으나, 2층은 3층이 내려앉는 바람에 허물어져 골조만 남아 있다. 한국전쟁의 참화로 검게 그을린 3층 건물의 앞뒤엔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다. 2002년 5월 국가등록문화재(제22호)로 등록되었고, 현재 안보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철원 노동당사(후면)>
한탄강으로 회귀하는 길에 도피안사에 둘러본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피안(彼岸)의 세계처럼 고요한데, 작은 연못의 연꽃 봉오리가 살며시 고개를 든다. 도피안사(到彼岸寺)는 신라 후기인 865년(경문왕 5) 도선국사가 높이 91㎝의 철조비로사나불좌상을 철원읍 율리리에 있는 안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여러 승려들과 같이 가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이 불상이 갑자기 없어져 그 부근 일대를 찾다가 현 위치에 그 불상이 안좌한 자세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이 불상을 모셨다 한다.
<도피안사 대적광전>
<철조비로나자좌불>
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렀다 하여 절 이름이 도피안사로 명명되었으나, 그 뒤 천년 역사의 도피안사는 어떠한 기록도 존재하지 않아 내력조차 알 수 없었다. 1959년 제15사단장 이명재(李明載)장군이 꿈에 본 철불을 찾기 위해 폐허가 된 도피안사 터를 뒤져 땅속에 묻혀 있던 철불을 발견하면서 도피안사가 재건되었다. 그 후 군에서 관리해오다가 1985년에 민간인 관리로 넘어왔다. 절 내에는 철조비로사나불좌상(국보 제63호)과, 높이 4.1m의 삼층석탑(보물 제223호)이 있다.
<도피안사 삼층석탑>
<도피안사 문살무늬>
발길은 동송읍 장흥리에 있는 <고석정국민관광지>에 도착하여 바쁘게 움직인다. 마당 중앙에 서있는 <임꺽정 상>이 반긴다. 조선 명종 때 임꺽정(林巨正, ?∼1562)은 고석정 건너편에 돌 벽을 높이 쌓고 산성 본거지로 삼아, 당시 함경도 지방으로부터 이곳을 통과하여 조정에 상납할 조공물을 탈취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고 한다. 고석정 바위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자연 석실이 있고 건너편에는 석성이 남아 있으나,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는 고석정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게 이상하다.
<임꺽정 상>
고석정(孤石亭)은 철원 제일의 명승지로 원래 한탄강 변에 있는 정자 이름이었지만, 한탄강 한복판에 10여m 우뚝 솟은 화강암바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지금은 장맛비로 탁류가 흐르지만 바위를 옥같이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르는 풍경에 신라 때 진평왕이, 고려 때는 충숙왕이 노닐던 곳이었고, 임꺽정의 활동무대로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졌다. 고석정은 신생대 제4기 홍적세(洪績世)에 현무암이 분출하여 남남서 방향으로 한탄강이 흐르면서 침식활동을 통해 화강암의 주상절리(柱狀節理)와 수직 절벽을 이루었다.
<고석정>
고석정 아래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세종강무정(世宗講武亭)>이 있다. 이 정자는 세종대왕이 철원평야(대야잔평)에서 강무훈련을 마치고 머물렀던 곳으로, 강무(講武)는 국왕이 직접 참가하는 군사훈련 겸 사냥행사로 수만 명의 군사가 참가하는 행사다. 세종은 재위기간 중 총 19회에 걸쳐 93일 간이나 철원에서 강무를 진행하였고, 사냥이 끝나면 고석정에서 대군과 신하, 군사와 백성들에게 사냥한 물건과 음식을 나누어 주며 주연을 베풀었다.
<세종강무정>
고석정에서 강 하류를 따라 길을 나섰으나 가는 곳마다 길이 막힌다. 지뢰라는 위험물도 있어서 그러겠지만, 강 건너로 새로 선보인 주상절리길(잔도길)을 이용하라는 신호 같다. 그러나 나그네는 때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을 즐기는 경우가 있다. 물기가 촉촉이 젖어 미끄러운 바위를 타고 헤맬 때 우리는 자연이 만든 걸작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안이 오목하게 패인 바위 같았으나 자세히 보니 자연 발생적인 고인돌이었다.
<천연고인돌>
겨우 길을 찾아 주상절리길 입구인 순담계곡 앞에 당도한다. 순담계곡(蓴潭溪谷)은 1.5㎞ 떨어진 고석정까지 한탄강 물줄기 중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알려져 있다. 기묘한 바위와 깎아지른 벼랑 등 볼거리가 풍성하며, 수량이 풍부하고 강변에는 보기 드문 하얀 모래밭이 천연 형성되어 있다. 계곡 아래로는 물길이 넓고 빨라 래프팅 최적지로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다. 계곡 이름은 조선 순조(純祖) 때 우의정을 역임했던 김관주(金觀柱)가 이곳에 연못을 파고 순약초(蓴藥草)를 재배하여 복용한 데서 유래했다.
<순담계곡>
순담계곡에서 출발하는 철원한탄강 주상절리길은 총 연장 3.6km, 폭 1.5m로 한탄강의 대표적인 주상절리 협곡과 다채로운 바위로 절벽을 따라, 절벽과 허공사이를 따라 걷는 잔도(棧道)로 아찔한 스릴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경험하는 “느낌 있는 길!”이다.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에 위치한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상류의 순담매표소와 하류의 드르니매표소를 통해 입장할 수 있는데, 우리는 순담매표소로 입장한다. ‘드르니’는 ‘들르다’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이곳을 들렀다하여 붙여진 이다.
<주상절리길 잔도교>
50만 년의 지질 역사를 지닌 한탄강은 2015년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202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등재되었다. 주상절리길 순담매표소를 들머리로 하여 들어서면 주상절리길 잔도 중간에 3개소의 전망대와 10개의 전망 쉼터, 13개의 크고 작은 교량으로 이루어 졌는데, 모두 저마다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어 한탄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인간의 편의를 위해 래프팅을 하고, 잔도를 만들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변신인가?
<기암괴석과 래프팅>
<이끼바위>
<반원형 구름다리>
https://blog.naver.com/waya555/222824871937
첫댓글 장마철에 다녀오셔서 진흙탕 물이 흐르는군요.
이번 후기에는 저도 다녀온 곳이 몇 곳 있어 반갑네요.^^
아직까지 백마고지전투비와 위령탑에는 간 기억이 없습니다.
글로만 보아도 가슴 찌릿함이 느껴집니다....
그 탁류는 북한의 헐벗은 산에서 내려온
흙탕물이라고 해요. 우리나라는 산림녹화가
잘되어서 맑은 물이 흘러 물의 청탁(淸濁)이
남북을 갈라 놓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