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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과 귀동냥으로만 들었던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이야기를 원본으로 감상해 보세요.
읽다보면 오타 있습니다. 찾아서 고치세요^^]
인어 공주 – 안데르센 (원고지 123매)
육지에서 바다 저 멀리 끝으로 나가면, 물은 수레국화처럼 푸르고 수정처럼 투명합니다. 아무리 긴 밧줄을 풀어도 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그 바다 속에 인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다 속에는 하얀 모래만 있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신기한 나무와 해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줄기나 잎이 유연해서 물이 조금만 일어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살랑살랑 움직입니다. 가지 사이를 크고 작은 고기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새들이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바다 아주 깊숙한 곳에 인어의 용궁이 있었습니다. 산호로 된 성벽과 높은 창은 투명한 호박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지붕은 물이 흐를 때마다 열렸다 닫혔다 하는 조가비로 되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조가비 하나하나에는 빛나는 진주가 박혀있었습니다.
왕은 몇 년 전에 왕비를 잃고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세가 많으신 왕의 어머니가 집안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왕의 어머니는 현명한 분이었지만, 자신이 왕족 출신인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겨 꼬리에 열두 개나 되는 장식품을 달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신분이 높은 인어라도 여섯 개 이상의 장식을 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 외에는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손녀 인어 공주들을 무척 귀여워해 주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모두 여섯 명이었습니다. 모두 예쁘게 생겼지만, 그중에도 막내 인어 공주가 제일 고왔습니다. 막내 인어 공주의 살결은 장미꽃처럼 보드라웠고, 눈은 깊은 바다처럼 푸른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이 없고 물고기의 꼬리가 달려 있었습니다.
인어공주들은 매일 성안에서 놀았습니다. 넓은 홀의 벽에는 꽃이 피어 있었고, 큼직한 호박으로 된 창문을 열면 물고기가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창을 열면 제비가 날아 들어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어 공주는 물고기에게 손으로 먹이를 주기도 하고 어루만져주기도 했습니다.
성 밖으로 커다란 정원이 보이고, 푸르고 울창한 나무와 불꽃처럼 새빨간 나무가 있었습니다. 줄기와 잎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나무 열매는 황금빛처럼 보였고, 꽃은 타오르는 불처럼 번뜩였습니다. 바다 속에는 아주 고운 모래가 유황의 불길처럼 푸르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푸른빛 속에 있으면 하늘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잔잔할 때에는 해님도 보였습니다. 바다 속에서 보면 해님은 보라색 꽃처럼 보였는데, 꽃술에서 떨어져 나간 꽃잎이 내려쬐는 햇빛으로 부서진 것 같았습니다.
작은 인어 공주들은 정원 안에 각자 작은 화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기 화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기 화단은 자기가 좋아하는 모양으로 꾸밀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래 모양의 화단이 있는가 하면 인어 모양의 화단도 있었습니다. 막내 인어 공주는 해님처럼 동그랗게 만들어 붉은 꽃으로 장신한 화단을 만들었습니다. 막내 인어 공주는 조용하고 생각이 깊으며 좀 엉뚱한 데가 있었습니다. 언니들은 침몰한 배에서 주워온 여러 신기한 것으로 화단을 장식하는데, 막내 인어 공주의 화단에는 해님을 닮은 장미색 꽃과 아름다운 대리석상만 달랑 있었습니다. 투명하고 하얀 대리석으로 조각된 아름다운 소년의 얼굴상이었습니다. 언젠가 바다 속으로 침몰한 난파선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막내 인어 공주는 이 소년상 옆에 장밋빛 수양버들을 심었습니다. 수영버들에서 싱싱한 가지가 푸른 모래 바닥에 닳을 정도로 풍성하게 자나나 조각 위에 보라색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물결을 따라 줄기가 움직일 때마다 수양버들의 가지와 뿌리가 입을 맞추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인어 공주는 인간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배와 마을, 인간과 동물 등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일은 지상에서는 꽃에서 향기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다 속 꽃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거든요. 또 숲은 아름다운 초록색이고, 물고기는 달콤한 소리로 재미있는 노래를 부른다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물고기라고 한 것은 작은 새를 말합니다. 작은 새를 본 적이 없는 손녀들이 새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열다섯 살이 되면 바다 위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겠다. 바위에 앉아서 달빛을 받으며 커다란 배를 바라보기도 하고, 숲과 마을을 구경하기도 하렴.”
내년이면 첫째 언니가 열다섯 살이 됩니다. 인어 공주들은 모두 한 살 터울이었기 때문에, 막내 인어 공주가 바다 위로 올라가 지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은 5년이나 뒤의 일이었습니다.
공주들은 바다 밖으로 나가서 맨 처음 본 것과 가장 아름다웠던 것을 동생들에게 말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할머니가 이야기해 주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알고 싶은 일이 참 많았습니다.
바다 밖으로 가장 나가고 싶어 한 공주는, 제일 오래 기다려야 하는 막내였습니다. 막내 인어 공주는 밤마다 열려진 창밖에 서서 푸른 물결을 가르며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달도 별도 보였습니다. 물을 통해 보는 달빛과 별빛은 희미했지만 무척 크게 보였습니다. 인어 공주는 머리 위를 지나는 것이 고래 아니면 많은 사람들을 태운 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배에 탄 승객은 바다 속에서 인어 공주가 하얀 손을 뻗치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겠죠.
제일 큰 인어 공주가 열다섯 살이 되어 바다 위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첫째 언니는 동생들에게 해줄 이야기를 한 보따리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제일 아름다웠던 것은, 달빛이 밝게 비추는 고용한 바닷가 모래 언더에 앉아서 본 오색찬란한 바닷가의 큰 마을이었어. 수백 개의 별빛 같은 불빛이 빛나고 있었어, 정말 즐거웠던 일은 음악소리와 부릉부릉대는 차 소리,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듣는 거였단다. 그리고 많은 교회 탑과 교회 종소리는 정말 멋졌어.”
막내 인어 공주는 다른 언니들보다 더 열심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밤마다 열린 창가에 서서 푸른 물결을 올려다보며,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갖가지 소리가 들린다는 큰 마을을 마음속으로 상상했습니다. 교회의 종소리가 바다 속까지 들리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둘째 인어 공주가 바다 위로 나갔습니다. 인어 공주가 바다 위로 떠올랐을 때 마침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금빛으로 물든 하늘에 떠 있는 아름다운 구름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검붉은 색으로 물든 구름이 머리 위를 둥실둥실 흘러갔습니다. 구름보다 빠른 백조의 무리들이 길고 하얀 베일처럼 한 줄로 나란히 지는 해를 향해 헤엄쳐 가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자 바다 위와 구름 위를 물들였던 장밋비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셋째 인어 공주가 바다 위로 나갔습니다. 셋째는 인어 공주들 중에서 가장 모험심이 강해서 넓은 강을 가로질러 헤엄쳐 가서 포도 덩굴이 우거진 아름다운 푸른 언덕을 바라보았습니다. 커다란 숲 사이로 오래된 성과 농가가 보이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셋째 인어 공주는 햇살이 매우 뜨거워서 발개진 얼굴을 삭히느라 바다 속으로 들락날락했습니다.
어느 좁은 냇가에서는 발가벗은 아이들이 물속에서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습니다. 셋째 인어 공주는 아이들과 같이 놀려고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깜짝 놀라서 냅다 도망쳤습니다. 그때 작고 검은 동물 하나가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개였습니다. 인어공주는 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인어 공주를 향해 개가 짖어댔습니다. 인어 공주는 너무 무서워서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숲과 푸른 언덕, 물고기 꼬리 없이도 헤엄을 잘 치던 귀여운 꼬마들의 모습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넷째 인어공주는 용기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바다 한 가운데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했습니다.
주변은 시원하게 훤히 트였고, 하늘은 커다란 유리로 만든 둥근 천장처럼 보였습니다. 가끔 배가 지나갔고, 저 멀리 갈매기도 보였습니다. 돌고래들이 재주를 넘었고 큼직한 고래들은 콧구멍으로 수백 개의 분수를 뿜어댔습니다.
다섯째 인어 공주의 생일은 한겨울이었기 때문에 언니들이 못 보았던 것을 보았습니다. 바다는 녹색으로 변하고 주위에는 빙산이 떠 있었습니다. 공주는, 빙상은 진주처럼 아름다우며 인간이 만든 어떤 교회의 탑보다도 훨씬 크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저마다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고,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빛났습니다. 다섯째 인어 공주는 제일 큰 빙산 위에 올라가 긴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옆을 지나는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방향을 바꾸고 가버렸습니다.
해가 지자 하늘 가득 구름이 몰려오더니 천둥과 번개가 쳤습니다. 거대한 파고가 일었고, 붉은 번갯불이 위로 치솟은 빙산들에 비치어 번쩍번쩍 빛났습니다. 사람들은 배의 돛을 내리고 무서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파도에 휩싸인 빙산 위에 조용히 앉아 푸른 번개 불이 지그재그를 그리며 바다 위로 쏟아지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언니들은 바다 밖으로 처음 나갔을 때 보고 들은 모든 일이 신기하고 아름답다고 한창 들떠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무 때나 바다 위에 나갈 수 있게 되자 그런 열정은 곧 식어버리고 집에 있는 때가 많아졌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인어 공주들은 “바다 속이 가장 아름다고 살기 편해”라고 말했습니다.
매일 밤, 다섯 자매는 손을 잡고 바다 위로 올라갔습니다. 모두들 목소가 아름다웠습니다. 폭풍으로 배가 가라앉을 것 같으면, 인어 공주들은 배로 다가가 “바다 속은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하며 아름다운 바다 속에 대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인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폭풍우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바다 속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배가 침몰하면 인간은 모두 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어의 용궁에 도달했을 때는 모두 시체가 되어 있습니다.
언니들이 매일 밤바다 위로 올라갈 때 막내 인어 공주는 혼자 남아 언니들의 뒷모습만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울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인어에게는 눈물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만큼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아, 나도 빨리 열다섯 살이 되었으면 좋겠어! 난 바다 위의 세계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인간을 좋아하게 될 거야.”
막내 인어 공주가 말했습니다.
마침내 막내 인어 공주도 열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너도 이제 어린이가 아니구나. 이리 온, 언니들처럼 너도 화장을 시켜주마.”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는 흰 백합 화관을 인어 공주의 머리에 씌워주었습니다. 절반 정도가 진주로 장식된 화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여덟 개의 커다란 조가비를 인어 공주의 꼬리에 달아주었습니다.
“할머니 아파요!”
인어 공주가 말했습니다.
“아름답게 보이려면 참아야 한단다.”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인어 공주는 호화스러운 장식들은 떼어버리고 무거운 화관도 벗고 싶었습니다. 정원에 핀 붉은 꽃이 더 어울렸을 것입니다. 인어 공주는 “안녕!”하고 인사하면서 거품처럼 가볍게 물위로 올라갔습니다.
막내 인어 공주가 물 위로 나왔을 때는 막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구름은 장밋빛과 금색으로 빛나고, 황혼 빛으로 물든 하늘에는 초저녁별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바람은 잔잔하고, 파도 한 점 일지 않는 바다 위에는 큰 배 한 척이 떠 있었습니다. 배는 돛을 한 개만 펼쳤는데 밧줄과 돛을 편 후미에 선원이 앉아 있었습니다. 배에서는 음악과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어두워지자 배에는 수백 개의 등불이 밝혀졌습니다. 마치 만국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것 같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선실 창가로 바짝 다가갔습니다. 파도에 몸이 들릴 때마다 창문 유리 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안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은 부리부리한 검은 눈이 매력적인 젊은 왕자였습니다. 왕자는 열여섯 살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배 안에서는 왕자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선원들이 갑판 위에서 춤을 추고, 수백 개의 불꽃이 터졌습니다. 순간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져서 인어 공주는 깜짝 놀라 물속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다시 얼굴을 내민 공주는 또 깜짝 놀랐습니다. 하늘에 있는 별이 사람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인어 공주는 불꽃놀이를 처음 보았습니다. 커다란 해가 펑펑 소리를 내면서 돌기도 하고, 예쁜 불꽃 물고기가 파란 하늘 위로 춤을 추며 올라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광경이 조용한 바다 속으로 거울처럼 반사되었습니다. 환한 불꽃이 배와 인간을 비추자 아주 작은 밧줄까지 다 보였습니다. 젊은 왕자는 정말로 아름다운 분이었습니다. 왕자가 웃으면서 사람들과 악수를 하는 동안, 감미로운 음악이 밤하늘 위로 울려 퍼졌습니다.
밤이 깊었는데도 인어 공주는 배와 아름다운 왕자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화려한 등불은 모두 꺼지고, 불꽃도 더 이상 밤하늘로 날아오르지 않았으며, 폭죽 소리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이때 바다 속에서 희미한 울림이 들렸습니다.
인어 공주는 여전히 물 위에 떠서 배 안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돛이 하나 둘 펴졌습니다. 파도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괴상한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멀리서 번개가 쳤습니다.
무시무시한 폭풍이 불 것 같았습니다.
선원들은 재빨리 돛을 접어 올렸습니다. 거대한 배는 울부짖는 바다 위를 출렁거리면서 화살처럼 빠르게 돌진했습니다. 파도가 높은 산처럼 일어 금방이라도 배를 덮칠 것 같았습니다. 배가 백조처럼 높은 파도 속으로 가라앉았다 치솟았다 했습니다. 인어 공주에게는 무척 재미있는 광경이었지만 배에 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배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두꺼운 선판이 강한 물살에 부서지고 큰 돛대가 갈대처럼 동강 부러졌습니다.
드디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물이 와르르 흘러 들어왔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제야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바다 위에 떠다니는 배의 파편에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방이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는데 갑자기 번개가 쾅하고 내리치더니 밝아져서 바다 위가 잘 보였습니다. 어느 새 배위에는 시끌시끌해졌습니다. 인어 공주는 얼른 젊은 왕자를 찾았습니다.
인어 공주가 왕자의 모습을 찾는 순간, 배가 두 동강이가 나면서 깊은 바다 속으로 왕자와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를 바다 속으로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잠깐 기뻤지만, 곧 인간은 물속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과 용궁으로 가기 전에 죽어버릴 거라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를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널려 있는 배 조각들을 피해서 왕자가 있는 쪽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배 파편에 부딪히면 자신도 산산이 부서질 수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말입니다. 인어 공주는 깊숙이 잠수하여 파도 위로 높이 올라가면서 드디어 젊은 왕자가 있는 곳으로 헤엄쳐갔습니다.
이미 왕자는 헤엄칠 수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아름다운 눈을 꼭 감고 있었습니다.
만약 인어 공주가 찾지 않았다면 왕자는 죽어버렸을 것입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의 머리를 물 위에 들어 올린 다음 파도 위를 둥둥 떠다녔습니다.
아침이 되자 폭풍은 사라졌고 배 역시 흔적도 없었습니다. 해님이 떠올라 물 위를 비추자 왕자의 볼에 생명의 빛이 비춰진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여전히 왕자의 눈은 감겨 있었습니다. 바다 속 작은 화단에 있는 대리석상과 왕자가 닮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에게 키스를 하며 다시 살아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육지가 보였습니다. 높푸른 산 정상에는 백조가 잠자고 있는 것처럼 눈송이가 빛났습니다. 해변 근처에는 아름답고 푸른 숲이 있었는데 그 옆에 교회처럼 생긴 건물이 보였습니다. 정원에는 레몬과 오렌지나무가 무성했고, 문 앞에는 키 큰 종려나무가 있었습니다. 바다는 작은 만을 이루고 있어서 물살이 잔잔했고, 안쪽으로 펼쳐진 모래밭에서는 보드랍고 하얀 모래가 파도에 씻기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아름다운 왕자를 안고 헤엄쳐 가서 햇볕이 잘 드는 모래 위에 왕자를 눕혔습니다.
그때 크고 하얀 건물 안에서 종소리가 울리더니 소녀들이 정원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인어 공주는 바다로 뛰어 들어가 커다란 바위 뒤에 숨었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물거품으로 머리와 가슴을 숨기고 어떤 소녀가 이 불쌍한 왕자 곁으로 오는지를 지켜보았습니다.
잠시 후, 한 젊은 처녀가 왕자를 발견했습니다. 처녀는 몹시 놀라는 듯하더니 곧 다른 사람들을 불러왔습니다. 정신을 차린 왕자는 뺑 둘러선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에게는 미소를 짓지 않았습니다. 인어 공주가 자기를 구했다는 것을 왕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어 공주는 무척 슬펐습니다. 왕자가 큰 건물 안으로 옮겨지자, 인어 공주는 울면서 바다 속으로 잠기며 아버지가 있는 용궁으로 돌아갔습니다.
막내 인어 공주는 늘 뭔가를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바깥세상을 다녀온 뒤로 더 심해졌습니다. 언니들은 바다 위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여러 번 물어 보았지만 막내 인어 공주는 한마디로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도 인어 공주는 왕자와 헤어졌던 모래밭으로 몇 번이나 갔습니다. 정원에 있는 과일들이 무르익어 손으로 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산 위에 쌓였던 눈도 녹았습니다. 하지만 왕자의 모습만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인어 공주는 슬픔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작은 화단에 있는, 왕자를 닮은 아름다운 대리석상을 껴안아보는 것만이 유일하게 인어 공주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막내 인어 공주의 꽃밭은 전혀 돌보지 않아서 잡초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꽃과 잡초는 날로 무성해져서 긴 잎과 줄기가 나뭇가지를 칭칭 감아 주변이 어두워 졌습니다.
마침내 인어 공주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한 언니에게 마음속의 슬픔을 털어 놓았습니다. 곧 다른 언니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언니들과 다른 두서넛 인어뿐이었습니다. 언니들이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니의 친구 중 하나가 왕자를 알고 있었습니다. 왕자의 생일 날 배 위에서 잔치를 하던 광경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인어는 왕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자, 가자.”
언니들이 말했습니다. 인어들은 모두 어깨를 감싸고 왕자가 있는 궁전의 해변으로 올라갔습니다.
궁전은 광택이 나는 크림색 돌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커다란 대리석 계단이 몇 개 있었는데 계단 한쪽은 바다로 이어졌습니다. 화려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지붕과 건물 주변을 둘러 싼 둥근 기둥 사이에는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대리석상이 서 있었습니다. 수정같이 투명하고 높이 솟은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값비싼 커튼이 쳐 있었고 융단이 깔려져 있었습니다.
벽에는 큰 그림이 몇 개나 걸려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가장 큰 홀 가운데가 물소리를 내며 천장까지 높이 치솟았습니다. 유리로 된 천장에서는 햇살이 들어와 물 위와 커다란 수반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수초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왕자가 살고 있는 궁전을 알게 된 막내 인어 공주는 매일 밤 바다 위에 올라가 아무도 없는 어두운 궁전 근처로 갔습니다. 그리고 좁은 수로를 헤엄쳐서 근사한 대리석이 있는 발코니 아래까지 갔습니다. 인어 공주는 물 위에 솟은 발코니 그늘에 몸을 숨기고 젊은 왕자를 쳐다 보았습니다. 왕자는 누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모른 채 밝은 달빛을 받으며 잠자코 서 있었습니다.
왕자가 노래를 부르며 보트를 타고 밤바다에 나오면, 인어 공주는 초록색 풀 그늘 사이에 숨어 귀를 기울였습니다. 인어 공주의 긴 머리카락을 장식한 끈이 바람에 날리면 사람들은 백조가 날개를 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횃불을 켜고 바다에 나와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젊은 왕자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인어 공주는 배가 침몰했을 때 죽을 뻔한 왕자를 구해준 일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왕자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껴안고, 정성껏 왕자의 이마에 키스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왕자는 아무 것도 몰랐으며, 꿈속에서라도 인어 공주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인간을 사모하게 된 막내 인어 공주는 인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세계는 인어의 세계보다 훨씬 넓은 것 같았습니다. 인간은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달릴 수도 있고, 구름보다 높은 산까지 오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육지에는 숲과 밭이 있고, 인어 공주의 눈이 닿지 않는 먼 곳까지 펼쳐져 있었습니다.
막내 인어 공주는 인간 세계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언니들도 대답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할머니는 ‘위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위 세계’는 할머니가 바다 위의 육지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였습니다.
“할머니,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나요? 바다 속에 사는 우리와 달리 인간은 죽지 않나요?”
막내 인어 공주가 물어 보았습니다.
“아니란다. 인간도 죽는단다. 우리는 3백년이나 살지만 인간은 우리의 일생보다 훨씬 짧지. 그러나 우리는 생명이 다하면 거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바다 속 무덤에 잠들 수 없단다. 우리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없기 때문에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거야. 마치 해초같아서 한 번 잘리면 두 번 다시 푸른 잎이 자라나지 못하자. 그런데 인간에게는 영혼이란 것이 있어서 육체가 죽어서 흙이 된 후에도 다시 태어난단다. 그리고 맑은 공기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 너머로 간단다. 인간 세계는 우리가 물 위로 떠오르면 볼 수 있지만 인간의 영혼은 우리가 결코 볼 수 없고 누구도 알 수 없는 신비한 세계로 가지.”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겐 왜 불멸의 영혼이 없어요? 단 하루 만이라도 좋으니까 인간이 되고 싶어요. 죽어서 그 천국이라는 곳에 갈 수 있다면, 단 하루를 위해 내 목숨의 백 년을 버려도 아깝지 않을 거예요!”
막내 인어 공주가 슬픈 듯이 말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위 세계 인간들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고 있잖니.”
“그럼 난 죽으면 거품이 되어 바다 위를 떠돌아야 하나요? 파도의 속삭임도 듣지 못하고, 예쁜 꽃과 붉은 해님도 보지 못하고요? 어떻게 하면 불멸의 영혼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런 방법은 없단다. 하지만 인간이 자기 부모보다 더 널 사랑하여 오직 너만을 생각하게 되면 가능하지, 그 사람이 마음속으로 널 사랑하고, 신 앞에서 그의 오른 손을 네 오른 손에 얹고,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언제까지나 진심으로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그 사람의 영혼이 네 몸속으로 흘러들어간단다. 그러면 인간의 행복을 나눌 수 있어. 그건 그 사람이 너에게 영혼을 나눠주어도 자신의 영혼이 없어지지 않는 다는 말인데, 그런 일은 결코 없단다. 게다가 바다 세계에서는 아름답다고 하는 네 꼬리를 육지에서는 흉측하게 생각하거든, 인간이 우리 꼬리의 진가를 모르는 거지, 위 세계에서는 ‘다리’라는 튼튼한 버팀목이 없으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아.”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있던 막내 인어 공주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꼬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자 기운을 내라. 우린 30백 년 동안이나 살 수 있잖니? 그 동안 즐겁게 춤추며 노래하며 지내자구나. 3백 년은 긴 세월이니까. 그 후에는 더 편히 쉴 수 있단다. 오늘 저녁에는 무도회를 열까?”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육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호화로운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커다란 무도회장의 벽과 천장은 투명하고 두꺼운 유리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벽마다 장밋빛과 풀빛이 도는 커다란 조가비가 푸른빛을 내어 바다 속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크고 작은 수많은 물고기가 유리벽 옆으로 헤엄쳐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비늘 색이 붉은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금색, 은색 비늘의 물고기도 있었습니다.
무도회장 가운데로 넓은 시냇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흘렀습니다. 남녀 인어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인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달콤한 목소리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막내 인어 공주의 목소리가 제일 고와서 모두들 손뼉을 치며 칭찬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최고로 아름답다는 사실에 인어 공주는 순간 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곧 바다 위의 세계가 떠올랐습니다. 아름다운 왕자에 대해 생각하니, 불멸의 영혼을 갖지 못한 자신의 불행이 도저히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신나게 춤추고 있는 동안 막내 인어 공주는 궁전에서 몰래 빠져나와, 자신의 작은 화단에 슬픔에 잠겨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뱃고동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마도 왕자님이 탄 배일 거야. 아버지보다 어머니 보다 더 좋은 왕자님, 난 어쩌면 좋아. 이렇게 왕자님 생각만 나니. 내 평생의 행복을 저분에게 맡겨도 좋아. 저분과 불멸의 영홍이 내 것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할 거야! 그럼! 언니들이 춤추는 사이에 바다의 마녀에게 가보자. 좀 무섭긴 하지만 틀림없이 도와줄 거야.”
인어 공주는 정원을 나와 사나운 소용돌이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마녀는 그 소용돌이 뒤쪽에 살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었습니다. 꽃은커녕 해초도 보이지 않았으며 회색 모래뿐인 곳이었습니다.
물과 해초 같은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것은 모조리 바다 깊숙이 빨려갔습니다. 마녀의 집으로 가려면 무엇이든 부숴버리는 이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지나가야 합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수렁도 건너야 했습니다.
수렁을 넘어가니 마녀가 사는 이상한 숲이 나타났습니다. 이 숲에 있는 나무와 꽃은 반은 동물이고 반은 식물인 두족류였습니다. 마치 수백 개의 머리가 달린 뱀이 땅에서 자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지는 끈적끈적한 긴 팔 같고 손가락은 유연하게 꿈틀거리는 지렁이 같았는데, 뿌리에서 나온 가지 마디마디 따로따로 움직였습니다. 한번 그 손아귀에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인어 공주는 무서워졌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려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왕자와 인간의 영혼을 생각하니 용기가 생겼습니다.
인어 공주는 두족류에게 잡히지 않도록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단단히 묶은 다음,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물고기가 헤엄치듯 몸을 뒤척이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두족류는 인어 공주를 잡으려고 손을 뻗쳤습니다. 두족류의 수많은 팔에는 바다에 빠져 죽은 인간들의 하얀 해골, 배에서 나온 물건, 육지 동물의 해골 등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작은 인어가 목에 졸려 죽은 모습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드디어 인어 공주는 숲 속 거대한 늪에 다다랐습니다. 늪에서는 큰 물뱀이 수렁 속에서 뒹굴며 흉측한 황색 배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늪이 한가운데에 난파당한 인간들의 해골로 지은 집이 있었습니다. 바로 마녀가 사는 집이었습니다. 마녀는 사람들이 카나리아에게 설탕을 빨게 하듯이 손에 모이를 담아 두꺼비에게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징그럽게 생긴 물뱀을 아가라고 부르며 자신의 가슴에 기어 다니게 내버려두었습니다.
“네가 뭘 원하는지 다 알지. 하지만 네 고집대로 하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야. 귀여운 공주마마! 그 남자 때문에 네가 불행하게 되어도 괜찮단 말이야? 네 꼬리를 없애고 인간들처럼 버팀목 같은 두 다리가 갖고 싶은 게지. 그 젊은 왕자 마음에 들어 왕자의 불멸의 영혼을 얻기 위해서 말이지!”
그러고 나서 마녀는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너무 크게 웃어서 두꺼비와 뱀이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아무튼 때맞춰 잘 왔다. 내일 해가 뜨면 1년 동안 너를 도와줄 수 없었거든. 이봐, 내가 물약을 만들어줄 테니 그걸 가지고 내일 해가 뜨기 전에 육지로 올라가서 그 약을 마셔. 그러면 네 꼬리가 줄어들면서 인간의 다리로 변하게 될 거야. 그리고 인간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아가씨라면 감탄할 게야. 하지만 너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날카로운 칼날 위를 밟아 피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거야. 그래도 참을 수 있다면 도와주마.”
“참고 말고요?”
인어 공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오로지 왕자와 불멸의 영혼만을 생각했습니다.
“말해두지만, 한번 인간의 몸이 되면 두 번 다시 인어가 될 수 없단다. 물속을 헤엄쳐 언니들과 아버지가 있는 용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지. 그리고 왕지가 너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자기 부모를 잊어버릴 정도로 너를 사랑하여 신 앞에서 부부의 인연을 맹세하지 않으면, 결코 불멸의 영혼이고 뭐고 얻을 수 없게 된다. 만약 왕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면, 다음날 너는 심장이 파열되어 거품이 되고 말 거야.”
마녀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인어 공주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창백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주는 대가로 내가 원하는 게 한 가지 있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지! 이곳에서 누구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너는 그 목소리로 왕자를 홀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 목소리다. 내가 가장 뛰어난 품질의 약을 주었으니 너는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게 줘라. 네 약의 효과가 잘 들 수 있도록 내 피도 섞을 테니까.”
“당신에게 내 목소리를 주고 나면 나에겐 뭐가 남지요?”
“아름다운 모습과 사뿐사뿐한 걸음, 입처럼 말을 전하는 눈이 있지.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아? 왜, 혹시 용기가 없어진 거냐? 자, 어서 내 작은 혀를 내밀어라. 약값 대신 잘라야 겠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인어 공주가 말했습니다.
마녀는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마법의 물약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난 워낙 깔끔해서 말이지.”
그러더니 마녀는 수세미 대신 뱀을 둘둘 말아 솥을 닦고, 자기 가슴을 칼로 찔러 검은 피 몇 방울을 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습니다. 그런데 김에도 모양이 있는지 아주 끔찍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녀가 솥에 다른 것을 넣었습니다. 솥이 충분히 데워지자 악어가 우는 듯한 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물약이 완성된 것 같아 얼핏 보니 묽은 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 잠시 기다리시고.”
마녀는 인어 공주의 혀를 잘랐습니다. 이제 인어 공주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노래도 부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숲을 빠져나갈 때 두족류들이 널 잡으려고 하면 이 물약을 몇 방을 떨어뜨려라. 그러면 두족류들의 팔다리가 산산조각 날 거야.”
마녀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두족류들은 인어 공주가 손에 든 별처럼 반짝거리는 물약을 보는 것만으로도 겁을 내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덕분에 인어 공주는 쉽게 숲과 늪, 소용돌이를 빠져나왔습니다.
드디어 아버지가 계신 용궁이 보였습니다. 큰 무도회장의 불빛은 꺼져 있었습니다. 모두들 잠을 자고 있겠죠. 하지만 인어 공주는 말을 할 수도 없어서 이대로 떠날 참이었습니다. 인어 공주의 가슴은 슬픔으로 찢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조용히 정원에 들어가 언니들의 화단에서 꽃 한 송이씩 꺾고, 궁전을 항해 몇 번이고 키스를 한 다음 푸른 바다 위로 올라갔습니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인어 공주는 왕자가 사는 궁전의 멋진 대리석 계단으로 올라갔습니다. 아직 달빛이 주변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타는 듯 한 강한 물약을 마셨습니다. 그러자 양쪽으로 날카로운 칼이 가냘픈 몸을 쑤시는 듯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햇빛이 바다 위를 비추기 시작했을 때 인어 공주는 눈을 떴습니다. 얼얼하게 온몸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 아름다운 젊은 왕자가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자가 검은 눈으로 지그시 인어 공주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인어 공주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았습니다. 놀랍게도 어느새 꼬리가 사라지고 귀여운 여자 아이처럼 희고 아름다운 다리로 변해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벌거벗은 몸을 긴 머리카락으로 가렸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거요?”
왕자가 물어보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푸른 눈으로 슬픈 듯이 왕자를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왕자는 인어 공주의 손을 잡고 궁전 안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걸을 때마다 마녀의 말처럼 뾰족한 바늘과 날카로운 칼 위를 걷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그래도 인어 공주는 기쁘게 아픔을 참았습니다. 왕자가 손을 잡아주어 거품처럼 가볍게 계단을 우아하고 사뿐거리는 아름다운 아가씨의 발걸음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습니다.
궁전에 도착한 인어 공주는 값비싼 비단과 모슬린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였지만, 불쌍하게 인어 공주는 노래도 부를 수 없었고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비단과 황금 옷을 입은 아름다운 시녀들이 나와 왕자와 왕, 왕비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 한 시변가 특히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인어 공주는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목소리를 잃지만 않았다면 그보다 더 곱게 부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아, 왕자님! 나는 당신 곁에 있고 싶은 마음 하나로 영원히 내 목소리도 버렸어요. 이 사실을 알아주시기만 해도 얼마나 좋을까!’
인어 공주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시녀들이 멋진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희고 고운 팔을 들어올리며 발끝으로 마룻바닥에서 미끄러지듯이 춤을 추었습니다. 이렇게 멋지게 춤을 추는 사람은 모두들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춤을 추는 인어 공주의 모습은 한결 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인어 공주의 춤은 시녀들의 노래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흠뻑 적셨습니다.
왕뿐 아니라 모두들 넋을 잃었습니다. 왕자는 인어 공주를 ‘귀여운 업둥이 소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바닥에 발이 닿을 때마다 인어 공주는 날카로운 칼 위를 걷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 주오!”
왕자가 인어 공주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벨벳 이불이 깔려 있는 왕자의 방 앞에서 자도록 허락했습니다.
왕자는 인어 공주를 위해 남자 옷도 준비해 놓고, 승마복을 입히고 말에 태워 숲 속을 달리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숲속의 향긋한 향기를 맡으며 산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초록색 가지가 어깨에 닿았고, 서늘한 나무 그늘에서 작은 새들이 재잘거렸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와 함께 높은 산에도 올라갔습니다. 연약한 다리에서 피가 흘렀지만 인어 공주는 개의치 않고 웃으면서 왕자 뒤에서 따라갔습니다. 드디어 두 사람은 구름 위로 올라갔습니다. 먼 나라로 여행을 가는 새처럼 구름이 둥실 흘러갔습니다.
사람들이 잠든 조용한 밤이 되자. 인어 공주는 차가운 바닷물에 타는 듯한 발을 담갔습니다. 바다 속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어느 날 밤, 인어 공주의 언니들이 바다 위로 올라와서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가 손짓을 하자 막내의 모습을 알아본 언니들은 그 동안 모두들 얼마나 슬퍼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날부터 매일 밤 언니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밤은 몇 년째 바다 위로 올라오지 않았던 할머니와 왕관을 쓴 아버지의 모습고 멀리서 보였습니다. 두 분도 인어 공주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육지 가까이네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자는 인어 공주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자는 영리하고 아름다운 소녀를 귀여워하는 마음일 뿐 왕비로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어떻게든 왕자와 결혼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멸의 영혼은커녕 왕자가 다른 여성과 결혼한 다음날 자신은 거품이 되어버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왕자가 인어 공주를 안고 아름다운 이마에 키스를 했습니다.
‘왕자님은 나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나요?’
인어 공주는 아름다운 눈동자로 물었습니다.
“그럼,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워. 너는 누구보다 마음씨가 곱고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지. 그리고 언젠가 나를 구해주었던 아가씨와 꼭 닮았어. 예전에 내가 탄 배가 난파되어 어느 교회 근처의 바닷가에 밀려갔지. 거기서 사는 어떤 아가씨가 나를 발견하고 내 생명을 구해주었어. 그 후론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아가씨지. 너는 아가시와 정말 닮았어. 그 아가씨의 얼굴이 내 가슴 속에 새겨져 있어서 행운의 신이 나에게 너를 보내 주셨나 봐, 우린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거야.”
왕자가 대답했습니다.
‘아아, 제가 바로 왕자님의 목숨을 구해준 그 아가씨인걸요. 내가 왕자님을 바다에 교회가 있는 바닷가로 데리고 갔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왕자님을 도와주는 것을 숨어서 지켜보았지요. 그때 예쁜 아가씨가 왕자님을 도와주었는데. 왕자님은 그 아가씨를 사랑하게 된 거군요.’
인어 공주는 깊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그 아가씨가 교회에서 산다고 하셨어. 그렇다면 이 세상으로 다시 나오는 일은 없을 거야. 다시는 왕자님과 만날 수 없겠지. 난 이렇게 왕자님 곁에서 매일 지켜보며 돌보고 있잖아. 왕자님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바칠 거야.’
그런데 왕자가 결혼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웃 나라의 아름다운 공주를 왕지로 맞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자가 배를 우아하게 장식하라고 명령했던 것은 이웃 나라를 방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 나라의 공주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수행인들이 왕자와 함께 떠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습니다. 왕자의 마음을 누구보다고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웃 나라에 가야 해. 아름다운 공주를 만나고 올 거야. 부모님의 말씀이니까 따라야 해. 하지만 그 공주를 아내로 삼으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어. 그리고 난 그녀를 사랑할 수 없어. 아무리 예뻐도 나를 구해준 그 아가씨를 닮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그 아가씨를 닮은 건 바로 너뿐이야. 만약 내가 신부를 고른다면 바로 널 선택할 것야. 말할 줄 아는 눈을 가진 소리를 내지 못하는 업둥이 아가씨!”
왕자가 인어 공주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왕자는 인어 공주의 붉은 입술에 키스를 하고, 인어 공주의 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면서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인간으로서의 행복과 불멸의 영혼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넌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더구나.”
이웃 나라로 가려고 갑판 위에 선 왕자가 인어 공주에게 말했습니다. 왕자는 인어 공주에게 폭풍우와 잔잔한 바다와 깊은 바다 속에 사는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와 잠수부가 물속에서 본 신기한 것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바다 속의 일이라면 어느 누구보자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밝은 달이 뜬 밤, 배의 키를 조종하는 사람을 제고하고 모두가 잠이 들었을 때 인어 공주는 뱃전에 앉아 맑은 물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의 궁전이 보였습니다. 궁전의 탑 위에서는 은관을 쓴 할머니가 격렬한 물살 속에서 뱃전을 잠자코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언니들이 물 위로 떠올랐습니다. 언니들은 인어 공주를 슬프게 바라보면 하얀 손을 맞잡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언니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자신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배 조종사가 다가왔기 때문에 언니들은 물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조종사들은 뭔가 하얀 것을 본 것 같았지만 그저 물거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웃 나라의 아름다운 항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고 높은 탐에서 나팔 소리가 올려 퍼졌습니다. 병사가 깃발을 흔들며 번쩍이는 칼을 들고 나란히 섰습니다. 날마다 잔치가 이러지고 무도회와 연회가 베풀어졌습니다. 하지만 공주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공주는 멀리 있는 교회에서 자라며 왕비로서 갖추어야 할 여러 수업을 받았다고 합니다.
드디어 이웃 나라 공주가 돌아왔습니다.
인어 공주는 말로만 듣던 이웃 나라 공주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었습니다. 공주는 지금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우아한 분이었습니다. 비단결처럼 곱고 투명한 피부에, 길고 검은 속눈썹에는 진심이 어린 푸른 눈동자가 웃고 있었습니다.
“바로 당신이군요.”
왕자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내가 바닷가에서 쓰러져 있을 때 나를 구해준 분, 바로 당신이군요.”
왕자는 얼굴을 붉히고 있는 공주를 껴안았습니다.
“오오, 난 정말 행복해! 정말로 행복하다오!”
왕자가 이번에는 인어 공주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원해도 얻을 수 없다고 포기했던 소원이 이루어졌어. 너도 내 행복을 기뻐해 주겠지.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니까 말이야.”
인어 공주는 왕자의 손에 키스를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가슴은 슬픔으로 미어졌습니다. 이제 자신의 왕자의 결혼식 다음날 아침에 죽어서 거품으로 변해버릴 운명이었습니다.
교회의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전령들이 말을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면 결혼을 알렸습니다. 교회의 제단에서는 은 램프에 짙은 향기를 풍기는 기름이 타올랐습니다. 신부님들이 향을 피웠습니다.
신부와 신랑은 손을 맞잡고 훌륭한 신부님의 축복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금과 은으로 된 옷을 입고 신부의 치렁치렁한 드레스 자락을 들고 있었습니다. 축가도 귀에 들리지 않았고, 엄숙한 의식도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두컴컴한 죽음과 이 세상에서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를 뿐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신랑과 신부는 배에 탔습니다. 폭죽 소리와 형형색색의 깃발이 나부꼈습니다. 배 한가운데에는 금색과 자주색 커튼이 드리워지고, 아름다운 이불이 놓여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시원한 신혼의 첫날밤을 보내는 것이지요.
맑게 갠 날 돛을 부풀린 배가 바다 위를 경쾌하게 미끄러지듯이 흘러갔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화려한 램프에 불이 켜지고, 선원들이 갑판에서 흥겹게 춤을 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처음으로 바다위에 올라왔던 날 밤이 떠올랐습니다. 그날 밤도 똑같이 화려하고 즐거운 축제를 보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춤추는 선원들 틈에 끼어 제비가 무언가에 쫓기듯이 빙그르르 경쾌하게 춤을 추었습니다. 모두가 인어 공주에게 환호를 보냈습니다. 인어 공주는 지금까지 춘 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춤이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약한 발이 날카로운 칼에 찌르는 듯했지만 조금도 고통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왕자를 보는 마지막 밤입니다.
왕자를 위해 인어 공주는 가족도, 고향도 버렸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마저 바쳤습니다.
그리고 매우 한없는 고통을 참아왔습니다. 그런데도 왕자는 꿈속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왕자와 같은 공기를 마시는 일도, 깊은 바다를 바라보는 일도,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는 일도 이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제 영혼에 대한 희망도 풀을 수 없는 인어 공주를 기다리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꿈을 꿀 수도 없는 영원한 밤일 뿐 이었습니다.
흥겹고 즐거운 축제는 한 밤이 지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자신이 죽을 일을 생각하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었습니다.
왕자가 아름다운 신부에게 키스를 하고 신부가 왕자의 검은 머리카락을 어루만졌습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텐트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배 위는 다시 고요해지고 키잡이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흰 팔을 난간에 기댄 채 해가 떠오르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태양의 빛을 받으면 인어 공주는 죽을 것입니다
그때 인어 공주의 언니들의 파도와 함께 떠올랐습니다. 인어 공주처럼 모두 창백한 얼굴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름다고 긴 머리카락도 바람에 나부끼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머리가 싹둑 잘려나가고 없었습니다.
“우리는 마녀에게 머리카락을 주었단다. 너를 살려달라고 부탁했어. 그러니까 마녀가 이 칼을 주었단다. 자, 받아, 아주 날카로워, 해가 떠오르기 전에 이걸로 왕자의 심장을 찔러야해. 왕자의 따듯한 피가 네 발을 적시면 너는 꼬리가 생겨서 다시 인어로 돌아올 수 있어, 다시 바다 속에서 살 수 있는 거야. 어서 빨리! 어서! 해가 떠오르기 전에 왕자든 너든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해, 할머니는 너누 걱정하셔서 흰머리가 다 빠져버리셨단다. 우리 머리카락이 마녀의 가위에 잘려나갔듯이 말이야. 눈 딱 감고 왕자를 죽여! 어서 서둘러! 저기 봐, 하늘이 벌써 밝아지고 있잖아. 금방 해가 솟을 거야. 그러면 넌 죽어버리게 돼!”
언니들은 이렇게 말하고 깊은 한숨을 쉬며 파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인어 공주는 자주색 텐트를 열었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신부가 왕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몸을 숙이고 왕자의 아름다운 이마에 키스를 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침노을이 점점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날카로운 칼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왕자가 꿈속에서 신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왕자의 마음은 신부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를 가만히 쳐다보았습니다. 칼을 쥔 인어 공주의 손이 바르르 떨렸습니다.
인어 공주는 바다 속으로 칼을 던졌습니다. 칼이 떨어진 바다 속이 붉게 빛나며 핏방울이 물속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반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인어 공주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왕자를 보고 몸을 떨며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몸이 녹으면서 거품으로 변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해가 떠올라 따스하고 보드라운 햇살이 죽음처럼 차가운 거품을 비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태양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을 보니, 하늘에 수백 개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형상들이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너머로 흰 돛과 붉은 구름이 보였습니다. 투명한 형상의 목소리는 아름다운 음악 같았는데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날개가 없는데도 몸이 가볍게 공중으로 떠다니고 있습니다.
인어 공주는 자신의 몸도 똑같이 가벼워져서 거품 속에서 점점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난 어디로 가는 거죠?”
인어 공주가 물었습니다. 인어 공주의 목소리도 다른 형상들의 목소리와 같았습니다. 어떤 음악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오묘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공기의 딸들이 있는 곳으로!”
모든 형상이 대답했습니다.
“인어의 딸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다른 힘을 빌려야 합니다. 공기의 딸도 불멸의 영혼을 갖고 있지 않지만, 착한 일을 하면 영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살 수 없을 만큼 뜨겁고 더운 곳에서 시원한 바람을 불어줍니다. 또 꽃향기를 퍼뜨려 기분 좋고 상쾌한 기분으로 만들어줍니다. 이렇게 3백년 동안 착한 일을 계속하면 불멸의 영혼을 얻고 인간의 영원한 행복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불쌍한 인어 공주! 당신도 우리처럼 영혼을 얻으려고 진심으로 노력했군요. 고통을 겪으며 참아주어서 지금 공기의 정령들 세계로 오셨습니다. 앞으로 착한 일을 하면 3백년 뒤에는 당신도 불멸의 영혼을 얻을 수 있답니다.”
인어 공주는 투명한 양팔의 태양의 신을 향해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것을 흘렸습니다.
배 안에서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왕자가 아름다운 신부와 함께 인어 공주를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인어 공주가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진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부들거리는 물거품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사람에게 들키지 않도록 신부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왕자에게 미소 지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공기의 정령들과 함께 장밋빛 구름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3백 년이 지나면 우리도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 있겠죠.”
“더 빨리 올라갈지도 모르죠.”
공기의 정령 하나가 속삭였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서.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고 귀염을 받는 기특한 아이를 찾으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시련의 시간을 단축해 주십니다. 우리가 방에 들어가는 것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답니다. 우리가 기쁨 속에서 아이들에게 미소를 지으면 3백 년에서 1년이 줄어들지요. 하지만 예의 바르지 못한 나쁜 아이를 보면 슬퍼서 눈물이 나오게 됩니다. 눈물을 흘리면 시련의 시간이 1년씩 늘어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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