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근세입니다.
해외의 논술, 다른 기관(공기관, 사기관)들의 논술 동향을 점검하기로 해서, 우선 200년 논술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논술(바칼로레아, 승리를 상징하는 말입니다)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마침 프랑스의 공적인 문서를 검색했습니다. 중요한 부분들을 번역해서 정리했습니다. 1994~5년 정도에 마련된 지침서인데, 지금까지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문서로 보입니다. 특히, 고등학교에 이미 <철학> 논술고사를 위해 <철학 프로그램>이 치밀하게 정비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 고교생들은 배운 것을 가지고 논술을 하고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우리 당국자들께서 프랑스 고교철학교육을 벤치마킹했으면 참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바칼로레아라는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해
야 합니다. 우리처럼 문과 이과로 구분하지는 않지만, 바칼로레아는 <경제와 사회>, <문학>, <과학>의 영역으
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논술 시험에 해당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악명 높은 <철학>입니다. <철학
>은 위의 세 영역의 학생들 모두 치러야 합니다. <철학>은 논술과 구술로 다시 구분되는데, 오늘은 논술에 대해
서만 간략하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랑스 철학 논술
<철학> 논술 시험은 4시간 동안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3가지 주제가 학생들에게 주어지고 하나를 선택할 수 있
다. 우리와 다른 점은 고등학교 때 <철학> 시험의 내용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 영역에 철학 프로그램이
있고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배우고 나서 시험을 치른다. 각 영역의 프로그램 내용 가운데 주제들이 선정된다.
주제를 줄 때 출제자들이 지켜야 할 사항들이 몇가지 있다:
- 철학논술시험 때 주어지는 발문(문제)은 프로그램의 표현들을 그대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강의 내
용을 그대로 서술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발문은 너무 일반적이어서도 안 된다. 프로그램에서 배운 개념
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또한 발문은 특정한 철학 이론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테크니컬한 용어들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
- 또한 발문은 지나치게 전문화된 지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칸트의 물자체 개념에 대한 야코비
의 비판을 칸트의 입장에서 재비판하시오>(안 좋은 예로 제가 생각해본 문제입니다)
- 또한 발문은 인용문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인용구는 짧아야 한다.
- 결국, 발문은 직접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한다.
발문은 하나의 철학 텍스트와 함께 주어진다. 텍스트는 당연히 위에 언급한 프로그램의 리스트에 포함된 저자
의 것을 선정한다. 학교 수업에서 지나치게 많이 등장한 텍스트들은 일반적으로 배제한다. 텍스트는 10~20줄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짧은 텍스트는 인용구가 되고, 너무 긴 텍스트는 학생들의 기를 죽이기 때문에 좋지 않
다.
주어지는 철학 텍스트는 고등학교의 철학 프로그램 내용과 관련이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담고 있어야 한다. 학
생들은 텍스트에서 철학적 관심사를 뽑아내야 한다. 즉,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텍스트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텍스트의 저자의 이론이나 철학사에 얽매일 의무는 전혀 없
다. 달리 말하면, 주어질 텍스트는 하나의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거나, 경우에 따라서 해결하도록 하는 내용이어
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텍스트를 탐구하고 이용하기 위해, 학생들은 특정한 방법을 따를 필요는 없
다. 텍스트의 분석은 질서가 있되, 주해나 주석이 아니면 된다. 즉 텍스트의 분석은 방법적이고 비판적인 반성
의 철학적 연습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첫댓글 경희대에서 강의하는 이근세 선생이 프랑스 논술시험에 관해 잘요약해 놓은 것이 있어 학부모인 우림 멤버들에게도 장차 참고가 될것 같아 스크랩해왔습니다^^오랜만에 학구적ㅎㅎ