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정미경의 출간 계획서 -(수정)

‘어머니와 대화와 페미니즘에 관한 생각’ 출간 기획안 도서 분류 : 국내 도서/에세이 제목 : 어머니, 괜찮죠?  핵심 홍보 카피 - 서로 다른 시대를 살면서 나름의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어머니와 딸, 신념과 고집의 충돌, 60년 전쟁 끝에 만난 페미니즘의 의미 핵심 컨셉 - 평생 강적 어머니 극복과 화해의 결론, 길든 삶과 개척하는 삶은 각각의 의미가 있고 혹독한 값을 치르는 통과 의례도 있다. 서로에게 거울이 되고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차별성과 경쟁력, 특장점혼자 먹는 술, 혼자 먹는 밥이 편한 개인주의 시대를 정착시킨 가족이라는 이름의 굴레와 짐을 재해석하여, 가족이라는 불편한 환경을 유용한 교재로 삼아 삶의 지팡이로 활용하는 과정을 공감한다.대를 이은 결핍 가정에서 모녀간의 충돌이므로 충돌의 범위와 깊이에 독창성이 있다.저자는 프로 불평, 저항 꾼이다. 그런 딸은 어머니와 충돌을 계속하는 동안 고생이란 고생을 다양하게 하다 보니, 모녀 관계를 살펴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나름의 통찰을 얻었다.  저자 프로필 1966년 경북 상주시 외서면 농가에서 지적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무학이지만 총명하고 강인한 어머니 사이에서 이남일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외동딸이므로 가족의 양념으로서 다른 집 가족들처럼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이리저리 수다했고, 외부의 조롱이나 충격에 문지기 노릇이나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가족들이 인정하는 지는 확신하기 어렵다)남존여비의 세계관을 강력한 신념으로 삼고 살던 어머니의 고집을 꺾어준 삼촌의 후원으로 대학에 입학했으나, 시대와 불화하는 운동권이 되면서 어머니의 고통을 심화시켰다. 대학 4학년 학기말 고사를 포기 ‘고통받는 기층민중을 배신할 수 없으므로 기득권자로 살게 될 가능성의 뿌리를 자르겠다’는 신념 때문이었지만, 어머니의 가슴에는 대못을 박은 일이었다는 것을 30년 후에 알았다.1991년 결혼 후 두 딸을 낳았으나 느닷없이 소설책을 출간하므로 어머니를 깊은 불안으로 끌고 갔다.몇 년 후 이혼을 결정하므로 어머니는 더 심각한 고충에 빠졌고, 외손녀들과 딸의 생계까지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저자와 어머니의 충돌은 화해 불능 상태가 되었지만, 손녀들의 재롱과 10여 년 한부모 가정을 끌고 가는 딸을 이해하려는 어머니와 공감대가 하나둘 형성되어 갔다. 그러나 병을 얻으므로 어머니는 ‘자식 앞세운 어미’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질병 기를 극복하고 다시 경제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화해기를 맞이했다. 2008년 재혼을 결정함으로 ‘일부종사하는 것은 여자의 도리’라는 어머니의 전통적 신념을 붕괴시켰지만, 제3의 화해기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 가톨릭 세례 받은 것이 오랜 세월 불교도인 어머니를 배신했다는 어머니의 서운 소리를 듣기 시작하면서 종교 마찰이 시작되었으나 찻잔의 태풍으로 일단락되었다.어머니의 엄마 노릇 60년, 딸의 엄마 노릇 30년의 경험이 공유되며 지금은 서로에게 신뢰와 사랑의 대상이 되었고, 서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녀지간이 되었다. 다행이다. 오래 걸리긴 했다.  타겟 - 성차별과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누구나확대 타겟 -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많은 여성과 남성  목차 머리말 Ⅰ. 어린 날의 가족사진 - 태어나다- 돌봄 받다- 교육 받다- 먹다- 입다- 자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질문들- 쓰러지던 수많던 희망 사항들- 비로소 이의제기 Ⅱ. 결혼 - 낯선 세계를 대하는 여섯 개의 눈- 돌보다- 먹여 보다- 입혀 보다- 재워 보다- 가르치다- 감당하기 힘든 질문에 답하지 못하다- 사과하다 Ⅲ. 경제, 머나먼 자급자족의 길 - 벌다- 모으다- 쓰다- 나누다- 돕다- 남기다 Ⅳ. 그리움이 되는 순간 - 음식특별 요리잘 먹는 음식좋아하는 음식잘하는 음식- 선물- 당신이 가장 예뻤을 때- 깊게 잇다 Ⅴ. 페미니즘과 패밀리즘(가족주의) - 페미니즘의 정의와 역사와 우리- 다양한 페미니즘의 관점을 만날 때마다- 페미니즘과 패밀리즘(가족주의)은 다르다는 사실과 만남- 미래 세대가 살아갈 세상에서 꼭 필요한 페미니즘의 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을 기억하며   머리말 어머니는 스무 살에 결혼하여 세 남매를 낳고 남편까지 돌보는 여성 가장의 삶을 시작했다.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이 어려운 아버지의 부족한 점이 큰 부담이 되다 보니 내면의 트라우마가 깊었다.‘남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사람 되지 말라!’무언의 가훈이었다.어머니의 속사정을 이해할 리 없었던 어린것들이지만 세 남매는 각각의 개성과 욕망을 억누르며 말 잘 듣기로 소문난 세 남매로 자랐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자 자의식이 폭발했고 어머니의 교육방식에 순응하지 않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켰고, 어렵게 수습되거나 큰 퇴행을 겪거나 삶의 행로가 급회전하는 일들을 겪으며 조금씩 나이를 먹었다.경제활동과 자녀 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는 어머니에게 불가능한 숙제였을 것이다.어머니의 교육을 요약하면 ‘ 남녀는 유별하고, 항상 예절을 지켜야 하며, 다툼이 일어나면 지는 게 이기는 것, 때린 놈은 웅크려 자고 맞은 놈 다리 뻗고 잔다, 우애 없는 사람은 짐승만 못하다, 밥은 험하게 먹어도 불평하면 못쓴다 그러나 잠자리는 가려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것이었다.이걸 다 지키는 일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어릴 적엔 몰랐다. 지키려고 애썼고 미숙할 땐 어머니께 여쭈어 상담 교육을 받았다.사춘기를 넘어서면서 조금씩 의문을 가지다가 스무 살을 전후로 우리 세 남매는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특히 나의 저항은 구체적이고 격렬했다.‘왜 남녀가 유별하냐 같은 사람이다, 예절만 지키다가 친구들 다 달아난다, 지는 사람은 무시당하더라, 때린 놈은 출세하고 부자 되고 위세 부리는데 맞은 놈은 처절하더라, 우애는 최대한 지키겠지만 차별당하면서까지 지킬 수는 없다, 밥도 고운 밥 먹고 싶고 때로는 험한 잠자리도 적응해야 하던데 스스로 잘 지키면 되지 않나, 딸이라고 떡잎부터 무시당하는데 될 일이 있겠는가….’딸은 저항이었다.모녀의 분쟁은 격렬해서 우리 집 남자들은 가끔 심한 쪽을 자제시키고 당하는 쪽을 편들었지만, 대부분은 자리를 피했다. 어머니는 울고 또 울었고 나도 울고 또 울었다. 같은 문제로 같은 상황을 무수히 되풀이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도 딱 하나 희망의 여지가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다투더라도 대화를 계속했다. 온 가족이 진저리 칠 때도 굽히지 않았다. 에둘러 가지도 않았다. 사소한 문제부터 심각한 생계 문제까지 끈질기게 대화했다. 용서를 빌기도 하고 화해를 되풀이하기도 하면서 어머니와의 대화 내용은 점점 깊어지고 세상사 각 분야의 문제까지 다투고 공감하고 나누었다. 돌아보면 피곤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께 늘 죄송했다. 어머니는 힘든 삶에 바윗덩이같이 버티며 자기주장하는 딸을 감당하느라 너무 버거웠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완강했다.세월이 흐르고 문득 보니, 나는 정치 문제, 사회 문제, 정신문화 문제, 민족 문제, 생활문제를 대하는 자세에서 어머니를 닮은 완강한 원칙주의자가 되어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어떤 고민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되어있었다.도무지 설득되지 않는 딸이 얄밉다 못해 때리는 시늉을 하던 어머니는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 키워 봐라. 버선목이라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엄마 속이 숯 검댕이다.’ 하시더니‘그런 건 실수나 잘못이 아니다. 어미가 되면 손해날 줄 뻔히 알면서도 하게 되는 일이 많고, 세상 사는 게 다 그렇다. 네가 어미 되느라 그렇다.’ 위로하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차별의 문제를 넘어 삶과 죽음의 문제로까지 격렬한 부딪힘을 겪고 있다. 묻지 마 살인이나 여자친구 가족 보복 살해까지 등장했다. 게임 중독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달아난 어머니가 자식의 사망 소식에 유산 상속권을 주장하는 엽기적인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미투 열풍으로 세상 모든 유명 인사는 의심의 대상이 되었고 원인 규명이 되거나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대형 참사들이 연이어 터진다.물론 불편한 사건은 동서고금 언제나 있다. 기원전 425년,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라고 했다는 말이 유행처럼 인용된다.‘요즘 것들’은 왜 이렇게 버릇이 없고 문제가 많은가 하는 푸념은 윗세대가 아랫세대에게 던지는 몸에 밴 시선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요즘 한국 사회의 각종 양극화의 문제가 낳은 사회적 병폐는 두려운 수준이다. 이런 사회 문제를 고민하다 보니 처음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요즘 것들이었을 때와 요즘 것들이었던 우리들을 바라보던 부모님 세대의 우려를 살펴보게 되었다.그러다 전화를 걸어 온 어머니에게 사회 양극화의 해결책을 물었다. 어머니는 내게 세상의 모든 문제에 모범답안을 갖고 계신 해답지다. “받을 놈은 거절하고 줄 놈은 더 주겠다고 나서야 해결되는 일이지. 그런데 받을 놈은 더 내놓으라고 난리고, 또 줄 놈은 죽어도 안주겠다고 버티니 세상이 시끄럽고 풍속이 점점 더 나빠지는 거다.”받을 사람에게는 사양의 미덕이 있고 줘야 할 사람에게는 과하다 싶을 만큼의 베풂의 미학이 있다면 세상의 질서를 대체로 바로잡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멋진 해결 방법이다. 그러나, 언제나 어머니의 대안은 이상향이다.“그게 말이 쉽지. 하겠냐고.”“안 하지, 그러니 어쩌겠냐? 쥐어박는다고 하겠냐. 그렇다고 안될 건 또 없지. 남들은 안 해도 너는 하겠다고 마음먹고 살아라. 그럼, 너라도 될 거 아니냐?”그렇게 답하는 어머니에게“아들딸 차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지?” 하면 어머니는 서운한 음성으로“엄마 무식하다고 꼭 그렇게 확인을 받아야겠나? 엄마야, 배우길 그렇게 배워서 그런 거, 너는 그렇게 안 하면 앞으로 달라지겠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거다. 잘 생각하고 좀 기다려 봐라. 달라지겠지. 배운 사람들이 많은데 안 변하고 버티겠나?” 한다.물론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첫술만 먹고 다음 숟가락은 누가 떠먹여 줄것이라 설레며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 대목에서 나는 양보의 미덕과 베풂의 미덕의 외줄에서 비틀거리게 된다. 나는 30년여 페미니스트를 자칭하며 살아왔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요지부동인 제도와 풍속과 사람들은 언제나 여전히 요지부동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선한 의지를 따라서 ‘서로 다른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끌어안는’ 아름다운 세계가 어디쯤에선가, 열심히 걸어오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Ⅰ. 어린 날의 가족사진 - 태어나다  내 고향은 평범한 두메산골이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 고향은 평범하지 않다. 특별하다. 든든한 산 다정한 시냇물 풍성한 들판, 논둑 밭둑 산 골목 어디에나 길이 있는 그곳에서 함께 살았던 순박한 사람들, 세월이 흘러도 어제 본 듯 선명하게 기억 속에 있다.물론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마음 귀퉁이에 숨겨둔 비밀이나 나의 가장 아픈 기억들도 있으니 큰 슬픔이 웅크린 동굴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에게 고향은 항상 그립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와 둘러앉아 말없이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던 밥상처럼 그립다. “정 사장, 부잣집 사장이면 술도 한 잔 내고 공짜 밥도 주고 그래야 사장이지. 마누라 눈치나 실실 보고 딸래미 손이나 잡고 다니고 그래서 되겠어?” 아버지는 곤란하면 어쩔 줄 몰라 제자리에서 주춤주춤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한참을 아버지의 주춤거림이 이어지는 모습에 즐거워진 마을 짓궂은 일꾼들은 더욱더 주거니 받거니 놀리며 웃어대었다. 아버지의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차렸던 장면이다.“내 앞으로 외상 달아놓고 먹어 그럼.”내가 아버지 손을 끌며 집으로 가자고 보챘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춤거리다가 결국 사고를 치곤 했다.그런 일이 반복되어 불어난 외상값을 갚으려고 마음을 먹었던지 아버지는 집안에서 돈을 가져가려고 여기저기 뒤졌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께 크게 꾸지람을 듣는 아버지는 어린 내 눈에도 대책 없는 철부지로 보였다. 평소 과묵했던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큰소리로 꾸짖었고 어머니는 완력을 쓰는 아버지를 몸으로 막다가  다쳤다. 나는 아버지 편이었지만 그럴 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리 집은 가난했던 이웃들에 비하면 부잣집으로 불렸는데, 속사정은 그와 달라서 항상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이웃들은 우리 집을 부잣집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로 인해 벌어지는 외상값 사태는 잊을만하면 벌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이용해 공짜 술을 먹는 사람들을 괘씸하게 생각했고 ‘아예 상종하지 못할 자’라고 본 아저씨들이 동네에 많았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내 기억에서 가장 선명히 남은 사건은 공짜 술과 외상값이다. “엄마는 왜 아버지 같은 사람과 결혼해서 이 고생이지? 아버지도 힘들고 우리도 힘들고.”마치 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 어머니의 잘못된 판단이라는 듯 나는 어머니에게 따져 묻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외할아버지가 아버지 선을 봤다고 하더라. 인물 훤하지, 키도 그만하면 크고, 사랑마루 끝에 아버지가 앉았는데, 신문을 읽어보라고 시켰더니 국문 한문에 영어까지 술술 읽더란다. 그때는 그 정도면 지식인이라. 외할아버지가 속아서 엄마가 시집오게 됐지.” 했다.“그러면 할아버지가 외할아버지를 속인 거네?”어머니는 할아버지를 공경했고 할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신뢰는 무한히 깊어서 두 사람은 친 부녀로 보인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할아버지가 복이 많아 며느리를 참 잘 얻었다고.어리던 내 생각에는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아끼는 건 당연하겠는데, 자신의 일생을 고난의 운명으로 끌어들인 할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왜 그렇게 정성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자식 문제에 그렇게 하신 건데 누구라도 원망할 일이 되나? 오죽 답답했으면 네 할아버지 같은 분이 그렇게라도 장가를 들였으까,”어머니는 오히려 할아버지를 두둔했다. 나는 이 결혼은 잘못되었고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따지고 싶어 할아버지와 대화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어쩐지 그런 말을 꺼내는 순간 내 눈에 항상 고목같이 든든해 보이던 할아버지가 쓸쓸하고 초라한 노인으로 추락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돌아가셨으므로, 외할아버지에게 찾아가서 따져볼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적에 작은외삼촌을 따라 외가에 가서 보름 가까이 지낸 적이 있는데, 나는 첫 외가 방문에서 충격을 받았다. 외가가 가난하다는 말은 늘 들었으므로 예상은 했다. 하지만 초가삼간에 많은 식구가 옹기종기 살아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분명 가난한 외가 식구들이 전혀 가난해 보이지를 않았다.오히려 큰외삼촌 가족과 지낸 며칠 동안, 균형 잡힌 가족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친밀감을 나누는 게 어떤 느낌인지 배웠다. 편안했다. 언니 오빠들은 각자 바쁜 가운데 서로 다정했다. 큰외삼촌은 엄격하다가도 장난꾸러기가 되고 불쑥 사탕이나 건빵 따위의 군것질거리를 내밀었다. 집안일로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일하던 큰외숙모와 큰외삼촌이 농담하며 하하 웃는 모습은 너무 부러워서 넋을 놓고 보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말수 적고 굳은 얼굴이지만 외삼촌의 의논 대상이었고, 찾아온 이웃 사람들이 이런저런 마을 일을 의논할 때 한두 마디 조언으로 사태를 정리하는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어느 날 외가 마을에서 내 또래 아이들과 놀고 있을 때 낯선 어른들이 “저 애는 누구냐?”고 나와 함께 노는 아이들에게 질문했다.아이들은 “명동할매 외손녀래요.”했는데, 그렇게 알려주면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마을 연쇄점으로 가서 군것질거리를 사다 내 손에 쥐어주고 가는 것이었다.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호의를 체면 없이 덥석덥석 받아버릇하면 못쓴다고 어머니께 늘 교육받았다. 어른들의 손에서 건네오는 과자봉지를 받지 않고 뒤로 물러나면 어른들은 “괜찮아. 내가 주는 건 받아도 된다. 할매한테 가서 어디 사는 ㅇㅇ아지매가 줬다고 해라.” 또는 “ㅇㅇ아재가 줬다고 해라.”고 하며 애써 손에 쥐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 마을에서 놀다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면 할머니는 “누가?”했고 나는 누구누구라고 기억하기도 하고 기억해 내지 못하기도 했는데, “맛이 있더냐?”하고는 별일 없다는 듯 넘어갔다.그러나 외사촌 오빠들의 말에 따르면 오랜만에 외손녀가 오니 할머니가 무척 너그러워졌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버렸나?’의문이 꼬리를 물었다.외할머니가 무서운 사람이냐고 어머니께 물으면 어머니는 ‘세상에 다시 없을 무서운 호랭이’라고 했다.‘아무리 무서워도 그렇지.’ 어릴 적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외할머니 돌아가시고도 수년 후 두 아이를 낳고 이혼했을 때 외할머니가 얼마나 호랑이였는지 알 수 있었다.“내가 너희 아버지를 버렸으면 네 외갓집은 이혼한 딸이 있는 집이 되는데?”어머니가 늘 지나가는 말처럼 대수롭지 않게 했던 말이다. 그 한마디를 지키는데 전 생애를 견디는 어머니를 인식했을 때, 외할머니의 엄격한 교육이 만든 결과가 생생히 느껴졌다. 친가는 500년여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이어서 주위 사방 집안 어른들이 많았다. 그 집들 중에 한 집인 친가의 가족사는 슬프다. 구한말 진사시에 합격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눈길에서 동사(凍死)한 증조할아버지는, 유복자인 막내 할아버지를 포함해 삼 형제를 남기고 떠나셨다고 들었다.홀어머니에게서 자란 할아버지는 1900년생이다. 일제기에 유년, 소년, 청년, 장년기를 보냈다. 할머니와 16세에 결혼하고 4년 후 첫아이를 시작으로 하나하나 자녀가 태어나는 동안 할아버지는 자력으로 동경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러다 보니 바닷길을 건너는 먼 유학길의 학업은 어려웠고 길어졌는데, 어느 해 상투를 잘라 집으로 보내므로 독립운동의 의지를 표하는 바람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동경 대지진으로 조선인 학살 현장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청년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의 뜻을 온 집안이 걱정해도 아내인 할머니는 잘 이해해 주었다, 그러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다시없을 잉꼬부부였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고 들었다. 어른들은 두 어른 얘기를 할 때마다 꼭 ‘옛날 사람답지 않게 친구같이 뜻이 맞고 정이 좋은 부부였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이런저런 말할 수 없는 일로 바깥출입이 잦았는데도 할머니는 오히려 적극 도움을 드리면서 십일 남매를 낳았으니 말이다.그런데 할머니는 아쉽게도 1944년에 세상을 떠났다.그 해는 경성제대에 다니던 맏아들의 신변에 위기가 연이어 일어났다. 태평양 전쟁에 강제 징집당하였다는 소식과 장티푸스에 걸렸는데 목숨이 위중해서 퇴소하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다. 할머니는 한걸음에 서울로 갔다. 그리고 할머니의 간호 덕분인지 아들을 살려냈다. 그러나 할머니는 감염된 채 집으로 돌아온 뒤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다. 열한 번째로 아들을 낳고 한 달만인 산모의 몸으로 서울을 오르내리고 간호하느라 무리가 된 것이다. 결국 열한 번째로 태어난 삼촌도 할머니 떠난 지 며칠 뒤 숨을 거두었다. 11남매는 10남매가 되었다.할아버지는 가장 가까운 동지며 아내를 잃었고 10남매를 떠안은 홀아버지가 되었다. 그런데 또 몇 년 사이에 6.25전쟁이 터져 온 가족이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이후에도 소용돌이치는 정치 경제 사회 혼란의 역사 한가운데서 고뇌하는 지식인의 고단한 삶을 살았다. 내가 본 할아버지의 표정은 늘 진지했고, 눈길은 항상 먼 곳에 있었고 말수가 무척 적었다. 인내의 긴 시간이 버거웠을 것이다.그 시절 할아버지 사진을 보면 새까맣게 야위며 표정이 없다. 그 야윈 사진은 전후 사정을 모두 설명하는 것처럼 아프다. 아버지는 5남 5녀중 일곱째, 남자 형제 중 넷째다.태어날 때 건강하게 태어났으나 7세경 열병을 심하게 앓고 난 후, 판단력과 이해력이 현저히 떨어지더니 성장을 멈추고 지적 장애를 얻었다.큰고모가 “네 아버지가 열병 나기 전에는 형제 중 제일 똑똑했어. 큰삼촌이 상주 시내에서 수재로 소문나고 월반에 월반하여 동경제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열병만 피했어도 네 아버지가 큰삼촌보다 나았다.”고 했다.“그럼 뭘 해요. 아버지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데.”퉁퉁거리다 집안에서 가장 인자한 큰고모에게 나는 꾸중을 들었다. 고등학생이던 무렵 속상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이리저리 툴툴거리며 마음고생할 때 일이다. 그렇게라도 위로하고 싶은 고모 마음은 알겠지만,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하니 어디에 풀 수 없는 하소연이 튀어나왔다. 고모와 나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허, 그, 참!”하더니 꾸중은 없고 손수건을 내게 건네며, 고모에게 ‘애미가 야무져서 교육을 잘했구나’ 했다. 할아버지가 되려 칭찬하니 나는 더 서러워져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외가도 400년 가까이 이어진 집성촌이었는데 아버지 집안에 비하면 현저히 가난했고 내가 본 사람 중에 외할머니는 고집이 가장 센 사람이었다. 유복자로 태어난 외할아버지가 홀어머니와 살다 서른 가까이 되어 스무 살도 안 된 외할머니와 결혼했다,외할아버지는 집안에 농토가 적고 가난하니 살 궁리를 하느라 대구 서문시장에서 포목 장사를 시작했는데, 제법 벌이가 좋았다. 그러나 고향을 등질 수 없다는 홀어머니와 혼자된 시어머니를 두고 떠날 수 없다는 아내의 고집을 도저히 설득하지 못해 포목점을 접었다. 농토 없는 고향 살이는 가난의 연속이라 살림을 꾸리느라 고생이 심했고 그 탓인지는 모르지만 아흔 넘게까지 장수하신 할머니에 비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막내인 어머니를 시집보낸 다음 해였다. 외할머니는 평소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남에게 해를 주면 죄이니만큼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동네 큰일을 다 돌보면서도 제삿집이나 잔칫집에서 먹을 것 하나 싸서 들고나오는 일 없이 단호했다. 게다가 온 동네에 기름내가 진동해도 어머니 형제들은 잔칫집 근처에 얼씬을 못하게 했다. 잔칫집에서 정식으로 음식을 가져다주면 그제야 조금씩 떼어 맛을 볼 뿐이었다.“왜놈에게 나라 잃어 밥솥 밥숟가락까지 다 뺏겼으니 어느 집 할 것 없이 가난한 형편인데……. 없는 살림에 잔치 차리느라 고생인 걸 뻔히 알면서 기름진 거 맛보겠다고 군입이 많으면 그 감당을 어떻게 하냐. 너희들이라도 체면 좀 차려라.”는 것이 이유였다.또 어머니 처녀 적 동네에 홀로 된 먼 집안 할아버지가 있었다. 괴팍하기로 유명하여 사람들이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는데 병환이 나니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보내어 조석을 차려드리라고 했단다.“하란다고 해?”“해야지. 어메가 하라는데 안해? 설마타나 자식 잘못되라고 시키겠나 싶어 했지. 지금 생각해도 내가 좀 힘들긴 했지만, 할배 돌본 거는 잘한 일이지. 성질이 하도 괴팍해서 고맙다는 인사도 못 받긴 했지만 내 맘이 편하니까.”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엄격함이 너무 싫었던 나머지, 시집가서 딸 낳으면 하고 싶은 거 다 시키고 잔소리는 절대로 않으리라 속으로 다짐했다고 해서 나를 웃겼다. 다짐은 다짐일 뿐 자식 낳아 키워보니 할머니 마음이 이해가 가더라고 했을 때 이미 내 앞길은 캄캄해져 있었다. 지독한 당신의 아들딸 차별을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는구나.’ 싶었으므로 반발하려고 하다가도 저 벽을 어떻게 뚫겠나 싶어서 포기하곤 했다. “낳았는데 애가 얼마나 작던지 보는 사람마다 못 살고 죽을 거라고 하더라. 출생신고가 뭐야 윗목에 올려놓고 죽으면 내다 버려야 한다는데. 울면 젖먹이고 울면 젖먹이고 하다 보니 백일을 넘겼지.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야위고 작아서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애가 너무 마르고 작으니 ’인형이 사람행세 하며 걸어가는 줄 알았다.‘고 놀림 받았다.“예부터 딸은, 하나는 많고 반 개는 못쓴다는 법이다.”라는 잔인한 말을 하긴 했지만, 조마조마했다는 어머니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어쨌건 자식이니.그렇게 조마조마하게 키운 딸인데 왜 그렇게 감시만 심했는지, 내 평생의 8할은 어머니를 원망했다고 해도 될 만큼 나는 어머니 뜻을 따르지 않았다.그런 나지만, 학교에서 ’가장 존경하는 위대한 인물‘의 이름을 적어내라는 질문지에 어머니의 이름을 썼다. 선생님께서는 이 인물이 무슨 일을 한 어떤 인물이냐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입니다.‘했다. 신사임당이나 육영수 여사라고 적은 아이가 절반이던 반 아이들이 와르르 웃었다.하지만 나는 미운 엄마를 가장 존경했다. 지금까지 그렇다.나는 커서 뭐가 될까 꿈이라도 좀 꿀라치면 ’실한 남편 얻어서 남편 벌어주는 밥 얻어먹고 애 낳아 잘 키우고 그렇게 다복하게 살아라.‘고 매번 강조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이 내게는 너무나 진부하여 늘 반항 했지만 말이다. “맘대로 살게 두지도 않을 거 일찌감치 죽게 뒀다가 버리지 왜 그냥 뒀냐고.”“그러게. 이렇게까지 속을 썩일 줄 몰랐네. 딸만 백 명을 키워도 너만큼 속을 썩이지는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