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출로 출제된 핵심 포인트 써머리
뗀석기를 사용하고 사냥과 채집, 어로 등으로 먹이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이동 생활을 해 동굴이나 막집에서 짓고 생활하였다. 구석기 유적지와 관련하여서는 연천 전곡리 유적을 묻는 문제가 가장 많이 출제된다.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는 미군의 우연한 발견으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구석기 시대 개념 써머리 1. 도구 : 뼈 도구, 뗀석기(사냥 도구 - 주먹도끼·찍개·팔매돌, 조리 도구 - 긁개 ·밀개) 2. 생활 : 사냥과 채집 → 이동 생활 3. 주거 : 동굴, 막집(바위 그늘, 강가 - 기둥 자리, 담 자리, 불 땐 자리) 4. 사회 : 무리 생활, 평등한 공동체 생활 5. 예술 : 고래와 물고기 등을 새긴 조각품 제작 → 주술적 의미(사냥감의 번성을 기원) 주먹도끼 슴베찌르개
① 주먹도끼는 동물의 가죽을 벗기거나 사냥 등 여러 용도로 사용 ② 찍개는 나무를 자르거나 사냥할 때 사용 ③ 슴베찌르개는 창 기능으로 사용 ④ 뚜르개는 구멍을 뚫거나 옷감을 만들 때 사용 ⑤ 긁개는 사냥한 짐승의 가죽을 벚겨 손질하는 데 사용 -----------------------------------------------------------------------------------
구석기 시대 기출 문제로 정리하기 28회 고급 1번 문제 1. 구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 답① 제시된 연천 전곡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입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는 인도 이동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출토된 구석기 시대의 아슐리안형의 주먹도끼입니다. 따라서 구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을 찾으면 됩니다. 우리나라의 구석기 시대는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뗀석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주먹도끼, 찍개 등 하나의 석기를 여러 용도로 사용했으나, 점차 석기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자르개, 밀개, 찌르개 등 쓰임새가 정해진 도구를 사용하였고 석기의 크기도 작아졌어요. 구석기 시대 후기에는 돌날과 좀돌날이 제작되어 사용되었으며, 슴베찌르개를 나무나 뼈에 연결하여 쓰는 이음 도구를 만들기도 하였어요. 구석기인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 막집 등을 짓고 살았습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면서 채집과 사냥을 통해 식량을 마련하였고, 이를 위해 이동 생활을 하였습니다. ① 구석기 시대에는 먹을 것을 찾아 무리를 지어 이동 생활을 하면서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 살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②, ⑤ 신석기 시대에는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고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이나 그물을 만들었으며, 곡물의 저장과 조리를 위해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 등을 제작하였습니다. ③ 청동기 시대에는 당시 지배층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만들었습니다. 고인돌은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만들어야 했으므로, 고인돌을 통해 군장이 소유한 부와 권력을 짐작할 수 있어요. ④ 철기 시대 들어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문화가 독자적으로 발전하면서 세형 동검과 잔무늬 거울 등이 제작되었으며, 독자적인 청동기 제작은 그 틀인 거푸집의 존재로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24회 고급 1번 문제 1. 구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 답② 공주 석장리 유적, 주먹도끼 등 너무나 익숙한 개념을 통해 구석기 시대임을 파악할 수 있죠? 답지에서 구석기 시대의 사실을 찾는 것도 쉽습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뼈 도구와 뗀석기를 가지고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생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찍개 같은 도구를 가지고 여러 가지 용도로 썼으나, 점차 뗀석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용도에 맞는 작은 석기들을 만들어 사용하였어요. 이 중에서 주먹도끼, 찍개, 팔매돌 등은 사냥 도구이고, 긁개, 밀개 등은 대표적인 조리 도구였습니다. 구석기 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대표적인 석기로 슴베찌르개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들은 무리를 이루어 큰 사냥감을 찾아다니며 생활하였으며,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서 살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어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공동체 생활을 하였어요. 석회암이나 동물의 뼈 또는 뿔 등을 이용하여 조각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사냥감의 번성을 비는 주술적 의미가 깃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빙하기가 지나고 기후가 따뜻해지자 큰 짐승 대신에 토끼, 여우, 새 등 작고 빠른 짐승이 늘어났어요. 이에 이들을 잡기 위해 석기를 작게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어요(잔석기). 이렇게 작게 만든 잔석기는 한 개 내지 여러 개의 석기를 나무나 뼈에 꽂아 쓰는 이음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톱, 활, 창, 작살 등이 있습니다. ① 빗살무늬 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 토기입니다. 토기는 신석기 시대부터 만들어 사용하였어요. ② 구석기인들은 이동 생활을 했기에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서 살았죠. ③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지배층의 무덤입니다. ④ 거푸집은 청동기를 만들던 틀로 독자적으로 청동기를 만들었음을 알려주는 유물입니다. 따라서 이는 후기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의 유물입니다. ⑤ 반달 돌칼은 청동기 시대의 농경 도구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9회 고급 1번 문제 1. 구석기~청동기 시대의 생활 모습 답④ 선사 시대에 대한 문제는 매회 1문제씩 출제되며, 문제 수준은 어렵지 않습니다. 따라서 꼭 맞춰야 하니 이 기회에 확실히 공부해 두세요. 이 문제는 구석기 시대~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을 제시하고 각 시기의 생활 모습을 파악하는 선사 시대 통합형 문제입니다. 각 시대 대표적 유물이 제시된 데다가 유물명도 나와 있으니, 시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죠? (가)는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 (나)는 신석기 시대의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 (다)는 청동기 시대의 비파형 동검입니다.
(가)구석기 시대 구석기인들은 동물의 뼈나 뿔로 만든 뼈 도구와 뗀석기를 가지고 사냥과 채집을 하며 이동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동굴이나 바위 그늘 또는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으며, 평등한 공동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물의 뼈나 뿔 등을 이용하여 사냥감의 번성을 비는 주술적 의미가 담긴 조각품을 만들기도 했어요. (나) 신석기 시대 이 시기에는 강가나 바닷가에 살면서 사냥이나 물고기잡이, 농경과 목축(후기)으로 식량을 마련했어요. 움집을 짓고 정착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몇 개의 씨족이 모여 부족을 이루고 평등한 생활을 하였어요. 농경에는 간석기 농기구를 사용하였는데, 돌괭이로 땅을 일구고 조, 피 등을 재배하여 돌낫, 뼈낫 등으로 추수를 하였으며, 돌갈판에 곡식을 갈아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빗살무늬 토기 등을 제작해 음식의 저장, 조리하였으며,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뼈바늘로 옷을 지어 입기도 하였어요. 농경과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농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자연 현상이나 자연물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이 생겨났으며, 흙을 빚어 구운 얼굴 모습이나 동물의 모양을 새긴 조각품, 조개 껍데기 가면, 조가비 또는 짐승의 뼈나 이빨로 만든 치레걸이 등의 예술품을 만들었습니다. (다) 청동기 시대 이 시기에는 농사에 유리한 강을 끼고 있는 야산이나 구릉 지대에 움집을 짓고 살았어요. 조, 보리, 콩, 벼 등을 재배하였으며, 나무 또는 돌로 만든 농기구를 이용해 농경지를 넓히고 생산량을 증가시켰어요. 도구로는 반달 돌칼, 바퀴날 도끼, 홈자귀 등의 석기와 비파형 동검, 거친무늬 거울 등의 청동기, 미송리식 토기, 민무늬 토기, 붉은 간토기 등의 토기가 있습니다. 이들 유물은 청동기 시대의 집터나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등 당시의 무덤에서 출토되죠.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지배, 피지배의 계급 사회가 성립하였습니다. 부족을 통솔하는 족장(군장)은 농업 생산이 증대함에 따라 재산을 늘리는 한편, 청동제 무기를 이용하여 이웃 부족을 정복하는 등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고인돌은 이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잘 보여주는 유물이죠.
① 구석기인들은 이동 생활을 하였기에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 살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어요. ② 신석기인들은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뼈바늘로 옷을 지어 입었죠. ③ 청동기 시대에는 농경 생활의 비중이 높아져 농경에 유리한 강을 끼고 있는 야산이나 구릉 지대에 살았어요. ④ 계급 사회는 청동기 시대부터 나타났습니다. ⑤ 간석기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청동기 시대에도 농기구는 나무나 간석기로 만들어 사용하였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8회 고급 1번 문제 1. 구석기 시대의 유물 답② 그동안 신석기 시대 문제가 쭈욱 출제되다가 구석기 시대에 대한 문제는 13회 이후 오랜만에 출제되었네요. 제시된 자료의 설명 중 '유리질이 많은 암석'이 핵심 키워드네요. 이 내용만으로 주어진 유물 사진을 보고 바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유리질 암석은 당연히 유리처럼 표면이 반짝거릴 것이니 답은 ②번이 확 보일겁니다. 한반도내에서는 후기 구석기 유적지에서 흑요석 유물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함북 웅기 동관진 유적, 평양 만달리 유적,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 충남 단양 수양개 유적, 강원도 양구 상무룡리 유적 등에서 흑요석으로 만든 유물이 발굴되었습니다. 흑요석은 화산 활동 과정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화산 활동이 있었던 곳에서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흑요석은 이들 유적지 주위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어서 백두산 등의 화산암 지대로부터 상당히 원거리를 운반하여 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흑요석 유물은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유적지 등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도 발굴됩니다.
① 연천 전곡리 유적지에서 발굴된 주먹도끼입니다. ② 흑요석으로 만든 뗀석기입니다. 이것은 부산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흑요석 유물입니다. 큰 사진으로 확인해 보세요. ③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비파형 동검입니다. ④ 신석기 시대 곡식을 가는데 사용한 갈돌과 갈판입니다. ⑤ 청동기 시대에 곡식의 이삭을 자르는 데 사용한 반달 돌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3회 고급 1번 문제
1. 연천 전곡리 유적 유물 답② 문제의 자료에 <연천 전곡리 선사 문화 축제>라고 되어 있으니, (가)에 들어갈 자료는 당연히 연천 전곡리 유적이나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이 들어가야겠지요? 주어진 답지에 ②번의 주먹도끼 이외에 구석기 유물은 물론, 신석기 유물도 제시되어 있지 않으니 그냥 주워먹으세요. 따라서 3점 배점은 지나친 오버이고, 이 수준이라면 1점을 줘야 할 문제였어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구석기 유적지와 관련된 문제는 대부분 연천 전곡리 유적지와 연관된 문제입니다. 아래에 제시해드리는 유시 기출문제를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중요하게 공부해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렵지 않아요. 연천 전곡리 유적지에 대한 주요 출제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더 알아둔다면 이 유적지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되기 전까지 아시아는 찍개 문화권으로 구분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주먹도끼는 한 가지 용도가 아니라 사냥, 가죽을 벗기기, 채집 등 다용도로 사용되었던 만능 도구였어요. 주먹도끼의 사용모습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10회 문제에서 출제되었으니 아래 유사 기출문제에서 확인하세요.
① 독무덤은 후기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부터 나타나는 무덤양식으로, 철기 시대 무덤으로 봅니다. 철기 시대에는 독무덤과 함께 널무덤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③ 팔주령 청동 방울입니다. 청동기~철기 시대의 청동 방울 중 하나로 제정일치 사회의 제사장들이 주술적인 의미로 사용했던 도구입니다. ④ 철기 시대의 유물인 청동 도끼 거푸집입니다. 거푸집의 제작은 우리나라에서 청동기를 직접 제작해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⑤ 철기 시대 유적지인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출토된 붓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철기 시대에 이미 한자를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1회 고급 1번 문제
1. 흥수아이가 살던 시기의 모습 답② 이 문제는 '흥수아이', '4만 년 전 인류화석'이라는 직접적인 힌트를 준, 그래서 1점 문제로 출제되었네요. 흥수아이를 모르더라도 4만 년이라는 시간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구석기인이라는 것을 모를 수는 없겠네요. 그럼 구석기인들의 생활 모습을 찾으면 되겠지요? <구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 ------------------------------------------------------------ 1. 도구 : 뼈 도구, 뗀석기(사냥 도구 - 주먹도끼·찍개·팔매돌, 조리 도구 - 긁개 ·밀개) 2. 생활 : 사냥과 채집 → 이동 생활 3. 주거 : 동굴, 막집(바위 그늘, 강가 - 기둥 자리, 담 자리, 불 땐 자리) 4. 사회 : 무리 생활, 평등한 공동체 생활 5. 예술 : 고래와 물고기 등을 새긴 조각품 제작 → 주술적 의미(사냥감의 번성을 기원) ----------------------------------------------------------------------------------- ①, ⑤는 신석기 시대에 대한 설명입니다. ③의 반달 돌칼은 청동기 시대의 도구입니다. ④는 독무덤을 설명하고 있으니 철기 시대의 생활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0회 고급 5번 문제
5. 주먹도끼의 사용법 답① 제시된 자료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 석기’는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로, 양면 핵석기(兩面核石器)라고도 하는 뗀석기입니다. 모양과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몸돌의 한쪽을 여러 면에서 깨뜨려 끝을 곡괭이처럼 뾰족하게 만들거나 칼날처럼 날카롭게 만들고 다른 한쪽은 손으로 쥘 수 있게 살짝 다듬은 모습이 일반적입니다. 이러한 주먹도끼는 아프리카를 비롯해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이러한 형태의 주먹도끼가 발견되기 전에는 유럽과 서아시아 지역은 주먹도끼를 주로 썼으며, 동아시아 지역은 자갈돌을 깨뜨려 만든 찍개를 주로 썼다고 구분하기도 했답니다(모비우스 학설). 그러나 근래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도 아슐리안형의 주먹도끼가 다수 발견되면서 이러한 학설은 깨졌죠.... 다만, 유럽쪽에 비해 양면 가공이 아닌 단면 가공이 주류를 이루며 석기의 전면에서 격지를 떼어내지 않고 일부는 자연면을 그대로 남겨두는 등 다소간 차이가 있다네요. 문제의 설명을 보고 이 주먹도끼가 무엇인지 응시자 대부분이 파악하였을 것 갑니다. 하지만 답지에 제시된 사용 모습을 보고 많은 분들이 ②번을 답으로 선택했어요. 이 사용 모습은 중학교 교과서 29쪽에 나와 있지만 무척 헛갈렸을 거라고 봅니다.
① 주먹도끼의 사용 모습입니다. 손에 쥐고 쓸 수 있는 도끼의 형태로, 동물의 가죽을 벗기거나 사냥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었지요. ② 나무를 자르거나 사냥할 때 사용된 찍개의 사용 모습입니다. ③ 창 기능을 하는 슴베찌르개입니다. ④ 구멍을 뚫거나 옷감을 만들 때 사용하는 뚜르개의 사용 모습입니다. ⑤ 사냥한 짐승의 가죽을 벚겨 손질하는 데 이용된 긁개의 사용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4회 고급 1번 문제
1. 남한의 구석기 유적지 답② 첫째날에 나와 있는 유적지 특징에‘아슐리안형 주먹도끼’하면 무조건 연천 전곡리!!! 아싸~~ 실전이었다면 요 사실만 알아도 답지는 ①, ②번 두 개로 축약되었네요...^^ 둘째날을 보면 ‘남한 최초로 발굴된 구석기 유적지’라고 하였으니 공주 석장리 네요. 두 개로 답이 나왔네요...ㅋㅋ 그래도 확실히 알기 위해 다른 것도 알아야 겠죠. 셋째날 유적지 설명의 키포인트는 ‘흥수아이’.... 그러면 어디죠? 맞습니다. 남한 최초의 인골 화석이 출토된 유적은 청원 두루봉 동굴이죠. 넷째날....바위그늘 유적......모를 수도 있어요... 이번 기회에 공부하면 되죠.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을 가진 인골이 출토된 바위그늘 유적은 바로바로 단양 상시 바위그늘 유적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지도 유적지와 연결해보면 (가) → (라) → (다) → (나),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2회 2급 1번 문제
1. 연천 전곡리 유적지인들의 생활 모습 답⑤ 문제에 제시된 설명 중에서 ‘한탄강 유역’, ‘주한 미군 병사의 신고로 발견’, ‘아슐리안형 석기가 발견’ 등을 힌트 삼아 이 유적지가 연천 전곡리 유적지임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천 전곡리 유적은 (전기) 구석기 유적지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적인 사실!!! 그렇다면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을 찾으면 되겠죠?
① 고인돌, 선돌 등의 거석 기념물은 청동기 시대부터 나타나지요. ② 씨족을 기본 구성 단위로 하는 씨족 사회는 신석기 시대부터 나타납니다. 구석기 시대는 무리 사회였죠. ③ 잉여 농산물로 사유 재산이 생겨 나고 이를 둘러 싼 부족 간 전쟁은 청동기 시대부터 나타납니다. ④ 그릇을 사용한 음식물 저장(토기 사용)은 신석기 시대부터 나타나죠. ⑤ 동굴이나 막집에 거주, 그리고 이동 생활은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생활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2회 1급 7번 문제
7. 구석기 유적지의 특징 답③ 이 문제는 공부 차원에서 그냥 외우세요. (가)는 함북 종성 동관진 유적지는 한반도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 유적지(1932)로, 동물 화석이 출토되었어요. (나)의 평남 덕천 승리산 유적(1972)에서는 슬기 사람(호모 사피엔스) 계통의 덕천인, 그리고 슬기슬기 사람(호모 사피엔 스사피엔스) 계통의 승리산인이 발견되었어요. 이는 한반도에서 최초로 발견된 인골 화석이었어요. 잘 알아두세요. (다)의 경기 연천 전곡리 유적(1978)은 미군에 의해서 처음 발견되었어요. 이 유적지에서는 모비우스 학설(4번 문제를 참고하자)을 깨트리는 주먹도끼가 발견되었습니다. 전곡리 유적지는 홍적세 후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기 구석기 유적이랍니다. (라)는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 유적지(1976)로, 이 유적지에서 중요한 것은 남한에서 최초로 인골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겁니다(덕천 승리산은 북한 지역 유적지였죠?). 이 인골 화석은 발견자의 이름(김흥수)을 따서 ‘흥수아이’라고 하죠. 남한 최초의 인골 출토 유적지는 단양 상시 바위그늘 유적으로 보기 때문에 이 답지는 맞는 것인지 헛갈립니다. (마)는 남한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인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지(1964)입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유적지는 전형적인 후기 구석기 유적지로 보고 있답니다. 이 유적지에서는 12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는데, 전기~후기 구석기까지의 유물들이 고루 출토됩니다. 에구 OTL ㅜ.ㅜ ....이런건 외워야지~~~~~뭐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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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넘 감사합니다~~~~~~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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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 있습니다. 감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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