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 니까야 (대림스님 옮김), 제1권 셋의 모음, 첫 번째 50개 경들의 묶음,
제2장 마차공 품(A3:11~20) - 자기를 해침 경 · 신의 세계 경 · 상인경1 · 상인경2(A3:17~20)』
자기를 해침 경((A3:17)
Attavyāpādha-sutta
1. "비구들이여, 세 가지는 자기도 해치고 남도 해치고 둘 모두를 해친다. 어떤 것이 셋인가?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 말로 짓는 나쁜 행위,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는 자기도 해치고 남도 해치고 둘 모두를 해친다."
2. "비구들이여, 세 가지는 자기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둘 모두 해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셋인가?
몸으로 짓는 좋은 행위, 말로 짓는 좋은 행위, 마음으로 짓는 좋은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는 자기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둘 모두 해치지 않는다."
신의 세계 경(A3:18)
Devaloka-sutta
1. "비구들이여, 만약 외도356) 유행승357)들이 '도반들이여, 그대들은 천상 세계에 태어나기 위해 사문 고따마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당혹스럽고 창피스럽고 혐오스럽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2. "비구들이여, 만약 그대들이 신들의 수명에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창피스러워하고 혐오스러워하고, 신들의 용모와 신들의 행복과 신들의 명성과 신들의 지배력에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창피스러워하고 혐오스러워한다면 먼저 그대들의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 말로 짓는 나쁜 행위,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에 대해 당혹스러워해야 하고 창피스러워해야 하고 혐오스러워해야 한다."358)
상인 경1(A3:19)
Pāpaṇika-sutta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상인은 아직 얻지 못한 재산은 얻을 수 없고 이미 얻은 재산은 늘릴 수 없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상인이 새벽에도 성실히 일을 돌보지 않고, 낮 동안에도 성실히 일을 돌보지 않고, 저녁에도 성실히 일을 돌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상인은 아직 얻지 못한 재산은 얻을 수 없고 이미 얻은 재산은 늘릴 수 없다.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비구는 아직 얻지 못한 유익한 법[善法]은 얻을 수 없고 이미 얻은 유익한 법은 늘릴 수 없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새벽에도 성실히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지 않고, 낮 동안에도 성실히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지 않고, 저녁에도 성실히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비구는 아직 얻지 못한 유익한 법은 얻을 수 없고 이미 얻은 유익한 법은 늘릴 수 없다."
2. "비구들이여,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상인은 아직 얻지 못한 재산은 얻을 수 있고 이미 얻은 재산은 늘릴 수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상인이 새벽에도 성실히 일을 돌보고, 낮 동안에도 성실히 일을 돌보고, 저녁에도 성실히 일을 돌본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상인은 아직 얻지 못한 재산은 얻을 수 있고 이미 얻은 재산은 늘릴 수 있다.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비구는 아직 얻지 못한 유익한 법은 얻을 수 있고 이미 얻은 유익한 법은 늘릴 수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새벽에도 성실히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고, 낮 동안에도 성실히 삼매의 표상에 집중하고, 저녁에도 성실히 삼매의 표상에 집중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비구는 아직 얻지 못한 유익한 법은 얻을 수 있고 이미 얻은 유익한 법은 늘릴 수 있다."
상인 경2(A3:20)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상인은 머지않아 재산이 많게 되고 가득하게 된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상인이 [지혜의] 눈을 가졌고 부지런하고 후원자를 가진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상인이 [지혜의] 눈을 가졌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상인이 상품을 안다. 이 상품을 이렇게 사서 이렇게 팔면 자본은 이만큼 들 것이고 수익은 이만큼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상인은 [지혜의] 눈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상인이 부지런한가?
비구들이여, 여기 상인이 상품을 사고파는 데 능숙하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상인은 부지런하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상인이 후원자를 가지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많은 재산과 재물을 가진 부자인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이 상인은 [지혜의] 눈을 가졌고 부지런하고 처자를 부양하는 능력이 있고 우리에게 때때로 이윤을 남겨줄 것이다.'라고 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상인이여, 이 상품을 가져가서 돈을 벌어 처자를 부양하고 우리에게도 때때로 이윤을 주시오.'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상품을 넘겨준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상인이 후원자를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상인은 머지않아 재산이 많게 되고 가득하게 된다."
2.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를 가진 비구도 머지않아 거룩한 선법을 많이 얻는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의] 눈을 가졌고 부지런하고 후원자를 가진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지혜의] 눈을 가졌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지혜의] 눈을 가진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부지런한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고 유익한 법[善法]을 일으키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그는 굳세고 분투하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짐을 내팽개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부지런하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후원자를 가지는가?
비구들이여, 많이 배웠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359) 법(경장)을 호지하고 율[장]을 호지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호지하는360) 비구들이 있다. 비구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묻고 질문한다. '존자들이시여, 이것은 어떻게 되면 이 뜻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그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해주고 여러 가지 의심되는 법에 대해서 의심을 없애준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후원자를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를 가진 비구는 머지않아 거룩한 선법을 많이 얻는다."
356) '외도'는 añña(다른)-titthiya(여울 혹은 성소에 있는 자)를 옮긴 것이다. 외도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밧디야 경」 (A4:193)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357) '유행승(遊行僧)'으로 옮긴 paribbājaka는 pari(around)+√vraj(to proceed, to wander)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초기경에서 많이 나타나며 집을 떠나 수행하는 부처님 제자를 제외한 출가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에서는 "재가의 속박을 버리고 출가한 자(gihibandhanaṁ pahāya pabbajjūpagata)"(MA.ii.7)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석서와 복주서에 의하면 유행승에도 옷을 입는 유행승(channa-pari-bbājaka)과 옷을 입지 않는 유행승(nagga-paribbājaka)이 있었으며 옷을 입지 않는 유행승을 나체수행자(acela)라 부른다.(DA.ii.349; DAT.i.472, 등)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리저리(pari) 방랑하다(√ vraj)'라는 원어에 충실하여 유행승으로 옮겼다.
한편 경에서 비구들의 출가를 빱빳자(pabbajjā, pra+√ vraj, pabbajati)라 표현하여 일반 유행승에 관계된 빠리바자까(paribbājaka)라는 이 용어와는 구분지어 사용하고 있다.
358) 부처님 교단에 출가하는 것은 결코 천상의 신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탈ㆍ열반을 실현하고 삼계윤회를 벗어나는 청정범행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출가자는 우선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불선법 부터 멀리 여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것이다.
359)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한 자(āgatāgama)'에서 하나의 니까야(nikāya)가 하나의 전승된 가르침(āgama)이다. 둘의 ··· 셋의 ··· 넷의 ··· 다섯의 니까야가 다섯의 전승된 가르침이다. 이러한 전승된 가르침들 가운데 단 하나의 전승된 가르침일지라도 전승 받고(āgata) 능통하고(paguṇa) 전개하는(pavattita) 자를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한 자라 한다."(AA,ii.189)
360) "'논모(論母, 마띠까)를 외우는 자(mātikā-dhara)'란 두 가지 논모를 외우는 자이다."(AA,ii.189)
"두 가지 논모를 외우는 자란 비구와 비구니 논모의 두 가지 마띠까를 외우는 자를 말한다. [그러나] 율과 아비담마의 마띠까를 외우는 자가 적절하다(yutta)."(AAT.ii.83) 즉 전통적으로 두 가지 논모는 비구계목과 비구니계목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문맥상 율의 논모와 아비담마의 논모를 외우는 자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 복주서의 견해이다.
논노(論母, 마띠까)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선서의 율 경」(A4:160) §5의 주해를 참조할 것.
제2장 마차공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