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종로에 도착했을 때는 11시가 지나 있었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귀갓길을 서두르거나 자리를 옮겨 유흥을 이어가기 바쁜 인파들이 술렁였다. 줄지은 버스와 외곽 차선으로 몰린 택시들이 아수라장을 이루는 곳을 겨우 빠져나온 존은 휘둥그런 눈으로 주위를 살핀다. 자정이 다되어가는 시간에 이처럼 많은 이들이 대로변을 가득 매우고 있으니 진풍경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늦어 요금을 청구하지 않는 낙원상가 아래 유료주차장으로 차를 대게하고 종로 거리로 나섰다. 구경삼아 종각까지 걸었다가 밀레니엄타워를 끼고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번화가의 이면에 후미진 골목과 쓰러질 듯 지탱하고 선 허술한 가옥들도 그에겐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음식점? 찻집? 연신 물어가며 기웃거렸다. 쪽창이 낮아서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그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해야 했다.
게이바 가야죠.
난 산만해진 그에게 미끼라도 던지든 툭 말했다.
아는 데 있어요?
알죠. 친구가 게이인데.
능청을 떨면서 앞장서는 내 뒤로 그의 바빠진 발소리가 따라붙었다.
술은 뭐 좋아해요? 포장마차는 아세요? 혹 칵테일 좋아해요?
연이어 질문을 던지고 있으니 어쩐지 흥을 내는 쪽이 내가 된 것 같았다. 기실 오가며 간판이나 봤을 뿐 나도 종로의 빠는 거의 알지 못했다. 익숙한 곳도 있지만 찾아갔다가 주인이라도 알은 체를 하면 곤란했다. 차라리 한국말을 잘 못한다면 편했으리란 엉뚱한 아쉬움이 들었다.
미스터 정은 뭐 좋아해요?
저요?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질 않는다. 꽤나 흥미로울 터였다. 너무 어린 사람들이 모이는 곳 보다는 삼십대가 주로 가는 곳이 나을까. 그러고 보니 존의 나이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결혼 생활 기간과 후에 떠돌던 햇수며 태국에서 살던 시기 등을 대충 조합해도 마흔이 조금 넘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양주가 편할 테니 어린 친구들이 모이는 소주방 보다는 삼십대 전후로 나잇대가 형성되어 있는 칵테일 바가 낫지 싶다. 마땅한 곳이 있긴 했지만 예전에 주로 가던 곳이라 주인과도 낯이 익어서 곤란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곳이 있었다. 호젓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외부 인테리어가 보기 좋아 눈여겨봤던 곳이다.
처음엔 골목을 누비며 들어가니 의외인 모양이다. 존은 모텔만 즐비한 풍경에 과장되게 눈을 크게 뜨고는 우리 자러가요? 농을 했다. 그렇게 자신 있어요? 되받아 치고는 아차 싶어 입을 다문다. 나 인기 많아요. 존이 여전히 개구지게 말하는 걸 보니 다행이 농담에서 지나치진 않은 모양이었다.
술집에 들어서자 주위의 시선이 돌아본다. 그들은 장신의 존을 올려다보느라 앉은 자세로 고개를 한껏 젖히는 통에 은밀해야 할 시선을 감추지 못한다. 나는 얼른 바로 다가섰다. 스치는 시야에는 빈 테이블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 바에는 자리가 여럿 남아 있어서 일단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술을 시키느라 메뉴를 청하고 보니 존은 아예 뒤를 돌아 테이블이 즐비한 홀 쪽으로 향해 앉아 있다. 남의 시선을 즐기는 듯 보였고 자신의 시선을 과시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긴 성장한 문화가 다르니 그저 자연스러운 행동인지도 몰랐다.
존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기도 하는데 아마 저쪽에서 먼저 장난을 걸었는지 중간 테이블 쯤 몰려 앉은 일단의 무리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존이 벙싯 거리는 표정은 볼만해서 어린 아이에게 사탕이라도 물려준 듯 했다. 난 존에게로 고개를 기울이고 속삭이듯 말했다.
한국말에 비싼 척 한다는 말이 있어요. 아세요?
비싼 척?
너무 좋은 티를 내면 상대방이 매력을 덜 느낀다는 거예요.
정말요?
조금은 무관심한 척 하는 게 관심을 사기 좋다는 거죠.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얼른 돌아앉는 양이 되레 어색해보이기도 했다. 괜히 속삭이는 통에 남들이 혹여 애인으로 볼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개까지 푹 숙인 채로 그 역시 속삭였다.
미국에서는 하늘만 쳐다본다는 말이 있어요.
무슨 뜻인데요?
잘난 척 하느라고 사람들은 안보고 위만 올려다본다는 거예요.
사람들을 보지 않는 것이 무례라는 말이 된다. 그가 길다란 손가락을 뻗어 천정을 찌르는 시늉을 하더니 짐짓 눈을 치켜들었다. 쿡쿡거리던 나는 소위 코를 든다는 표현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라 말을 꺼낼까 하다 그만 두었다. 둘이 길게 속삭여서 좋을 게 없을 터였다.
술은 뭐 드시겠어요.
바텐더가 물었다. 나는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를 부탁했다. 바텐더는 고개를 돌려 존을 향하고도 입은 내게 향한 채 다시 물었다.
친구 분은요?
직접 물어 보세요. 한국 말 잘하세요.
더리 마티니 부탁합니다.
그가 강조하듯 또렷한 영어 발음과 한국어 발음을 강조해서 말했다.
잘 하시네요.
머쓱한 표정으로 바텐더가 말하자 의기양양한 미소가 존의 입가에 떠올랐다. 물러나려던 바텐더가 조심스러울 필요는 없는데도 지나치듯 슬쩍 물었다.
애인이세요?
아니요.
말해 놓고는 상사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를 어떻게 소개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에요.
존이 대뜸 대답하고 나섰다. 되묻는 듯한 바텐더의 시선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경계심이 들었다. 존과 이처럼 친밀해 지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서울에 오게 되면 나를 찾을 것이고, 혼자 오더라도 우연히 바에서 마주치게 될 수도 있을 터였다. 한 두 번은 몰라도 종로 거리에서 마주치는 횟수가 늘게 되면 그도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더라도 큰 문제가 되진 않을 수 있으나 혹여 나에 대한 얘기까지 발설하게 되면 어찌 될까. 미스터 정은 친구 중에 게이가 있어 게이바를 다닌다더라는 말만 나오더라도 다른 동료들이 듣게 되면 의혹을 품지 않을까. 생각이 많아질수록 어깨가 조금씩 움츠려드는 것 같았다.
치어스!
술이 내어진 것도 모르고 있다가 존이 권하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술잔을 부딪치고 술을 들이키느라 들린 시선으로 바의 구석에서 주방으로 보이는 입구의 커튼을 젖히고 나오는 다른 바텐더가 보였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려다 시선이 붙들린 것은 그가 놀라는 기색을 보인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 긴가민가 싶은 표정이다가 곧 확신을 얻은 듯 환하게 얼굴을 펴며 다가섰다.
정말 오랜만이다. 어떻게 여길 왔어?
네?
한 삼년 됐나? 전에 포장마차에서 날 새고 처음이지?
모르는 사람이 친근하게 대하는 상화보다 존의 시선이 더 의식된 나는 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죄송한데 전 기억이 없어서요.
응?
그는 새삼스레 내 얼굴을 면면히 살피고는 아차 싶은지 어깨를 붙들었던 손을 땠다.
아, 죄송합니다. 아는 동생인줄 알고.
그런가요? 괜찮습니다.
근데 너무 닮았어요.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요.
그러게요. 저 닮은 사람이 있긴 한가 봐요. 부산에서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그래요? 그 동생이 부산 앤데.
아, 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면 어쩌나 싶었던 나는 차라리 착각이었던 사실에 안도하며 보란 듯이 존을 향해 잔을 들어보였다. 그러나 그는 어째서인지 건성으로 잔을 부딪치며 무언가 의혹이 남은 표정을 짓고 있어 불안하게 하더니 긴한 말이 있다는 양 고개를 기울여 귓속말을 넣었다.
아마 저 사람이 관심 있어서 일부러 그랬을 거예요.
네?
그런 거 있잖아요. 아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죄송합니다. 근데 싱글인가요? 그렇게 꼬시는 거에요.
그의 천진한 농담에 한참을 웃던 나는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적극적인 편이 못된다고 언질을 주었다. 존이 주위의 관심을 기대하는 게 아닐까 짐작되어 혹여 접근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예방 차원의 조언이었다.
그럼 어떻게 크루징하죠?
바텐더에게 말을 넣어 관심을 전하기도 해요.
그럼 나도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근데 외국인의 경우는...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내쳐 설명했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관심을 주거나 받는 걸 조금 부끄러워하는 편이에요.
왜 그렇죠?
글쎄요. 편견이겠죠. 외국인이 관심 갖는다고 기분 나빠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한국 사람 대하듯 그렇게 편하게는 생각하진 않아요.
역시 존의 얼굴로 아쉬워하는 표정이 지나갔다. 그도 역시 알지 않을까 싶었다. 부산에서도 바를 다닌 경험이 있다면 외국인에 대해 거리감을 두는 한국 사람들의 특성을 짐작할 터였다. 얘기가 깊어지면 설명하기도 곤란해 질 것 같아서 난감한 화제를 돌리려는데 앞서 존이 되물었다.
근데 미스터 정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죠?
근건... 친구가, 워낙 오래된 게이친구가 있다 보니 들은 얘기가 많아서 그런 거죠.
흠...
존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가늘게 한숨짓는 그의 반응에 내 자신이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이라면 다행한 일일까. 마친 두리번거리던 시야에 막 들어서는 외국인이 보였다. 조명이 어둡고 체형이 작은 편이라 처음에 알아보지 못하다가 가까이로 다가서자 이국적인 이목구비가 확연이 드러났다. 그는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존의 옆으로 자리를 잡았고 동행으로 보이는 한국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존은 내 시선이 자신을 비켜 곁으로 가는 걸 보고는 고개 돌려 외국인을 마주하더니 대뜸 하이, 라고 이사를 했다. 곧 하이, 라는 인사가 되돌아오자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하고 만난 사이처럼 영어로 빠르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친구도 여기가 처음이래요.
문득 내 쪽으로 설명을 건네던 존은 내쳐 나를 소개를 하는 듯 했다. 곧 낯선 외국인이 자신을 이쓴으로 소개하며 손을 뻗어 악수를 권했다.
나이스 투 밋유. 아이 엠 민.
어색한 인사를 건네고는 얼른 손을 빼려는데 그 쪽에서 붙든 손을 당겼다.
정말 게이 아니에요?
존에 비하면 엉성한 발음으로 이쓴이 물었다. 아마도 존에게서 들은 모양이었다. 아니라는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던 그는 무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던지고는 손을 풀었다. 다시 존과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이어갔고 갑작스레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는데 종종 그의 시선이 존의 어깨를 넘어 나를 건너다보곤 했다. 이쓴의 눈빛은 내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할 듯 깊숙했다. 때로 게이를 알아보는 직관이 유별나게 발달한 사람이 있다. 불편해진 나는 문득 자리를 일어서며 존에게 잠깐만요, 라고 양해를 구했다.
어디가요?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요.
여기서 피워요. 담배 피워도 괜찮죠?
바텐더에게 묻는 존을 뒤로하고 서둘러 몸을 일으킨다.
그냥 좀 답답해서요.
존과 이쓴의 시선을 무작정 무시할 수 없어 바깥바람을 쐰다며 얼버무리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테이블이 늘어선 복도를 지나는 동안에도 흘깃거리는 눈짓과 수군거림이 뒷덜미를 따라붙는 듯 했다. 외부로 나선 다음에야 흐려진 음악소리와 시선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담배를 꺼내 빼어 물고 불을 붙이고는 한 모금을 당기자 긴장감이 풀어진 때문인지 어깨에서 힘이 떨어지며 팔이 늘어졌다.
한 때는 이런 문화를 즐기기도 했었다. 주말이면 미리 약속을 잡은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옷차림과 머리 모양에 공을 들였다. 신발 하나까지도 멋을 내며 나서서는 물이 좋다는 술집을 찾았다. 위치를 기억할 수도 없는 술집에서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타인의 청으로 불려 다닌 적도 있었고 연락처를 주고받기도 했었다. 소위 테이블을 뛰었다는 이유로 괜히 흥이 나기도 했고 친구들의 부러움이 실린 시선을 으쓱한 태도로 받은 적도 있었다.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작은 접촉들이 활력소가 된 것도 사실이었다. 마치 그것이 이반의 삶에서 전부인 것처럼.
언제부터일까.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일이 되어 버린 것은.
나는 텁텁해진 입맛을 다시며 담배를 끝까지 피우고는 잠시 밖을 서성였다. 빠에 들어서는 데도 사뭇 대단한 각오가 요구되었다. 문득 수치심이 느껴진 것은 자격지심일까. 십년이나 이반 생활을 즐기고도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한 내 모습이 한심스러워서? 슬쩍 기웃거린 바는 빈자리 하나 없이 만원인 채로 활기에 지붕이 들썩거리는 듯 보였다. 그런 내부의 분위기가 어쩐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파고가 높은 파도를 향해 몸을 던질 때처럼 그만한 활력이 내 안에도 있어야만 저 물결을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석이?
지척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형의 것이다. 착각이 아니라면 분명 그의 목소리다. 나는 그것이 환청이길 바랬다. 하지만 의심하기엔 그의 목소리가 너무도 한결 같다. 8년 전에 헤어질 당시에도 지금처럼 우연히 마주쳤던 4년 전 즈음에도 그러했듯이, 세상에 둘도 없이 다정한 목소리. 돌아서자마자 거센 바람처럼 포옹해오는 그의 가슴에 파묻혔다.
왜 이렇게 말랐어?
어째서 당신은 이토록 아무렇지 않은가. 나는 그의 품에서 모래성처럼 삽시간에 무력해지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이내 깨닫는 것은 사랑 앞에 강인할 수 없다는 사실 뿐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무관하게 살아 왔으면서도 일순간에 무장해제 되는 덧없음.
얼굴도 더 좋아진 것 같네.
그의 칭찬 일변에 나는 그저 웃고 만다. 체중이 줄긴 했나. 나이 들어 얼굴이 더 좋아질 수는 없을 텐데, 생각하면서. 아마도 그 사이 그는 나를 그만큼 잊어 버렸겠지. 새삼스럽게 달라졌다 하는 걸 보면.
형의 뒤로 동행인 듯 두 사람이 기웃거리고 있다. 그중 하나는 내게 유심한 눈빛을 보내더니 곁에선 이에게 무언가 귓속말을 넣었다. 긴한 얘기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이는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것처럼 형에게 다가와 다시 귓속말로 소근 거린다. 형의 눈썹이 가늘게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돌연히 웃음을 터뜨린다.
아니야, 다른 애야. 걔가 이 바닥 뜬지가 언젠데. 게다가 어디가 비슷해? 난 전혀 모르겠는데.
형은 아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 보인다. 주말 늦은 시간에 즐기는 걸 보니 여전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모양이다. 아내와 자식을 호주로 떠나보낸 게 4년 전이었다. 그때도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소주방에서 우연이 그를 보았다. 그 때는 지금 같은 여유를 부리지 못해서 얼음장처럼 굳어졌다. 그가 다가와 어깨를 흔들고 지금처럼 포옹하고 말을 붙일 때에도 난 그가 칼부림이라도 할 사람처럼 경직되어 뚫어질 듯 바라보기만 했다. 아마 변변한 인사 한 마디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손목이 붙들려 이끄는 데로 넋을 놓고 따라가 앉아 보니 여러 사람이 어울린 자리였다.
당시에 그는 막 자유의 몸이 된 것을 자축이라도 벌이는 듯 했다. 여러 모임에 가입하고 주말은 물론 평일까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술자리의 동석한 사람들이 형을 대하는 태도가 내게는 너무도 낯설었다. 전에는 물론 생활 자체가 허락되지 않기도 했지만 다른 이반들과 섞이는 걸 극도로 기피했었다. 그런 그가 모르는 사람 없이 형님 동생으로 어울리고 농담도 곧잘 하고 술도 거침없이 들이켰다.
어쩌다 내가 그를 챙기게 되었는지 모른다. 모텔을 잡아 놨다는 말을 듣고는 동행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형은 시종 내 곁에서 술을 권하기에만 여념이 없다가 쓰러지듯 정신을 잃었다. 누군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노려보듯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술자리가 파하기 전에 먼저 형을 일으킨 나는 인근의 예약된 모텔로 그를 데려다 주었다. 침대에 누이고는 쫒기는 심정으로 모텔방을 나오려 할 때 형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두 번도 아니고 잠꼬대 마냥 흘러나온 목소리였다. 강요나 애원의 느낌도 아닌 그저 한숨 같은 목소리. 가지 마라.
마침 핸드폰이 울렸을 것이다. 수원에 사는 애인이 걸어온 전화였다. 나는 핸드폰을 열었다가 그냥 닫고는 형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 손을 대고 쓸어내리자니 형이 순한 짐승처럼 고개를 기울여 볼을 부볐다. 곁으로 몸을 누이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술기운에 겨운 한숨소리를 길게 흘리던 끝에 말했다. 좋다. 그 순간 마음에 가득 차오르는 감정이 갈빗대를 밀치는 듯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형과 헤어진 세월에 텅 빈 가슴인 채로 살아왔다는 것을.
가요, 저도 들어가 봐야 해서.
어딜?
고개를 우쭐거리며 주위를 살피는 형을 쫒아 무심히 돌아보던 나는 멈칫했다. 저 안쪽의 바에서 존이 뒤를 돌아보고는 긴 팔을 들어 들어오라는 양으로 손짓했다. 형도 봤는지 유심한 눈길로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곧 내게로 시선이 옮겨왔다.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추궁하는 기색이다가 비아냥으로 바뀌는 서늘한 감촉이 묻어나는 듯했다.
저 먼저 들어갈게요.
발밑이 벼랑 끝 같다. 암초에 부서지는 파도가 눈앞을 흔드는 것 같은 아득함. 잠수를 각오한 사람처럼 숨을 한껏 들이쉬고는 다리에 힘을 주며 빠에 들어서려 할 때였다.
너 급했구나.
형의 목소리가 뒤통수로 장도리를 내리치는 것 같다. 쭈뼛 서는 척추를 따라 소름이 돋는다. 당신이 사랑하는 방식은 어째서 그것밖에 되지 않는지. 그와 모텔에서 밤을 보낸 다음날 늦은 점심을 먹으며 형이 물었다. 우리 다시 만날까. 나는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필요해요. 만나는 사람이 있어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그는 아무렇지 않은 투로 말했다. 정리할 필요 없어. 마치 농담이라도 되는 듯 스치는 목소리. 싫으면 말고. 일어나 계산을 마치고 훌쩍 떠나가는 그를 보며 당혹스럽기보다 웃음이 났을 것이다. 나는 수저를 집어 들고는 홀로 앉아 느리게 음식을 씹어 삼켰다. 배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견딜 수 없던 허기.
술 적당히 마셔요.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빠로 들어섰다. 자리를 잡자 존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누구에요?
그냥 아는 사람요.
게이?
이쓴이 묻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표정이 굳어 있을 터였다. 존이 부러 화제를 돌린다고 말을 꺼낸다.
이태원 가봤어요?
이태원이면...
거기 게이 클럽이 있다면서요. 외국인들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많대요.
퀸이나 와이낫 트랜스는 여러 차례 다닌 경험이 있었다. 유독 퀸은 외국인이 더 많았던 기억이고 국적과 상관없이 어울려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 누가 외국인을 찾아 부러 그곳을 찾았던가 생각하면 수긍하기 어려웠다. 음악을 쫒아 클럽을 선택하기는 해도 굳이 외국인을 상대하기 위해 목적적으로 찾는 사람은 없지 싶었다. 있더라도 소수겠지. 그런 기대심리로 찾는다면 실망하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내가 얼른 답을 내지 못하는 사이에 이쓴이 자리를 밀고 일어섰다. 이태원 가요.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마치 자신을 따르라는 투였다. 씁쓸한 미소가 입에 물렸다. 과거에 이반 문화에 젖어 지내던 때 가졌던 활력소라는 것이 저런 치기어린 자부심 같은 것이었을까 싶어서.
주차장까지 동행했던 나는 존에게 이제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존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힘들어요?
시간이 늦어서요. 피곤하기도 하구요.
게이들은 미드나잇부터 잘 놀잖아요.
그의 말에 머리가 쭈뼛 서는 기분이 든 나는 다급히 말했다.
전 게이가 아니니까요.
아, 그렇죠. 쏘리.
어떻게 낯선 이목구비로 만들어진 표정이 더욱 신랄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건지. 그의 시들해진 표정에서 즐거움을 일시에 잃어버린 실망감이 엿보였다. 그 때까지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이쓴이 뒤늦게 분위기가 틀어진 걸 직감했는지 왜 그러느냐 묻기 시작했다. 존이 영어로 설명하자 그는 노 노 노,를 연발하며 손을 저었다.
같이 가요. 다 같이 가요.
그는 한국어에 능숙하진 않은 듯 그 밖에 설득을 벌이진 못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겨 내 손을 붙들며 차에 태우려 들었는데 극구 물러서는 내 모습을 보다 못한 존이 나서서 그를 말리기에 이르렀다. 이쓴은 술이 조금 취한 듯 보이기도 했는데 존이 살짝 밀친 힘에 떠밀려 잠시 균형을 잃었다. 차에 기대었다가 가까스로 다시 균형을 잡은 그는 다시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을 꺼내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통화했다.
그 사이 분위기는 낙원상가 아래의 어둑하고 습한 시멘트 터널처럼 질척거리고 답답하게 변해 있었다. 설득시켜 먼저 보내려다가 되레 저들의 기분만 망칠 것 같아서 나는 마침 지나는 택시를 붙들었다. 그러나 택시는 차문을 잠근 채 목적지를 묻고는 다른 설명은 전혀 없이 내빼듯 미끄러져 갔다. 난처해진 나는 존에게 먼저 가라고 수차례 권했지만 짧은 시간 서너 대의 택시가 그냥 지나치는 통에 궁색한 처지만 더해갔다.
집에 데려다 줄게요.
안되겠다 싶었는지 존이 권했다.
아니라고 대답하고는 곧 택시 한 대가 더 지나치자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고집부리지 말아요.
그제야 나도 어쩔 수 없는 입장이어서 그의 차를 타고 용산으로 향했다.
택시들이 3, 4차선 차선을 오가며 호객행위를 하는 통에 도로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1차선까지 붙어 차를 몰던 존도 눈살을 찌푸리며 핸들을 쥔 손에 핏줄이 도드라지게 힘을 주고 있었다. 핸드폰을 입에 뭍이고 언성을 높이는 이쓴은 곁에 앉은 동행이 주의를 주어도 아랑 곳 없이 통화에만 열중했다. 먼저 이태원에 도착하여 이쓴 일행을 내려준 존은 흠흠, 자조적으로 웃었다.
재밌는 친구기는 한데... 취한 것 같아요.
말하는 걸 보니 존도 이쓴의 행동이 그리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쁜 사람 같진 않았어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변명하듯 말했다.
애인과 헤어질 건 가 봐요.
대강은 짐작하고 있던 사정이었다. 통화중에 거짓말 하지 말라느니, 지금도 누구와 있는 게 아니냐느니, 이태원에서 보게 되면 각오하라느니, 하는 단편적인 내용은 알아듣고 있었다. 그런 내용을 흘려들으면서 생각한 것은 외국인도 헤어짐의 방식은 한국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사랑은 의심으로 변질되어 경멸로 마감되기 마련이었다. 나 역시 그러했다. 형이 다시 찾아오지 않으리란 확신이 들었을 때 그가 다른 사람을 만난 것은 아닌가 의심했고, 후에는 이기적인 속물이라고 경멸했다. 그랬다. 헤어지는 순간엔 형에 대해 단정적이었다. 마치 그라는 사람이 결국 그런 식으로 떠나갈 거라는 걸 처음부터 확신했던 것처럼.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이미 알 고 있었던 것처럼.
어째서 그 때는 일종의 우월감 같은 걸 가졌던 걸까. 생각해 보면 형에 비해 나 또한 조금도 나을 게 없는 사람인 것을.
많이 피곤해요?
내가 말이 없어 그런지 존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요.
대답하는 내 목소리에 윤기가 없다.
쏘리.
천성일까. 그의 목소리엔 진심이 느껴진다.
소방서 건널목에서 출발해 해밀턴 호텔을 지나는데 만도 십여 분이 걸렸다. 녹사평역까지 줄지은 차량들이 정지된 듯 늘어서 있었다. 그 와중에 끼어들어 승객을 태우는 택시도 있고 뻔뻔히 비상등을 켜고 주차하는 사람도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언어들이 섞여 들려왔다. 단 한마디 이해 못할 타국의 언어에서도 욕설만큼은 명확하게 인식되었다. 가끔은 이 도시가 지독히 싫다. 평생을 살아도 정들지 않는 이 도시가. 그런 이 곳에 너는 왜 굳이 오려는 건지.
지난 새벽, 해운대 해변에 앉아 밝아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K에게 말했다. 다시 연애가 하고 싶어졌어. 같이 장을 보고 상을 차리고 수저를 나눠 쥐고 서로 찬을 건네며 밥 먹는 그런 연애가 하고 싶어. 자다가 이불을 걷어내면 덮어주고 숨이 고르지 못하면 가슴을 다독여주는 연애가 하고 싶어. 술집이 아닌 서점에서 만나고 근사한 여행이 아닌 청계천을 걷는 연애가 하고 싶어.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바닷가에 앉아서 해돋이를 지켜보다가 나와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연애가 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또 말했다. 너는, 니가 하려는 연애는 그렇지 않아... 강현이와는 그럴 수 없어, 라고.
아내한테는 어떻게 용서를 얻었어요.
나는 잠결인 양 흐린 목소리로 물었다. 눈을 감은 채였지만 존의 눈매가 깊어졌으리라 믿겼다.
아내도 제가 사랑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다만...
그는 아마도 입술을 축이겠지.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할 수 없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