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리뷰가 3집에 도달했네요. 리뷰 쓰기도 만만한 작업은 아님을 느끼곤 합니다.
이번 리뷰는 글쓰기에 앞서 조용필 음반을 리뷰한다는 의미를 대략적으로 적고 시작하겠습니다.
예전부터 느끼는 것이,
요즘 사람들(저도 나이먹은 사람은 아니지만) 보면 국내 음악을 무시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저는 국내에도 외국 장르를 한국화하여 큰 업적을 세운 뮤지션이 존재하며,
국내에도 외국 못지않은 랩퍼가 있고 보컬이 있다고 설파하고 다니곤 했습니다만
이런 외침은 편견이 깊숙이 자리한 사람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질 않더군요.
우리나라 감성에 맞는 한국화된 서구 장르가 오히려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혼자 떠드는 메아리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생각하게 된 것이 우리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커다란 인물에 대한 전집 리뷰였습니다.
그 대상은 당연히 조용필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 보면 조용필 하면 뽕짝가수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만
사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필이야말로 비틀스로부터 시작된 정통 록의 뿌리를 아는 인물이며,
음악적 내공을 연마할 당시의 결과로 흑인음악의 요소를 자신의 세계에 융합시켰습니다.
일단 이러한 '조용필'이라는 한 사람만이라도 제대로 안다면
우리나라 음악계도 무시할 수준이 아님을 느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조용필은 특히 멀티 장르적 뮤지션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뿌리를 박은 자체가 자기 자신이고, 판소리부터 메탈까지 온갖 음악을 다 했기에
어떻게 장르 규정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특이한 음악가입니다.
그래서 '전 세대와 전 계층'을 전부 팬으로 만들어 버린,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기록을 세우죠.
전성기때 자국의 유치원부터 노인정까지 전부 자기 노래로 물들여 버린 뮤지션이 누가 있을지요.
비틀즈, 마이클 잭슨 있지 않냐 하시겠는데. 물론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게 세계에서도 몇 명 없습니다.
조용필이 영미권에서 태어났으면 세계로 뻗어나갔을 것이라고 전 생각을 합니다.
이 '무장르'적인 까닭에, 조용필 리뷰는 어떤 음악사이트에 올라와도 상관이 없죠.
조용필 전집 리뷰는 제가 여러 군데에서 진행중입니다. 아직 초반부에 불과하지만 말이죠.
그에 대해 깊게 아시는 분은 제 리뷰를 보고 별것도 없다고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제 리뷰글을 보는 여러 사람이 국내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조용필이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조금이나마 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겠습니다.
리뷰 원본이 작성된 커뮤니티의 리뷰게시판 성격상 문체가 굉장히 딱딱하게 이루어져 있으나
읽는 데에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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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의 보챔도 있고 하여 급조된 2집 앨범도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글에서 밝힌 징검다리 전략을 이용해 시간을 어느정도 벌은 조용필은
자신이 음악감독 역할을 맡은 3집 앨범을 출반한다.
미국 암펙스사 골든릴상 수상 음반이기도 한 조용필 3집.
본 리뷰는 현대의 실정에 맞게 CD버전 중심의 리뷰임은 앞서 밝힌 적이 있으나,
한번 초판 버전의 트랙순서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Side A
1. 미워 미워 미워
2. 일편단심 민들레야
3. 잊을 수 없는 너
4. 강원도 아리랑
5. 님이여
6. 황성옛터
7. 오빠생각 (CD버전 재출반 시 2집으로 이동됨)
Side B
1. 여와 남
2. 물망초
3. 고추잠자리
4. 내 이름은 구름이여
5. 길 잃은 철새
6. 너의 빈자리
당연히 조용필을 모르는 분들은 이걸 봐도 별 특징을 못 느낄 것이다.
그러나, 옛 노래를 좀 아는 분들은 뭔가를 느낄 것이다.
대마초사건 이전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편곡버전이 처음 실린 조용필/영사운드 앨범.
그 앨범은 A면과 B면이 다른 아티스트로 이루어진 음반이었다.
그리고 조용필 3집 앨범도 A면과 B면의 특징이 뚜렷하게 대비된다.
간단하게 A면은 성인층 위주, B면은 조용필의 음악적 욕심위주로 꾸며져 있는 것이다.
후일 평론가들이 A면의 성인층 위주 구성을 종종 지적하는 모습이 많은데,
당시 기획사의 소속 가수가 자작곡을 앨범에 대부분 넣은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며,
당시 소속사-가수 계약은 거의 노비문서가 오버랩될 만큼의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라.
본 앨범에 조용필은 최초로 '3집'이라는 글자를 새겨넣었다.
즉, '창밖의 여자'앨범부터 공식으로 정규앨범임을 규정짓는다는 무언의 결정이다.
앨범명은 각 면의 타이틀곡인 '미워미워미워'와 '여와 남'이다.
각각 정통 트롯의 정수와 조용필식 파격적 음악의 정수로 거의 극단으로 갈려 있다.
이 앨범은 한국 민요와 재즈를 융합한 곡도 있고,
어떤 곡은 이보다 파격적인 가사를 보기 힘든 곡도 있고,
심지어 요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봐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구성의 곡도 있다.
힙합팬이라면 알케미스트가 샘플링한 곡도 있음을 리스트에서 발견했을 것이다.
이전의 뭔가 모자란 느낌이 분명 들었던 2집의 기억을 깨끗하게 씻어낸 3집.
이 앨범에서 명곡으로 남는 것은 고추잠자리, 여와 남 이 두 트랙이 많이 꼽히게 된다.
이제 CD버전 트랙순서로 회귀하여 트랙별로 분석해 보도록 한다.
01. 미워 미워 미워 (작사 정욱, 작곡 정풍송)
정풍송 작곡가는 정통 트롯 작곡가로, 후일 조용필3집을 논할 때
이 트랙은 지구레코드의 압력에 의해 들어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위대한 탄생의 특징인 절제된 사운드가 아닌, 일반 오케스트라 악단의
그야말로 평범한 당시 성인가요의 전형인 편곡 사운드가 담겨 있다.
그 뜻은 생악기 위주의 음악이란 뜻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각 악기들의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음악이기도 하다.
일본 엔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일본스러운 노래이며
그 결과 당시 음반 주 구매층인 30~40대에 히트를 기록하긴 했다.
곡의 진행 또한 정통 트롯창법을 요구한다.
02. 고추잠자리 (작사 김순곤, 작곡 조용필)
당시 24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기록을 가진 곡.
앨범에는 본래 신광철 작사로 되어 있지만, 실제 작사가는 김순곤이다.
당시 라디오 공개 가사응모에서 조용필에 의해 캐치된 가사인데,
앨범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응모자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결국 당시 라디오 프로듀서였던 신광철을 작사가로 인쇄해야 했었다.
후일 이 작사가는 김순곤 씨로 밝혀졌으며, 가사의 파격성으로 인해
어느 곳에 가도 외면받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조용필만이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가사를 받은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이 인연 이후 김순곤 씨는 전문 작사가의 길을 걷게 된다.
곡의 인트로 전주의 멜로디와 음색부터가
잠자리채를 흔들며 해맑게 웃는 동산의 아이들을 그려낸다.
2집의 촛불에 이어 사운드의 이미지적 표현을 제대로 해낸 또 하나의 곡.
인트로 전주의 멜로디는, 이후 이 곡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인 클라이막스의
이질적인 멜로디를 사용하여 클라이막스에서의 거부감을 없애는 효과를 낳는다.
꿈속에서 뿌옇게,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동산을 보는 듯한 인트로를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도망가는 고추잠자리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떠오르는,
즉 정적 분위기에서 동적 분위기로 전환되는 부분인 A부분이 시작된다.
드럼과 합일을 이루는 리듬악기화된 재지한 피아노 코드 타건이
역동적인 모습을 잘 그려내며,
본격적으로 당시 엄청난 충격을 던진 가사가 등장하게 된다.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가사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는 순간이다.
이해가 잘 안된다면, 당시 가요들처럼 이 부분을
'자기야' 혹은 '그대여', '당신이여', 아님 좋게 봐줘서 '언니야'로 바꿔 보라.
곡이 가진 순수한 분위기는 팍 죽어버린다.
요즘도 이런 가요는 없지만, 당시에도 엄청난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건실한 사회 만들기, 내 님 그리워 등의 주제밖에 없었던 가요계에 던진 충격이다.
지난 리뷰에서 말했던 '보수적 대중을 이끄는 진보적 음악'이라는 방향이
제대로 구현돼 있다.
그리고 가사로도 충분히 충격적인 엄마야 부분을,
특유의 가성 창법을 더블링해 극대화하고 있다.
동적인 A부분이 완료된 직후, 페달을 돌려 우우웅 소리를 만들어
다시 몽롱한 정적인 상태로 슬쩍 전환시킨 뒤 A보다 더욱 파격적인 B부분이 터져나온다.
(당시 조용필은 페달을 발로 하면 무디니까 꿇어 엎드려 손으로 돌렸다고 한다)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따러 왔다가 잠든 나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
집중해서 들어 보면 갈수록 조용필의 목소리가 여러 가닥이다.
승훈님의 리뷰에는 5중주 성부라 되어 있는데,
필자는 귀가 덜 트였는지 4중주까지밖에 들리지가 않는다.
사실 합창은 아니고 조용필의 여러 목소리를 겹겹이 더블링한 것이다.
최고음역 가성부터 최저음역 진성까지, 과연 득음의 가창력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부분을 한번 들어 봐서 목소리 음역대를 구분해 보는 재미를 권하고 싶다.
또한 반주하는 악기도 분위기에 따른 사용법의 정석을 나타내 주고 있다.
세부 부분 전환시 어김없이 매우 적절한 질감으로 나타나는 크라쉬 심벌,
몽환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멜로디가 진행되는 베이스 또한 듣는 재미를 배가한다.
이후 A부분이 다시 반복되는데, 동적인 느낌이 더욱 배가되도록
약간의 변화를 준 점을 짚어야 한다.
추가된 소리는 오픈하이햇이다. 페달을 밟는 맛이 가히 절정을 달한 감각이다.
그리고 이 소리의 추가는, A후 B로 넘어가기 전 다이나믹한 간주의 등장 또한 암시한다.
문학작품으로 치면 일종의 복선 장치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이전 '촛불'에서 절정의 컷팅 스트록 감각을 보여준
명연주인이 펼쳐내는 솔로잉 또한 훌륭하다.
필자의 지식이 짧은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타에 무슨 이펙터를 먹였는지 캐치를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단순한 오버드라이브나 디스토션은 분명 아니다.
이 솔로잉도 세부적으로 a, b가 있는데,
여기서도 또 방금 전의 하이햇이 위력을 보여준다.
a에서는 인트로 직후의 A처럼 평범하며
오픈하이햇 페달링이 펼쳐지지 않고 솔로잉 위주인데
b에서는 조용필의 가성 보이스를 악기처럼 사용한 솔로잉과 기타 솔로잉이 아우러지고
그 분위기를 더욱 살리는 오픈하이햇 페달링이 슬며시 재등장하게 된다.
고추잠자리가 A>B의 단순한 진행인데도 곡을 다 들을 때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쓴 조용필의 편곡력이다.
이 간주부분 이후, B부분이 등장하며 간주로 인해 달구어진 동적 분위기를 또 반전시킨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이런 A, B의 치밀한 만듦새이다.
A와 B만 가지고 작곡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정적/동적의 극단적인 방향을 달리는 부분들을
하나의 곡으로 자연스럽게 완성시키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물오른 가창력 역시 한몫 함은 물론이다.
B부분이 다시 등장한다.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여기에서도 약간의 추가가 가미되었다. 조용필 특유의 미성 창법이 슬쩍 추가된다.
분명 멜로디만 보면 B의 반복일 뿐인데 다른 맛을 내 준다.
그러나 이 목소리는 얼마 안 가 또다시 '슬쩍' 사라진다.
여기서 동물적인 절제미에의 감각이 확인된다.
아무리 좋은 소리가 추가되어도 계속 반복되면 식상해질 염려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정확하게 끊을 때 끊어버린다. 미련 한 톨 남기지 않고.
이런 조용필의 동물적 감각은 음악기간 전체를 통틀어
숱한 명곡, 명반을 낳는 요소 중 하나가 된다.
곡의 진행법 역시 대중음악 역사상 통틀어 봐도 극히 찾아보기 어려운데,
Em코드를 이용, 갈수록 근음을 반음씩 내려 가며 분위기를 점차 진행하는 놀라운 방식이다.
B부분 완료 후 다시 시작되는 '아마 나는' 부분.
2절처럼 오픈하이햇이 다시 사용되는데, 이번엔 반복이 아니다.
원래 2번 반복하는데, 이번엔 1번만 한 뒤 마지막 파격인 '사람악기'를 사용해
아웃트로를 이끌어 간다.
조용필이 입으로 '뜨르뜨뜨 뜨르르 으루뜻 뜻뜨드'하는 멜로디를 악기 대신 구현한 것.
배경에 깔리는 스트로크는 '촛불'에서의 스트로킹과는 뭔가 다른 맛이 있는데
이걸 연주한 사람이 곽경욱 기타리스트인지 조용필인지 모르겠다.
조용필은 활동 초중반에는 자신이 직접 기타를 친 적이 많다고 하니 짐작만 할 뿐이다.
여하튼, 이렇게 악기가 아닌 실제 몸 기관으로 솔로잉(?)을 하며
아웃트로시키는 기법은 이 곡에서 진한 여운을 남기며,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 높은 명곡을 마무리짓는다.
물론 여기서도 오픈하이햇 페달링이 가미되어 리듬감을 살려 준다.
페이드아웃 되는 뜨뜨뜨르릇뜨 멜로디는 공연장에 오면 제대로 된 끝을 감상할 수 있다.
03. 일편단심 민들레야 (작사 이주현, 작곡 조용필)
조용필이 작곡한 곡 중 트롯 장르는 이 곡 딱 하나뿐이다.
트롯 장르를 택한 이유는 작사자의 사정 때문.
이산가족 피해자의 전형이었던 이주현 할머니는
한평생 외로이 살아온 한을 가사에 담아 가사응모전에 투고했고
이것을 캐치해 낸 조용필은 이 한을 정확히 읽어내고 곡으로 풀어낸다.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라는
과감한 노랫말 또한 감상의 백미다.
지금은 조용필이 환갑을 넘었으니 작사하신 할머니 역시 이 세상 분이 아닐 것이다.
이주현 할머니께서 임종 전에 한을 풀고 가셨기를 간절히 바라나, 알 수가 없다.
대신 마음의 일부를 곡으로 남겨 흔적을 두셨으니 약간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악곡 분석 이전에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아주 중요하다.
조용필은 멀티 장르적 뮤지션임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시각 중에는
트롯가수라는 편견이 지배적이다.
이는 조용필이 당시 매니저의 실수로 저작권을 날려버린 것에 근거한다.
조용필이 80년대에 소속되었던 지구레코드. (사장 임정수)
조용필이 후일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매니저가 지구레코드와 함께
조용필 작곡에 대한 저작권을 이양해 버렸다.
당시 매니저는 '판권'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고,
실제로 당대는 저작권법의 개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지구레코드는 영리하게 이를 기억하고 있었고,
권한 소진 시점인 10년이 경과하는 순간 조용필에게 저작권 소송을 걸었다.
지구레코드와 조용필은 결국 대법원까지 갔으나,
아무래도 매니저가 실수를 한게 사실인지라 지구 쪽이 승소했는데,
법의 모순이 제대로 드러난 판결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상식적으로 자기가 만든 곡에 저작권을 지불하라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저작권법의 목적 또한 창작자의 권한 보호에 있음을 생각해 보면 잘못된 결과다.
어쨌든 이 승소 이후, 지구레코드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이용해
무지막지한 짜집기 베스트 앨범을 조용필의 의사와 상관없이 발표했다.
그리고 배포 속도 또한 엄청났다.
잡지사 부록으로 끼워넣는 방식도 마다하지 않았음을 물론이다.
이렇게 조용필의 예전 곡들이 전국에 집중적으로 유통되어 버렸고,
베스트 앨범이 80년대 곡 중 성인층에 인기를 끌었던 트롯장르 위주였음은 물론이다.
이 결과, 조용필의 음악은 반쪽 조명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그의 음악적 성과가 제대로 조명되는 기회를 원천 차단해 버렸고,
조용필 전집 리마스터링 박스셋이 나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가히 이 땅의 위대한 뮤지션에 대한 무례한 행동이 아닐 수 없으며,
이는 명예훼손까지로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하간 이런 사정 때문에 현재 조용필에 대한 시선은
'뽕짝가수'라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러나, 조용필이 진정 하고싶던 음악은 전혀 트롯이 아니었다.
70년대부터 현재 시점까지 조용필이 무수히 많이 곡을 만들었지만,
트롯곡은 일편단심 민들레야 딱 한곡 뿐이었고,
그마저도 작사자의 사정에 근거한 세련된 신트로트 성격이다. 창법조차 다르다.
물론 공연장에서 조용필은 트롯 곡도 여러곡 첨가하기는 한다.
하지만 기존 히트곡을 공연장에서 세련되게 편곡해서 깜짝선물을 해 주는 것이다.
오히려 트로트가 아닌 클래식 팝페라나 록에 가깝다.
고로,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지구레코드의 상술에 의해
잘못된 시선을 가진 이가 있으면 바로잡길 바라며
다시 리뷰로 돌아가 본다.
악곡상 특징은 고급 트롯곡이어서 특별히 볼 곳이 많지 않다.
대신 여타 트롯곡에서 볼 수 없는 조용필만의 특징이 있다. 창법이다.
클라이막스 직후에 토해내는 이 창법은
판소리를 연마한 가창력이 아니면 역시 불가능한 부분이다.
당시의 뽕짝과 조용필의 음악은 트롯에서조차 그 궤를 달리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분석 없이 들을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처리되어서 그냥 넘기기 십상이다.
악곡에서 볼 곳을 하나 꼽자면 인트로 부분에서부터 볼 수 있는 부분인데, 키보드 연주.
바이올린 계열 악기가 처음에 등장하다가 중간에 안 등장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 전후로 클래식기타 뜯는 소리와 키보드 연주하는 소리가
잠시 합일되다가 지나가는데
이것을 캐치해 내고 보면 연주자 간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즉, 바이올린 사용된 부분에서는 화성적 개념으로 어울림을 이루는데
사용되지 않은 부분 이후에서는 합일적 개념으로 같은 멜로디를
같은 박자에 같은 셈여림으로 표현한다.
매우 소소한 부분일지도 모르나 캐치해 내는 재미도 있다.
특히 곡 진행 전체는 미워미워미워와 달리 한국적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미워미워미워 같은 경우의 엔카스러움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04. 내 이름은 구름이여 (작사 전종현, 작곡 조용필)
개인적으로 즐겨 듣는 곡이다. 본디 70년대에 완성해 자주 부르던 곡이라 알려져 있다.
전주에 등장하는 기타 스트로크는
구름 따라 걷는 나그네 걸음을 연상시키는데, 매우 경쾌하다.
좌우 스피커를 훑어나가도록 처리된 사운드디자인 또한 구름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며,
곧 함께 등장하는 웅장한 신스 사운드 역시 떠돌이 인생의 달관적 자세를 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추잠자리와 더불어 사운드 이미징이 되어 있는 곡으로 보나,
많은 평론에서는 이 곡을 제대로 분석해 보ㅈI 않고 그냥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
여하튼, 이 신스 소리는 시종일관 방랑자의 분위기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중간에 등장하는 솔로잉 간주의 사운드 역시 이 분위기와 잘 맞는다.
곡의 장르를 굳이 나누어 보자면 록 계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05. 여와 남 (작사 김형윤, 작곡 조용필)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지금 들어도 소름돋는 작곡 센스를 조용필은 가졌음을 느낀다.
초판에서 보면 조용필식 음악을 모은 B면의 '타이틀 곡'이었던 여와 남.
조용필이 이 곡을 타이틀 곡으로 정했다는 것 자체가
음악적 야심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샤이키델릭 록으로 스타트를 끊고, 절정부에서는
아예 가성을 클라이막스 창법으로 사용하였으며,
후반부에서는 16비트 테크노록으로 달려가며 페이드아웃 시키는 드라마틱한 구성.
제목을 보면 '남과 여'가 아니고 '여와 남'이다.
지금은 남녀차별이 아닌 여남차별이 만연한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역사를 보고, 당장 주변 어른들께 들어봐도 당시만 해도 얼마나 남성우월주의가 강했나.
그런 시대에 대한 무언의 외침이 이 제목에서 느껴지는데,
이건 그냥 필자의 생각일 뿐 조용필의 의중은 알 수 없다.
강력하고 리드미컬한 느낌이 강한 곽경욱의 인트로 연주를 지나, A부분이 등장한다.
'쉬운 만남 쉬운 이별은..' 조용필식 창법이 역시 보인다.
힘을 주지 않았는데 준 듯한 탄탄한 가창.
더불어 신디사이저의 음색으로 신비한 분위기를 엮어 분위기에 대한 복선 역할이 된다.
그리고 드럼의 스네어를 여러번 때린 뒤, B부분이 터져나온다.
특유의 가성 창법을 아예 더빙해 버렸다.
'지구 위의 반은 남자 지구 위의 반은 여자'로 시작되는 클라이막스로 유명하다.
클라이막스 후반에 등장하는 일렉기타 연주.
자칫 잘못하면 분위기가 늘어질 수 있는 부분에서
기막힌 타이밍에 등장하여 긴장감을 지속시킨다.
이후 곡의 코드는 단조에서 장조로 바뀌어,
조용필 음악의 철학 중 하나인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너가 있음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음에 너가 있다.
한참 반복되다 페이드아웃 되는데, 반복되면 지루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도 장치가 있다.
중간에 두성과 가성이 잘 어우러진 듯한 코러스 음을 강하게 넣어둔 것이다.
그리고 반주에 작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기타 스트로킹은 무시무시한 감각을 보여준다.
뮤팅, 커팅이 마치 숨을 쉬듯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며,
동시에 와우페달까지 밟아대면서도
기타 스트로크를 드럼처럼 리드미컬하게 이끌어내는 이 연주력은
듣는 동안 아예 황당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이 부분은 멜로디가 반복되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배려한 듯 한데
막상 직접 불러보면 절망스러울 정도로 쉽지 않더라.
진성 부분과 가성 부분이 번갈아 가며 반복되는 형식인데,
필자는 이 곡 부를때 가성 부분까지 부른 다음
다시 진성으로 전환하여 부르려면 꼭 음정이 틀려버린다.
후일 평론가들은 조용필이 숱한 명곡을 남기게 된 배경에 대해
핑크 플로이드, 시카고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석하는데,
정작 당사자 조용필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누구에게 영향을 받아야만 음악을 할 수 있나?
당신은 누구의 영향을 받고서야 작품을 만드나?
그렇게 해서 무슨 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
2002년 조용필을 다룬 스타평전 제작 중 조용필이 말한 대목이다.
핑크플로이드, 벤처스, 시카고 등 당대 세계적인 뮤지션들은 물론 영향력이 컸다.
하지만 그것은 음악할 때 자주 접하게 되는 환경 정도였을 뿐이다.
클래식 하는 사람들이 모차르트 영향 받는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조용필의 음악세계는 철저하게 자신의 세계였다.
어떤 장르든, 어떤 계열이든 자신이 직접 공부하고,
편곡하고, 노래하여 자신만의 장르를 만든다.
이것은 조용필이 당대 뮤지션들과 비교 불허의 기세로 승승장구한 원동력이다.
즉, 뮤지션의 기본을 철저하게 익히고 지켜나가며 연마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지난 1집의 단발머리도 그렇고 이번 3집의 여와 남도 그렇다.
06. 잊을 수 없는 너 (작사 이명희, 작곡 조용필)
이전 '촛불'에서 보컬-연주-보컬-연주의 형식을 짚은 바 있는데,
이 곡의 구성에도 같은 기법이 사용되었다.
후일 4집에서도 독특한 구성을 이끄는 원천이 된다.
곡의 마무리에 극적 반전이 이루어지는 멜로디 상향 전복이 뇌리를 붙잡는다.
역시 록 계열로 구분이 가능할 것 같긴 한데,
불가사의할 정도로 조용필 곡은 장르를 딱 구분지을 수가 없다.
07. 물망초 (작사 이희우, 작곡 조용필)
당시 드라마 주제가로, 시원시원한 록 사운드가 일품으로 큰 히트를 기록했던 트랙.
현대에는 알케미스트가 비트 제작 시 무단 통샘플링(?)을 통해 곡을 써서
그것을 자기의 앨범에 실어 한동안 다시 유명해지기도 했다.
비오는 밤거리 가로등 아래에서 한맺힌 여인이 홀로 쓸쓸히 서 있는 듯한 분위기의 곡.
물망초의 꽃이름인 forget me not이 분위기와 딱 맞아 떨어진다.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잇단음표 박자의 연주가 시종일관 깔려 있어 분위기를 유지한다.
A부분은 '약'으로 시작한다.
보통 록음악과 발라드 역시 '약'으로 시작하기는 한데, 여기선 다르다.
중간에 엄청나게 두들겨대는 드럼 소리가 등장한 뒤 다시 보컬이 전개되는데
(여기를 편의상 A'로 설정)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 정도 연주하는 드러머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이것보다 더 현란한 연주도 물론 있는데,
백이면 백 미디 시퀀싱으로 찍어낸 음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A' 이후, 그루브한 슬랩베이스 사운드가 귀를 튕겨대며 B로 자연스레 넘어간다.
이제 '강'의 차례이다. 잊지 마세요 부분. 하지만 여타의 록 곡들과는 다르다.
보통 노래들은 한 절만 봐도 약>강의 순서가 끝인데, 이 곡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첫번째 '강'이 끝난 뒤, 다시 '약'이 등장한다. '마음은 비가 되어'부분.
그다음 제대로 된 '강'이 다시 나온다. 클라이막스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이 클라이막스 끝에 나오는 '물 망 초--'에서의 지독하게 길게 유지되는 음은
유지되면서도 흔들림이나 갈라짐 없이 끝까지 가면서
조용필의 발성력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의 발성이 그대로 전개되면서 동시에 진행되는 간주 부분 역시
비오는 밤거리를 그대로 묘사하는 멜로디이며,
중간중간 슬랩베이스 사운드가 한층 리듬을 끌어준다.
2절은 1절과 유사하게 진행되는데, 2절 이후에도 솔로잉이 나온다.
후주라고 부를 수 있겠다.
페이드아웃되면서 기타 솔로잉도 더욱 화려해지고
베이스 초퍼 사운드의 진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특히 여러분이 요즘 조용필의 공연에서 이 곡을 들으면
이 아웃트로에서 하드록 샤우팅의 향취를 접목한 편곡에 놀랄 것이다.
이 곡은 절-간주 의 구성이 그대로 반복되는 형태이지만, 역시 지루하지 않게 들린다.
사실 조용필의 모든 음악은 심플한 구성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듣게 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것은 조용필의 음악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철학인 원테이크 정신이다.
당시는 물론이요 요즘은 더욱 기승을 부리는 분할녹음을 조용필은 결코 용납치 않는다.
연주 따로 해서 믹스다운 하는 일? 역시 어림도 없는 일이다. 무조건 합주다.
녹음실에 밴드 전체를 불러 와서, 연주 하면서 동시에 노래도 부르는,
그야말로 진짜 '원테이크'로 곡을 녹음한다.
그렇기에 조용필의 음악은 언제나 인간미가 느껴지며, 질리지가 않는 것이다.
보통 질린다 함은 같은 것의 반복에 기인하기 마련이다.
요즘 음반의 대부분(심지어 이승환의 최신작마저)이
미디 시퀀싱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다.
미디 시퀀싱은 컴퓨터로 찍어내는 건데, 당연히 반복되는 부분은
복사 및 붙여넣기(일명 ctrl+c/v신공)를 해버린다.
물론 작업시간은 빨라진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인간미를 많이 상실하게 마련이다.
보통 음악할 때, 아마추어 수준에서는 실제 악기를 치는것이
미디 시퀀싱보다 더 쉽게 느껴진다.
시퀀싱 테크닉에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아직 연주수준이 일가를 이루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 좀 해도 알아채질 못한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그때부터는
미디 작업이 밴드 활동보다 훨씬 쉽게 느껴진다.
일단 악기 연주는 만족할 때까지 연습해야 하고,
밴드 구성원간의 호흡이 척척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이 미디는 이런 걱정을 할 일이 없이 찍어내기만 하면 된다.
좋은 컴퓨터에 마스터건반 하나면 온갖 악기를 불러와서 작편곡 및 레코딩이 가능하다.
미디가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인 힙합 장르에서 국내 독보적 위치를 가진 김진태 씨는
처음에는 밴드를 하려다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미디가 더 편해서
미디를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밴드의 어려움을 증거하며, 동시에 미디의 편리성을 증거하기도 한다.
허나 컴퓨터음악의 정신적 지주 홍사철 선생 역시 미디의 한계로
비인간미에 의한 거부감을 들었다.
하지만 이런 미디의 단점은 미디의 편리성에 가려져 모든 음악계를 잠식했다.
어찌 보면 장점도 많다. 아마추어들도 곡을 제작할 수 있게 됐고,
작곡이 취미인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위대한탄생 같은 '진짜배기'들이
더욱 희소해지는 것은 씁쓸한 일임이 분명하다.
08. 너의 빈자리 (작사 임석호, 작곡 조용필)
70년대에 이미 '어디로 갔나요'라는 제목으로 불렀던 곡인데
약간의 수정을 거쳐 3집에 재수록되었다. 일종의 팝발라드 쪽에 가깝다 할 수 있겠다.
가사의 '내용'에 따라 점차 고조되는 멜로디가 특징이다.
역시 신디사이저의 따뜻한 음색은 중간중간의 백미.
이렇게 위대한탄생 밴드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항상 최신의 모던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중간의 간주 음색 역시 따뜻한 조용필식 팝발라드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게 해 주며,
주된 분위기로서 풋풋한 감성이 느껴지는 곡이다.
밴드 멤버들의 코러스 참여로 더욱 듣는 재미가 있다.
09. 강원도 아리랑 (민요)
문제의 강원도 아리랑이다.
요즘도 마찬가지긴 한데, 당시 사람들의 흥겨운 민요의 대부분은
정통 국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창자 혼자서 신나고 막상 듣는 청중은 얌전하게 앉아 있던 일방향성이었다.
하지만 조용필은 이런 것을 탈피,
놀랍게도 재즈와 한국적 록을 기막히게 섞어낸 반주로 재탄생시킨다.
사실 '진부한 곡'을 '세련된 곡'으로 바꾸는 재주는 데뷔 전부터 확인된 바 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고고 리듬을 신트로트로 바꾼 사례가 이미 있고,
이후에도 '처량한 민요'인 진도아리랑을
흥겨운 록 리듬으로 편곡하는 등의 능력을 보여준다.
후일 이 강원도 아리랑은 모던락과 헤비메탈의 접점 버전으로
엄청나게 새롭게 편곡되어 조용필의 공연장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조용필을 민족가수로 명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다.
10. 길 잃은 철새 (작사 유호, 작곡 최창권)
솔직히 이 곡의 인트로를 담당한 신스 사운드는 좀 촌스럽게 들린다.
하긴 옛날 장비의 사운드로서는 깔끔하게 뽑아내긴 했지만 약간 아쉽다.
그 외에 반주 코드를 담당한 피아노, 중간중간 진행선율만 한가닥 짚고 넘어가는 신스,
그리고 노을진 하늘 철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드럼 정도가 들을 만 한데
다른 트랙에 비하면 많이 묻힌다.
만들어진 때가 70년대 때라는데, 별다른 편곡을 하진 않은듯 하다.
하긴 이 반주 자체가 곡의 분위기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 곡은 오히려 울적할 때 들으면 의외로 기분 환기에 효과가 있다.
절정부로 들어가는 문턱부터 클라이막스까지는 특유의 한 서린 창법이 듣기 좋다.
11. 황성옛터 (작사 왕평, 작곡 전수린)
옛노래를 파 본 사람은 알겠지만, 조용필 앨범으로 데뷔한 곡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시 유행하던 노래인데,
당시 18세였던 이애리수 씨가 불러 유명해진 곡이다.
작사한 왕평 씨는 배우였고, 작곡한 전수린 씨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이 둘은 어느 날 공연을 위하여 고향이었던 개성에 들렀는데,
달빛이 비치는 만월대(황진이가 세월의 무상함을 읊은 시로 유명함)에 올라 보니
너무나 허무했던 것이랜다. 고려시대의 왕궁터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 황성의 부귀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단지 풀벌레 우는 소리만 처량히 남았을 뿐.
그날 밤, 왕평은 시를 적고 전수린은 그것을 바탕으로 멜로디를 만들었다.
이것이 일제 강점 1928년에 우리 가요사 최초 트롯곡 '황성옛터'가 탄생한 배경이다.
그해 가을 단성사에서 이애리수가 불렀고, 모든 청중이 매료되어 곡이 유명해졌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글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객석 여기저기가 흐느꼈다. 나라 잃은 설움이 복받치고,
다시 부르라는 아우성에도 노래하던 애리수도 3절을 끝내 부르지 못했다.
일본군복을 입어야 했던 고종황제의 손자도,
후일 박정희 대통령도 이를 애창하였다.......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곡이며,
곡 자체의 멜로디와 편곡보다는 오히려 이런 배경을 짚고 감상하는 것을 권한다.
참고로 98세가 된 이애리수 씨는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후문이다.
12. 님이여 (작사 지명길, 원곡 바비 블랜드)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조용필을 기타리스트에서 가수로 전향하게 한
Lead me on을 번안한 곡.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Lead me on의 발음을 그대로 따
'님이여'로 짓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조용필 자신을 가수의 길로 나오게 해 준 곡이라 그런지
조용필도 여기서 혼을 다한 창을 했고,
후일 원곡보다 더 원곡같으며 소울풀하다는 평이 많다.
멜로디 자체야 원곡에서 따 왔겠지만, 이 곡은 서양 곡을 번안했음에도 불구하고
편곡 과정에서 우리의 소리가 되어 버렸다. 정확히는 조용필의 음악세계인 것.
조용필은 여기에서도 자신의 엄청난 흡수/재창조 능력을 선보인 것이다.
왼쪽에선 기타 뜯는 소리가, 오른쪽에선 기타 스트로킹 소리가 들리며
판소리와 소울의 창법을 한데 접목한 조용필 특유의 목소리가 비장미를 보인다
배경으로 퍼져 있는 신스 또한 한몫 하는데, 쓰러진 폐허에서 임을 그리는 듯 하다.
이것이 당시 가요계의 주된 주제 중 하나였던 '님그리워'의 주제라지만
여타의 그것처럼 치부하기엔 곡 자체가 너무나 세련되어 있다.
가사 또한 매우 아름다우며, 몇십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다.
나중 30주년 기념음반에서의 편곡버전도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좀 더 깔끔해졌다.
슬쩍 후반부에 등장하는 키보드(좌측 패닝),
그리고 중간중간 베이스 튕기는 소리도 적절히 들어가 있고
코러스 활용의 미학을 잘 보여주기도 한 곡이다.
필자가 감히 평점을 매겨 1집은 5점 만점에 4.5점
2집은 3.5점을 매겼는데, 3집도 4.5점을 주고 싶다.
(별점제도가 있는 힙합플레이야 리뷰게시판 참조)
1집은 앨범 전체적인 것으로 보면 4점을 주려 했으나,
그 당시의 파격적인 행보 및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까지 보면
4.5점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5점을 주지 않은 이유는 4집을 만점의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2집은 사실 급조된 앨범이었으나, 시대의 명곡 2트랙이 담겨 있었고
3집은 순수하게 음악성만으로 4.5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도 5점을 얻을 수 있겠으나, 이후 작품인 4집이 너무 뛰어나기에 상대적인 점수일 뿐이다.
조용필 3집. 조용필이 본격적으로 사운드에 대한 욕심을 보이고 그에 걸맞는 결과를 내놓은 쾌작이다.
당시의 사정에 의해 '미워 미워 미워'같은 옥의 티 같은 노래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 외의 곡은 '모조리' 좋은 곡으로 인정받아 마땅한 것 뿐이었으며,
특히 명곡으로 꼽히는 고추잠자리의 경우 24주 연속 1위를 차지해 버린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미국 암펙스사 제정 골든릴상을 수상한 앨범이기도 하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세계적인 프로듀서 알케미스트가 한국 곡을 샘플링할 때 택한 앨범이기도 하고,
1집과 마찬가지로 기존 곡을 제외한 신곡들이 모조리 히트해 버린 앨범이기도 하다.
3집에서의 사운드 실험에 성공한 조용필은, 이후 4집을 만들기 위해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이는 서태지에게도 큰 영향을 주어, 나중 서태지가 이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요즘에야 이 방식이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발상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4집에서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참고자료
- 팬클럽 위대한탄생 '승훈'님 리뷰글
- 팬클럽 위대한탄생 출판 'THE HISTORY'책자
첫댓글 이 리뷰시리즈는 악숭뿐 아니라 힙합플레야, 렛플 등 여러 음악사이트에 연재중이며 본인 작성입니다.
저번에 악숭에 2집까지 올렸는데 별 반응이 없어서 여긴 조용필에 관심이 없나보다 싶어서 그동안 안 올렸었는데
오늘 와보니 덧글이 달려 있더군요. 앞으로 계속 여기도 업로드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4집까지만 완성돼 있고요, 5집 리뷰는 구상중입니다.
제가 그 시대를 살지 않은지라 과거 시대적 배경을 짚는 일이 매우 어렵고,
또 4집까지는 에너지를 발휘해 매주 썼는데 이게 피로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여하튼 계속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_=
본문에는 없지만 내용 하나 덧붙이자면, 전 미디를 폄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실제 밴드연주'만이 줄 수 있는 사람냄새를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이런글을 쓰시기 위해서 얼마나 심도있게 들으셨을지 ,,감사합니다 좋은글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닿는 곡들은 하나하나 찾아 들어가면서 읽었는데, 그럴수록 느끼게 되는건 이분이 진정, 음악인으로서의 발판이 조금더 마련된 곳에서 태어나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 잘읽었습니다
조용필의 본래음악은 락이지요...신보는 아직일까요?
3집이 개인적으로 노래방 애청곡이 많습니다. 특히 여와남
여와남을 노래방에서 부르시다니 대단하세요... 앨범 들을땐 못 깨달았는데 용필옹 전성기 라이브 보고 미친 노래라는걸 깨달았던...
내이름은 구름이여...란 곡을 상당히좋아하고 즐겨들었습니다...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들어보니 색다른맛이 있군요...굉장한 명곡이라 생각합니다..요즘 모터헤드 듣느라고 정신없는데..다시 조용필 노래좀 들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