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9:28~40 예루살렘 입성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자신을 열므나 비유를 통해서 사업을 맡기고 돌아오는 주인의 비유를 하셨는데, 우주는 삼층천으로 되어 있는데, 세포도 핵이 있는데, 우주도 핵이 있다. 우주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튼 이 우주 세상의 창조주 구원주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성자와 성부와 성령께서 삼위일체 마치 H2O물이 물 얼음 수증기로 존재하는 것처럼 같은 하나님이시지만, 존재와 위격이 다르신 분으로 존재하신다. 성경을 읽다가 알게 된 것은, 만물이 그를 위해서 존재한다. 우주와 흙과 풀과 나무와 동물 사람 만물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성자는 성부 속에 계셨는데, 나셨고, 성부 성령께서는 만물이 성자를 섬기도록 하셨다.
골1:15~20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자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만물이 그를 위해 존재한다. 나도 그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만물이 로봇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러나 사단의 간계로 죄를 짓고 인간은 죄와 사망의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 중에 다윗왕은 전쟁을 한 번도 안 진 왕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적인 것 모두 포함해서 한 번도 안지셨다. 그리고 다윗왕은 예루살렘 성을 짓는데, 기초 역할을 하였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예루살렘성을 지었는데, 몇 번의 무너짐이 있었으나, 예루살렘 성은 시온성 또는 부분적이지만 다윗성도 포함된 성이다. 그러나 다윗은 이 성의 진정한 주인의 그림자였는데, 아무튼 왕이 많지만 이 왕은 어떤 왕이신가. 죄인들을 사랑하여 자신의 목숨을 죄인들의 대속물로 바치신 왕이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만왕의 왕의 이 모습을 닮으려고 그를 쫓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구원주 심판주이신데, 자기의 성에 들어오실 때, 비장한 마음으로 앞서 가셨다. 그는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며, 바람과 파도를 멈추게 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사람들을 먹이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신 까닭은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기 위하여 죄인의 대속물의 사명 때문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롬3:21~27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화목제물로 오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그러나 이 비밀은 아직 감추어져있었다.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 예수께서 열므나 비유 한 므나를 주고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주인의 비유를 하시고, 한 므나는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 구원 은사 재능 등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잘 장사해서 예수님 돌아오실 때, 결산을 받는 것이다. 계시록을 보면 손해 이익이 있는 교회들을 볼 수 있는데, 다 책망도 하시고 응원하신다. 그러나 한 달란트 종처럼 되면 안된다. 성경을 볼 때, 인간 100% 하나님 100%이다.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 감람원이란 곳은 종려나무 숲을 말하는데, 종려나무는 승리와 생명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성전으로 입성하시는 길은 승리의 길인 것이다. 그리고 아직 성전으로 들어가시기 전 벳바게 베다니는 설익은 무화과의 집, 베다니는 사랑의 집이란 뜻으로, 이곳에 가까이 오셨을 때, 제자 둘을 보내셨다.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 이는 마치 마법같이 일이 진행되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만물이 그를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때론 어느 날은 일이 순조롭게 이런 경우도 있다.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 예수님은 기이하게도 나귀를 타고 성전에 입성하셨다. 나귀는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별로 좋지 않은 주인들을 만난 적이 많다. 그러나 이제 나귀는 진짜 주인을 만나고, 그를 모시게 된다. 나귀도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귀는 굉장히 끈질기고 강하다. 100키로 짐도 거뜬히 메고 장거리 여행을 갈 수 있으며, 고산지대도 사막지대도 통과할 수 있다. 또한 나귀는 굉장히 싸움을 잘한다. 개과동물도 나귀에게 꼼짝 못한다. 하이에나가 일대일로 나귀랑 붙었는데, 치악력이 강해서 뼈도 부셔뜨려 먹는 하이에나가 나귀한테 장난감이다. 또한 들나귀들은 더 쌔서 늑대무리와 맞다이를 당해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서 툭툭 털고 무시하고 달려간다. 그런데 낙타는 더 쌔다. 아무튼 왜 예수께서 나귀를 타셨는가.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대개 왕이 성에 들어갈 때는 종마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예수님은 나귀 중에도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셨다. 이는 그가 겸손하시기 때문이다. 누가 십자가에 못 박힐 정도 순종할 수 있나. 나귀와 양 정도의 순종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노새들은 강하나 짐을 등에 실으면 일부러 넘어져서 안 일어나고, 주인에게 불순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성경도 노새같이 되지 말라고 하는데, 나귀는 주인이 등에 뭘 싣든 묵묵히 짐을 지고 걸어간다. 양도 자기를 죽이는 주인에게 가만히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생을 보여주는 동물이다.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 이 모습은 말세의 재림의 모습의 그림자라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선행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모습이 된다.
계19:7~8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그 위에 또 세마포 옷을 입는데, 한복과 비슷하다. 겹겹이 입는 옷이다. 그리고 성경은 빨래하라고 말한다. 경건해야 한다. 죄를 회개해야 한다.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 이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었다.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귀신을 쫓아내고 자연을 다스리시며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여, 이제 성전에 오시면, 로마의 압제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시고, 왕으로서 좌정하소서. 그동안 우리가 본 것으로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주와 같은 이가 없습니다.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마침내 재편될 것이다. 다 바뀔 것이다. 그리고 1층천 2층천 우주에도 평화가 임할 것이며, 가장 높은 곳 3층천에서는 영광이다. 왜냐하면 성전의 주인이 오셨기 때문이다.
히12:26~28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예수님은 트랜스포머인데, 처음과 마지막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지은 것이 변동될 것이다. 지층을 보면 공룡이 살았는데, 공룡세대는 없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볼 때, 창세기 1장의 하루를 한 세대로 보기도 한다.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 하시니라
->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보고 환호하는 무리를 두고, 예수께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하였더니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른다고 하셨다. 돌 나무 구름 등이 인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을 볼 때, 만물에 증거가 남아 있을 것이다.
요일5:7~8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우리는 그를 위해 존재한다. 고전12, 롬12, 엡4장을 보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는 그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스데반이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메시야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를 잡아 죽였다는 점이다. 이점이 모세와 비슷하여 스데반은 모세와 비교하여 예수님을 설교하였다.
행7:39, 51~53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그러므로 매우 신기한 기이한 왕,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 왕, 대속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오신 왕, 십자가에서까지 순종하신 겸손하신 왕, 예수는 그리스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