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떠오르는 추억 때문에 가고 싶은 곳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충북 단양이다.
요즘은 교통이 발달하여 단양으로 여행하는데 불편함이 없지만 과거에는 매우 불편했다. 내가 단양에 처음 간 때는 1975년 가을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부산진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오후 늦게 도담역에 도착한 후, 다시 매포읍까지 약1시간 걸어서 허름한 시골여관에서 숙박했던 추억이 있다.
단양에는 석회암지형이 널리 분포해 있어 좋은 학습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하에 형성된 석회암동굴(고수동굴)뿐만 아니라 지표면에 형성되어 있는 와지(돌리네, 우발라, 폴리)와 잔구 등이 도처에 있고 석회암을 원료로 하여 시멘트를 생산하는 공장(한일시멘트, 성산양회)이 있어 학생들에게는 카르스트(Karst 석회암)지형을 현장에서 답사하여 공부하는 데 표본적인 지역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자주 학생답사나 학회의 답사를 위해 단양을 방문했다.
당시 매포읍 일대에 있는 석회암지형을 답사하느라 무거운 배낭을 메고 종일 걸었던 기억이 있다. 답사 도중에 밭이나 길에서 취사를 하면서 답사를 하고 저녁무렵에 다시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저녁에는 일행과 함께 남한강 잉어매운탕과 막걸리로 피로를 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그때의 추억들이 있어 단양이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지금 단양을 보면 단양군이 지역의 특성을 잘 살려서 관광자원을 개발한 결과 예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변해 있고 관광객들도 많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이곳 관광상품에 만족하는 것 같다. 그들은 따분하게 석회암지형의 형성 원인, 과정, 형태, 이용 등이나 남한강의 특성이나 이용에 대해 알 필요가 없고 눈과 입 그리고 몸만 즐겁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관광객의 견지에서 단양(丹陽)을 보면, 지명에서 신선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특히 가을에 구미가 당기는 곳 이다. 불로장생의 핵심인 단(丹)을 연마한다는 ‘연단(鍊丹)’과 인체 생명력인 양기(陽氣)를 잘 다스린다는 ‘조양(調陽)’에서 한 글자씩 취한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단양에는 이름만큼 건강해지고 힐링이 되는 명소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련되고 친환경적인 ‘단(丹) 명소’들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래서 단양은 확실히 힐링의 계절인 가을여행지로 가치가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 추천할 만한 단양의 주요 관광지를 보면..........
느림보 유람길(선암골생태유람길)과 느림보 강물길
단양에는 ‘단(丹) 여행’을 위한 특별할 길이 있다. 단양군이 조성해 놓은 느림보 유람길(선암골생태유람길)과 느림보 강물길이 그것 이다. 이들 길을 걷다 보면 양기 충만한 단 명소들을 차례대로 만날 수 있다.
먼저 선암골생태유람길은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길’로 불린다. 선암계곡의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을 연달아 만나게 된다. 신선이 이 세 곳 암반지대의 절경에 취해 노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명소들이다.하선암(下仙巖)은 30여 개에 이르는 너른 마당바위가 펼쳐진 곳이다. 이 중 3층 구조의 흰색 너럭바위 위로는 둥글고 커다란 암반이 덩그러니 앉아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형상이 미륵 같다고 해서 불암(佛巖) 혹은 선암(仙巖)이라고 불린다.
하선암에서는 바위에 새겨진 각자(刻字)들이 여러 개 있다. 이 중 전서체(篆書體)로 ‘명소단조(明紹丹竈)’라는 붉은빛 글씨가 눈길을 끈다. 신선처럼 노닐던 이명(李明), 이소(李紹) 형제가 선약(仙藥)을 굽던 부엌이라고 전해진다. 장생불사의 약을 만드는 곳이라는 뜻이다.
하선암은 명당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자 빼어난 경치로도 이름났다.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은 “바위의 사면(四面)에는 봄이면 철쭉꽃이 타는 노을 같고 가을이면 단풍이 찬란한 비단 같으니, 바위는 진실로 기이한 경치 중에서 더욱 기이하다”고 노래했다.
하선암을 떠나 계곡을 더 오르면 중선암을 만나게 된다. 순백색 바위가 층층대를 이루고, 그 위로 옥빛 계곡수가 흘러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선암계곡을 상징하는 삼선구곡(三仙九曲)의 중심인 중선암 옥염대에는 1717년 충청도 관찰사 윤헌주가 직접 썼다고 하는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三仙水石)’이란 글씨가 암각돼 있다. 단양, 영춘, 제천, 청풍(조선시대 행정구역) 4개 군에서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의 물과 돌이 가장 아름답다는 뜻이다. 신비로운 풍경에 반한 옛 선인들은 바위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깊이 새겨놓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이름만도 3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삼선구곡의 세 번째 명소인 상선암은 크고 웅장한 바위와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조화를 이뤄 소박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운치를 더해준다. 옛사람들은 학처럼 맑고 깨끗한 사람이 유람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평가했다. 사람이 드러누울 수 있도록 길다랗게 펼쳐진 어느 바위 위에 앉아 폭포처럼 떨어지는 계곡 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절로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다.
네 번째 명소인 사인암은 50m 치솟은 기암절벽이 마치 긴 암석을 끼워 맞춘 듯 기이한 자태를 자랑하는 곳이다. 사인암은 고려말의 유학자 우탁이 ‘사인재관’ 벼슬에 있을 때 휴양하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사에 “역학(易學)에 조예가 깊고 점을 치면 틀림이 없다”고 기록할 만큼 뛰어난 역학자 우탁이 즐겨 찾은 곳이다. 곳곳에 명당 기운이 빼곡하다 보니 조선 선비들의 수토(搜討) 답사 목록 중 우선 순위였다. 선조의 손자 낭원군도 “계유년(1693년) 겨울에 다시 유람을 왔다”는 글씨를 새겨놓았을 만큼 이곳은 당대의 인기 장소였다.
단양 8경 중 으뜸이자 단 명소인 도담삼봉과 석문은 남한강 강변을 따라 걷는 ‘느림보 강물길’에서 만날 수 있다.
도담삼봉은 남한강 한가운데에서 솟은 세 개의 바위가 섬처럼 들어선 곳을 가리킨다. 강원 정선군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깃들어 있고, 호를 ‘삼봉’이라고 지은 정도전의 기지가 담긴 스토리도 전해진다.
삼봉 중 당당한 풍채가 돋보이는 가운데 바위가 장군봉이다. 이곳에는 삼도정으로 불리는 정자가 들어서 있어 그윽한 운치를 자아낸다. 명당 기운이 맺힌 곳이어서 조선 선비들이 정자에서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도담삼봉은 조선의 대표적인 화가들에 의해 그림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단원 김홍도, 이방운 등이 이곳을 화폭에 담았다. 실경(實景)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순간 그림에서도 실경의 기운(氣運)이 실린다. 이를 동양의 산수화 이론에서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고 표현한다. 그림을 통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두 개의 바위 기둥 위로 또 하나의 바위가 가로질러 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석문(石門: 석회암지형) 건너편으로는 또다른 풍경이 액자 속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방운은 도담삼봉과 함께 바로 인근의 석문도 화폭에 담았다. 이곳 역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깃든 ‘단 명소’에 해당한다. 석문은 너비 20m에 달하는 무지개 모양의 자연석을 가리킨다. 두 개의 커다란 바위 기둥 위로 또 하나의 바위가 가로질러 문의 형태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자연이 빚어낸 뛰어난 조형미가 돋보이는 공간이다. 둥그런 석문을 통해서는 또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가을 햇살로 빛나는 남한강과 그 너머로 마치 신선이 살고 있는 듯한 평화로운 마을 풍경이 정겹다. 신령한 기운이 담긴 곳인 만큼 우리나라 창세 신화의 주인공인 ‘마고할미’의 전설이 담긴 동굴도 있다.도담삼봉과 석문은 남한강 건너편 도담정원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좋다. 도담삼봉과 석문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코스모스와 백일홍, 댑싸리가 가을 정취를 만끽하게 해준다. 특히 석문이 있는 절벽에서는 사람 모습의 바위, 자라바위 등 보물처럼 숨겨진 바위 풍광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단양 유람선
전통의 단양 유람선 나들이도 추천 코스다. 빼어난 산수비경으로 제2의 해금강이라고 불려왔던 단양은 수많은 풍류객이 선상 유람을 즐기던 곳이었다. 단양 장회나루에서는 구담봉과 옥순봉 등을 거쳐 청풍나루를 왕복하는 유람선이 있다. 단양팔경에 속하는 구담봉과 옥순봉은 강에서 감상해야 그 운치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고수동굴
단양 고수동굴(천연기념물)은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석회암동굴 중의 하나다. 길이 1,700m의 동굴 내부에는 종유석, 석순, 동굴산호, 동굴진주, 천연교는 물론 희귀 종유석인 아라고나이트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석회암 동굴에서 생성되는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수동굴의 백미는 사자바위, 도담삼봉바위, 마리아상, 사랑바위 등 자연과 세월이 빚어낸 경이로운 풍경이다. 특히 관람이 제한되었던 B코스가 2013년 4월부터 일반에게 개방되어 볼거리를 더한다. 태고의 자연과 선사시대 생활상을 함께 엿볼 수 있다. 고수동굴 관람에 난코스가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만천하 스카이워크
아찔한 스릴을 맛보고 싶다면 단양군 적성면에 위치한 스카이워크로 남한강 절벽 위에서 80~90m 수면아래를 내려보며 하늘길을 걸어 볼 수 있다. 전망대로 가는 나선형 구간에서는 다각도로 풍광을 감상할 수 있고, 전망대에 보이는 산등성이 너머 드넓게 흐르는 남한강 경치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시내 전경과 멀리 소백산 연화봉을 볼 수 있다. 말굽형의 만학천봉 전망대에 쓰리핑거(three fingers 세 손가락) 형태의 길이 15m, 폭 2m의 고강도 삼중 유리를 통해 발밑에 흐르는 남한강을 내려다보며 절벽 끝에서 걷는 짜릿함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전망대 옆으로 980m 길이의 짚와이어, 1,000m 거리의 알파인코스터, 슬라이드 등 체험 시설도 다양하다.
수양개 빛터널
야경명소로 적성면 수양개 선사유적지 인근에 조성된 빛터널 관광시설이다. 이곳에는 미디어 파사드와 프로젝션 맵핑 등 최신 음향과 영상 기술 등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 터널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철도로 사용되다가 1942년 중앙선 신설로 폐선된 길이 200m, 폭 5m의 터널로, 70년 넘게 방치되었다. 2017년 복합 멀티미디어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빛터널 주변에는 5만 송이 LED 튤립이 심어진 ‘비밀의 정원’도 있다. 이 정원은 야경명소로 인기다. 2020년 4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야간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리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누리 아쿠아리움
남한강가에 우뚝 서 있는 단양의 랜드마크이다. 단양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있어 찾기도 쉽고 접근성도 좋아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아이 등 가족을 동반한 여행이라면 느림보 강물길의 시내 쪽 강변에 있는 다누리아쿠아리움을 들러 볼 일이다. 국내외 민물고기 234종, 총 2만3000여 마리를 보유한 국내 최대 규모의 민물고기 생태관이다. 높이 8m에 달하는 대형 수족관을 비롯해 다양한 모양의 수조 속에서 물고기들을 관찰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몸값이 비싼’ 물고기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물고기들도 사람처럼 명당에서 더 잘 지낸다는 얘기도 있는 걸 보면, 이곳은 ‘물 명당’인 셈이다.천연기념물인 수달을 비롯해 ‘남한강의 귀족’으로 불리는 황쏘가리, 행운을 불러온다는 중국의 보호 어종 홍룡, 아마존의 거대어 피라루크 등 희귀한 민물고기를 만날 수 있다.
단양구경시장
관광을 마친 후 여유롭게 단양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래시장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각종 농·수산물, 생활필수품, 공산품 등이 장사진을 이루지만, 시골 노인들이 손수 기른 채소나 콩, 소백산에서 채취한 산나물 등이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고 큰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볼 수 없는 옛날 생활용품(참빛, 빗자루, 망태기 등)들을 구경할 수 있다. 또한 부침개와 막걸리, 흑마늘닭강정, 능이오리백숙 등 장터를 구경 나온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각종 먹거리가 장터 골목을 따라 펼쳐져 있다. 특히 직접 달인 마늘기름을 넣어 소를 반죽한 마늘만두가 인기다. 이곳에서는 소백산 토종꿀과 산더덕·영지버섯·야생 상황버섯 등을 구하러 오는 이들도 많다. 달마다1·6·11·16·21·26일에는 5일장도 병행하여 열린다.
새한서점
1979년 안암동 고려대 앞에 처음 문을 열었던 새한서점은 오랜 세월 대학생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했다. 당시엔 주로 대학 교재나 전문서적, 원서, 논문 자료 등을 취급했다. 지난 2002년 단양으로 매장을 옮겨 온 새한서점은 12만 권에 이르는 방대한 서적과 독특한 풍경으로 여행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헌책 외에도 주인장이 직접 고른 의미 있는 신간과 지역 작가들의 작품, 새한서점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굿즈 등을 판매한다. 최근에는 단양 구경시장에 2호점인 단양 노트도 문을 열었다.
자료: 안영배, 수토기행, 동아일보 2023-10-21.
여행톡톡 2023. 9. 11.
단양군청 (danyang.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