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이 뿌리내리는 곳
2. 소요산에 쌓이는 시간의 층
by문두Nov 27. 2023
소요산에 쌓이는 시간의 층 이십 년 정도를 소요산 곁에서 살다 보니 주변에 변하는 것들이 많다. 변하는 것들은 나의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들의 모습이 바뀌면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마음이 들어 슬프다.
이층인 우리 집에서 손만 뻗으면 딸 수 있었던 옆 빌라의 모과나무, 대추나무를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베어버린 것은 충격이었다. 그 나무들에 깃들었던 새들의 휘파람소리 같은 아름다운 소리도 함께 내 곁을 떠나버렸다.
정감 넘치던 팔각정 모양의 옛 소요산역이 헐려버렸고, 소요산을 마주 보고 있는 마차산에는 콧구멍 같은 터널이 숭숭 뚫리고 도로가 나며 산이 무너지고 있다. 소요산역 옆에 정겨운 미로 같은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길이 없어지고, 그 골목에서 몇 대를 이어 살아오던 살구나무집이 광장부지가 되어 쫓겨나가듯 이사 나가고 헐려버렸다.
최근에는 소요산 일주문 안에 잘생긴 칠엽수 두 그루가 하루아침에 베어져 나갔다. 내가 그것들을 통해 햇볕처럼 무상으로 누렸던 행복들은 이제 내 마음속에만 남아있다.
이곳에서 나는 겨우 이십 년이라는 시간의 층이 쌓였지만 소요산에는 천년이 훨씬 넘는 시간의 층이 시루떡처럼 소복이 쌓여있다. 안내표지나 비석 등에 기록된 시간의 결을 살펴보았다.
소요산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 편에 구한말의 애국지사 흥덕문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몇 걸음 더 올라가면 김연성 의병 전투지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주차장 가운데 입구에는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이루어진 단풍나무터널조성사업을 기념하기 위한 탑이 있다. 주차장 맨 위쪽에는 반공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야외공연장에는 우리 고장 출신 광복지사들의 유적을 새긴 독립유공자추모비가 있다. 좀 더 올라가면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에 대한 안내가 시작되는데 자재암까지 여러 개의 표지판이 있다. 소요산에는 이외에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행궁지도 남아있다.
소요산에 남겨진 기록들을 정리해 보면 신라시대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터전이었고, 고려시대에는 좋은 절터였으며, 태조 이성계에겐 고통의 연속이었던 말년에 울적함을 달래주는 쉼터였고, 구한말, 일제 강점기에는 의병전투 지였다. 자유수호박물관이나 벨기에 · 룩셈부르크 참전비를 통해 6.25 전쟁의 참상과 나라를 위해 희생된 이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요산 맞은편 동두천시 안흥동에 자리 잡고 사는 광주 정씨 가문의 조선 숙종 때의 문신 허주(虛舟) 정치상의 전국유람시화집에 ‘이담팔경(伊淡八景)’ 중 두 개의 경치가 이곳에 있다. 첫째는 소요초월(逍遙初月) 소요산의 초승달이다. 산봉우리 서로 맞닿은 곳에 달 하나 솟아오르니 천하가 하나로 물들어 내 모습을 알 수 없구나
둘째는 마차낙조(磨叉落照)이다. 마차산에 지는 해 서녘의 해 반쯤 삼켜버렸네 노을은 장엄하게 퍼져가니 마치 일출을 보는 듯하구나 원효대사가 마셨던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을 아직도 나도 마시고 있고, 그 물은 일분일초도 같은 물이 아니건만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빈 배라는 호를 가졌던 정치상이 가졌던 감정을 나도 소요산의 초승달이나 마차산의 노을을 보며 똑같이 느끼고 있다. 시간을 넘어서서 우리는 서로 공감할 수 있고 소통하게 된다.
작년 12월 아주 춥고 쓸쓸한 날에 구부러진 근현대사를 20년 동안 다녔던 소요산에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언덕 위의 하얀 집’ 또는 ‘몽키하우스’라고 불렀던 국가에서 미군 위안부의 성병을 관리했던 ‘낙검자수용소’를 찾아간 일이다.
그날 여태껏 동두천의 얼굴인 줄로만 알고 살았던 소요산이 사실은 아리고 굽은 동두천의 뒷모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오직 자신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주변에 크게 관심 없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살아온 눈뜬 봉사, 귀머거리로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왜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무런 안내 표지판이 없었고,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 집이 꼭꼭 숨어있어서였다고 얘기하고 싶지만, 그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계속해서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는, 나를 간절히 쳐다보는 역사의 눈빛을 외면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5월에 다시 찾아간 그곳은 새소리로 꽉 차 있었다. 사람들이 가만히 놓아두기만 하여도 자연은 놀라운 치유력으로 재생된다. 이곳에는 잡초와 잡목이 들어차 있는데 특히 찔레꽃과 아카시아꽃이 한창이다. 깨진 창문으로 아카시아 가지가 뻗어와 건물 안까지 점령하고 있다. 유리가 다 깨진 얼룩덜룩 남루해진 이층 건물, 사람들을 감금해 두었던 이층 창문에는 교도소처럼 철창살이 아직 그대로 있다. 건물 안에는 쓰레기가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은 노숙인들이 가져다 놓은 살림살이들이었다.
마당 한쪽엔 누군가가 밭을 일구어 대파랑 강낭콩을 심어 놓았다. 운동장만 한 마당 끝에는 미루나무와 버드나무가 정답다. 건물 오른쪽으로 담장이 쳐져 있고 담장 너머엔 양지바른 딴 세상이 있다. 그쪽엔 식당들이 있고 건물 앞 왼쪽으로도 경계선 너머 깔끔한 어린이박물관의 모습이 보인다. 건물 뒤편에는 검은 그늘막을 치고 엿장수가 공연을 하고 있다. (지금은 도로정비사업으로 더 이상 공연을 할 수 없도록 정리되었다.) 소요산에서 이 자리만 음지이다. 인적은 끊어져 있고, 새들만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나는 이 집의 손을 잡고 세상 밖으로 데려가고 싶다. 이 집이 이제 그만 숨바꼭질을 끝내면 좋겠다. 시끌벅적한 엿장수 공연장 뒤에서, 반듯한 어린이박물관 뒤에서, 맛있는 음식점 뒤에서, 색소폰 음악소리 뒤에서 이제는 밖으로 나오면 좋겠다. 너의 마당 울타리는 꽃빛이 고운 진달래와 배롱나무가 어울릴 것 같다. 주차장 큰 길가에 너를 소개하는 문패가 되어줄 표지판부터 세우자. 집안의 쓰레기를 깨끗이 치우고, 집안까지 들어온 아카시아 가지는 밖으로 내보내고, 너의 마당에 고운 사람들을 불러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잔치를 열어 보자. 저기 이웃동네 철원의 노동당사에서도 잔치를 한다던데 우리도 못할 것도 없지.
소요산에 쌓이는 시간의 층을 더듬으며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 사람인지 생각해 본다. 나에겐 세상을 바꿀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바꿀 의지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감각을 깨어있게 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조금씩이라도 표현해보고 싶다. 내 가정에서부터 내 직장에서부터 내 일상에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