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 los alamos vengo - RENAISSANCE Spanish song
1.De los alamos vengo madre (포플러 나무 옆에서) J.Rodrigo
J.Rodrigo(1902~1999)
Cuatro Madrigales Amatorios /4개의 에로틱한 마드리갈
1. E con que la lavare?(어떻게 씻을까?)
2. Vos me matasteis(내 생명 앗아간 당신)
3. De donde venis, amores?(사랑은 어디에서 오는지?)
4. De los alamos vengo, madre(포플라 나무 옆에서)
[ De los alamos vengo, madre ] 포플라 나무 옆에서
로드리고//4개의 에로틱한 마드리갈 4. 포플라 나무 밑에서
De los alamos vengo madre,
De ver como los menea el ayre,
De los alamos de sevilla,
De ver a mi linda amiga.
어머니, 바람에 흔들리는 포플라를 보았어요.(반복)
세비야의 포플라 밑에서 아리따운 나의 님을 보았어요.
어머니, 바람에 흔들리는 포플라를 보았어요.(반복)
세비야의 포플라 밑에서 아리따운 나의 님을 보았어요.
그라나도스, 고예스카스
Enrique Granados, Goyescas.
출처: 네이버캐스트
스페인의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Enrique Granados, 1867~1916)의 경력은 유럽 음악의 역사 가운데에서 대단히 특이한 현상이자 스페인 음악의 국제적인 도약을 대변한다. 그의 창조적 천재성은 당시의 미학적 법칙이나 지적 선입견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 흘러넘치는 강렬한 개성은 동시대 스페인 작곡가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돋보였고, 그로인해 그라나도스는 스페인 음악의 중심축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스페인 음악의 중심축, 엔리케 그라나도스
그라나도스는 1867년 7월 27일 바르셀로나 근처의 레리다에서 태어났다. 육군 대령의 아들로서 어린 시절부터 호안 밥티스타 푸욜(Joan Baptista Pujol, 1835~1898)을 사사했고 화성과 작곡을 전설적인 펠리페 페드렐(Felipe Pedrell, 1841~1922)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젊은 그라나도스는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위해 스페인을 떠나 1887년 파리로 가서 샤를르 드 베리오(Charles de Beriot, 1833~1914)를 사사했고, 1889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그의 첫 번째 야심작인 [스페인 무곡집 Danzas espanalas]을 출판했다.
그와 함께 했던 음악가들로 스페인 작곡가로 이사크 알베니스와 마뉴엘 데 파야,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를 꼽을 수 있고, 유럽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와 외젠느 이자이, 피아니스트로 미에치슬라프 호르초프스키, 그리고 그를 후원한 작곡가로 카미유 생상스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리사이틀에서 그라나도스의 음악을 꾸준하게 연주했던 사람들로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데 일조했던 친구들이었다. 이후 그라나도스는 1901년 아카데미아 그라나도스(Academia Granados)를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했는데, 이 가운데에는 후일 스페인 음악계를 이끌어간 파뀌타 마드리게라(Paquita Madriguera), 쿤키타 바디아(Conchita Badia), 프랑크 마샬(Frank Marshall) 등이 포함된다.
1912년 그라나도스는 미국 피아니스트인 어네스트 쉴링(Ernest Schelling)을 만났다. 쉴링은 스페인 밖에서 그라나도스의 음악을 알린 첫 번째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그는 피아노 모음곡인 [고예스카스 Goyescas]를 뉴욕에서 출판하도록 도움을 주었고, 작곡가로 하여금 이 모음곡을 오페라로 만들도록 격려했다. 결국 오페라는 1916년 1월 28일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초연되었다. 그라나도스는 이 자리에 참석하여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던 중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영불 해협에서 그라나도스가 탄 서섹스호가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격침된 것이다.
스페인의 화가 고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다
1910년 43세의 그라나도스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마침내 나는 중요한 작품을 쓸 수 있는 행운을 만나게 되었다 - 고예스카스!” 이 특별한 작품은 모두 2권으로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는 1909년부터 1910년 사이에 작곡되었고, 두 번째 작품은 1913년부터 14년 사이에 작곡되었다. 1911년 10월 8일 그는 “고예스카스는 모든 시대를 위한 작품이다 … (중략)… 나는 이 사실을 확신한다”라고 일기에 썼다. 그리고 이 확신은 옳은 것으로 증명되었다. 고예스카스라는 뜻은 한국말로는 정확하게 풀이되진 않지만 ‘Goya-esque’ 혹은 ‘Goya-like’라는 뜻으로서 고야에 대한 3자의 관점이 담긴 인상주의적 의미가 담긴 작품이다.
그가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의 전람회를 보고 얻은 영감으로 음악을 작곡한 것으로서, 스페인 사람들과 자연의 고유한 특징과 분위기를 정묘하게 그려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910년 1권을 완성한 뒤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다.
“나는 고야의 심리, 그 팔레트와 사랑에 빠졌다네. 그가 그린 공작부인과 여성들, 전쟁 장면, 사랑의 장면, 의복을 입은 장면, 뺨의 그 장밋빛 순결함과 이와 대조를 이루는 레이스, 검은 벨벳으로 된 옷을 입은 가느다란 허리, 재스민 빛이 도는 하얀 손들, 진주 자개로 만든 장식품들 등등이 검정빛 호박 속에 부유하는 소용돌이처럼 눈을 부시게 한다네”
그라나도스는 자신의 세계관과 유사한 고야의 그림 속에서 정신적인 동질성을 느꼈고, 그것은 분명 스페인적인 요소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라나도스는 [고예스카스]에서 씁쓸함과 우아함이 뒤섞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자 했고, 이러한 의도에 따라 모든 악장들에서 세련된 시적 감수성이 우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야의 그림 속에 스페인의 전형적 일상, 스페인적 감수성,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열정의 감정이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연애소설 혹은 비극, 아니면 이 둘이 기묘하게 섞여있는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이 작품은 스페인적인 색채와 정서, 이국적인 매력과 풍물이 집결된 스페인 음악의 결정체이다. <출처: NGD>
스페인적 요소의 집합체
그라나도스는 카탈루냐인이었지만 스페인의 모든 지방의 특징과 하나의 스페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보존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 개별성(지방색)을 전체성으로 환원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모호성은 [고예스카스]에 담긴 여러가지 의미의 불분명함을 설명해준다. 또한 사랑과 죽음과 같은 스페인의 전형적 감수성, 대립적 요소가 이루는 모호함은 마치 세르반테스 소설에 등장하는 돈 키호테와 산초 판자의 관계와도 어울릴 법하다. 스스로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던 그라나도스는 이러한 스페인적인 모호한 요소들을 음악이라는 비언어적, 비시각적 언어로 새롭게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원래 스페인의 민속 선율은 장황함, 형식적 통일감의 부재, 과장된 즉흥연주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라나도스는 그 형식미와 리듬을 훌륭하게 다듬어냈고 동시에 기타와 캐스터네츠 음형을 도입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에 명확한 스페인적 특성을 불어 넣었다. 이 민요적인 요소는 특정한 실체나 주제가 없는, 근본적으로는 추상화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두고 그라나도스의 제자인 프랑스 마샬(스페인 음악 연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알리시아 데 라로차의 스승이기도 하다)은 그의 히스패니즘을 스페인 특유의 거칠고 도취적이며 극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대신에 우아함과 미묘함, 18세기 귀족적인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쇼팽이 폴란드인이었고 리스트가 헝가리인이었으며 차이콥스키가 러시아인이었다면, 그라나도스는 스페인이었다”라고도 말한 바 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색채가 깊게 스며들어 있는 알베니스의 작품 [이베리아]가 코스모폴리탄적 시각, 스페인을 바라보는 유럽의 시각을 드러낸 반면에 카탈루냐적인 [고예스카스]는 오히려 스페인 내의 시각에서 바라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안에는 스페인적인 요소들이 마음놓고 좌충우돌하며 민속적 색채와 정서의 충돌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2.Quejas, o la maja y el ruiseñor
(비탄, 또는 아가씨 그리고 나이팅게일) E. Granados 오페라 “Goyescas"中
Granados Goyescas. La Maja y el ruiseñor. Gloria Sánchez.soprano
Quejas, o la maja y el ruisenor (비탄, 또는 처녀, 그리고 나이팅게일)
발렌시아 지방의 민요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녹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페인 피아노 음악과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 음악을 통틀어 가장 시적이고 서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음악은 멜로디와 이에 대한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처녀가 그녀의 나이팅게일을 위해 노래부르고, 그 새는 마지막 카덴차에서 리스트풍의 노래로 화답한다. 악보에 지시된 멜랑콜리의 정서가 극대화된 명대목이다.
arr. C. Velazquez, Org. by Granados's "Goyescas"
Sumi Jo - Besame mucho
[ Besame Mucho(Kiss Me Much) ] 베사메 무초
가사
베사메 무초. 언제든 당신에게 입맞춤할 때마다 아주 멋진 음악이 들리지요. ‘좀더, 좀더 입맞춤을’ 하며 나를 꼭 안아 주세요. 그리고 ‘그대는 영원히 나의 것’이라고 말해 주세요.
볼레로라고 하면 곧 연상될 만큼 유명한 작품. 멕시코 하리스코 주에서 태어난 여류 가곡 작가 겸 피아니스트인 콘수엘로 베라스케스(Consuelo Velazquez)가 1941년에 만든 자극적인 볼레로인데, 1943년에 서니 스카일러(Sunny Skylar)가 영어 가사를 붙여 <Kiss Me Much>가 되었다. 지미 도시 악단[가수는 밥 에벌리와 키티 칼렌(Kitty Kallen)]의 레코드와, 1943년 12월에 녹음된 앤디 러셀(로스앤젤레스 태생의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본명은 앤디 라바호스)의 레코드가 히트했다. 또한 베라스케스의 피아노 솔로도 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이야기 팝송 여행, 이야기 샹송칸소네 여행, 1995.5.1, 삼호뮤직)
Besame besame mucho /나에게 키스해줘요 나에게 키스를 많이 해 주세요.
Como si fuera esta noche la ultima Ves /오늘밤이 마치 마지막인 것 처럼.
Besame besame mucho /내게 키스해줘요 나에게 키스를 많이 해 주세요.
Que tengo miedo a perderte /당신을 잃을까봐 두려워요.
Perderte despues /앞으로 당신을 잃을까봐 두려워요.
Quiero tenerte muy cerca. /아주 가까이 당신을 갖고 싶어요.
Mirarme en tus ojos /당신의 눈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싶고.
Estar junto A ti. /항상 당신 곁에 있고 싶어요.
Piensa que tal ves manana yo ya estare lejos. /생각해 봐요? 아마도 내일은 이미 나는 멀리 있을거라고.
Muy lejos de aqui /여기서 아주 멀리.
Besame besame mucho. /나에게 키스해줘요. 내게 키스를 많이 해주세요.
Como si fuera esta noche la ultima ves. /마치 오늘밤이 마지막인 것처럼.
Besame besame mucho. /내게 키스해줘요. 나에게 키스를 많이 해주세요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의 작품 《오필리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오필리아 [Ophelia] (두산백과)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의 작품 《오필리아》는 자신의 아버지가 연인 햄릿에게 살해되자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손에 꽃을 꺾어 들고 강물 위에 누워있는 양 죽음을 맞고 있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라파엘 전파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수작으로 손꼽힌다.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는데 특히 오필리아의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내용은 자주 애용되었다. 밀레이는 이러한 비련의 여주인공 오필리아의 모습을 청초하고 아름답게, 또 극적이고 관능적으로 묘사하였다.
밀레이는 이 작품을 위해 잉글랜드 서리 근교의 호그스밀(Hogsmill) 강가에서 넉 달 동안 머무르며 그림의 배경을 그렸다. 여기에는 수십 종의 다양한 식물과 꽃들이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버드나무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강을 묘사한 부분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버림받은 사랑'이라는 상징 때문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 자라난 쐐기풀들은 고통을 의미하며, 데이지는 순수, 팬지는 허무한 사랑, 제비꽃은 충절을 암시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붉은 색의 양귀비는 유난히 강조되어 있다. 또 그림 오른편 나뭇가지는 해골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주인공 오필리아의 모습은 배경을 완성한 후 런던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로 돌아와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Siddall)이란 여성을 모델로 그렸다. 그녀는 강물에 빠진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물을 가득 채운 욕조 안에 누워서 포즈를 취하였다. 욕조의 차가운 물은 램프로 데웠는데 램프의 불이 꺼져 그녀가 심한 감기에 걸리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가 밀레이에게 병원비와 치료비를 대지 않으면 법정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모델인 엘리자베스 시달은 나중에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Dante Garbriel Rossetti)의 아내가 되었다.
《오필리아》는 비극적이고 섬뜩한 죽음을 주제로 그린 그림임에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숭고하다. 또한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오필리아가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그 극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그것은 치밀하게 묘사한 사실적 풍경 위에 화가의 시적 상상력이 겹쳐져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통해 그리고 있는 비극적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재창조하려는 밀레이의 강한 의지의 소산임을 확인할 수 있다.
4.La mort d' Ophélie (오필리아의 죽음) H. Berlioz
"La mort d'Ophelie" by Hector Berlioz /Lindita Ottarsson sings
La mort d' Ophélie(오필리아의 죽음)-베를리오즈
세익스피어의 문학이 불란서 낭만주의 운동에 영향은 실로 화산의 폭발과도 같이 엄청난 것이엇다. 고전적인 희곡이 갖고 있는 모든 형식성과 원칙을 파괴해 버린 무법자로 평가된 채 18세기를 보낸 그는 휴고를 비롯한 동시대의 문학가들에게 위대한 자유주의자로 존경 받게 되었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으로부터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영향을 받은 이는 바로 베를리오즈였는데, 그는 세익스피어가 "낙뢰처럼" 강타해서 "한줄기 빛"과 같이 그에게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깨닫게 하였다고 고백한 바 있었다.
베를리오즈에게 세익스피어의 작품 만큼이나 충격적인 존재는 당대의 여배우 해리에트 스미슨(Harriet Smithson)이었다. 그는 불란서를 방문한 한 영국 극단의 "햄릿" 공연에서 오필리아로 등장하는 그녀를 본 후 마음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그 후 5년만에 결국 그 여배우와 결혼하게 되었지만, 그가 깨닫게 된 바는 그녀 없이도 살수 있지만 그녀와 함께 또한 살수 없다는 참담한 사실이었다.
La Mort d'Ophelie(1842)는 오필리아와 여배우 헤리에트에 대한 이중적 집착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베를리오즈가 세익스피어의 문학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작곡한 수 많은 작품중의 하나이다.
재능 있는 극작가 Earnest Legouve 가 세익스피어로부터 영감을 얻어 구성한 가사를 기반으로 작곡자 베를리오즈는 달콤한 노스탈쟈와 흔치않은 독창성을 표출하고 있다.
5.C. F. Poulenc
БЕЛЫЕ НОЧИ.............................白夜行
Francis Poulenc: "C" - Allison Tyler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1001, 2009.6.1, 마로니에북스)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가 그의 작품 중 가장 사랑 받는 솔로 성악곡이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 곡이 그러한 유명세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 하강하는 복잡한 소프라노 라인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감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사가 없는 이 곡은 이 음반에 수록된 다른 곡들과 비교해 볼 때 라흐마니노프의 성악곡 작곡 기법이 러시아어와 러시아의 전통적 노래 형태에 기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17년 그의 망명 이후 그가 솔로 노래곡을 더 이상 작곡할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 음반에는 편집되지 않은 《보칼리제》의 본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으며 op. 34 가곡 모음의 정점을 장식하는 곡다운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보칼리제》에서는 가사 없는 간결성이 오히려 더욱 감동을 주며 말로 담을 수 없는 깊은 의미가 배어 있다.
S. Rachmaninov - Vocalise / С. Рахманинов. Вокализ
Sergei Rachmaninov Six Songs Op. 4 No.4 중
"Ne poy, krasavitsa, pri mne",
"Sing not to me, Beautiful Maiden"
"나한테 노래 불러주지 마세요 아름다운 아가씨"
Ne poy, krasavitsa, pri mne
Tď pesen Gruzii pechalnoy: Napominayut mne one Druguyu zhizn i bereg dalnďy.
Uvď ! napominayut mne Tvoi zhestokiye napevď I step, i noch i pri lune
Chertď dalyokoy, bednoy devď.
Ya prizrak milďy, rokovoy, Tebya uvidev, zabďvayu; No tď poyosh i predo mnoy Evo ya vnov, voobrazhayu.
Ne poy, krasavitsa , pri mne
Tď pesen Gruzli pechalnoy: Napominayut mne one Druguyu zhizn i bereg dalnďy.
|
Oh, never sing to me again, fair maiden Those sad songs from Georgia They recall to me Another life and distant shores.
Alas ! your ardent singing Stirs up all my memories Of the steppes, of night, of moonlight Shining on a humble girl.
Seeing you, I can forget This beautiful and fateful image; But when you sing She rises up again before me.
Oh, never sing to me again, fair maiden, Those sad songs from Georgia; They recall to me Another life and distant shores.
|
아름다운이여, 노래하지 마세요
내 앞에서 슬픈 그루지아 노래를 그 노래는 또 다른 인생과 저 먼 강가를 생각나게 하니까요
슬프다오 당신의 그 잔인한 노래는 그 초원, 그 밤, 그 달빛에
멀리있는 슬픈 여인의 모습을
난 당신을 볼 때 그녀의 그리운 운명적인 환영을 잊어요, 하지만 당신이 노래하면 그 모습은 내게 다시 아른거려요
아름다운이여, 노래하지 마세요
내 앞에서 슬픈 그루지아 노래를 그 노래는 또 다른 인생과 저 먼 강가를 생각나게 하니까요
|
7.НЕ ПОЙ, KRACAВИЦA (노래하지 마오, 아름다운이여)- C. B. Paxmaнинов
Natalie Dessay sings a song by Sergei Rachmaninoff, "Не пой, красавица, при мне" ("Sing not, o lovely one"), lyrics by Alexander Pushkin
F.Schubert, Der Erlkönig D.328
슈베르트, 마왕 [魔王]
출처 : 네이버캐스트
슈베르트의 수많은 가곡들 중 비교적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왕]은 1815년 그의 나이 18세에 만들어졌다. 슈베르트는 자신의 600여 편의 가곡에서 대부분 동시대 작가, 시인들의 텍스트를 사용했으며 특히 자신의 음악어법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괴테의 시에 70여 편의 음악을 붙였다. 슈베르트의 첫 번째 가곡인 [물레감는 그레트헨] 역시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가곡 [마왕] 역시 1782년에 창작된 괴테의 시를 텍스트로 삼은 곡이다.
마왕의 탄생
덴마크의 설화로 전해지는 ‘마왕 이야기’는 실제로 독립된 텍스트로 창작되지는 않았다. 괴테가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독일의 문학가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가 덴마크의 설화를 번역한 [마왕의 딸 Erlkönig Töchte]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괴테는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시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시는 1782년 발라드 오페라인 [어부의 부인 Die Fischerin]의 일부로도 사용되었는데, 극중 등장인물인 도르첸이 떠나간 아버지와 신랑을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로 오페라에 등장한다. 당시에는 오페라의 도입을 알리는 작품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처럼 독립적인 가곡 형태로는 연주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괴테의 시 ‘마왕’은 괴셴(Göshen)출판사에서 8권으로 이루어진 괴테의 공식적인 첫 작품집으로 출판되었다. 슈베르트가 괴테의 시를 가지고 가곡을 작곡할 당시의 일화는 슈베르트의 절친한 친구였던 요제프 폰 슈파운(Joseph von Spaun)의 서술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1815년 12월의 어느 오후에 당시 힘멜포르트그룬트에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슈베르트를 방문했다. 그는 괴테의 시 ‘마왕’을 흥분 상태에서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 책을 한 손에 들고 몇 번이고 방안을 서성거렸고, 그 후에 급히 의자에 앉아 무서운 속도로 이 곡을 오선지에 써내려갔다.”
극적인 요소를 위한 음악적 장치
이 시에서는 총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해주는 해설자,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아이, 그리고 아픈 아이를 데리고 어두운 밤을 달리는 아버지, 그리고 병든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끊임없이 유혹하는 마왕이 이 작품을 구성하는 인물들이다. 슈베르트는 자신의 작품에서 여러 가곡의 형식을 도입했는데 특히 [마왕]에서는 통절형식(몇 절로 된 가사이든 가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가락으로 노래하도록 만든 작곡 형식)과 대화체를 사용하여 텍스트에 등장하는 극적인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드러난다.
노래의 첫 부분에서는 해설자에 의해 전반적인 상황이 담담하게 설명되며 이후에 나타날 파국이 표면화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공포에 떠는 아이, 아이를 달래는 아버지의 위로와 절규, 처음에는 달콤한 말로 유혹하다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모해 아이를 저승으로 데려가려는 마왕의 음울한 모습이 전체 텍스트의 큰 축을 이루게 된다. 마지막에는 아이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모든 상황이 끝나게 된다.
이 곡은 한 명의 가수가 목소리를 바꾸어 세 인물의 판이한 성격과 상황을 묘사하는 작은 음악극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해석에 있어서 상당히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슈베르트는 가수에게 필요한 연기력 이외에도 이 작품의 생생한 내러티브 전달을 위해 여러 장치들을 마련했다. 예를 들어 서주의 반주부에서 등장하는 셋잇단음표는 아픈 아들을 데리고 어두운 밤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를 상징한다. 위로와 힘을 실어주는 아버지의 음성에서는 저음을, 공포에 질린 아들의 떨리는 음성에서는 고음을 사용한 것이 캐릭터의 심리 묘사를 하고 있으며, 음악적 상황을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마왕의 음성이 나타나는 부분에서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처리함으로써 마왕이 환상 속에서 아이를 점차적으로 지배해 가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나타냈다. 최초 이 작품의 공개적인 초연은 1821년 1월 25일 빈의 악우협회에서 이루어졌다. 출판은 작곡이 완성된 후 6년 뒤인 1821년 4월 2일 빈의 카피 운트 디아벨리 출판사에서 이루어졌다.
9.Der Erlkönig (마왕) F. Schubert
Der Erlkönig (Schubert / Berlioz), Anne Sofie von Otter/ Münchner Phihamoniker,
Christa Thielemann
Wer reitet so spät durch Nacht und Wind? Es ist der Vater mit seinem Kind; Er hat den Knaben wohl in dem Arm, Er fasst hin sicher, er hält ihn warm.
- Mein Sohn, was bringst du so bang dein Gesicht?" - Siehst, Vater, du den Erlkönig nicht? Den Erkönig mit Kron'und Schweif? - Mein Sohn, es ist ein Nebelstreif
[Erkönig] Du liebst Kind, komm, geh mit mir! Gar schön Spiele spiel' ich mit dir, Manch dunte Blumen sind an dem Strand, Meine Mutter hat manch gülden Gewand
- Mein Vater, mein Vater, und hörest du nicht? Was Erkönig mir leise verspricht?
- Sei ruhig, bleibe ruhig, mein Kind; In dürren Blättern säuselt der Wind
[Erkönig] Willst, feiner Knabe, du mit mir gehn? Mein Töchter sollen dich warten schön Mein Töchter führen den nächtlichen Reihn Und wiegen und tanzen und singen dich ein
- Mein Vater, mein Vater, und siehst du nicht dort?Erkönigs Töchter am düstern Ort? |
어두운 늦은 밤 바람을 가르며 말타는 이누구인가? 그는 아이를 품에 안은 아버지다. 아비는 팔을 한껏 감아 아이를 안고 간다. 안전하고 포근하게 안고 말을 달린다.
- 나의 아들아, 왜 그렇게 무서워하며 얼굴을 가리느냐? - 아버지, 마왕이 보이지 않으세요? 망토를 두르고 왕관을 쓴 마왕이요. - 아들아, 그건 그저 엷게 퍼져있는 안개란다.
[마왕] 사랑스런 아이야, 나와 함께 가자! 함께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꾸나, 모래사장에는 알록달록한 꽃이 피어있고, 우리 어머니는 황금 옷도 많이 있단다.
- 아버지, 나의 아버지, 저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내게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 진정하거라, 아가야. 걱정 말아라. 단지 마른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란다.
[마왕] 함께 가지 않겠느냐, 귀여운 아가? 내 딸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내 딸들이 너와 함께 밤의 춤을 출 것이야, 잠들 때까지 노래하고 춤을 출 것이란다.
- 아버지, 아버지, 보이지 않으세요? 저 음침한 곳에 있는 마왕의 딸들이요.
|
물레잣는 그레트헨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순진한 처녀인 그레첸은 파우스트에게 꼬임을 당하고 그의 아이까지 가지지만 - 나중에 아이를 스스로 죽이고 감옥에 간다 - 파우스트에게 버림받는다.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슈베르트는 이 가곡을 작곡하는데 파우스트에게 마음을 온전히 빼앗겨 사랑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순수한 어린 여인 그레첸의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과 그녀가 잣고 있는 물레의 소리를 흉내내면서 그녀의 감정 변화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피아노의 조화가 일품이다.
1814년 10월 19일, 슈베르트가 17세 때에 작곡한 작품이다.가사는 괴테의 '파우스트' 제1부, 그레트헨의 방에서 그녀가 물레를 돌리면서 파우스트를 생각하면서 혼잣말로 노래하는 부분이다.
걸작인 '마왕'보다 반년 앞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이 해부터 슈베르트의 노래는 점차 숫적으로도 늘어났다.
현재 자주 연주되는 슈베르트의 가곡 중에 가장 젊은 시대의 작품으로 그 중에서도 기교가 풍부한 표현력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걸작이다. 초연은 1823년 2월 20일 에 빈의 악우협회에서 이루어졌다.
초판은 1821년 4월 30일에 빈에 있었던 카피 운트 디아벨리 출판사에 위탁 출판되어 판매되었다.
10.Gretchen am Spinnrade (물레 감는 그레첸) F. Schubert
Schubert: Gretchen am Spinnrade / Stotijn · Abbado · Berliner Philharmoniker
d단조, 6/8박자, 너무 빠르지 않게
변화가 있는 유절가곡이다. 반주가 물레의 회전을 표현하고 있으며, 한 순간 입맞춤을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정지하는 부분을 갖는 것 이외에는 끊임없이 연주가 계속된다. 이 반주에 실려 조용하게 실망을 노래하고 다음에 감정을 고조시켜 일단 노래도 물레도 멈추게 한 단음에 다시 슬픔을 나타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감정이 고조되지만 결국에는 실의에 빠져 조용하게 노래는 끝이 난다. 이러한 가사의 변화에 창조적인 표현이 음악으로 나타나 있다.
Meine Ruh ist hin, Mein Herz ist schwer; Ich finde sie nimmer Und nimmermehr. Wo ich ihn nicht hab’ Ist mir das Grab, Die ganze Welt Ist mir vergällt. Mein armer Kopf Ist mir verrückt, Mein armer Sinn Ist mir zerstückt. Meine Ruh ist hin, Mein Herz ist schwer; Ich finde sie nimmer Und nimmermehr. Nach ihm nur schau’ich Zum Fenster hinaus, Nach ihm nur geh’ich Aus dem Haus. Sein hoher Gang, Sein’ edle Gestalt, Seines Mundes Lächeln, Seiner Augen Gewalt, Und seiner Rede Zauberfluss, Sein Händedruck Und ach, sein Kuss! Meine Ruh ist hin, Mein Herz ist schwer; Ich finde sie nimmer Und nimmermehr. Mein Busen drängt Sich nach ihm hin; Ach, dürft’ich fassen Und halten ihn Und küssen ihn, So wie ich wollt’ An seinen Küssen Vergehen sollt’! |
나의 평온은 가버렸다, 나의 마음은 무겁고; 나는 평온을 결코 결코 다시찾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곳 그곳은 무덤이다, 온 세상은 나에게 쓰다. 나의 가여운 머리는 어지럽고, 나의 가여운 마음은 산란하다. 나의 평온은 가버렸다, 나의 마음은 무거워; 나는 그것을 결코 다시 찾지 못할 것이다. 단지 그를 위해 보아요 나는 창밖으로, 단지 그를 위해 나갑니다 나는 집밖으로. 그의 고귀한 몸가짐, 그의 고상한 모습, 그의 입가의 미소, 그의 눈이 갖는 힘, 그리고 그의 말은 마법의 흐름, 그의 손길 그리고 아, 그의 입맞춤! 나의 평온은 가버렸다, 나의 마음은 무거워; 나는 평온을 결코 다시는 찾지 못하리. 나의 가슴은 밀고 나아갑니다 그를 향해; 아, 내가 잡고 안을 수 있을까 그를 그리고 입맞출 수 있을까 그에게,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처럼 그의 입맞춤으로 죽을 것이다! |
11.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난 때로는 고아처럼 느껴져요) - Afro-
American spiritual arr. H. JohnsonLes Humphries Singers - Motherless child 1971
12.Ride on, King Jesus! (오르소서, 왕이신 예수여!)
- Afro-American spiritual arr. H. Johnson
Ride On, King Jesus
A. Piazzolla 'Oblivion' - Wurttembergisches Kammerorchester Heilbronn
13.Oblivion(망각) A. Piazzolla
[ Oblivion ] 망각-피아졸라
출처: 네이버블로그 준맘이네집
연주곡 피아졸라의 Oblivion(망각)은 일렉트로니카 탱고와 전통 탱고의 원리를 변형시킨 춤의 형태를 가리키는 누에보 탱고(Nuevo Tango)의 대표적인 곡으로 1984년 이탈리아의 마르코 벨로치오감독이 제작한 영화 "엔리코 4세(Enrico IV)"를 위해 피아졸라가 작곡 연주한 음악으로, 특히 기돈 크레머와 리차드 갈리아노의 명연주 때문에 더욱 음악세계에서 애청곡이 되어진 곡이다.
이 서정적인 음악 Oblivion(망각)은 탱고(Tango)음악이라고 했지만, 들어보면 사실 전혀 탱고를 닮지 않은 곡이다. 영화"엔리코 4세(Enrico IV)" OST로 사용된 이 음악은 그 서정적인 선율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연주곡이다. 애수와 슬픔이 가득한 이 곡은 아주 많은 연주가들에 의해 여러 악기로 편곡 연주되고 있어 요즘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연주들은 오히려 오리지널 버전이 아닐 경우가 더 많다. 피아졸라의 탱고는 기존의 탱고와 비교해서 New Tango라는 이름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발을 위한 탱고가 아니라 귀를 위한 탱고, 감상곡 개념의 탱고를 제안한 피아졸라는 분명히 춤곡으로만 알려져있던 탱고를 감상의 경지로 끌어올린 선구자적 존재인 것이라해도 무리가 아니다. 피아졸라는 반도네온을 위한 작품 외에 전통적인 클래식 악기(피아노, 현악기, 플룻, 기타)를 위한 작품도 남겨놓았는데, 그의 음악 어디에나 아르헨티나의 우수가 가득 깃들어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탱고 음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으면서 수준 높은 작곡과 연주와 레코딩으로 누에보 탱고 음악은 대중적인 청중과 클래식 청중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Marija Naumova (Marie N) - Yo Soy Maria
14.Yo soy Maria (난 마리아에요) A. Piazzolla
[ Yo Soy Maria ] 난 마리아에요
피아졸라의 오페레타 Maria e Buenos Aires 중 Yo soy Maria
Yo soy Maria de Buenos Aires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야.
de Buenos Aires Maria, no ven quien soy yo?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 내가 누군지 안보여?
Maria Tango, Maria del arrabal,
탱고의 마리아, 빈민가의 마리아
Maria noche, Maria pasion fatal,
밤의 마리아, 치명적인 정열의 마리아
Maria del amor de Buenos Aires soy yo!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랑의 마리아, 그게 나야!
Yo soy Maria de Buenos Aires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
si en este barrio la gente pregunta quien soy,
만약 이 동네에서 사람들에게 내가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pronto muy bien lo sabran
금새 아주 잘 알수있을꺼야.
las hembras que me envidiaran,
암컷들은 나를 질투하고
y cada macho a mis pies como un raton
모든 수컷들은 내 발 밑에서 쥐새끼처럼
en mi trampa ha de caer.
나의 덫에 걸리니까.
Yo soy Maria de Buenos Aires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야.
soy la mas bruja cantando y amando tambien!
나는 노래를 부르는 가장 지독한 마녀야. 물론 사랑도 하면서
Si el bandoneon me provoca... tiara, tata!
만약 반도네온(아코디온)이 나를 유혹 한다면... tiara, tata!
le muerdo fuerte la b0ca... tiara, tata!
너의 입술을 힘껏 깨물 것이야... tiara, tata!
con diez espasmos en flor que yo tengo en mi ser.
내 안에 있는 열 개의 경련하는 꽃으로 말이야……
Siempre me digo dale Maria!
항상 나에게 말해. 시작해! 마리아!
cuando un misterio me viene trepando la voz,
신비한 그 무엇이 나의 목소리에 올라오면
y canto un tango que nadie jamas canto
아직껏 아무도 부르지 못한 탱고를 불러
y sueno un sueno que nadie jamas sono:
그리고 아직껏 아무도 꿈꾸지 못한 꿈을 꿔.
porque el manana es hoy con el ayer despues, che!
왜냐하면 내일은 어제 다음의 오늘이거든. Ch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