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대학을 목표로 그가 계획을 세운 후 밤이면 대학입시 공부를 혼자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가끔 놀러가자고 했으나 가능하면 피하면서 직장생활과 공부에만 전념을 했다.
그리고 대전에 가는 날이면 ‘현숙’이를 찾아가곤 했다. 현숙이는 그가 서울에서 힘들게 생활
하다가 대전으로 내려와서 신문 배달을 하면서 야간 검정고시 학원을 다닐 때 만난 여학생이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그녀 역시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밤에 학원에 다니는 처지라 동병상련이랄까 그런 감정이 들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돌봐주려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더구나 우연의 일치라고나 할까 그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중학교 동창인 ‘재결’이가 자취하고 있는 주인 집 딸이었던 것이다. 당시 재결이는 대전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혼자서 자취를 하기 때문에 그가 가끔 놀러가곤 했다. 일요일 쉬는 날 재결이 에게 놀러 가면 현숙이가 맛있는 점심을 차려주곤 했다. 현숙이 부모님은 가게를 운영하기 때문에 늘 집을
비우게 되고, 맛 딸인 현숙이가 거의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고, 그의 남동생은 중학교에 다니는데 그를 몹시 따랐다. 그가 힘든 신문배달 일을 하면서 야간 학원까지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와 그의 동생은 마치 한 가족처럼 따스하게 그를 대해 주었다.
어느날은 재결, 현숙, 남동생과 함께 보문산 공원을 놀러가기도 했고, 충남대학교 켐퍼스에 놀러가서 기념사진도 찍으면서 우리도 언젠가는 대학에 꼭 진학하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가족처럼 지내오던 중 검정고시 시험을 보게 되었고, 그녀는 단번에 합격을 하고
그는 과목 과락에 걸려 합격하지 못했다. 그 해 겨울 현숙은 예비고사를 치르고 다음해 충남
대학교 체육학과에 합격하게 되었고, 재결이는 서울에 있는 한양대학교 야간학부에 합격해서 서울로 떠났다. 함께 가족처럼 지내던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그 때부터 그와 현숙은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듬해 여름 그도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으나 현숙은 엄연한 대학생이 되어 있었고, 그는 어찌 보면 초라한 공무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대전에 올라가면 가끔 현숙에게 연락을 하곤 했지만 예전처럼 스스럼없는 사이가 아닌 다소 서먹서먹한 그런 사이가 되어있음을 그도 느끼곤 했다.
그동안 가족처럼 느끼던 따스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자신과 그녀의 처지를 비교해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