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육의 여명 2>
경기고등학교
김붕래
배재학당, 이화학당 같은 사립학교에 이어 1900년에 4년제 ‘관립(공립)한성중학교’가 탄생합니다.
이는 광복 후 중등학교 평준화가 되기 이전까지 최고의 명문이었던 경기중고등학교의 전신입니다. 그
위치는 지금 ‘정덕도서관’이 있는 종로구 화동입니다.
정덕도서관에는 ‘성삼문 선생 살던 곳’ ‘김옥균 집터’ ‘장원서(掌苑署) 터’ 등의 표지석이 있어 경기중고등학교의 전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원서는 왕실 과수원 - 왕실에 소용되는 꽃과 과일을 관리하던 관청입니다.
꽃이 항상 만발했다하여 마을 이름을 화개동(花開洞)이라 했는데 이게 줄어서 현재의 화동이 되었습니다.
이 화동 1번지, ‘관립한성중학교’가 들어선 자리는 600년 전에는 성삼문의 집터였습니다.
그리고 500년 후에는 김옥균의 집터였는데 두 분의 공통점은 젊은 나이에 장원급제 했던 수재였다는 것,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가산이 몰수되어 국고로 환수되었다는 것입니다.
약관의 나이에 장원급제한 성삼문 김옥균의 정기를 이어 받았는지 광복 후 최고의 수재 양성기관이 되었으니
역사에도 DNA란 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지고 민영익 홍영식 등은 보빙사(報聘使)라 하여 미국 대통령을 예방합니다.
이 자리에서 사신 일행이 미 대통령에게 갓 쓰고 도포 입은 채 큰 절을 올려 미국 신문에 대서특필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서구 문물에 눈 뜬 정부는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1883년 ‘동문학(同文學)란 관립 통역관 양성소를 설치했습니다. 이는 1886년에 세워진 ’육영공원(育英公院)‘에 흡수 통합됩니다.
육영공원은 양반자제를 대상으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교육기관이었는데 교사는 미국에서 초빙해 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헐버트 선교사도 <사민필지(士民必知)>라는 순 한글 지리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여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이런 신교육의 연장선상에서 1900년 탄생한 ’관립한성중학교‘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경기공립중학교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1945년 광복을 맞습니다.
1946년 6년제 경기중학교로 새롭게 탄생하여, 1951년에는 3년제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로 나뉘어졌다가
1971년 경기중학교는 폐교되고 1976년 경기고등학교는 종로구 화동에서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전하여 현재까지 이어집니다.
공립학교 성격의 여성교육기관은 1908년에 탄생합니다.
순종황제 비 순정효황후가 ‘여성교권학칙어’를 내린 것을 계기로 ‘관립한성고등여학교’가 공조(工曹) 뒤뜰(현재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세워집니다.
광복 후 광화문 덕수초등학교 옆으로 이전해 경기여중고가 되었다가 현재는 강남구 개포동으로 옮겨간 여성교육의 명문입니다.
중등교육 평준화 이전 경기중고등학교와 자웅을 겨루던 서울중고등학교는,
1910년 일본 거류민단의 자제 교육을 위해 서대문 근처의 경희궁터에 세워진 ‘경성중학교’로부터 시작됩니다.
광복 후 일인 자제들이 다니던 ‘경성중학교’는 폐교되고 그 자리에 ‘공립서울중학교’가 개교되었다가 1980년 강남의 서초동으로 이전하였습니다.
1970년대 5대 공립이라 하여 경기, 서울, 경복, 용산, 경동이 유명했는데
1969년 중학교, 1974년 고등학교 평준화가 되면서 이런 전통이 사라진지도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 대신 강남개발과 함께 ‘8학군’이란 용어가 생겼습니다.
교육 환경이 좋아진 서울 강남구, 서초구에 있는 학교를 지칭하는 8학군의 뜨거운 교육열은 이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상향 조정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교육평준화, 참 어려운 숙제입니다. 기회는 균등해야하는데 차짓 잘못하면 교육의 질을 평준화 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
그래봤자 8학군이 생기고 8학군 없애면 또 다른 부류가 생기겠지만. 고시패스 집단의 권력화 폐단을 없애겠다고 로스쿨을 도입했더니
개천에서 용 꿈은 사라지고 그 기회마져 세습하게 되고 아빠찬스, 엄마찬스라는 새로운 세습이 생기고 있습니다.
명문고가없어지고, 서울대가 사라지면 교육이 평준화 된 것일까요? 잘 하는 놈들은 잘 하는 놈들만큼 기회를 더 줘야한다고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있는제도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제도를 핑계대는 사람이 문제지, 말만 화려한 그 나물에 그 밥이지요.
오선생님 말씀에
전적 공감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사람사는 곳이면
다 상하계층이 생겨나게 마련이고
교육의기회 평준화도 좋겠지만 자칫 명재를 둔재들로 추락시킬 위험도 도사리고 있겠지요
1968년 제가 교직을 시작하던 해 12월 예비고사라는 게 생겼습니다.
1891년 12월 학력고사가, 1994년 수학능력시험이 생겼습니다.
과거제도가 없어진 것은 1894년 갑오개혁이 시작되면서구요.
귀 동냥하여 들은 바에 의하면 독일의 교육제도가 참으로 이상적이라 합니다.
@김붕래 제 또래가 예비고사 두번째로 본 학생들이지요.
일본은 사립교육은 공립과는 달리 어려서부터 능력별 선별교육을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력고사 1891년은 1991? 1981? 둘 중 하나겠지요. 저도 걸핏하면 오타랍니다. ㅎㅎ
@오대환 예, 1981년이 맞습니다. 인문계, 자연계, 예체능계로 나눠지는 시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