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앙숙도 이런 앙숙이 없다.
원균이야말로 권율의 속을 가장 크게 썩인 녀석이다.
권율에게 원균은 말 그대로 눈엣가시. 훗날 부산진으로의 출정 명령에도 응하지 않고
버티던 원균을 불러다 곤장을 치기까지 하는데,
이는 지금으로 치면 합동참모의장이 해군참모총장을 두들겨 팬 것이다.
그래서 간혹 원균 옹호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권율이 책임 회피용으로 원균에게
뒤집어씌웠다"는 등의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때 패지 않고 참수했으면
칠천량에서 수군이 궤멸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애초에 원균이 맞을 짓을 했다. 간첩 요시라와 내응한 김응서, 또한 김응서와
한패인 윤두수, 윤근수 형제들은 이순신이 부산포 공격에 출진하지 않으려고 버틴다는
이유로 이순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이순신은
출진을 했다. 여기에서 공격 하다가 김응서와 협의 후 회군하던 중 아군 병력이
납치되자 다시 화력전을 펼쳐, 납치된 아군을 되찾았다.[16] 하지만 윤근수,
윤두수 형제는 이런 점은 무시한 채 무조건 이순신이 왜군을 무찌르지 않으려고
나서지 않았다는 새빨간 거짓말만 주장했고 이를 선조는 이순신을 내칠 좋은 기회라
여기고, 받아들였다.
여기서 원균은 삼도 수군 통제사 자리가 탐이 나서 윤두수, 윤근수 형제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결국 이순신은 삭탈 관직 당하고 원균이 후임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됐는데 막상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된 원균은 홀로 하긴 힘들다고 한 이순신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원균도 앞에 한 말을 씹고, 출진을 거부했다.
이것을 종합해보면 원균이 조정을 능멸해서 이순신을 모함한 후,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만 먹고 짼 것이기 때문에 권율이 원균의 목을 베어도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다. 가장 말단 과거 시험에서 컨닝하다 들켜도 참수당하는 게 당시
조선에서 관직에 대한 법이었다. 그런데 원균은 선조 임금을 비롯한 조정 자체를
갖고 놀면서 삼도 수군 통제사 관직을 도적질했다. 과거에서 컨닝한 것보다 훨씬
큰 죄다. 원균이 한 짓을 지금으로 치면 해군 중장이 대통령과 국방장관을 속여서
장교 자력표에 거짓 기록을 넣는 등 방법으로 해군참모총장이 된 것이다. 그
것도 전시에.[17]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된 원균은 부산포 공격을 위해서는 육군이 안골포와 가덕도를
점령해 주어야 한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며[18] "저 부산으로 못가겠어염"이라며
뻐팅기자, 조정은 도원수 권율에게 진주성 인근의 제석 산성에 주둔하던 육군 정병
5천 명을 수군에 배속시키라고 명했다. 전쟁 기간 내내 수군 병력이 육군으로 보직이
변경되는 등 병력 부족에 시달렸음에도 이순신에게는 아무 지원도 안 해 주었던
것과는 천지 차이이다. 차라리 이순신이랑 똑같이 행동했으면 원균 옹호론이
어느 정도 힘을 받았을 텐데 이 병크 짓을 하는 바람에 원균 옹호론은 말 그대로
헛소리가 되었다. 권율 입장에서는 멀쩡한 휘하 정병 5천을 잃은 셈인지라 이래저래
원균은 졸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권율의 입장에서 바라본 원균은 삼도 수군 통제사라는 관직을 먹튀하려는
놈이었다.
수군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권율 쯤 되는 인사라면 그 상황에서 수군만으로
부산을 정면 공격한다는게 어불성설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
러니 더더욱
원균에게 분노할 수 밖에 없다. 이에 권율은 감히 국가를 기망해서 관직을
먹튀하려는 원균이 너무 괘씸해서 결국 원균을 두들겨 팬 것이다.
실제로 권율이 원균을 곤장 친 것의 죄목은 명령 불복종이 아니라 조정을 기망한
죄였다. 말은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되면 당장이라도 부산으로 달려갈 것처럼 하길래
감투 씌워줬더니 헛소리나 늘어놨으니.... 거기에 더욱 안습인 것은 결국 권율의
우려처렴 그렇게 넘겨준 5천의 육군 병력은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시원하게
말아먹어버렸다.
현재 평택시에서 주도적으로 이행 중인 원균옹호론은 권율을 상대로도 역사 왜곡을
시전하고 있으며, 칠천량 해전의 패전 책임을 모조리 권율에게 떠넘기고 있다.#
참고로 현직 평택시장은 새누리당 소속으로 당선된 공ㅇㅇ이다. # 평택시갑 국회
의원은 새누리당 원내 대표를 지낸 원ㅇㅇ로 원균의 직계 후손이다.#
펌,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