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자동차 영업을 하는 나는 평균 한달에 서너번은 사무실 당직을 선다. 그날 만큼은 내방객 맞이에 심혈을 기울인다 . 30여년 동안 꾸준히 연마해 온 나만의 당직 스킬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이른바 당신(당직의 신)이 아니던가.
.그날은 직원들이 희희낙락하면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야유회 목적지로 출발하였다. 홀로 당직 데스크에 앉아서 내방객이 오면 기필코 계약을 성사시키겠다는 마음을 굳게 다잡고 있었다. 드디어 데스크에 비치되어 있는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전광석화처럼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약간 목소리가 쉰 듯한 여성분이었다. 감기 때문에 그러하니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대뜸 우리 영업소에 전시된 차를 지금 당장 구입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3)다른 영업소에 계약했었는데 출고가 너무 늦어서 하루가 급한지라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마침 원하는 차가 있길래 전화했다는 것이었다.원래 전시차는 고객이 직접 보고 승락을 해야만이 구입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리고 회사 방침상 월말 쯤 출고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하니 매우 난감해 하였다.
3)그때부터 그녀와의 끈질긴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차량 출고 프로세스는 문자를 통해 주고 받을 수밖에 없다. 근 3시간 동안 문자대화가 진행되었다. 점점 귀찮아지기 시작했고, 중도에 포기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오로지 팔고야 말겠다는 뚝심으로 밀어부쳤다.나의 거침없는 저돌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녀가 요구하는 용품 서비스 품목도 만만찮았다. 고심 끝에 수락하였다. 그녀의 최종 결정만이 남아있었다. 마감 시간은 10분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도 나도 긴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차를 보지는 않았으니 전시차 사진을 여러 컷 찍어서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몇분 후 그녀로부터 출고하겠다는 문자가 왔다.일단 사진상으론 이상 없음을 인지했으니 카 마스터님을 믿고 최종 구입 결정하겠다고 하면서 덧붙혀 잘좀 부탁한다는 뜻을 전해왔다.
4) 나의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보통 직원 같으면 힘들어서 포기할텐데 열정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사력을 다해서 응대해 주는 성의가 놀라워서 그렇게 결정한다고 했다.
5) 출고 처리한 그 날 저녁, 문자가 왔다. 도저히 찝찝해서 안되니 내일 차를 보러 온다고 했다. 흔쾌히 수락하였다. 첫 인상은 앳된 용모를 가진 30대 초반 쯤으로 보였다. 생각보다 깐깐해 보였다. 이리저리 면밀히 차를 둘러보더니 세 군데 하자를 지적 하였다. 문득 몇년 전 악몽이 떠올랐다. 그 당시도이런 문제로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다행히 잘해결되었기 망정이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지독한 경험을 했었다.
6) 등록 마감일이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는 차 반납은 안할테니까 번호판 달기 전까지 완벽하게 A/S를 해 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하고선 본사 담당자에게 상황을 통보하였다.담당자가 우리 영업소로 내려와서 차 상태를 면밀히 점검한 뒤 초스피드로 A/S가 진행이 되었다. 그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다음날 내려와서 차를 보고선 흡족해하며 같이 등록사업소로 가서 무사히 등록을 마쳤다.
7) 며칠후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순간 덜컥 겁이났다.혹여 차에 이상이 생겼나했다. 예상과는 달리 지인에게 차 소개를 해 줄테니 연락처를 알려준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맙기 그지 없었다..
8)그녀가 차 한잔 사겠다고해서 인근 카페로 갔다.지금 하는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이외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본인은 프랑스 유학생이라고 하였다. 그 곳 파리 대학에서 건축학과 졸업 후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취업이 여의치 않아서 한국에 돌아와서 잠시 쉬면서 개인 건축사 사무실을 열 계획이라고 하였다 이리저리 다닐려고 하니 급히 차가 필요해서 우여곡절끝에 내게 차를 구입하게되었노라고 털어놓았다. 당차고 야무진 여성으로 느껴졌다.
9) 아무리 비옥한 밭일지언정 그냥 무심코 방치해 두면 풀만 무성하게 자라 종국엔 아무 쓸모없는 황무지로 변하게 되듯 신념 또한 이와 다를 바 없다. 신념은 반드시 응답한다.적어도 내 경험삼으로 말이다. 돌이켜 보면 내 삶은 오롯이 이 신념 하나로 버티며 살아오지 않았나 한다.끊임없이 떨어지는 작은 물 한방울이 바워를 뚫고,태산 또한 움직일 수도 있는 그 무엇!
그게 바로 신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